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7)

통감절요(7)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辰]九年이라 〈周武氏長壽元年〉
사성嗣聖 9년(임진 692) - 나라 무씨武氏 장수長壽 원년元年 -
春正月 帝在房州하다
봄 정월에 황제가 방주房州에 있었다.
○ 太后引見所擧人하야 無問賢愚하고 悉加擢用할새 高者 試鳳閣舍人, 給事中하고 試員外郞, 侍御史, 補闕, 拾遺, 校書郞하니 試官注+[頭註]試者 未爲正命이라 自此始
태후太后존무사存撫使(各地를 안무按撫하러 보낸 사신)가 천거한 자들을 인견해서 어질고 어리석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발탁하여 등용하였는데, 높은 자는 봉각사인鳳閣舍人급사중給事中시용試用하고 그 다음은 원외랑員外郞시어사侍御史보궐補闕습유拾遺교서랑校書郞에 시용하니,注+[頭註]는 아직 정식으로 임명받지 않은 것이다. 관원을 시용하는 제도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爲之語曰 補闕連車載 拾遺平斗量이요 注+[釋義]齊, 魯謂四齒把(耙)爲欋[通鑑要解] 言授官之泛 如用把推聚之多 侍御史 注+[釋義] 通作椀하니 小盂也 脫者 椀之形模[通鑑要解] 言官不得人 如模脫盌盃하야 箇箇相似也 校書郞이라하더라
당시 사람이 말하기를 “보궐補闕은 하도 많아서 수레 몇 대에 실어도 되고 습유拾遺는 말[斗]로注+[釋義] 지방에서는 발이 네 개인 쇠스랑을 라 한다. [通鑑要解] 관직을 많이 제수한 것이 마치 갈퀴(쇠스랑)로 물건을 긁어모으듯이 많음을 말한다. 헤아릴 정도이며, 시어사侍御史는 갈퀴로注+[釋義](완)으로 쓰니 작은 사발이고, 은 사발의 모형이다. [通鑑要解] 관직에 사람을 제대로 얻지 못한 것이 마치 모형에서 찍어낸 사발이나 잔과 같아 낱낱이 모두 비슷함을 이른다. 긁어모을 수 있고 교서랑校書郞은 틀에서 똑같이 찍어낸 사발과 같다.” 하였다.
有擧人續之曰 ()注+[通鑑要解]麥胡 與糊同이니 粘也 存撫使 注+[釋義] 物入目中也 莊子 簸糠眯目이라하니라 聖神皇이라하더라
거인擧人 심전교沈全交가 뒤를 이어 이르기를 “풀을 바르듯 모호한 것은注+[通鑑要解] 𪍒心:𪍒는 와 같으니, 모호한 것이다. 존무사存撫使요, 눈에 티가 들어간 듯 어두운 것은注+[釋義]는 티가 눈에 들어간 것이니, 《장자莊子》 〈천운天運〉에 “쌀겨를 까부르다가 티가 눈에 들어갔다.” 하였다. 성신황聖神皇(則天武后)이다.” 하였다.
○ 太后自以來 任用酷吏하야 先誅唐宗室貴戚數百人하고 次及大臣數百家하고 其刺史郞將以下 不可勝數
태후太后수공垂拱 이래로 잔혹한 관리를 임용하여 먼저 당나라 종실과 귀척貴戚 수백 명을 주살하고 다음은 대신들 수백 집안에 미쳤으며, 자사刺史낭장郞將 이하는 이루 다 셀 수가 없었다.
每除一官 戶婢注+[頭註]宮婢之直宮中之門戶者竊相謂曰 鬼朴注+[釋義]鬼朴 言其身必見誅하여 死爲鬼也[通鑑要解] 朴 與樸通하니 土曰坏 木曰樸이라 猶言爲鬼之材也 又來라하면 不旬月 輒遭掩捕族誅러라
매번 한 관원을 제수할 때마다 궁문宮門을 지키는 시녀들이注+[頭註]호비戶婢는 궁궐의 시녀 중에서 궁중의 문호門戶를 담당한 자이다. 몰래 서로 말하기를 “귀신 될 탈이注+[釋義]귀박鬼朴은 그 몸이 반드시 죽임을 당하여 죽어서 귀신이 될 것임을 말한다. [通鑑要解]과 통하니, 흙으로 된 것을 라 하고 나무로 된 것을 이라 한다. 귀신이 될 틀(탈)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또 온다.” 하면 열흘에서 한 달이 못되어 번번이 은밀하게 체포되고 삼족이 죽임을 당하였다.
監察御史嚴善思 公直敢言이라
감찰어사監察御史 엄선사嚴善思는 공정하고 정직하여 간언을 하는 데 과감하였다.
告密者 不可勝數注+[釋義]告密者 以天下秘密事 上告也 如今告訐之類하니 太后亦厭其煩하야 命善思按問한대 引虛伏罪者 八百五十餘人이라
당시에 고밀告密하는 자들이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자,注+[釋義]고밀告密이란 천하의 비밀스러운 일을 윗사람에게 고하는 것이니, 지금의 고자질하는 것과 같은 따위이다. 태후太后 또한 번거로움을 싫어하여 엄선사嚴善思로 하여금 조사해서 심문하게 하였는데, 고밀告密이 사실이 아닌데 허위로 죄를 자복한 자가 850여 명이었다.
羅織注+[頭註]網羅無辜하야 織成反狀이라 之黨 爲之不振이러라
없는 죄를 꾸며 만드는注+[頭註]나직羅織은 무고한 사람을 그물로 얽어서 모반의 형상을 꾸며 만든 것이다. 무리가 이 때문에 떨치지 못하게 되었다.
역주
역주1 存撫使 : 태후는 天授 원년(690) 9월에 存撫使를 10道에 파견하여 천하를 순찰하게 하였다.
역주2 時人 : 《太平廣記》에는 이 말을 張鷟(작)이 한 것이라고 하였다.
역주3 欋槌 : 구추
역주4 : 완
역주5 沈全交 : 당나라의 詩人인 沈佺期의 아우로, 《太平廣記》에 “疑獄을 관장하는 評事는 법률을 읽지 않고 博士는 문장을 찾지 않으며, 풀을 바르듯 모호한 것은 存撫使요, 눈에 티가 들어간 듯 어두운 것은 聖神皇이다.[評事不讀律 博士不尋章 麪糊存撫使 眯目聖神皇]”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6 : 미
역주7 垂拱 : 則天武后의 연호이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