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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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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晉咸寧五年이요 吳天紀三年이라
기해(279) - 나라 함녕咸寧 5년이고, 나라 천기天紀 3년이다. -
魏曹操分南匈奴하야 爲五部하고 以左賢王豹 爲左部帥러니 豹子淵注+[釋義] 字元海 〈匈奴左賢王豹之子也〉 初 漢高以宗女爲公主하야 以妻冒頓이라 故其子孫 遂冒姓劉氏하니라 幼而雋(俊)異하고 博習經史
처음에 나라 조조曹操남흉노南匈奴를 나누어 5로 만들고 좌현왕左賢王 유표劉豹좌부수左部帥로 삼았는데, 유표劉豹의 아들 유연劉淵注+[釋義]유연劉淵원해元海이니, 흉노匈奴 좌현왕左賢王 유표劉豹의 아들이다. 처음에 나라 고조高祖가 종실의 딸을 공주라 하여 묵특冒頓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므로 그 자손들이 마침내 가탁하여 유씨劉氏으로 삼은 것이다. 이 어린데도 준걸스럽고 기이하였으며 경사經史를 널리 익혔다.
嘗謂同門生曰 吾常恥隨, 陸無武注+[釋義]隨, 陸 隨何, 陸賈 皆事漢高, 惠하니라하고 絳, 灌無文注+[釋義] 周勃也 封絳侯하고 謂灌嬰也 共立漢文帝하니라하노니
유연劉淵이 일찍이 동문同門생도生徒들에게 이르기를 “나는 항상 수하隨何육가陸賈注+[釋義], 수하隨何육가陸賈이니, 모두 나라 고조高祖혜제惠帝를 섬겼다. 무공武功이 없고 강후絳侯관영灌嬰注+[釋義]주발周勃이니 강후絳侯에 봉해졌고 관영灌嬰을 이르니, 함께 나라 문제文帝를 세웠다. 문재文才가 없음을 부끄러워한다.
隨, 陸 遇高帝而不能建封侯之業하고 絳, 灌 遇文帝而不能興庠序之敎하니 豈不惜哉 於是 兼學武事하다
수하隨何육가陸賈고조高祖를 만났으나 에 봉해지는 공업功業을 세우지 못하였고 강후絳侯관영灌嬰문제文帝를 만났으나 상서庠序의 교육을 진흥振興시키지 못하였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하고 이에 무예武藝를 겸하여 배웠다.
及長 猿臂注+[頭註]如猿通臂也善射하고 膂力注+[頭註] 脊骨上肉이라過人이라
장성하자 팔이 원숭이처럼 길어注+[頭註]원비猿臂는 원숭이처럼 팔이 긴 것이다. 활쏘기를 잘하였으며 힘注+[頭註]는 등골뼈 위의 살이다. 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
하야 在洛陽할새 王渾 重之注+[頭註]王渾及其子濟 皆重之하니라러라
시자侍子가 되어 낙양洛陽에 있을 때에 왕혼王渾이 그를 소중히 여겼다.注+[頭註]왕혼王渾과 그의 아들 왕제王濟가 모두 유연劉淵을 소중하게 여겼다.
齊王攸注+[頭註]文帝昭之子 武帝炎之弟言於晉主曰 陛下不除劉淵이면 臣恐幷州不得久安일까하노이다
제왕齊王 사마유司馬攸注+[頭註]제왕齊王 사마유司馬攸문제文帝 사마소司馬昭의 아들이고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아우이다. 진주晉主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 유연劉淵을 제거하지 않으면 병주幷州가 오랫동안 편안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王渾曰 大晉 方以信懷殊俗하니 奈何以無形之疑 殺人侍子乎잇가 晉主曰 渾言 是也니라
왕혼王渾이 말하기를 “대진大晉이 이제 막 신의로 풍속이 다른 이민족들을 회유하고 있으니, 어찌 드러나지 않은 의심 때문에 남의 시자侍子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하니, 진주晉主가 말하기를 “왕혼王渾의 말이 옳다.” 하였다.
豹卒커늘 以淵으로 代爲左部帥注+[原註] 爲五胡亂華之首하니라하다
마침 유표劉豹가 죽자, 유연劉淵을 대신 좌부수左部帥로 삼았다.注+[原註]뒤에 오호五胡중화中華를 어지럽히는 시초가 되었다.
○ 晉益州刺史王濬 上疏曰 孫皓荒淫凶逆하니 宜速征伐하소서
나라 익주자사益州刺史 왕준王濬이 상소하기를 “손호孫皓황음무도荒淫無道하고 흉악하며 패역하니 마땅히 속히 정벌해야 합니다.
若一旦皓死하고 更立賢主 則彊敵也 作船七年 日有朽敗하고 臣年七十이라 死亡無日하니
만일 하루아침에 손호孫皓가 죽어 다시 어진 군주를 세우면 강한 적이 될 것이요, 신이 배를 만든 지가 7년이 되어 배가 날로 썩고 부서지며, 신의 나이가 70이어서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三者 一乖 則難圖也 誠願陛下無失事機하소서
세 가지 중에 하나만 틀려도 도모하기가 어려우니, 진실로 폐하께서는 사기事機를 놓치지 마소서.” 하였다.
晉主於是 決意伐吳러니 議明年出師하다
진주晉主가 이에 나라를 정벌할 것을 결심하였는데, 조정에서는 이듬해에 출병할 것을 의논하였다.
杜預上表曰 羊祜不先博謀於朝臣하고 而密與陛下 共施此計
두예杜預표문表文을 올려 아뢰기를 “양호羊祜가 조정의 신하들에게 먼저 널리 상의하지 않고 은밀히 폐하와 함께 이 계책을 마련하였습니다.
令朝臣多異同之議하니 凡事 當以利害相校
그러므로 조정의 신하들이 이동異同의 의논이 많으니, 모든 일은 마땅히 이해利害를 가지고 서로 따져야 합니다.
今此擧之利 十有八九 而其害一二 止於無功耳
이제 이 일에 있어 이로운 것은 열에 여덟아홉이고, 해로운 것은 한둘이니 다만 전공戰功이 없음에 불과할 뿐입니다.
必使朝臣으로 言破敗之形이라도 亦不可得이니注+[釋義]猶但也計不出己하야 功不在身이라
만일 조정의 신하들로 하여금 우리가 적을 격파할 형세를 말하게 한다 하더라도 또한 될 수 없을 것이니, 이는 단지注+[釋義]은 다만과 같다. 이 계책이 자신들에게서 나오지 아니하여 이 자신들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各恥其前言之失而固守之也리이다
나라를 정벌하여 승리한다면 조정의 신하들은〉 각각 지난날 나라를 정벌하는 것을 반대했던 자신들의 의론이 잘못되었음이 증명될까 부끄러워하여 완고하게 지킬 것입니다.” 하였다.
晉主與張華圍碁러니 預表適至어늘(秤)[枰]注+[釋義]棊局也斂手하고 曰 陛下 聖武하시고 國富兵彊하며
진주晉主장화張華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두예杜預표문表文이 마침 이르자 장화張華가 바둑판注+[釋義]은 바둑판이다. 을 밀치고 공수拱手하고서 아뢰기를 “폐하께서는 성명聖明하고 영무英武하시며 나라와 군대는 부유하고 강합니다.
吳主 淫虐하야 誅殺賢能하니 當今討之不勞而定이니
오주吳主는 황음무도하고 사나워서 어진 이와 유능한 이를 함부로 죽이니, 지금 이를 토벌하면 수고롭지 않고도 평정할 수 있습니다.
願勿以爲疑하소서 晉主乃許之하다
원컨대 의심하지 마소서.” 하니, 진주晉主가 마침내 정벌할 것을 허락하였다.
山濤退而告人曰 自非聖人인댄 外寧이면 必有內憂하나니 今釋吳하야 以爲外懼 豈非算乎
산도山濤가 물러나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만일 성인聖人이 아닐진댄 밖이 편안하면 반드시 안에 우환이 있는 법이니, 지금 나라를 내버려 두어서 밖의 두려움으로 삼는 것이 어찌 좋은 계책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 十一月 大擧伐吳할새 遣琅琊王伷注+[頭註] 同冑 武帝炎之叔父也하야 出涂中注+[釋義] 音途 水名이라 出益州牧靡南山하야 西北入澠하니라하고 王渾 出江西하고 王戎 出武昌하고 胡奮 出夏口하고 杜預 出江陵하고 하니 東西凡二十餘萬이러라
○ 11월에 나라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정벌할 적에 낭야왕琅琊王 사마주司馬伷注+[頭註]와 같다. 사마주司馬伷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숙부叔父이다. 를 보내어서 도중涂中注+[釋義]는 음이 도이니, 물 이름이다. 익주益州목미남산牧靡南山에서 나와서 서북쪽으로 흘러 승수澠水로 들어간다. 으로 나가게 하고, 왕혼王渾강서江西로 나가고 왕융王戎무창武昌으로 나가고 호분胡奮하구夏口로 나가고 두예杜預강릉江陵으로 나가고 왕준王濬당빈唐彬으로 나가게 하니, 동서東西의 병력이 모두 20여만 명이었다.
역주
역주1 猿臂 : 원숭이의 팔이라는 뜻으로, 길고 힘이 있어 활쏘기에 좋은 팔을 이른다.
역주2 侍子 : 옛날 屬國의 왕이나 제후들이 아들을 보내어 天子를 모시고 文物을 배우게 하였는 바, 이들을 侍子라 칭하였다.
역주3 : 퇴
역주4 王濬{出巴東}唐彬 出巴蜀 : 《資治通鑑》에는 이 내용이 “安東將軍王渾出江西 建威將軍王戎出武昌 平南將軍胡奮出夏口 鎭南大將軍杜預出江陵 龍驤將軍王濬 巴東監軍魯國唐彬下巴蜀”으로 되어 있는 바, 이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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