魏顥與陳慶之로 進拔滎城하고 卽帝位於睢陽城南하다
○ 五月
에 魏顥克梁國
注+[頭註]今汴州也라하고 引兵西
하야 拔滎陽
하니 魏主出避顥
어늘
慶之以數千之衆으로 自發銍縣으로 至洛陽히 取三十二城하고 四十七戰하야 所向皆克이라
爾朱榮
이 聞魏主北出
하고 馳傳
하야 見魏主於長子
注+[釋義]註見周威烈王二十三年하니라하고 行且部分이라
卽日南還
할새 榮
이 爲前驅
하야 與爾朱兆, 賀拔勝
注+[頭註]兆는 榮之從子也요 賀拔은 複姓이니 大都督이라等
으로 進擊顥
하니 顥帥麾下數百騎
하고 南走
어늘
釋御服, 持法衣
하고 行淸淨大捨
注+[附註]釋氏語錄에 三捨는 謂內外身心을 一時俱捨하고 隨方應物하야 能所皆忘을 是謂大捨요 行道布德하야 無所希望을 是謂中捨요 修行衆善하야 有所希望을 是謂小捨라하고 素床瓦器
하며 親爲四衆
注+[附註]釋氏經云 比丘, 尼는 出家二衆也니 比丘는 僧也요 尼는 女僧也라 梵語比丘는 華言乞士니 謂士於諸佛에 乞法하야 資益色身也라 優婆塞, 優婆夷 在家二衆也니 如今之이라 中華翻爲하니 言受戒行하야 堪近住也라하야 講
槃經
注+[附註]梵語涅槃은 華言也라 佛以人死면 其精神尙存하니 佛之死는 示寂滅而已요 非眞死也라 多心經注에 梵語涅槃은 此云無爲라하고 楞伽經云 乃不生不死之地니 一切修行之所依歸也라하니라하니 群臣
이 以錢一億萬
으로 奉贖
하고 表請還宮
이어늘 三請
에 乃許
하다
梁武爲帝王하야 享天位하야 內蓄姬妾하고 外列官師하며 富貴之崇하고 子孫之衆하고 宮室城池로 守衛之密이로되 猶以爲未足하야 又命將出兵하야 爭奪于外하야 惟恐失之하니 安在其能舍乎아
不惟君子非之
라 爲佛之道如達磨
注+[頭註]南天竺國人이니 得般若多羅하야 傳이러니 梁武詔至金陵하야 問道라 後至于嵩山少林寺하야 面壁九年에 端坐而逝라者 亦不取也
니라
或曰 然則達磨之言이 不亦可取歟아 曰 爲佛之道者는 淺深精粗 雖所得不同이나 要其極致하면 歸于殄滅倫理라
以之爲己면 則逆而不祥이요 以之爲人이면 則偏而不公이요 以之爲天下國家면 蓋無所處而得其當이니 儒者棄而絶之 可也니라
人生天地間에 有此生則有此身이라 生不可滅이면 則身不可捨니
若以屛
注+[頭註]屛은 除也요 斥也라富貴, 棄妻子
로 爲捨耶
인댄 則是爲捨物
이요 而非曰捨身也
며 若以委其身於佛氏
로 爲捨耶
인댄 則爲佛者 當取其身而用之 可也
라
今旣曰捨로되 而其身猶在면 則是初未嘗捨也니 身未嘗捨而强名曰捨면 則固已昧其心於不誠矣라
他時諸臣이 又以金而贖其身하니 不知當其捨之之時에 孰從而受之며 而贖之之時에 又孰從而歸之也오
梁主는 身非賣僮而可捨可贖이니 此不惟愚誑其民, 愚誑其身이요 抑且愚誑其所謂佛者라
末年荷荷之時
注+[頭註]見下己巳年이라에 又復戀戀而不能捨
는 何哉
오
夫魚熊掌은 二物也니 固可捨其一而取其一이어니와 若捨生取義면 則必殺身徇義而後可니 萬一其生猶在면 則亦不謂之捨矣니라
기유(529) - 양梁나라 중대통中大通 원년元年이고, 위魏나라 영안永安 2년이다. -
위魏나라 원호元顥가 진경지陳慶之와 함께 진격하여 형성滎城을 함락시키고 수양성睢陽城 남쪽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
○ 5월에
위魏나라
원호元顥가
양국梁國注+[頭註]양국梁國은 지금의 변주汴州이다. 을 점령하고는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가서
형양滎陽을 함락하니,
위주魏主가 성을 나가
원호元顥를 피하였다.
원호元顥가 낙양궁洛陽宮으로 들어가 건무建武로 개원하였다.
진경지陳慶之가 수천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질현銍縣을 출발한 뒤로 낙양洛陽에 이르기까지 32개의 성을 취하고 47차례 싸워서 향하는 곳마다 모두 이겼다.
이주영爾朱榮은
위주魏主가 북쪽으로 나갔다는 말을 듣고 역마를 달려
장자현長子縣注+[釋義]장자長子는 주周 위열왕威烈王 23년조年條에 주註가 보인다. 에서
위주魏主를 뵙고 한편으로는 행군하고 한편으로는 구원 부대를 나누어 배치하였다.
위주魏主가 당일로 남쪽으로 돌아올 적에
이주영爾朱榮이 선두가 되어서
이주조爾朱兆‧
하발승賀拔勝注+[頭註]爾朱兆, 하발승賀拔勝:이주조爾朱兆는 이주영爾朱榮의 종자從子이고, 하발賀拔은 복성複姓이니 하발승賀拔勝은 대도독大都督이다. 등과 함께
원호元顥를 공격하니,
원호元顥가 휘하의 수백
기騎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도망하였다.
진경지陳慶之가 군대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돌아오니, 진경지陳慶之가 차지했던 여러 성城이 다시 위魏나라에 항복하였다.
원호元顥가 임영현臨潁縣에 이르니, 병졸 강풍江豐이 그의 목을 베어서 수급首級을 낙양洛陽에 전달하였다.
○ 9월에 양주梁主가 동태사同泰寺에 행차하여 사부무차대회四部無遮大會를 열었다.
이때
양주梁主가
어의御衣를 벗고
법의法衣를 입으며,
청정대사淸淨大捨注+[附註]석씨釋氏의 어록語錄에 “삼사三捨는 내외內外의 몸과 마음을 일시에 모두 버리고 방편에 따라 사물에 응해서 능能(인식의 주체)과 소所(인식의 대상)를 모두 잊는 것을 대사大捨라 이르고, 도道를 행하고 덕德을 펴면서 바라는 바가 없는 것을 중사中捨라 이르고, 많은 선행善行을 닦으면서 바라는 바가 있는 것을 소사小捨라 이른다.” 하였다. 를 행하고 밥을 먹을 때에 소박한 상과 질그릇을 사용하며, 친히
사중四衆注+[附註]석씨釋氏의 경經에 이르기를 “비구比丘와 비구니比丘尼는 출가出家한 두 무리이니, 비구比丘는 승려이고 비구니比丘尼는 여승이다. 범어梵語의 비구比丘는 중국어로 걸사乞士이니, 선비가 여러 부처에게 법法을 청하여 색신色身(육신)을 유익하게 함을 이른다. 우바새優婆塞와 우바이優婆夷는 재가在家의 두 무리이니, 지금의 고행苦行과 같다. 중국어로 번역하면 근주近住라 하니, 계행戒行을 받아서 삼보三寶에 가까이 머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을 위하여
열반경涅槃經注+[附註]범어梵語의 열반涅槃은 중국어로 시적示寂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정신은 오히려 남아 있으니, 불교의 죽음은 적멸寂滅을 보일 뿐이고 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심경多心經》 주注에 “범어梵語의 열반涅槃은 무위無爲를 이른다.” 하였고, 《능가경楞伽經》에 “이것(涅槃)은 태어나지 않고 죽지 않는 곳이니, 일체의 수행이 의귀하는 바이다.” 하였다. 을 강하니, 여러 신하들이
일억만전一億萬錢을 바쳐 대속하고
표문表文을 올려 환궁할 것을 청하였는데, 세 번을 청한 뒤에야 비로소 허락하였다.
“호씨胡氏가 이르기를 ‘부처의 행실에는 오요五要가 있으니, 사신捨身(육신을 버림)이 그중 하나이다.
양梁 무제武帝가 제왕帝王이 되어 천자天子의 지위를 누려서 안으로는 희첩姬妾을 기르고 밖으로는 백관을 나열하며, 부귀가 높고 자손들이 많고 궁실宮室과 성지城池로 호위하기를 치밀하게 하였으나 오히려 부족하게 여겨 또다시 장수에게 명하여 군대를 출동시켜 밖에서 다투고 빼앗아 행여 잃을까 두려워하였으니, 사신捨身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이는
군자君子들이 비난할 뿐만 아니라
불법佛法을 행하는
달마達磨注+[頭註]달마達磨는 남인도南印度 사람이니 반야다라존자般若多羅尊者의 제자가 되어 정법正法을 전수받았는데, 양梁나라 무제武帝가 명령을 내려 금릉金陵에 이르게 하여 도道에 대해 물었다. 뒤에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에 이르러 면벽面壁한 지 9년 만에 단정히 앉아서 죽었다. 같은 자도 또한 취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혹자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달마達磨의 말도 취할 만하지 않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불법佛法을 행하는 자들은 깊고 얕음과 정밀하고 거친 것이 비록 얻은 바가 똑같지 않으나 그 극치를 요약해 보면 윤리를 없애는 데로 귀결된다.
이것을 자신에게 행하면 역逆이어서 상서롭지 못하고 이것을 남에게 베풀면 편벽되어 공평하지 못하며 이것으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면 처하는 곳마다 마땅함을 얻지 못하니, 유자儒者는 버리고 끊는 것이 옳다.’ 하였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 태어남에 이 생명生命이 있으면 이 육신이 있으니, 생명生命을 없앨 수 없다면 육신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양梁 무제武帝의 이른바 ‘사捨’라는 것은 무엇을 사捨라고 한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만약
부귀富貴를 물리치고
注+[頭註]병屛은 제거하는 것이고 물리치는 것이다. 처자妻子를 버리는 것을
사捨라고 했다면 이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요 육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며, 만약 자기 육신을
불씨佛氏에게 바치는 것을
사捨라고 했다면 부처가 그 육신을 취하여 써야 할 것이다.
이제 이미 사捨라고 말하였으나 육신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이는 애당초 육신을 버리지 않은 것이니, 육신을 일찍이 버리지 않았는데도 억지로 사捨라고 이름한다면 참으로 이미 그 마음을 진실하지 못함으로 어둡게 한 것이다.
후일 여러 신하들이 또 돈으로 속신贖身하였으니, 사신捨身할 때에는 이 육신을 누가 받았으며 속신贖身할 때에는 이 육신을 또 누가 돌려주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양梁나라 군주의 육신은 팔려간 하인처럼 사신捨身하거나 속신贖身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백성들을 우롱하고 속이며 자신을 우롱하고 속였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부처를 우롱하고 속인 것이다.
말년에 한탄하고 죽을 때에
注+[頭註]하하荷荷는 해설이 뒤의 기사년조己巳年條(549)에 보인다. 다시 연연해하며
사신捨身하지 못함은 어째서인가?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어물魚物을 버리고 웅장熊掌을 취하며, 생명을 버리고 의義를 취한다.’ 하였다.
어물과 웅장은 두 가지 물건이어서 진실로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취할 수 있지만, 만약 생명을 버리고 의義를 취해야 한다면 반드시 몸을 죽이고 의義를 따른 뒤에야 가능하니, 만일 생명이 그대로 있다면 또한 이것을 사捨라고 이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