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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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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丑]大業元年이라
대업大業 원년元年(을축 605)
勅宇文愷注+[頭註]이라與舍人封德彛等하야 營顯仁宮하니 南接皁澗하고 北跨洛濱이라
우문개宇文愷注+[頭註]우문개宇文愷장작감대장將作監大匠이다. 내사사인內史舍人봉덕이封德彛 등에게 명하여 현인궁顯仁宮영건營建하게 하니, 남쪽으로는 조간皁澗에 연접하고 북쪽으로는 낙수洛水 물가를 넘어갔다.
發大江以南, 五嶺以北 奇材異石하야 輸之洛陽하고 又求海內嘉木異草, 珍禽奇獸하야 以實園苑하고 自長安으로 至江都 置離宮注+[頭註]別宮이라四十餘所하다
대강大江 이남과 오령五嶺 이북의 기이한 재목과 괴이한 돌을 징발하여 낙양洛陽으로 수송해 오고, 또 해내海內의 아름다운 나무와 특이한 풀과 진기한 새와 짐승을 구하여 원원園苑에 채웠으며, 장안長安으로부터 강도江都에 이르기까지 이궁離宮注+[頭註]이궁離宮별궁別宮이다. 을 40여 곳에 설치하였다.
又遣黃門侍郞王弘等하야 往江南하야 造龍舟及雜船數萬할새 東京官吏 督役嚴急하니 役丁死者什 四五
황문시랑黃門侍郞 왕홍王弘 등을 보내어 강남江南에 가서 용주龍舟와 기타 선박 수만 척을 건조할 적에 동경東京에서 파견 나온 관리들이 부역을 감독하기를 엄하게 하고 급하게 하니, 부역하는 장정 중에 죽은 자가 열에 네다섯이었다.
所司以車載死丁하야 東至成皐하고 北至河陽하야 相望於道러라
책임을 맡은 관사官司에서 죽은 장정을 수레에 실어 동쪽으로는 성고成皐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하양河陽에 이르러서 시신을 운반하는 수레가 길에 서로 이어졌다.
○ 五月 築西苑하니 周二百里 其內爲海하니 周十餘里
○ 5월에 서원西苑을 쌓으니 둘레가 200리이고, 그 안에 바다를 만드니 둘레가 십여 리였다.
爲方丈, 蓬萊諸山하니 高出百餘尺이요 臺觀宮殿 羅絡山上하야 向背如神이라
바다 가운데에 방장산方丈山봉래산蓬萊山 등 여러 산을 만드니 높이가 백여 자나 솟았고, 대관臺觀궁전宮殿이 산 위에 줄지어 늘어서 있어서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모두 선경仙境과 같았다.
海北 有龍(麟)[鱗]渠하야 縈紆注海內
바다 북쪽에는 용린거龍鱗渠가 있어서 물줄기가 감고 돌아 바다로 주입되었다.
緣渠作十六院호되 門皆臨渠하고 每院 以四品夫人으로 主之하니 堂殿樓觀 窮極華麗
용린거龍鱗渠를 따라 16을 짓되 의 문이 모두 용린거龍鱗渠를 마주 보게 하고 각 마다 4품의 부인夫人이 주관하게 하니, 당전堂殿누관樓觀이 지극히 화려하였다.
宮樹秋冬彫落이면 則翦綵爲花葉하야 綴於枝條호되 色渝注+[頭註] 變也則易以新者하니 常如陽春하고 沼內 亦翦綵爲荷芰菱芡注+[通鑑要解]爾雅 葉如荷而大者라하니라하고 乘輿遊幸이면 則去冰而布之
궁 안의 나무가 가을과 겨울에 시들어 떨어지면 채색 비단을 오려 꽃과 잎을 만들어서 가지에 연결하되 색깔이 변하면注+[頭註]는 변함이다. 새 것으로 바꾸니 항상 따뜻한 봄과 같았으며, 못 안에도 채색 비단을 오려 연꽃과 마름注+[通鑑要解]능검菱芡는 《이아爾雅》에 “잎이 연꽃과 비슷한데 크다.” 하였다. 을 만들고 황제가 놀러 오면 못의 얼음을 치우고 채색 비단을 깔아놓았다.
十六院 競以殽羞精麗相高하야 求市注+[頭註] 貿易也恩寵이러라
16이 다투어 안주와 음식의 정교함과 화려함을 가지고 서로 경쟁해서 황제의 은총을 사려고注+[頭註]는 물건을 사는 것이다. 하였다.
好以月夜 從宮女數千騎하야 遊西苑하고 作淸夜遊曲하야 於馬上奏之러라
은 달밤에 궁녀 수천 명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서 서원西苑을 유람하고 청야유곡淸夜遊曲을 만들어서 마상馬上에서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八月 行幸江都할새 發顯仁宮하야 出洛口하야 御龍舟하니 挽船士八萬餘人이요 注+[釋義] 船後持舵處 船頭刺櫂處相接二百里하야 照曜川陸하고 騎兵 翊兩岸而行하니 旌旗蔽野
8월에 강도江都에 행차할 적에 현인궁顯仁宮을 출발하여 낙구洛口로 나와서 용주龍舟를 타니, 배를 끄는 군사가 8만여 명이었고 배의 이물과 고물注+[釋義]은 배 뒷부분의 키를 잡는 곳이고, 는 배 앞부분의 노를 꽂는 곳이다. 이 서로 잇닿은 것이 200리에 달하여 등불이 강과 육지에 빛났으며, 기병騎兵들이 양쪽 강 언덕을 끼고 가니 깃발이 들판을 뒤덮었다.
所過州縣五百里內 皆令獻食하니 多者 一州至百轝로되 極水陸珍奇하니 後宮厭飫하야 將發之際 多棄埋之하니라
지나가는 500리 안의 주현州縣에서 모두 음식을 바치게 하니 많은 경우에는 한 에서 100대의 수레로 음식을 나르기도 하였는데, 수륙水陸에서 나오는 진미珍味를 지극히 바치니, 후궁後宮들이 싫컷 먹어 출발할 즈음에는 다 먹지 못한 음식을 대부분 버리고 묻었다.
역주
역주1 將作大匠 : 관직명이다. 秦나라 때 처음으로 설치하였는데 將作少府라 칭하였다. 西漢 景帝 때에 將作大匠이라 개칭하였는데, 宮室‧宗廟‧陵寢 및 기타 土木 공사를 맡았는 바, 東漢‧魏‧晉 시대에도 전례대로 설치하였다. 南朝 梁나라 때에는 大匠卿이라 개칭하였고, 北齊 때에는 將作寺大匠이라 개칭하였다. 隋나라로부터 遼나라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將作監大匠이라 칭하였다.
역주2 : 소
역주3 舳艫 : 축로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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