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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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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午]二十八年이라
始皇 東行郡縣할새 上鄒嶧山注+[釋義]正義曰 邾嶧山 一名鄒山이니 在兗州鄒縣南이라 魯繆公 改邾作鄒하고 遂因縣名山하니라하야 立石頌功業하고至顚(巓)하야 立石頌德하고하야 禪於 梁注+[釋義]梁父 泰山下小山名也 因以名縣하니 屬泰山郡이라 梁父 在兗州泗水縣北八十里하니 音甫하다 遂東遊海上이러니
方士徐市(불)等 上書호되 請得與童男女 入海하야 求三神山不死藥이라하다
浮江할새하야 逢大風하야 幾不能渡
上問 湘君何神 對曰 堯女, 舜妻니이다
始皇 大怒하야 使伐湘山樹하야 其山하다
○ 初 韓人張良 父祖以上五世相韓注+[頭註]祖開地 相韓昭侯, 宣惠王, 襄王하고 父平 相釐王, 桓惠王하야 凡五世이라
韓亡 欲爲韓報仇러니
始皇 東遊하야 至陽武博浪沙注+[釋義]地理志 陳留 有陽武縣이라 括地志云 今鄭州陽武東北十八里漢陽武城也 博浪沙 在陽武南이라 王氏曰 按輿地要覽컨대 汴梁路延州陽武南 有博浪沙亭 是也이어늘 張良 令力士操鐵하야 狙擊注+[釋義]狙之伺物 必伏而候之하니 凡伏而擊者 謂之狙擊이라始皇이라가 誤中
始皇하야 求弗得하고 令天下하야 하다


28년(임오 B.C.219)
시황始皇이 동쪽으로 군현郡縣을 순행할 적에 추역산鄒嶧山注+[釋義]사기정의史記正義》에 말하였다. “주역산邾嶧山일명一名 추산鄒山이니, 연주兗州 추현鄒縣 남쪽에 있다. 나라 목공繆公를 고쳐 라 하고, 마침내 을 따라 산을 이름하였다.” 올라 비석을 세워 공업功業을 칭송하고, 태산泰山의 남쪽으로 올라가 정상에 이르러 비석을 세워 을 칭송하고, 태산泰山의 북쪽 길을 따라 내려와 양보梁父에서 注+[釋義]양보梁父태산泰山 아래의 작은 산 이름인데, 산 이름을 따라 을 이름하였으니 태산군泰山郡에 속하였다. 양보梁父연주兗州 사수현泗水縣 북쪽 80리 지점에 있으니, 는 음이 보이다. 하고는 마침내 동쪽으로 해상海上에 유람하였다.
이때 방사方士서불徐市 등이 글을 올려 “동남童男동녀童女해도海島에 들어가 삼신산三神山불사약不死藥을 구해오겠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이〉 에 배를 띄워 갈 적에 상산사湘山祠에 이르러 큰 바람을 만나 거의 건널 수가 없었다.
이에 이 묻기를 “상군湘君은 어떤 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임금의 딸이고 임금의 아내입니다.” 하였다.
시황始皇이 크게 노하여 상산湘山의 나무를 베어 그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었다.
처음에 나라 사람 장량張良 이상이 5대에 걸쳐 나라의 정승이 되었다.注+[頭註]장량張良의 할아버지인 개지開地나라의 소후昭侯선혜왕宣惠王양왕襄王을 도왔고, 아버지인 이왕釐王환혜왕桓惠王을 도와 모두 5에 걸쳐 정승 노릇을 하였다.
나라가 망하자 장량張良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시황始皇이 동쪽 지방을 유람하여 양무陽武박랑사博浪沙注+[釋義]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진류陳留양무현陽武縣이 있다.” 하였고, 《괄지지括地志》에 “지금의 정주鄭州 양무陽武 동북쪽 18리 지점이 나라 양무陽武의 옛 이니, 박랑사博浪沙양무陽武 남쪽에 있다.” 하였다.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여지요람輿地要覽》을 살펴보건대 변량로汴梁路 연주延州 양무陽武 남쪽에 박랑사정博浪沙亭이 있으니, 바로 이곳이다.” 가운데에 이르니, 장량張良역사力士를 시켜 철퇴를 잡고서 시황始皇을 저격하게注+[釋義]원숭이가 물건을 엿볼 적에 반드시 엎드려서 기다리니, 무릇 엎드려 있다가 습격하는 것을 일러 저격狙擊이라고 한다. 하였으나 잘못하여 부거副車를 맞추었다.
시황始皇이 놀라 찾았으나 잡지 못하자, 천하에 명령하여 열흘 동안 크게 수색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譯註]太山陽 : 산의 남쪽 기슭을 陽이라 한다.
역주2 [譯註]陰道 : 산의 북쪽 기슭을 陰이라 한다.
역주3 : 보
역주4 : 泰山 위에 壇을 쌓아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封이라 하며, 泰山 아래에 땅을 평평히 고르고 后土神에게 제사하는 것을 墠이라 하였는데, 뒤에 墠을 고쳐 禪이라 하였다.
역주5 [譯註]湘山祠 : 湘山은 지금의 湖南省 岳陽市 서남쪽 洞庭湖 안에 있는 사당인데, 湘山 남쪽에 있어 湘水에 가까우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다. 湘山祠는 堯임금의 두 딸이며 舜임금의 두 아내인 娥皇과 女英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순임금이 남쪽 지방을 순행하다가 蒼梧山에서 별세하자, 이들이 湘江을 건너가지 못하고 통곡하다가 죽었으므로 이들을 湘山에 장례하고 사당을 세운 것이다. 이들은 뒤에 선녀가 되었다 한다.
역주6 : 자
역주7 : 泰山 위에 壇을 쌓아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封이라 하며, 泰山 아래에 땅을 평평히 고르고 后土神에게 제사하는 것을 墠이라 하였는데, 뒤에 墠을 고쳐 禪이라 하였다.
역주8 : 퇴
역주9 [譯註]副車 : 天子의 뒤를 따르는 수레를 이른다.
역주10 [譯註]初 韓人張良……大索十日 : 이 책에는 이 단락이 始皇帝 28年條에 나오지만 《資治通鑑》에는 29年條에 보인다.
동영상 재생
1 [임오] 28년 273
동영상 재생
2 [임오] 28년 133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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