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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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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亥]十八年이라
영평永平 18년(을해 75)
北單于遣左鹿注+[釋義]鹿 或作谷하고 音离 匈奴之官 有左右鹿蠡王하니라하야 率二萬騎하야 擊車師어늘
북선우北單于좌녹리왕左鹿蠡王注+[釋義]鹿은 혹은 으로 쓰고 는 음이 리(려)이니, 흉노匈奴의 관직에 좌녹리왕左鹿蠡王우녹리왕右鹿蠡王이 있다. 을 보내어서 2만 명의 기병騎兵을 거느리고 거사車師를 공격하였다.
耿恭 以疏勒注+[通鑑要解]國名이라城傍 有澗水可固라하야 引兵據之러니 匈奴擁絶澗水
경공耿恭소륵성疏勒城注+[通鑑要解]소륵疏勒은 나라 이름이다. 옆에 시냇물이 있어 견고히 지킬 수 있다고 여겨서 군대를 이끌고 이곳을 점령하였는데, 흉노匈奴가 시냇물을 막아 끊었다.
於城中 穿井十五丈호되 不得水하니 吏士渴乏하야注+[頭註]本作醡이니 壓也馬糞汁而飮之
경공耿恭이 성 안에 깊이가 15길이 되는 우물을 팠으나 물을 얻지 못하니, 관리와 군사들이 목이 말라 심지어는 말똥 즙을 짜서注+[頭註]은 본래 로 되어 있으니, 눌러서 짜는 것이다. 마셨다.
身自率士輓籠이러니 〈本傳云 整衣服하고 向井再拜하야 爲吏士禱러니 有頃 水泉奔出이라하니라
경공耿恭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우물을 파서〉 삼태기로 흙을 날랐는데 - 《후한서後漢書 경엄전耿弇傳》에 이르기를 “경공耿恭이 의복을 정제하고 우물을 향하여 재배再拜하며 관리와 군사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는데, 얼마 후 샘물이 분출하였다.” 하였다. -
有頃 水泉 犇(奔)出이어늘 乃令吏士揚水하야 以示虜하니 虜出不意 以爲神明이라하야 遂引去하니라
얼마 후 샘물이 분출하자, 마침내 관리와 군사들로 하여금 물을 퍼서 오랑캐에게 보이게 하니, 오랑캐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으므로 신명神明이라고 여겨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떠나갔다.
〈出本傳〉
- 《후한서後漢書 경엄전耿弇傳》에 나옴 -
○ 八月 帝崩하니 年四十八이라
○ 8월에 황제가 별세하니 나이가 48세였다.
帝遵奉建武制度하야 無所變更하고 后妃之家 不得封侯與政이라
황제는 건무연간建武年間의 제도를 좇아서 받들어 변경한 바가 없었고, 후비后妃의 집안이 에 봉해지거나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館陶公主注+[頭註]光武女爲子求郞注+[釋義]爲其子求爲郞也이어늘 不許하고 而賜錢十萬하고 謂群臣曰 郞官 上應列宿注+[釋義]郞位五星 在太微中帝座東北이라 周之元士 漢之光祿, 中散, 諫議 此三署郞中이니 是今之尙書郞이라 占欲大小均耀하고 光潤有之則吉하니 所謂郞官上應列宿也하고 하니 苟非其人이면 則民受其殃이라
관도공주館陶公主注+[頭註]관도공주館陶公主광무제光武帝의 딸이다. 가 아들을 위하여 낭관郎官을 요구하였으나注+[釋義]그 아들을 위하여 낭관郎官을 제수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허락하지 않고 십만전十萬錢을 하사하고는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낭관郎官은 위로 하늘의 열수列宿(여러 별)에 응하고注+[釋義]낭위郞位의 다섯 개 별이 태미원太微垣 중앙 제좌帝座의 동북쪽에 있다. 나라의 원사元士나라의 광록光祿중산中散간의諫議 이 세 관서官署낭중郞中이니, 지금의 상서랑尙書郞이다. 에 크기가 고르고 윤택한 광채가 있으면 길하니, 이른바 ‘낭관郞官이 위로 열수列宿에 응한다.’는 것이다. 나가 백리百里 되는 을 주관하니, 만일 적임자가 아니면 백성들이 그 앙화殃禍를 받게 된다.
是以 難之하노라
이 때문에 신중히 하는 것이다.” 하였다.
公車以反支日이라하야 不受章奏注+[釋義]百官志 公車司馬令一人 掌南闕門하야 凡吏民章奏及四方貢獻 皆由之하니라 潛夫論 用月朔日爲正하니 戌亥朔 一日反支 申酉朔 二日反支 午未朔 三日反支 辰巳朔 四日反支 寅卯朔 五日反支 子丑朔 六日反支러니
공거公車반지일反支日이라 하여 장주章奏를 받지 않았는데,注+[釋義]후한서後漢書》 〈백관지百官志〉에 “공거사마령公車司馬令 한 사람이 남쪽 대궐문을 관장하여, 모든 관리와 백성들의 장주章奏와 사방에서 바치는 공물貢物은 모두 이곳을 거쳤다.” 하였다. 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에 “매월 초하룻날을 가지고 반지일反支日을 정하니, 술해삭戌亥朔(초하루가 술일戌日이나 해일亥日)은 초하루가 반지反支이고, 신유삭申酉朔은 초이틀이 반지反支이고, 오미삭午未朔은 초사흘이 반지反支이고, 진사삭辰巳朔은 초나흘이 반지反支이고, 인묘삭寅卯朔은 초닷새가 반지反支이고, 자축삭子丑朔은 초엿새가 반지反支이다.” 하였다.
帝聞而怪之하야 曰 民廢農桑하고 遠來詣闕이어늘 而復拘以禁忌 豈爲政之意乎아하고 於是其制하니
황제가 듣고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백성들이 농사짓고 누에 치는 것을 폐지하고 멀리 와서 대궐에 이르렀는데, 다시 금기禁忌에 구애받는다면 어찌 정사하는 본의本義이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그 제도를 없애니,
是以 吏得其人하고 民樂其業하야 遠近 畏服하고
이 때문에 관리는 적임자를 얻고 백성들은 생업을 즐거워하여 원근遠近이 복종하고
〈本紀云 吏稱其官하고 民安其業하야 遠近肅服이라하니라
- 《후한서後漢書》 〈명제기明帝紀〉에 이르기를 “관리들은 관직을 잘 수행하고 백성들은 생업을 편안히 여겨 원근遠近이 엄숙하게 복종했다.” 하였다. -
戶口滋殖焉하니라
호구戶口가 더욱 불어났다.
〈出本紀〉
- 《후한서後漢書 명제기明帝紀》에 나옴 -
○ 太子卽位하니 年十八이러라
태자太子가 즉위하니, 나이가 18세였다.
范曄論曰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명제기明帝紀에 말하였다.
明帝善刑理하야 法令分明하고 日晏坐朝하야 幽枉必達하야
명제明帝형리刑理(형벌로 다스림)를 잘하여 법령法令이 분명하였고 날이 늦도록 조정에 앉아서 원통함과 억울함을 반드시 알아내었다.
內外 無倖曲之私하고 在上 無矜大之色하야 斷獄得情하야 號居前代十二注+[原註]十斷其二하니 言少刑也
그리하여 안팎에 총애하거나 편벽된 사사로움이 없고 윗자리에 있을 때에 자랑하고 큰 체하는 기색이 없어 옥사獄事를 결단함에 실정實情을 얻어서 전대前代에 비하여 10분의 2라고 이름이 났다.注+[原註]열 가지 중에 그 두 가지를 결단하는 것이니, 형벌이 적음을 말한 것이다.
後之言事者 莫不先建武永平之政이로되 而鍾離意宋均之徒 常以察慧注+[頭註] 儇敏也爲言하니 夫豈弘人之度未優乎
그러므로 후세에 정사를 말하는 자들이 건무建武 연간年間영평永平 연간年間의 정사를 첫 번째로 꼽지 않은 자가 없었으나 종리의鍾離意송균宋均의 무리는 〈명제明帝가〉 항상 밝게 살핀다注+[頭註]는 가볍고 민첩한 것이다.고 말하였으니, 어찌 큰 사람의 도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겠는가.”
戴溪筆義曰
대계戴溪의 《통감필의通鑑筆義》에 말하였다.
夫庸暗之君 多失於優柔하고 明察之君 多傷於辨急하나니 庸暗者 固不足與有爲矣어니와 明察者 亦豈盛德事乎
“용렬하고 어두운 군주는 대부분 우유부단한 것이 문제이고, 총명하고 살피는 군주는 따지고 급한 것이 문제이니, 용렬하고 어두운 자는 진실로 함께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지만 총명하고 살피는 자도 어찌 훌륭한 의 일이겠는가.
漢元帝 優柔不斷하야 漢業遂衰하고 唐宣宗 聰明强察하야 唐亦遂亡하니 此二者 有天下之通患也
나라 원제元帝는 우유부단해서 나라의 기업基業이 마침내 쇠하였고, 나라 선종宣宗은 총명하고 밝게 살펴서 나라가 또한 마침내 멸망하였으니, 이 두 가지는 천하天下를 소유한 자의 공통적인 병통이다.
明帝 天資明敏하야 自爲太子諸王注+[頭註]建武十五年 封東海公하고 十九年 立爲皇太子으로 論說利害하고 分別人情 皆出人意表注+[頭註]如解之類러니
명제明帝천자天資가 총명하고 민첩해서 태자太子제왕諸王이었을 때부터注+[頭註]명제明帝건무建武 15년에 동해공東海公에 봉해지고, 19년에 서서 황태자皇太子가 되었다. 이해利害를 논하고 인정人情을 분별함에 모두 사람들의 의표意表를 찔렀다.注+[頭註]남양南陽은 물을 수가 없음을 해명한 것과 같은 따위이다.
及旣卽位 尊賢下士하고 與儒生周旋揖遜이라
그러다가 즉위하게 되자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들에게 겸손하였으며 유생儒生들과 주선周旋하고 읍양揖讓하였다.
有如是之資하고 而能自降屈若此하니 亦可以爲賢君矣
이와 같은 훌륭한 자질이 있으면서 능히 스스로 몸을 낮추고 굽히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니, 또한 어진 군주라고 할 만하다.
惜也
그러나 애석하다.
盡用其所長하고 不少隱晦하야 好以耳目隱發爲明하야 傷於辨急而不自知也로다
자신의 소장所長을 다 쓰고 조금도 감추지 않아서 숨겨져 있는 것을 귀와 눈으로 보아 남이 숨긴 것을 드러내는 것을 총명함으로 삼기 좋아해서 따지고 조급한 잘못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였다.
嗟夫
아!
人君之於天下 豈樂人欺己哉
인군人君천하天下를 다스림에 있어서 어찌 남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亦治其大綱하고 略其細微하며 恕其不及하고 去其太甚者而已
또한 대강大綱만 다스리고 세미한 것은 생략하며, 미치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 주고 너무 심한 것을 제거할 뿐이다.
若盡用其聰明하야 一事不貸 群臣 救過不給하야 爭事苛察이니 寧訐人隱伏以避誅責이요 而不肯容人小過以自取禍
만약 자신의 총명을 모두 써서 한 가지 일도 용서하지 않는다면 여러 신하들이 자신의 잘못을 구제하기에도 겨를이 없어서 까다롭게 살핌을 다투어 일삼을 것이니, 차라리 남이 숨긴 잘못을 고자질하여 자신의 주벌을 피하려 할 것이고, 남의 작은 과실을 용납해 주어 스스로 화를 취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上下相師하야 無復仁恩之意하리니 此豈人主之利哉
그리하여 상하上下가 서로 본받아서 다시는 인은仁恩의 뜻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인주人主의 이로움이겠는가.
夫山藪藏疾注+[頭註] 憎也하고 川澤納汚하고 瑾瑜匿瑕하고 國君含垢 天之道也
산수山藪(산과 숲)에는 미운(나쁜)注+[頭註]은 미워함이다. 물건이 감추어져 있고 천택川澤은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며, 아름다운 에는 하자가 숨어 있고 국군國君은 허물을 용서해 주는 것이 천도天道(하늘의 )이다.
天道 以徧包含爲德者也 混淪注+[頭註]未嘗相離者之間 何物不有리오
천도天道는 두루 덮어 주고 포용하는 것을 으로 삼으니, 혼륜混淪(서로 갈라지지 않은 상태)注+[頭註]혼륜混淪은 아직 서로 나누어지지 않은 것이다. 한 사이에 어떤 물건이 있지 않겠는가.
苟非天道 何以涵育이리오
만일 천도天道가 아니면 어찌 이것들을 모두 포용하여 길러 주겠는가.
至於賞善罰惡하야는 則固有時矣
한 자에게 을 주고 한 자에게 을 줌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알맞은 때가 있는 것이다.
吾觀顯宗之爲君 有矜己自喜之意而無深沈寬洪之量하고 永平之政 有綜核操切之敝而無優柔和易之樂하니 蓋未嘗不爲顯宗恨也
내가 보건대 현종顯宗인군人君 노릇 한 것은 자신을 자랑하고 스스로 기뻐하는 뜻이 있어 깊고 침착하고 너그럽고 큰 도량이 없으며, 영평永平의 정사는 종핵綜核(속속들이 파헤쳐서 자세히 밝혀냄)하고 조절操切(단단히 잡아서 단속함)하는 병폐가 있어 우유優柔하고 화평和平한 즐거움이 없으니, 일찍이 현종顯宗을 위하여 한스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夫人主 患不明耳 有如明察之過라도 而其敝若此
인주人主는 밝지 못함을 근심하나, 만일 총명하고 살피는 허물이 있더라도 그 폐해가 이와 같다.
向非章帝長者 每事 務從寬厚하야 以矯枉救敝런들 則東京之業 衰矣리라 然則人主之聰明 其可恃哉
그때 만일 장제章帝장자長者로서 매사每事에 되도록 관후함을 좇아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폐해를 구제하지 않았더라면 동경東京(西漢)의 기업基業이 쇠퇴하였을 것이니, 그렇다면 인주人主의 총명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史略 史評]愚按 明帝垂髫穎異하야 能察事情하고 及其卽位 首崇儒術하야 臨雍拜老하고 橫經問難하야 宗戚子弟 莫不受學하니 三代以還으로 敎化之美 未有過於斯時者也
[史略 사평史評]내가 살펴보건대 명제明帝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특출하여 사정事情을 잘 살폈고, 즉위함에 미쳐서는 첫 번째로 유학儒學을 높여서 벽옹辟雍에 나아가 삼로三老에게 절하였으며 경서經書를 펴놓고 묻고 논란해서 종척宗戚자제子弟들이 수학受學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삼대三代 이후로 교화敎化의 아름다움이 이때보다 더한 적이 없었다.
尤善刑理하야 法令分明하고 日晏視朝하야 幽枉必達하야
형리刑理를 더욱 잘하여 법령法令이 분명하였고 날이 늦도록 조정에서 정사를 살펴서 억울함과 원통함을 반드시 알아내었다.
在上 無矜大之色하고 內外 無倖曲之私하야 斷獄得情하야 號居前代十二하고
그리하여 윗자리에 있을 때에 자랑하고 큰 체하는 기색이 없고 내외內外에 총애하거나 편벽된 사사로움이 없어서 옥사獄事를 결단함에 실정實情을 얻어서 전대前代에 비하여 10분의 2라고 이름이 났다.
又能遵奉建武舊章하야 無所更變이라
건무建武 연간年間의 옛 제도를 잘 받들어서 변경하는 바가 없었다.
后妃之家 不得封侯預政하고 公主之親 不許爲子求郞하니
후비后妃의 집안들은 에 봉해지거나 정사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공주公主의 친족이 자식을 위하여 낭관郎官을 요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是以 官得其人하고 民安其業하야 遠近肅服하고 戶口滋殖焉이라
이 때문에 관원은 적임자를 얻고 백성은 생업生業을 편안히 여겨 원근遠近이 숙연히 복종하고 호구戶口가 더욱 불어났다.
이나近侍而君人之度未弘하고 窮兵遠夷而邊戎之釁徒構하고 遣使求西蕃之妖佛하야 開中國萬世蠹財害政之禍殃하니 可勝惜哉
그러나 가까운 신하가 구타당하고 끌려 나가기까지 하여 인군人君의 도량이 넓지 못하였고, 먼 오랑캐에게 무력武力을 남용하여 단지 변방의 재화災禍만을 이루었으며, 사자使者를 보내어 서역西域의 요망한 부처를 가져와서 중국에 만세토록 재정을 좀먹고 정사를 해치는 재앙을 열어 놓았으니, 애석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 리
역주2 : 착
역주3 郞官 : 《史記》에 이르기를 “太微宮 뒤의 25개 별이 郞位星이다.” 하였다.
역주4 出宰百里 : 百里는 옛날에 한 縣이 關轄하는 지역인 바, 인하여 縣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역주5 反支日 : 초하루의 干支에 따라 매달 정해지는 금기일을 이른다.
역주6 : 견
역주7 南陽不可問 : 황제가 天下의 田地가 실제와 차이가 있다 하여 州郡에 조서를 내려 실제를 조사하게 하였는데, 陳留의 아전이 올린 문서 위에 “潁川과 弘農은 물을 수 있으나 河南과 南陽은 물을 수 없다.”고 씌어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詰問하였으나 아전이 自服하려 하지 않았다. 이때 皇子인 東海公 陽이 나이가 12세였는데, 장막 뒤에 있다가 이를 해명하여 말하기를 “河南은 황제의 都城이라 가까운 신하가 많고 南陽은 황제의 고향이라 가까운 친척이 많으니, 밭과 집이 정해진 한도를 넘어서 기준을 삼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였는데, 황제가 아전을 詰問한 결과 과연 東海公의 대답과 같았다. 이에 대한 내용은 本書 17권 建武 15년(기해 39)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8 : 부
역주9 : 예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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