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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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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己巳]四年이라 〈秦建元五年이요 燕建熙十年이라
태화太和 4년(기사 369) - 나라 건원建元 5년이고, 나라 건희建熙 10년이다. -
四月 大司馬桓溫 帥步騎五萬하고 伐燕할새
4월에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보병步兵기병騎兵 5만 명을 거느리고 나라를 정벌하였다.
恪已死하니 諸將 不能抗이라
이때 모용각慕容恪이 이미 죽으니 여러 장수들이 항거하지 못하였다.
燕王暐 乃求救于秦이어늘 王猛 密言於堅曰
연왕燕王 모용위慕容暐가 마침내 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니, 왕맹王猛이 은밀히 부견苻堅에게 말하기를
燕雖彊大 慕容評 非溫敵也
나라가 비록 강대하나 모용평慕容評환온桓溫의 적수가 아니니,
若溫擧山東하야 進屯洛邑하고 收幽, 冀之兵하고 引幷, 豫之粟하야 觀兵注+[頭註] 音貫이라 威也 謂陳兵䝱之也注+[釋義] 山名이요 水名이니 {澠池縣}皆在弘農하니라이면 則陛下大事去矣리이다
만약 환온桓溫산동山東을 점령한 다음 진군進軍하여 낙읍洛邑에 주둔하고 유주幽州기주冀州의 군사를 거두고 병주幷州예주豫州의 곡식을 징발해서 효산崤山민지澠池注+[釋義]는 산 이름이고 은 물 이름이니, 모두 홍농군弘農郡에 있다. 에서 군대를 열병注+[頭註]이 관이다. 은 보이는 것이고 위세威勢이니, 관병觀兵은 군대를 정렬하여 위협함을 이른다. 한다면 폐하의 대사가 틀어질 것입니다.
今不如與燕合兵以退溫이니 溫退 燕亦病矣
이제 나라와 병력을 규합하여 환온桓溫을 물리치는 것만 못하니, 환온桓溫이 후퇴하면 나라도 병들 것입니다.
然後 我承其敝而取之 不亦善乎잇가
그런 뒤에 우리가 그 피폐한 틈을 타서 취한다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堅從之하야 遣洛州刺史鄧羌하야 帥步騎二萬하야 以救燕하다
부견苻堅이 그의 말을 따라 낙주자사洛州刺史 등강鄧羌을 보내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戰不利注+[釋義] 不一也하고 糧儲復竭이라 又聞秦兵將至하고 乃焚舟棄輜重注+[釋義] 甲也 刀戟總名이라하고 自陸道奔還이어늘
환온桓溫이 여러 번注+[釋義]은 한 번 만이 아닌 것이다. 싸워 승리하지 못하고 비축했던 양식이 다시 고갈되었는데, 또 나라 군대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침내 배를 불태우고 치중輜重과 갑옷과 병기注+[釋義]는 갑옷이고, 은 칼과 창의 총칭이다. 를 버리고 육로를 따라서 달아나 돌아왔다.
吳王垂 自帥八千騎하고 追之하야 及溫於襄邑하야 大破之하고 斬首三萬級하다
오왕吳王 모용수慕容垂가 스스로 8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이들을 추격하여 양읍襄邑에서 환온桓溫을 따라잡아 크게 격파하고 3만 명의 수급首級을 베었다.
秦將苟池 邀擊溫於譙하야 又破之하니 死者復以萬計
나라 장수 구지苟池환온桓溫에서 맞아 싸워서 또다시 격파하니, 죽은 자가 다시 만 명으로 헤아려졌다.
溫收散卒하야 屯于山陽注+[釋義]山陽 揚州域이니 晉分廣陵하야 置山陽郡하고 隋置楚州하고 宋爲淮安軍하니라 括地志 楚州山陽縣 本漢射陽縣也 食夜反이라하다
환온桓溫이 흩어진 병졸을 수습하여 산양山陽注+[釋義]산양山陽양주揚州 지역이니, 나라가 광릉廣陵을 분할하여 산양군山陽郡을 두었고, 나라는 초주楚州를 두었고, 나라는 회안군淮安軍을 만들었다. 《괄지지括地志》에 “초주楚州산양현山陽縣은 본래 나라 사양현射陽縣이니, 는 食夜反(사)이다.” 하였다. 에 주둔하였다.
深恥喪敗하야 乃歸罪於袁眞하야 奏免眞爲庶人注+[附註]袁眞 豫州刺史也 使眞攻譙, 梁할새 開石門하야 以通水運이러니 不克하니 乃歸罪하야 奏免爲庶人이라 不伏하고 表溫罪狀이어늘 朝廷不報하니 遂據壽春하고 叛降于燕하니라하다
환온桓溫이 패망한 것을 깊이 부끄러워하여 마침내 원진袁眞에게 죄를 씌워서 원진袁眞을 면직시킬 것을 아뢰어 서인庶人으로 삼았다.注+[附註]원진袁眞예주자사豫州刺史였다. 환온桓溫원진袁眞으로 하여금 을 공격하게 할 적에 석문石門을 열어 수운水運을 통하게 하였는데, 이기지 못하자 마침내 죄를 씌워 원진袁眞을 면직시킬 것을 아뢰어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원진袁眞이 복종하지 않고 표문表文을 올려 환온桓溫의 죄상을 아뢰었으나 조정에서 회답하지 않자, 마침내 수춘壽春을 점거하고 배반하여 나라에 항복하였다.
○ 燕吳王垂 還鄴하니 威名益振이라
나라 오왕吳王 모용수慕容垂으로 돌아오니, 위엄과 명망이 더욱 떨쳐졌다.
太傅評 忌之어늘 垂與子弟姪 俱奔秦하다
태부太傅 모용평慕容評이 그를 시기하자 모용수慕容垂가 아들, 아우, 조카들과 함께 나라로 달아났다.
秦王堅 聞太宰恪卒하고 陰有圖燕之志호되 憚垂威名하야 不敢發이러니
처음에 진왕秦王 부견苻堅태재太宰 모용각慕容恪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은밀히 나라를 도모할 마음이 있었으나 모용수慕容垂의 위엄과 명성을 두려워하여 감히 군대를 일으키지 못하였는데,
及聞垂至하고 大喜하야 郊迎執手하고天生賢傑 必相與共成大功이니 自然之數也
모용수慕容垂가 왔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교외로 나가 맞이하고 손을 잡고 말하기를 “하늘이 어진 영걸을 냄은 반드시 서로 더불어 큰 공을 이루게 하려고 해서이니, 이는 자연의 운수이다.
要當與卿共定天下하리니 然後 還卿本鄕하야 世封幽州 不亦美乎
요컨대 과 함께 천하를 평정할 것이니, 그런 뒤에 을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서 대대로 유주幽州에 봉해 주는 것이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하였다.
王猛 言於堅曰 慕容垂父子 譬如龍虎하야 非可馴之物이라
왕맹王猛부견苻堅에게 말하기를 “모용수慕容垂 부자父子는 비유하면 용과 범 같아서 길들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若借以風雲이면 將不可復制 不如早除之니이다 堅曰 吾方收攬英雄하야 以淸四海어니 奈何殺之리오하고 乃以垂爲冠軍將軍하다
만약 바람과 구름을 빌려 주면 장차 다시는 제재할 수 없을 것이니 일찍 제거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니, 부견苻堅이 말하기를 “내가 막 영웅들을 거두어 모아서 사해四海를 깨끗이 하려 하니, 어찌 죽이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모용수慕容垂관군장군冠軍將軍으로 삼았다.
○ 秦王堅 遣王猛, 梁成, 鄧羌하야 帥步騎三萬하고 伐燕하야 十二月 進攻洛陽하다
진왕秦王 부견苻堅왕맹王猛양성梁成등강鄧羌을 보내어 보병과 기병 3만 명을 거느리고 나라를 정벌한 다음 12월에 진군하여 낙양洛陽을 공격하였다.
○ 大司馬溫 發徐, 兗州民하야 築廣陵城하고 徙鎭之하니 征役旣頻하고 加之疫癘注+[通鑑要解]癘鬼爲災曰疫이요 四時不和之疾曰癘하야 死者什四五 百姓 嗟怨이러라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서주徐州연주兗州의 백성들을 징발하여 광릉성廣陵城을 쌓고 옮겨서 진주鎭駐하니, 이때에 부역이 이미 빈번하고 역병注+[通鑑要解]여귀癘鬼(역병을 일으키는 귀신)가 재앙을 만든 것을 이라 하고, 사시四時가 순조롭지 못하여 병이 생긴 것을 라 한다. 까지 겹쳐서 죽는 자가 10에 4, 5나 되므로 백성들이 크게 원망하였다.
秘書監孫盛할새 直書時事하니 大司馬溫 見之하고하야 謂盛子曰 枋頭 誠爲失利注+[釋義]穆帝永和五年 時桓溫及燕人으로 戰于枋頭하야 不利而還하니라[附註]史略 帝奕時 溫及燕人戰於枋頭하야 不利而還이라하고 其下曰 吳王垂 旣破晉軍 威名大振이라하니 枋頭失利 似指上己巳之戰이어늘 而釋義與此相背하니 未詳이라어니와 何至乃如尊君注+[通鑑要解]晉人 於人子前 稱其父爲尊君尊公이라所言이리오
비서감秘書監 손성孫盛이 《진춘추晉春秋》를 지을 적에 당시의 일을 은휘隱諱하지 않고 곧바로 쓰니, 대사마大司馬 환온桓溫이 이것을 보고 노하여 손성孫盛의 아들에게 이르기를 “방두枋頭에서는 내가 참으로 불리하였지만注+[釋義]穆帝 영화永和 5년(349)에 당시 환온桓溫나라 사람과 방두枋頭에서 싸워서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附註]《사략史略》에 “폐제廢帝 사마혁司馬奕의 때에 환온桓溫나라 사람과 방두枋頭에서 싸워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하고, 그 아래에 이르기를 “오왕吳王 모용수慕容垂가 이미 나라 군대를 격파하자, 위엄과 명망이 크게 떨쳐졌다.” 하였으니, ‘방두枋頭에서 불리하였다’는 것은 앞의 기사년(369)의 전투를 가리킨 듯한데 석의釋義의 내용은 이와 서로 배치되니, 자세하지 않다. 어찌 마침내 존군尊君(부친)注+[通鑑要解]진인晉人은 아들 앞에서 아버지를 칭하여 존군尊君, 존공尊公이라 하였다. 이 말한 것 같은 지경에까지 이르렀겠는가.
若此史遂行이면 自是關君門戶事注+[頭註]言欲滅其門也니라
만약 이 역사책이 마침내 세상에 행해진다면 이는 자연 그대 가문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注+[頭註]그대 가문의 존망存亡에 관계된다는 것은 손성孫盛의 가문을 멸망시키고자 함을 말한다. 일 것이다.” 하였다.
其子遽拜謝注+[通鑑要解] 急也, 疾也 戰慄也하고 請改之하다
손성孫盛의 아들이 급히注+[通鑑要解]는 급함이고 빠름이니, 두려워서 떠는 것이다. 이마를 조아리며 절하여 사죄하고 내용을 고칠 것을 청하였다.
年老家居할새 方嚴有軌度하니 子孫 雖班(斑)白이나 待之愈峻이러니
이때 손성孫盛이 연로하여 집에 거처할 때에 성품이 방정하고 엄격하여 법도가 있으니, 자손들이 비록 반백斑白이 되었으나 손성孫盛은 그들을 대함에 더욱 준엄하게 하였다.
至是하야 諸子乃共號泣稽顙하고 請爲百口計호되 大怒不許하니 諸子遂私改之注+[通鑑要解] 先已寫別本하야 傳之外國이라 及孝武帝購求異書할새 得之於遼東人한대 與見本不同하니 遂兩存焉하니라하다
이때에 이르러 여러 아들들이 마침내 함께 울부짖으며 이마를 조아리고 많은 식구의 목숨을 위하여 고려할 것을 청하였으나 손성孫盛이 크게 노하고 허락하지 않으니, 여러 아들들이 마침내 몰래 고쳤다.注+[通鑑要解]손성孫盛이 먼저 이미 별도로 한 본을 베껴서 외국外國에 전하였다. 동진東晉효무제孝武帝(司馬曜)가 진귀한 책을 찾아 구할 때에 요동遼東 사람에게서 이 별본別本을 얻었는데, 현재의 과 같지 않으니 마침내 두 가지 본이 있게 되었다.
역주
역주1 崤澠 : 효민
역주2 : 삭
역주3 : 개
역주4 晉春秋 : 東晉 簡文帝의 母后인 鄭太后의 이름이 阿春이므로 ‘春’字를 피휘하여 쓰지 않고 ‘陽’字로 代用하여 《晉陽秋》라고 칭하였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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