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子]景福元年이라
경복景福 원년元年(임자 892)
五月 楊行密 屢敗孫儒注+[頭註]初爲秦宗權副將하야 討黃巢러니 及宗權叛 遂屬焉하고 後自稱節度使 하고 擒儒於陳하야 斬之하고 傳首京師하니 儒衆 多降於行密하니라
5월에 양행밀楊行密손유孫儒注+[頭註]손유孫儒는 처음에 진종권秦宗權부장副將이 되어 황소黃巢를 토벌하였는데, 진종권秦宗權이 반란을 일으키자 마침내 그에게 소속되었고, 뒤에 스스로 절도사節度使라 칭하였다. 군대를 여러 차례 패퇴시키고 손유孫儒에서 사로잡아 그의 목을 베고 수급首級경사京師에 전달하니, 손유孫儒의 무리가 대부분 양행밀楊行密에게 항복하였다.
先是 楊州富庶甲天下 時人楊一益二러니 及經秦, 畢, 孫, 楊注+[頭註]秦彦, 畢師鐸, 孫儒, 楊行密也 兵火之餘 江淮之間 東西千里掃地盡矣러라
이보다 앞서 양주楊州는 백성들이 풍족하고 백성의 숫자가 많은 것이 천하에 으뜸이어서 당시 사람들이 양주楊州가 첫 번째이고 익주益州가 두 번째라고 칭하였는데, 진언秦彦필사탁畢師鐸손유孫儒양행밀楊行密注+[頭註], , , :진언秦彦필사탁畢師鐸손유孫儒양행밀楊行密이다. 병란을 겪은 뒤에는 지역이 동서로 천 리가 비로 쓴 것처럼 다 없어졌다.
○ 八月 以楊行密 爲淮南節度使하다
8월에 양행밀楊行密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로 임명하였다.
淮南被兵六年 士民 轉徙幾盡이라
회남淮南 지방은 병화兵禍를 입은 지 6년이 됨에 사민士民들이 옮겨가서 거의 다 없어졌다.
行密初至하야 賜與將吏 帛不過數尺이요 錢不過數百이라
양행밀楊行密이 처음 부임하여 장수와 관리들에게 상을 하사할 적에 비단은 몇 자에 지나지 않았고 돈은 수백 전에 지나지 않았다.
而能以勤儉足用하고 非公宴이면 未嘗擧樂하며 招撫流散하고 輕徭薄斂하니 未及數年 公私富庶하야 幾復承平之舊하니라
그리하여 근검함으로 재용을 풍족하게 하고 공적인 연회가 아니면 일찍이 풍악을 울린 적이 없으며, 유리하고 흩어진 자들을 불러서 어루만지고, 요역徭役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적게 거두니, 몇 년이 못 되어 공사간公私間에 모두 부유해져서 태평했던 옛 모습을 거의 회복하게 되었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