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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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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未]元平元年이라
원평元平 원년元年(정미 B.C.74)
四月 帝崩하니 無嗣
4월에 황제가 승하하니, 후사가 없었다.
大將軍光 與群臣으로 議迎昌邑王賀하니 哀王注+[頭註]武帝子이라之子
대장군 곽광霍光이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여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영립迎立하니, 유하劉賀애왕哀王注+[頭註]애왕哀王무제武帝의 아들로 이름이 이다. 아들이었다.
在國 素狂縱하야 動作無節이라
본국에 있을 적에 평소 미친 짓을 하고 방종하여 동작에 절도가 없었다.
嘗遊方注+[頭註]縣名이라할새 不半日 馳二百里어늘
일찍이 방여현方與縣注+[頭註]방여方與의 이름이다. 유람할 적에 반나절이 못 되어 2백 리를 달리자,
中尉王吉 上疏諫曰 夫廣厦之下 細旃之上 明師居前하고 勸誦在後하야 上論唐虞之際하고 下及殷周之盛하야
중위中尉 왕길王吉이 상소하여 간하기를 “넓은 집 아래와 고운 털방석 위에 훌륭한 사부가 앞에 있고 권하는 송관誦官이 뒤에 있어서, 위로는 의 시대를 논하고 아래로는 의 훌륭함을 언급하여,
考仁聖之風하고 習治國之道 於以養生 豈不長哉잇가 終不改節이러라
어질고 성스러운 유풍遺風을 상고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를 익힌다면 양생養生함에 어찌 장구하지 않겠습니까.” 하였으나 창읍왕昌邑王이 끝내 소행을 고치지 않았다.
六月 受皇帝璽綬하고 襲尊號하다
6월에 창읍왕昌邑王이 황제의 옥새玉璽인수印綬를 받고 존호尊號를 세습하였다.
〈出王吉及昌邑王傳〉
- 《한서漢書》 〈왕길전王吉傳〉와 〈창읍왕전昌邑王傳〉에 나옴 -
○ 昌邑王 旣立 淫戲無度하야 諫多不聽이라
창읍왕昌邑王이 즉위한 뒤에 음란하고 희롱함이 한도가 없어서 간언을 대부분 따르지 않았다.
憂懣하야 問所親故吏田延年한대 延年曰 將軍 爲國柱石하니 審此人不可인댄 何不建白太后하고 更選賢而立之닛고
곽광霍光이 걱정하여 친하게 지내는 옛 관리인 전연년田延年에게 묻자, 전연년田延年이 말하기를 “장군이 국가의 주석柱石이 되었으니, 이 사람이 옳지 않음을 참으로 안다면 어찌 태후太后에게 건의하고 다시 어진 이를 가려 세우지 않습니까?” 하였다.
光曰 於古 有此不(否) 延年曰 伊尹 相殷 廢太甲하야 以安宗廟하니 後世 稱其忠이라
곽광霍光이 말하기를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는가?” 하니, 전연년田延年이 말하기를 “이윤伊尹나라의 정승이 되었을 적에 태갑太甲을 폐하여 종묘宗廟를 편안히 하였는데, 후세에 그의 충성을 칭찬합니다.
將軍 若能行此 亦漢之伊尹也니이다
장군이 만약 이를 행한다면 또한 나라의 이윤伊尹일 것입니다.” 하였다.
乃陰與張安世 圖計러라
곽광霍光이 이에 은밀히 장안세張安世와 계책을 도모하였다.
〈出霍光傳〉
- 《한서漢書 곽광전霍光傳》에 나옴 -
○ 王 出遊어늘 光祿大夫夏侯勝 當乘輿前하야 諫曰 天 久陰不雨하니 臣下有謀上者어늘 陛下出欲何之잇고
이 놀러 나가려 하자, 광록대부光祿大夫 하후승夏侯勝승여乘輿의 앞을 가로막고 간하기를 “하늘이 오랫동안 흐리고 비가 오지 않으니, 신하 중에 을 도모하는 자가 있을 터인데, 폐하께서는 나가서 어디로 가고자 하십니까?” 하였다.
하야 謂勝爲妖言이라하야 縛以屬吏하다
왕이 노하여 하후승夏侯勝이 요사스러운 말을 한다 하고 포박하여 옥리獄吏에게 맡겼다.
乃召問勝한대 對言호되 在鴻(洪)範傳注+[頭註]漢儒作傳하니 以五事 應行不極이라 極者 至極之義 標準之名이니 中正而四方之所取正焉者曰 皇之不極注+[通鑑要解] 至極之義 標準之名이니 中正而四方之所取正焉者이면 厥罰常陰이라
곽광霍光이 마침내 하후승夏侯勝을 불러 묻자, 하후승夏侯勝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홍범전洪範傳》에注+[頭註]홍범전鴻範傳》은 나라 유자儒者가 지은 책이니, 다섯 가지 일로써 제왕의 행실이 표준[極]이 되지 못하면 그에 따르게 되는 응험을 말한 것이다. 은 지극의 뜻이요 표준의 명칭이니, 중정中正하여 사방에서 바름을 취하는 것이다. ‘황제가 표준[極]이 되지 못하면注+[通鑑要解]은 지극하다는 뜻이고 표준의 이름이니, 중정中正하여 사방에서 바름을 취하는 것이다. 그 벌로 날이 항상 흐리다.
時則下人 有伐上者注+[釋義] 與洪通이라 凡書非正經者 謂之傳이니 此三句 洪範傳之言也라하니이다
이때에는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정벌할 것을 도모하는 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注+[釋義]鴻範傳曰……有伐上者:과 통한다. 모든 글에 정경正經이 아닌 것을 이라 이르니, 이 세 는 《홍범전洪範傳》의 내용이다. 하였다.
光, 安世大驚하야 以此 益重經術士러라
곽광霍光장안세張安世가 크게 놀라 이 때문에 더욱 경학經學하는 선비들을 소중히 여겼다.
〈出勝本傳〉
- 《한서漢書 하후승전夏侯勝傳》에 나옴 -
○ 光, 安世旣定議하고 乃使田延年으로 報丞相楊敞한대 驚懼하야 不知所言하야 汗出沾背하고 徒唯唯而已
곽광霍光장안세張安世가 이미 의논을 정하고 마침내 전연년田延年을 시켜 승상 양창楊敞에게 보고하게 하니, 양창楊敞은 두려워하여 말할 바를 알지 못해서 진땀을 흘리며 다만 “알았네. 알았네.”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卽與群臣으로白太后注+[釋義] 奏也 見太后而奏之하고 具陳昌邑王不可以承宗廟狀한대
곽광霍光이 즉시 여러 신하들과 함께 태후太后를 뵙고注+[釋義]은 아룀이니, 태후太后를 뵙고 아뢴 것이다. 아뢰어 창읍왕昌邑王종묘宗廟를 받들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자세히 말하였다.
皇太后詔昌邑王하야 伏前聽詔注+[通鑑要解]太后詔召王伏前하고 尙書令讀詔曰 丞相敞等 昧死言하노이다 孝昭皇帝早棄天下하시니 遣使徵王하야 典喪斬衰러니 小無哀心하고 道上 女匿車中하며 大行發璽不封하고 優倡發樂하야 擊鼓歌吹하고 荒淫失度하야 亂漢制하니 當廢라하니라하니 令王起拜受詔하다
황태후皇太后창읍왕昌邑王에게 명하여 앞에 엎드려 조명詔命을 듣게 하니,注+[通鑑要解]태후太后가 명하여 (昌邑王 유하劉賀)을 불러 앞에 엎드리게 하고 상서령尙書令조서詔書를 읽기를 “승상丞相 등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효소황제孝昭皇帝가 일찍 천하를 버리셨으므로 사자使者를 보내어 을 불러와 을 주관하게 하고 참최복斬衰服을 입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은 조금도 슬퍼하는 마음이 없고 서울로 오는 도중 여자를 수레 안에 숨겨두었으며, 대행황제大行皇帝(승하한 황제) 앞에서 옥새玉璽를 꺼내어 봉함하지도 않고 광대들에게 악기를 꺼내어 북 치고 피리 불고 노래하게 하고 황음荒淫하여 법도를 잃어서 나라 제도를 어지럽히니, 마땅히 폐위廢位해야 합니다.” 하였다. 곽광霍光이 왕으로 하여금 일어나 절하고 조명詔命을 받게 하였다.
持其手하야 解脫其璽組하고 扶王下殿하야 送至昌邑邸하다
곽광霍光이 그의 손을 잡고는 옥새와 인수印綬를 벗기고 왕을 부축하여 궁전을 내려가서 전송하여 창읍왕昌邑王사저私邸에 이르게 하였다.
〈出霍光傳〉
- 《한서漢書 곽광전霍光傳》에 나옴 -
○ 初 衛太子之子史皇孫注+[釋義]以外家姓稱之曰史 生子病已注+[釋義] 止也 夙遭屯難而多病苦 故名病已라하니 欲速差也 后改名詢하니라하니 皇曾孫이라
처음에 위태자衛太子의 아들 사황손史皇孫注+[釋義]외가外家을 따라 사황손史皇孫이라고 칭한 것이다. 아들 병이病已注+[釋義]병이病已:는 그침이니, 일찍 어려움을 만나 병고病苦가 많았기 때문에 이름을 병이病已라 하였으니, 병이 빨리 낫게 하고자 한 것이다. 뒤에 이름을 으로 고쳤다. 낳으니, 호를 황증손皇曾孫이라 하였다.
皇曾孫 生數月 遭巫蠱事하야 太子男女妻妾 皆遇害하고 獨皇曾孫在로되 亦坐收繫獄이러라
황증손皇曾孫이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무고巫蠱의 옥사를 만나 태자太子의 아들딸과 처첩이 모두 살해당하였고, 홀로 황증손皇曾孫이 살아남았으나 또한 죄에 연루되어 감옥에 감금되어 있었다.
丙吉 受詔治巫蠱獄할새 心知太子無辜하고 重哀皇曾孫無辜하야 擇謹厚女徒注+[通鑑要解]輕罪 男子守邊一歲하고 女子軟弱不任守邊하야 復令作於官一歲 故謂之女徒하야 令乳養曾孫하고 置閒燥하다
병길丙吉조명詔命을 받아 무고巫蠱의 옥사를 다스릴 적에 병길丙吉은 마음속으로 태자太子가 죄가 없음을 알았고 황증손皇曾孫이 죄가 없음을 더욱 가엾게 여겨서 근후謹厚한 여자를注+[通鑑要解]근후녀도謹厚女徒:가벼운 죄의 경우에는 남자는 1년 동안 변경을 수비하게 하고, 여자는 연약하여 변경을 지킬 수가 없어서 다시 관청에서 1년 동안 일하게 하므로 이들을 여도女徒라 이른 것이다. 가려 황증손皇曾孫을 젖먹여 기르게 하였으며, 조용하고 건조한 곳에 두게 하였다.
曾孫 高材好學이나 然亦喜游俠注+[釋義]謂輕死重氣 如荊軻, 豫讓之輩 從也, 行也 (扶)[挾]也, 持也 言能相從遊하야 行挾輔之事也하니 以是 具知閭里奸邪, 吏治得失이러라
황증손皇曾孫은 재주가 높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나 또한 유협遊俠注+[釋義]유협游俠:유협遊俠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기개氣槪를 소중히 여김을 이르니, 형가荊軻예양豫讓과 같은 무리이다. 는 따름이고 행함이며, 은 붙들어 주고 잡아 줌이니, 능히 서로 종유從遊하여 협보挾輔(붙들어 주고 도와줌)하는 일을 행함을 이른다. 좋아하니, 이 때문에 여리閭里의 간사함과 이치吏治(수령의 치적)의 잘잘못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出宣帝紀〉
- 《한서漢書 선제기宣帝紀》에 나옴 -
及昌邑王廢 霍光 與張安世諸大臣으로 議所立未定이러니 丙吉 奏記光曰 武帝曾孫名病已者 至今十八九矣
창읍왕昌邑王이 폐위되자, 곽광霍光장안세張安世 등 여러 대신들과 황제로 세울 사람을 의논하였으나 결정하지 못했는데, 병길丙吉이 글로 써서 곽광霍光에게 아뢰기를 “무제武帝의 증손 병이病已가 지금 나이가 18, 9세가 되었습니다.
通經術, 有美材하고 行安而節和하니 願將軍 定大策하소서
경학經學에 통달하고 훌륭한 재질이 있으며 행실이 침착하고 절도가 화순하니, 원컨대 장군은 큰 계책을 정하소서.” 하였다.
〈出丙吉傳〉
- 《한서漢書 병길전丙吉傳》에 나옴 -
與丞相敞으로 上奏曰 武帝曾孫病已年十八 師受詩, 論語, 孝經하고 躬行節儉하고 慈仁愛人하니 可以嗣孝昭皇帝後니이다
곽광霍光이 승상 양창楊敞과 함께 상주上奏하기를 “무제武帝의 증손 병이病已가 나이 18세에 스승에게 《시경詩經》, 《論語》, 《孝經》을 전수받았고, 몸소 절검節儉을 행하며 인자하여 사람을 사랑하니, 효소황제孝昭皇帝의 뒤를 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皇太后詔曰 可라하니 迎曾孫하야 卽皇帝位하다 〈出霍光傳〉
황태후皇太后가 조서를 내려 “좋다.” 하니, 황증손皇曾孫을 맞이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 《한서漢書 곽광전霍光傳》에 나옴 -
侍御史嚴延年 劾奏호되 大將軍光 擅廢立主하야 無人臣禮하니 不道니이다
시어사侍御史 엄연년嚴延年이 탄핵하여 아뢰기를 “대장군 곽광霍光이 제멋대로 군주를 폐하고 세워서 신하의 가 없으니, 무도無道합니다.” 하였다.
奏雖寢이나 然朝廷 肅然敬憚之러라
상주上奏한 것을 궁중에 계류繫留시켜 놓고 답을 내리지 않았으나 조정이 숙연하여 그를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역주
역주1 : 박
역주2 : 예
역주3 :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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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미] 원평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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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미] 원평원년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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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미] 원평원년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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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미] 원평원년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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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미] 원평원년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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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미] 원평원년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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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미] 원평원년 132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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