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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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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乙卯]이라 〈秦弘始十七이요 魏神瑞二年이라
의희義熙 11년(을묘 415) - 나라 홍시弘始 17년이고, 나라 신서神瑞 2년이다. -
正月 秦王興하고 太子泓 卽帝位하다
정월에 진왕秦王(後秦) 요흥姚興이 죽고 태자 요홍姚泓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 三月 太尉裕戒嚴하야 將伐秦할새 裕以劉穆之爲左僕射하야 入居東府注+[頭註]東府城 安帝所築이라하야 總攝內外하니 穆之內總朝政하고 外供軍旅할새 決斷如流
○ 3월에 태위太尉 유유劉裕가 삼엄하게 경계하여 나라(後秦)를 정벌하려 할 적에 유유劉裕유목지劉穆之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삼아 동부東府注+[頭註]동부성東府城안제安帝가 쌓은 것이다. 에 들어가 있으면서 조정 안팎의 일을 총섭總攝하게 하니, 유목지劉穆之가 안으로는 조정의 정사를 총괄하고 밖으로는 군대에 군수품을 공급할 적에 일을 물 흐르듯 막힘없이 처리하였다.
賓客輻湊注+[頭註] 輪中木之直指轂者 凡輪有三十輻하야 共湊於一轂일새 以諭四方皆來하야 求訴百端하고 內外諮稟 盈堦滿室호되 目覽辭訟하고 手答牋書하며 耳行聽受하고 口竝酬應하야 不相參涉하고 悉皆러라
빈객賓客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注+[頭註]은 수레바퀴 가운데의 나무가 곧게 바퀴통으로 향한 것이니, 수레바퀴에는 30개의 바퀴살이 있어서 모두 한 바퀴통으로 집중되므로 이로써 사방에서 모두 몰려옴을 비유한 것이다. 요구하고 소송하는 것이 천만 가지이고, 내외에서 자문하고 보고하는 자들이 뜰에 가득하고 방 안에 가득하였으나, 눈으로는 글과 송사訟辭를 보고 손으로는 전서牋書에 답을 하며 귀로는 남의 말을 듣고 입으로는 함께 수응(응대)하되 서로 뒤섞임 없이 모두 여유 있게 행하였다.
○ 八月丁巳 裕發建康할새 遣王鎭惡, 檀道濟, 沈田子等하야 數道竝進하다
○ 8월 정사일丁巳日(12일)에 유유劉裕건강建康을 출발할 때에 왕진악王鎭惡단도제檀道濟심전자沈田子 등을 보내어 여러 길로 일제히 진군하게 하였다.
○ 九月 王鎭惡注+[頭註]王猛孫也, 檀道濟入秦境하야 所向皆捷이라
○ 9월에 왕진악王鎭惡注+[頭註]왕진악王鎭惡왕맹王猛의 손자이다. 단도제檀道濟나라 경내에 들어가서 향하는 곳마다 모두 승리하였다.
進逼洛陽하야 克之하다
전진하여 낙양洛陽을 압박하여 점령하였다.
역주
역주1 十一年 : 《資治通鑑》에는 義熙 11年條의 내용이 義熙 12年條(병진 416)에 보인다.
역주2 東府 : 東晉과 南朝에서 建業에 도읍할 때 丞相兼領揚州刺史의 治所이다. 東府城은, 서쪽은 簡文帝가 會稽王으로 있을 때의 저택이었고, 동쪽은 簡文帝의 아들 司馬道子의 府였다. 司馬道子가 揚州를 總領하면서 그대로 그 집에 머물자 세상에서 東府라 불렀다. 唐‧宋 때는 丞相府를 지칭하였다.
역주3 : 섬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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