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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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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戊寅]〈晉, 岐, 吳 稱唐天祐十五年하고 梁貞明四年이라
무인(918) - 나라 천우天祐 15년을 칭하였고, 나라는 정명貞明 4년이다.
○ 蜀光天元年이라
나라는 광천光天 원년元年이다.
○ 是歲 凡六國, 四鎭이라
○ 이해에 모두 여섯 나라이고 네 이다. -
晉兵 侵掠至, 濮而還이어늘 梁敬翔 上疏曰
봄에 나라 군대가 침략하여 운주鄆州복주濮州까지 이르렀다가 돌아가자, 나라 경상敬翔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國家連年喪師 疆域日蹙이라
“우리나라가 여러 해를 계속해서 전쟁에서 패하여 강역疆域(領土)이 날로 축소되고 있습니다.
陛下居深宮之中하야 所與計事者 皆左右近習이니 豈能量敵國之勝負乎잇가
폐하께서 깊은 궁중에 거처하시어 함께 정사를 계획하는 자들이 모두 좌우의 측근들이니, 어찌 적국의 승부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先帝之時 奄有河北하고 親御豪傑之將호되 猶不得志注+[頭註]不得志 謂不得志于晉이라 어시늘 今敵至鄆州로되 陛下不能留意하시니 必若乏才인댄 乞於邊陲自效하노이다
선제先帝 때에 곧바로 하북河北 지방을 소유하고 호걸스러운 장수를 직접 어거하였으나 오히려 나라에서 뜻을 얻지 못하셨는데,注+[頭註]뜻을 얻지 못하였다는 것은 나라에서 뜻을 얻지 못하였음을 이른다. 지금 적이 운주鄆州에 이르렀는데도 폐하께서 유념하지 않으시니, 폐하께서 만약 국가에 인재가 없다고 하신다면 이 변방에서 스스로 충성을 바칠 것을 청합니다.”
疏奏 趙, 張之徒 言翔怨望이라하니 梁主遂不用하다
상소문을 올린 뒤에 조암趙巖장한정張漢鼎의 무리가 “경상敬翔이 원망한다.”고 말하니, 양주梁主가 마침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 吳徐知誥 爲淮南節度行軍副使하다
나라 서지고徐知誥회남절도행군부사淮南節度行軍副使가 되었다.
〈知誥後簒吳하니 是爲南唐이라〉知誥事吳王盡恭하고 接士大夫以謙하며 御衆以寬하고 約身以儉이라
- 서지고徐知誥가 뒤에 나라를 찬탈하니, 이것이 남당南唐이다. - 서지고徐知誥오왕吳王을 섬김에 공경을 다하고 겸손으로 사대부士大夫를 대하며, 관대함으로 무리들을 다스리고 검소함으로 몸을 단속하였다.
以吳王之命으로天祐十三年以前逋稅注+[頭註]欠負官物 亡匿不還 皆謂之逋라하니라 하고 餘俟豐年하야 乃輸之하고 求賢才, 納規諫하고 除姦猾, 杜請託하니 於是 士民 翕然歸心하야 雖宿將悍夫라도 無不悅服이러라
오왕吳王의 명령으로 천우天祐 13년 이전에 체납된 세금을 모두 면제해주고注+[頭註]관아의 재물을 축낸 것과 재물을 잃어버리거나 숨기고 되돌려주지 않는 것을 모두 라고 이른다. 나머지는 풍년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바치게 하였으며, 덕이 있는 자와 재주 있는 자를 발굴하고 규간規諫하는 말을 받아들이며, 간사하고 교활한 자를 제거하고 청탁을 막으니, 이에 선비와 백성들이 모두 마음이 돌아와서 비록 노장老將과 사나운 지아비라도 기뻐하여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以宋齊丘 爲謀主하니 由是 江淮間 曠土注+[通鑑要解]空曠不耕之土也 盡闢하고滿野하야 國以富强하니라
서지고徐知誥송제구宋齊丘모주謀主로 삼으니, 이로 말미암아 강회江淮 지방의 빈 땅이注+[通鑑要解]광토曠土는 비워두고 경작하지 않는 농토이다. 모두 개간되고 뽕나무와 산뽕나무가 들에 가득하여 국가가 부강하게 되었다.
○ 契丹主 〈作孔子廟하고 親謁之하니라
거란주契丹主 - 공자孔子의 사당을 만들고 친히 배알하였다. -
역주
역주1 : 운
역주2 : 견
역주3 : 자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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