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6)

통감절요(6)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辰] 〈唐武德三年이라
경진(620) - 나라 무덕武德 3년이다.
○ 是歲 幷楚, 夏, 定楊, 梁師都, 梁銑, 鄭, 梁法興, 吳하야 凡九國이러니 定楊, 梁法興亡하니라
○ 이해에 나라, 나라, 정양定楊(劉武周), 양사도梁師都, 나라의 소선蕭銑, 나라, 양왕梁王 심법흥沈法興, 오왕吳王까지 아울러 모두 아홉 나라였는데, 정양定楊나라의 심법흥沈法興이 망하였다. -
唐世民 與劉武周將宋金剛으로 相持할새 世民 屢破金剛將遲敬德, 尋相注+[頭註]尉遲 複姓이요 尋相 姓名이라[通鑑要解]敬德 字也 名也하다
나라 이세민李世民유무주劉武周의 장수인 송금강宋金剛과 서로 대치할 적에 이세민李世民송금강宋金剛의 장수인 울지경덕尉遲敬德심상尋相注+[頭註]尉遲는 복성複姓이고 심상尋相성명姓名이다. [通鑑要解]敬德은 이고 이 이름이다. 등을 여러 번 격파하였다.
四月 金剛 食盡北走어늘 世民 追及尋相於呂州하야 大破之하고
4월에 송금강宋金剛이 양식이 떨어져 북쪽으로 도망하자 이세민李世民이 추격하여 심상尋相여주呂州에서 따라잡아 대파하였다.
乘勝逐注+[釋義] 陰方이니 軍敗曰하야 一晝夜 行二百餘里하야 戰數十合하고 追及金剛於하야 一日八戰 皆破之하니 世民 不食 二日이요 不解甲 三日矣러라
승세를 타고서 패주하는 적을 추격注+[釋義]북쪽은 음방陰方이니 군대가 패한 것을 라 한다. 하여 하루 만에 2백여 리를 행군해서 수십합數十合을 싸우고 송금강宋金剛작서곡雀鼠谷에서 따라잡아 하루 동안 여덟 번을 싸워 모두 격파하니, 이세민李世民이 밥을 먹지 않은 것이 이틀이었고 갑옷을 벗지 않은 것이 사흘이었다.
敬德 與尋相으로 擧介(州)[休]及永安降이어늘 世民 得敬德甚喜하야 以爲右一府統軍하고 使將其舊衆八千하야 與諸營相參하다
울지경덕尉遲敬德심상尋相과 함께 개휴현介休縣영안현永安縣을 가지고 항복하자, 이세민李世民울지경덕尉遲敬德을 얻고는 매우 기뻐하여 그를 우일부통군右一府統軍으로 삼고 옛날에 거느리던 휘하 8천 명을 거느려 여러 과 서로 참여하게 하였다.
劉武周聞金剛敗하고 大懼하야 棄幷州하고 走突厥이어늘 金剛 亦與百餘騎 走突厥하니 幷州悉平하다
유무주劉武周송금강宋金剛이 패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병주幷州를 버리고 돌궐突厥로 달아나자 송금강宋金剛도 백여 명의 기병과 함께 돌궐突厥로 도망하니, 병주幷州가 모두 평정되었다.
〈出敬德等傳〉
- 《당서唐書》의 〈울지경덕전尉遲敬德傳〉 등에 나옴 -
○ 七月 詔秦王世民하야 督諸軍하야 擊王世充하다
○ 7월에 나라가 진왕秦王 이세민李世民에게 명해서 제군諸軍을 감독하여 왕세충王世充을 공격하게 하였다.
○ 劉武周降將尋相等 多叛去어늘 諸將 疑尉遲敬德하야 囚之軍中이러니
유무주劉武周의 항복한 장수인 심상尋相 등이 대부분 배반하고 도망가자, 제장諸將울지경덕尉遲敬德을 의심하여 군중軍中에 가두었다.
屈突通注+[通鑑要解]屈突 複姓이라, 殷開山 言於世民曰 敬德 驍勇絶倫하니 今旣囚之 心必怨望이라
굴돌통屈突通注+[通鑑要解]굴돌屈突복성複姓이다. 은개산殷開山이세민李世民에게 말하기를 “울지경덕尉遲敬德은 날래고 용감함이 무리들 중에 뛰어난데 이제 이미 그를 가두었으니, 그 마음에 반드시 원망할 것입니다.
留之 恐爲後患이니 不如遂殺之니이다 世民曰 不然하다
그를 남겨 둔다면 후환이 될까 두려우니 죽이는 것만 못합니다.” 하니, 이세민李世民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敬德 若叛이면 豈在尋相之後耶 遽命釋之하고 引入臥內하야 賜之金曰 丈夫注+[頭註]十尺爲丈이니 人長八尺이라 故云이요 又尊嚴之稱이라意氣相期하니 勿以小嫌介意하라
울지경덕尉遲敬德이 만약 배반하려 했다면 어찌 심상尋相의 뒤에 배반하겠는가.” 하고 급히 명하여 풀어 주게 하고는 그를 데리고 침실 안으로 들어와서 을 하사하며 말하기를 “대장부注+[頭註]10척을 1이라 하니, 사람(男子)의 키가 8척이기 때문에 장부丈夫라고 이른 것이요, 또 존엄한 자의 칭호이다. 의기意氣로써 서로 약속하였으니 작은 혐의를 개의치 말라.
吾終不信讒言以害忠良하리니 公宜體之하라
내 끝내 참소하는 말을 믿어 충량忠良한 사람을 해치지 않을 것이니, 공은 내 마음을 체찰하라.
必欲去者 以此金相資하야 表一時共事之情也로라
기어이 떠나고자 한다면 이 을 주어서 우리가 한때 일을 함께 한 정의情誼를 표하노라.” 하였다.
已而 世民 以五百騎 行戰地하야 登魏宣武陵注+[釋義]謂後魏宣武帝陵也이러니 王世充 帥步騎萬餘하고 猝至圍之하고 雄信注+[原註] 時戰反이니 姓也 引槊注+[原註]이라直趨世民이어늘
얼마 뒤에 이세민李世民이 500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전쟁터를 순행하여 후위後魏 선무제宣武帝의 능注+[釋義]선무릉宣武陵후위後魏 선무제宣武帝을 이른다. 에 올랐는데, 왕세충王世充이 보병과 기병 만여 명을 거느리고 갑자기 와서 포위하였고 단웅신單雄信注+[原註]은 時戰反(선)이니 이다. 이 창注+[原註]과 같다. 을 잡고 곧바로 이세민李世民을 향해 달려왔다.
敬德 躍馬大呼하야 橫刺雄信墜馬하니 世充兵 稍却이라 敬德 翼世民出圍하다
울지경덕尉遲敬德이 말에 뛰어올라 크게 고함을 치고 단웅신單雄信을 옆으로 찔러 말에서 떨어지게 하자, 왕세충王世充의 군대가 조금 퇴각하였으므로 울지경덕尉遲敬德이세민李世民을 도와 포위망을 탈출하였다.
世民, 敬德 更帥騎兵還戰할새 出入世充陳하야 往返 無所礙
이세민李世民울지경덕尉遲敬德이 다시 기병을 거느리고 돌아와 싸울 적에 왕세충王世充의 진영을 출입하여 가고 돌아옴에 막히는 바가 없었다.
屈突通 引大兵繼至하니 世充 兵大敗하야 僅以身免이어늘 斬首千餘級하다
굴돌통屈突通대병大兵을 이끌고 계속하여 이르자, 왕세충王世充의 군대가 대패하여 겨우 몸만 빠져나가니, 천여 명의 수급首級을 베었다.
世民 謂敬德曰 公何相報之速也오하고 賜敬德金銀一篋하니 自是 寵遇日隆이러라
이세민李世民울지경덕尉遲敬德에게 이르기를 “은 보답하는 것이 어찌 이리도 빠른가.” 하고는 울지경덕尉遲敬德에게 금은金銀 한 상자를 하사하니, 이로부터 총애와 대우가 날로 높아졌다.
敬德 善避注+[頭註] 與槊同하니 矛長八尺曰矟이라하야 每單騎 入敵陳中 叢矟注+[頭註] 聚也刺之하되 終莫能傷이요 又能奪敵矟하야 返刺之러라
울지경덕尉遲敬德은 창注+[頭註]과 같으니, 창의 길이가 8인 것을 이라 한다. 을 잘 피하여 매번 단기單騎로 적진에 돌진할 때마다 적들이 일제히 창을 모아注+[頭註]은 모음이다. 찔렀으나 끝내 부상시키지 못하였으며, 또 적의 창을 잘 빼앗아 도리어 찌르곤 하였다.
齊王元吉 以善馬矟으로 自負러니 聞敬德之能하고 請與敬德較勝負할새
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이 말 위에 창을 잘 쓰는 것으로 자부하였는데, 울지경덕尉遲敬德이 창을 잘 쓴다는 말을 듣고는 울지경덕尉遲敬德과 승부를 겨루기를 청하였다.
元吉 操矟躍馬하야 志在刺之로되 敬德 須臾 三奪其矟이러라
이원길李元吉이 창을 잡고 말에 뛰어올라 울지경덕尉遲敬德을 찔러 죽이려는 데에 뜻이 있었으나 울지경덕尉遲敬德이 잠깐 동안에 세 번이나 그의 창을 빼앗았다.
〈出敬德傳〉
- 《당서唐書 울지경덕전尉遲敬德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 울
역주2 : 배
역주3 : 북
역주4 : 배
역주5 雀鼠谷 : 雀鼠谷은 介州의 治所인 介休縣과 永安縣 사이에 있다.
역주6 : 선
역주7 : 삭
역주8 : 삭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