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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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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丑]三年이라
정관貞觀 3년(기축 629)
三月 上謂房玄齡, 杜如晦曰 公爲僕射하니 當廣求賢하야 隨才授任이니 此宰相之職也어늘
3월에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에게 이르기를 “들이 복야僕射가 되었으니 마땅히 어진 인재를 널리 구하여 재주에 따라 임무를 맡겨야 하니 이것이 재상宰相의 직책이다.
比聞聽受辭訟 日不暇給이라하니 安能助朕求賢乎 因勅호되 尙書細務 屬左右丞하고 唯大事應奏者라야 乃關注+[頭註]由也僕射하라하다
그런데 근자에 듣건대 송사를 다스리느라 날마다 여가가 없다고 하니, 어찌 을 도와 어진 인재를 구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인하여 명령하기를 “상서성尙書省의 작은 일은 좌승左丞우승右丞에게 맡기고 오직 마땅히 아뢰어야 할 큰 일일 경우에만 비로소 복야僕射를 경유하게注+[頭註]은 경유함이다. 하라.” 하였다.
玄齡 明達吏事하고 輔以文學하야 夙夜盡心하야 惟恐一物失所하니
방현령房玄齡은 관리의 일에 밝게 통달하고 문학文學을 겸하여 밤낮으로 마음을 다해서 행여 한 사람이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
用法寬平하며 聞人有善이면 若己有之하야 不以求備取人하고 不以己長格物注+[頭註]格物 捍格於物하야 而無所容受[通鑑要解]格 正也 以己所能으로 正人하야 欲人皆然 謂格이라이라
을 적용함이 너그럽고 공평하였으며, 다른 사람에게 선행善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좋아해서 완비하기를 요구함으로써 사람을 취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으로써 남을 막지 않았다.注+[頭註]格物은 남을 막아서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바가 없는 것이다. [通鑑要解]格은 바로잡는 것이니, 자신의 능한 것으로 남을 바로잡아 남들도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을 격물格物이라 이른다.
與如晦 引拔士類 常如不及하고 至於臺閣注+[頭註]尙書諸司規模하야도 皆二人所定이러라
두여회杜如晦와 더불어 사류士類를 등용하여 선발함에 항상 미치지 못할 듯이 여겼으며, 대각臺閣注+[頭註]대각臺閣상서성尙書省의 여러 관서이다. 의 규모에 이르러서도 모두 두 사람이 정한 것이었다.
每與玄齡謀事 必曰 非如晦 不能決이라하고 及如晦至하야는 卒用玄齡之策하니玄齡善謀하고 如晦能斷故也러라
이 매번 방현령房玄齡과 일을 도모할 때마다 반드시 말하기를 “두여회杜如晦가 아니면 결단하지 못한다.” 하고, 두여회杜如晦가 오면 끝내 방현령房玄齡의 계책을 썼으니, 이는 방현령房玄齡은 계책을 잘 세우고 두여회杜如晦는 결단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二人 深相得하야 同心徇國이라
두 사람이 매우 뜻이 맞아서 한마음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였다.
唐世稱賢相者 推房, 杜焉하니라
이 때문에 나라 때에 어진 재상宰相을 말할 때면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를 꼽는다.
〈出本傳〉
- 《당서唐書》의 〈방현령전房玄齡傳〉과 〈두여회전杜如晦傳〉에 나옴 -
○ 四月 上御太極殿하야 謂侍臣曰 中書, 門下 機要之司 詔勅 有不便者어든 皆應論執이어늘 比來唯睹順從하고 不聞違異로라
○ 4월에 태극전太極殿에 납시어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중서성中書省문하성門下省은 중요한 기무機務를 맡은 관서이니, 조칙詔勅에 타당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모두 마땅히 쟁론爭論하여 고집해야 하는데, 근래에는 오직 순종하는 것만 보겠고 나와 상반되거나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若但行文書 則誰不可爲리오
중서성中書省문하성門下省이 만약 단지 문서文書만 통행시킬 뿐이라면 누군들 못하겠는가.
何必擇才也리오 房玄齡等 皆頓首謝하다
굳이 인재를 가릴 것이 있겠는가.” 하니, 방현령房玄齡 등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였다.
故事 凡軍國大事 則中書舍人 各執所見하야 雜署其名하고 謂之五花判事 中書侍郞, 中書令 省審之하고 給事中, 黃門侍郞 駮(駁)注+[頭註]執意不同하야 猶如色之間雜也正之러니
옛 제도에 의하면 모든 군국軍國대사大事중서사인中書舍人이 〈각각 의견이 다를 경우〉 각자 〈문서에 찌를 붙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여 이름을 써넣고는 ‘오화판사五花判事’라 하였는데, 중서시랑中書侍郞중서령中書令이 이것을 살펴보고 급사중給事中황문시랑黃門侍郞이 논박하여注+[頭註]은 주장하는 것이 달라서 마치 색깔이 뒤섞여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로잡았다.
始申明舊制하니 由是 鮮有敗事러라
이 처음으로 옛 제도를 거듭 밝히니, 이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드물었다.
〈出貞觀政要〉
-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 茌平注+[釋義]漢地志 泰山有茌縣하니 茌通作(茌)[茬]하니 博州茌平縣이라 今東昌府 是也馬周 客遊長安이라가 舍於中郞將常何之家러니
치평현茌平縣注+[釋義]치평茌平은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태산泰山치현茌縣이 있으니 는 통용하여 로 쓰는 바, 박주博州치평현茌平縣이다. 지금의 동창부東昌府가 바로 이곳이다.” 하였다. 마주馬周가 나그네가 되어 장안長安에 놀러왔다가 중랑장中郞將 상하常何의 집에 머물렀다.
六月 以旱으로 詔文武官하야 極言得失할새 武人이라 不學하야 不知所言이어늘 周代之하야 陳便宜二十餘條
6월에 가뭄으로 인해 문무백관에게 명령하여 득실得失을 지극히 말하게 하였는데, 이때 상하常何무인武人이라서 배우지 못하여 무엇을 말할지 모르자, 마주馬周가 그를 대신하여 나라에 유익하고 시의時宜에 합당한 일 20여 조항을 올려 건의하였다.
上怪其能하야 以問何한대 對曰 此非臣所能이요 家客馬周爲臣具草耳니이다
이 그가 말을 잘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상하常何에게 묻자, 대답하기를 “이는 이 진술한 것이 아니고 저희 집의 문객門客마주馬周가 신을 위하여 초안草案을 만든 것입니다.” 하였다.
上卽召之하니 未至 遣使督促者數輩
이 즉시 마주馬周를 불렀는데, 마주馬周가 오기 전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독촉하기를 여러 번 하였다.
及謁見 與語하고 甚悅하야 令直門下省이라가
마주馬周가 알현하자 이 그와 말을 해보고는 매우 기뻐해서 문하성門下省에 숙직하게 하였다.
尋除監察御史하니 奉使稱旨
얼마 후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제수하니 사명使命을 봉행함이 의 뜻에 맞았다.
上以常何爲知人이라하야 賜絹三百匹하다
상하常何가 인재를 알아보았다고 하여 비단 300필을 하사하였다.
〈出周本傳〉
- 《당서唐書 마주전馬周傳》에 나옴 -
○ 遣都督李世勣, 李靖, 柴紹, 薛萬徹하야 爲行軍摠管하니 衆合十餘萬이라
도독都督 이세적李世勣이정李靖시소柴紹설만철薛萬徹을 보내어 행군총관行軍摠管을 삼으니, 병력兵力이 모두 10여만 명이었다.
皆受李靖節度하야 分道出擊突厥하다
모두 이정李靖의 통제를 받아 길을 나누어 나가서 돌궐突厥을 공격하였다.
○ 十二月 突利可汗 入朝어늘 上謂侍臣曰 往者 太上皇注+[附註]極尊之稱이라 秦始皇 自號曰始皇帝 追尊其父莊襄王하야 爲太上皇하니 不與(預)治國이라 不言帝 自漢以來 以爲故事하야 人主之父 皆稱之하니라 以百姓之故 하시니 朕常痛心이러니
○ 12월에 돌리가한突利可汗입조入朝하자,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옛날에 태상황太上皇注+[附註]태상황太上皇극존칭極尊稱이다. 시황始皇이 스스로 시황제始皇帝라고 칭하였기 때문에 그 부친인 장양왕莊襄王추존追尊하여 태상황太上皇이라고 하였으니, 나라를 다스림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나라 이후로 이를 고사故事로 삼아 임금의 부친을 모두 태상황太上皇이라 칭하였다.이 백성들 때문에 돌궐突厥에게 을 칭하시니 이 항상 마음 아파했었다.
今單于稽顙하니 庶幾可雪前恥注+[釋義] 除也로다
그런데 지금 선우單于가 이마를 조아리니 거의 예전의 치욕을 씻을 수 있게 되었다.注+[釋義]은 제거함이다. ” 하였다.
○ 壬午 靺羯(鞨)注+[頭註]北狄之別種이라 遣使入貢이어늘 上曰 靺羯遠來 蓋突厥已服之故也
임오일壬午日(12월 16일)에 말갈靺鞨注+[頭註]말갈靺羯북적北狄별종別種이다. 이 사신을 보내어 도성에 들어와 조공하자, 이 말하기를 “말갈靺鞨이 멀리 온 것은 돌궐突厥이 이미 복종했기 때문이다.
이라하더니 朕今治安中國 而四夷自服하니 豈非上策乎
옛 사람이 이르기를 ‘오랑캐를 막는 데는 상책이 없다’ 하였는데, 이 이제 중국中國을 다스려 안정시키자 사방의 오랑캐들이 스스로 복종하니, 이것이 어찌 상책上策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 是時 遠方諸國 來朝貢者甚衆이라
○ 이때 먼 지방의 여러 나라에서 와서 조공朝貢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
服裝詭異하니 中書侍郞顔師古 請圖寫以示後하야王會圖注+[釋義]周武王時 天下太平하야 遠國歸款이어늘 史乃集其事하야하니라어늘 從之하다
복장이 기이하니, 중서시랑中書侍郞 안사고顔師古가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후세後世에 보이기 위해서 왕회도王會圖를 만들 것注+[釋義]나라 무왕武王 때에 천하가 태평하여 먼 곳의 나라들이 귀순하자, 사관史官이 그 일을 모아 〈왕회편王會篇〉을 만들었다. 을 청하자, 이 그의 말을 따랐다.
역주
역주1 : 駁은 얼룩말로 흰색과 검정색이 번갈아 섞여 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역주2 往者……稱臣於突厥 : 隋나라 恭帝 義寧 元年(617) 6월 高祖 李淵이 太原에서 起兵한 뒤에 병력을 집결하여 長安으로 진격하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突厥에게 신하를 칭했었다.
역주3 昔人謂禦戎無上策 : 이것은 新나라 王莽 때 大司馬였던 嚴尤의 말이다. 嚴尤가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匈奴가 中國의 해가 된 지가 오래인데, 上古時代에는 그들을 반드시 정벌해야 한다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後代에 와서 周‧秦‧漢 세 왕조가 그들을 정벌하였지만 모두 上策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周나라는 中策을 얻었고 漢나라는 下策을 얻었으며 秦나라는 無策이었습니다.[臣聞匈奴爲害 所從來久矣 未聞上世有必征之者也 後世三家周, 秦, 漢征之 然皆未有得上策者也 周得中策 漢得下策 秦無策焉]” 하였다.
역주4 王會篇 : 《汲冢周書》의 편명으로, 사방의 諸侯와 四夷가 천자에게 조회온 것을 기술하였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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