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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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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辰]二十八年이라
개원開元 28년(경진 740)
二月 張九齡卒하다
2월에 장구령張九齡이 죽었다.
雖以九齡忤旨逐之 然終愛重其人하야 每宰相薦士 輒問曰 風度注+[釋義]風度 風采度量也 得如九齡不()아하니라
이 비록 장구령張九齡의 뜻을 거역했다 하여 축출하였으나 끝내 사람됨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서 재상들이 선비를 천거할 때마다 묻기를 “풍도風度注+[釋義]풍도風度는 풍채와 도량이다. 장구령張九齡과 같은가?” 하였다.
〈出本傳〉
- 《당서唐書 장구령전張九齡傳》에 나옴 -
○ 是歲 西京, 東都米斛 直(値)錢不滿二百이요 絹匹亦如之하니 海內富安하야 行者雖萬里 不持寸兵이러라
이해에 서경西京동도東都의 쌀 열 말의 값이 채 200전이 못 되고 비단 한 필의 값도 이와 같으니, 온 천하가 부유하고 편안하여 길을 가는 자가 비록 만 리 길이라도 한 치의 무기도 휴대하지 않았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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