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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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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戊申]二十四年이라
건무建武 24년(무신 48)
匈奴八部大人 共議立日逐王注+[頭註]匈奴官號하야 爲呼韓邪單于注+[附註]匈奴單于輿立하야 以從弟比 爲日逐王하야 領南邊이러니 及輿死하고 弟左賢王蒲奴立하야 使兩骨都侯 監領比所部한대 比遂斂所主南邊八部衆而叛하니 南邊八部共立比爲呼韓邪單于 於是 始分爲南北單于하니라하고 款五原塞注+[釋義]謂叩塞門하야 來服從也 叩也하야 願永爲藩蔽하야 扞禦北虜라하야늘
흉노匈奴팔부八部 대인大人이 함께 의논하고 일축왕日逐王注+[頭註]일축왕日逐王흉노匈奴관호官號이다. 를 세워서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를 삼고,注+[附註][附註]匈奴八部大人……爲呼韓邪單于:흉노匈奴선우單于輿가 즉위하여 종제從弟일축왕日逐王으로 삼아서 남쪽 변방을 관할하게 하였는데, 輿가 죽고 아우 좌현왕左賢王 포노蒲奴가 즉위하여 양골도후兩骨都侯로 하여금 가 거느리던 곳을 감독하여 관장하게 하자, 가 마침내 주관하던 남쪽 변방 여덟 부족의 무리를 거느리고 배반하니, 남쪽 변방의 여덟 부족이 함께 를 세워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라 하였다. 이에 흉노匈奴가 비로소 남선우南單于북선우北單于로 나뉘게 되었다.오원五原의 변방의 관문을 두드리고 와서注+[釋義]오원五原에 있는 변방의 관문을 두드리고 와서 복종한 것이니, 은 두드림이다. 영원히 번폐藩蔽(藩屛)가 되어 북쪽 오랑캐를 방어할 것을 원한다고 하였다.
〈出匈奴傳〉
- 《후한서後漢書 흉노전匈奴傳》에 나옴 -
事下公卿하니 議者 皆以爲天下初定 中國空虛하고 夷狄 情僞難知하니 不可許니이다
이 일을 공경公卿에게 내려 의논하게 하니, 의논하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천하가 처음 평정됨에 중국이 텅 비었고 오랑캐들은 실정과 거짓을 알기 어려우니,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五官中郞將耿國 獨以爲宜如受之하야 令東扞鮮卑하고 北拒匈奴하고 率厲四夷하야 完復邊郡注+[通鑑要解] 邊郡創(瘡)殘이어늘 有南匈奴爲扞弊 則可以完復矣케하소서 帝從之하다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 경국耿國이 홀로 아뢰기를 “마땅히 효선제孝宣帝고사故事와 같이 이들을 받아 주어 동쪽으로는 선비鮮卑를 막고 북쪽으로는 흉노匈奴를 막고 사방 오랑캐들을 인솔하고 장려해서 변방의 고을을 다시 완전하게 하소서.注+[通鑑要解]이 때에 변방의 고을이 해를 입어 잔폐하였는데, 남흉노南匈奴를 울타리로 삼는다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 하니, 황제가 그의 말을 따랐다.
〈出耿國傳〉
- 《후한서後漢書 경국전耿國傳》에 나옴 -
○ 秋七月 武陵蠻 寇臨注+[釋義]武陵 禹貢荊州之域이니 秦爲黔中郡하고 光武改〈名〉光陵郡하니 今常德府是 臨沅 縣名이니 屬武陵하니 以南臨沅水 故名焉하니 今〈常德府〉沅江縣[頭註]寇 群行攻劫也이어늘 馬成注+[頭註]中山太守 討之不克하다
○ 가을 7월에 무릉武陵만족蠻族임원臨沅을 침략하자,注+[釋義]武陵은 《서경書經》 〈우공禹貢〉의 형주荊州 지역이니, 나라는 검중군黔中郡으로 삼았고 광무제光武帝광릉군光陵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니, 지금의 상덕부常德府가 이곳이다. 임원臨沅의 이름이니 무릉武陵에 속하였는 바, 남쪽에 원수沅水가 있기 때문에 이름한 것이니, 지금 상덕부常德府 원강현沅江縣이 이곳이다.[頭註]寇는 무리 지어 가서 공격하여 위협하는 것이다.마성馬成注+[頭註]마성馬成중산태수中山太守이다. 이 토벌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馬援 請行이어늘 帝愍其老하야 未許러니 援曰 臣 尙能被甲上馬니이다
마원馬援출정出征할 것을 청하자, 황제가 그의 늙음을 딱하게 여겨 허락하지 않았는데, 마원馬援이 말하기를 “신이 아직 갑옷을 입고 말에 오를 수 있습니다.” 하였다.
帝令試之하니 據鞍顧하야 以示可用이라
황제가 시험해 보게 하니, 마원馬援이 말안장에 걸터앉아 좌우를 돌아보면서 아직도 쓸 만함을 과시하였다.
帝笑曰
황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건장하다.
是翁注+[釋義]矍鑠 輕健貌 東觀記 作矆哉是翁하니라이여하고 遂遣援하야 將四萬餘人하야 征五溪注+[釋義]謂雄溪, 樠溪, 西溪, 潕溪, 辰溪 皆槃瓠子孫所居 謂之五溪蠻也 按水經註 沅水 出牂牁郡且蘭縣하야 去武陵界하야 分五溪하니 今在辰州하다
이 노인이여.”注+[釋義]矍鑠哉 시옹是翁:확삭矍鑠은 몸이 가볍고 건장한 모양이다. 《동관기東觀記》에는 ‘확재시옹矆哉是翁’으로 되어 있다. 하고는 마침내 마원馬援을 보내어 4만여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가서 오계五溪注+[釋義]오계五溪웅계雄溪만계樠溪서계西溪무계潕溪신계辰溪를 이르니, 모두 반호槃瓠의 자손들이 사는 곳으로 이들을 오계만五溪蠻이라 이른다. 살펴보건대 《수경주水經註》에 “원수沅水장가군牂牁郡 차란현且蘭縣에서 나와 무릉武陵의 경계로 흘러가서 오계五溪로 나누어지니, 지금의 신주辰州에 있다.” 하였다. 를 정벌하게 하였다.
謂友人杜愔曰 吾受國厚恩하야 年迫日注+[釋義] 逼也 盡也 謂歲月老也일새 常恐不得死國事러니 今獲所願하니 甘心瞑目이로라
마원馬援이 친구인 두음杜愔에게 이르기를 “내가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입고서 나이가 죽을 때에 가까워 살 날이 다하였으므로注+[釋義]은 가까움이고 은 다함이니, 세월이 다하여 늙음을 이른다. 항상 국사國事에 죽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이제 소원을 얻었으니 달가운 마음으로 눈을 감겠다.” 하였다.
○ 冬十月 匈奴日逐王比 自立爲南單于하고 遣使詣闕하야 奉藩稱臣이어늘
○ 겨울 10월에 흉노匈奴일축왕日逐王 가 스스로 서서 남선우南單于가 되고, 사신使臣을 보내어 궁궐에 나와 번병藩屛를 받들어 이라고 칭하였다.
以問朗陵侯臧宮한대 宮曰 匈奴飢疫分爭하니 願得五千騎하야 以立功하노이다
이 이 일을 가지고 낭릉후朗陵侯 장궁臧宮에게 묻자, 장궁臧宮이 대답하기를 “흉노匈奴가 기근이 들고 염병이 돌며 분열되어 다투고 있으니, 신은 원컨대 5천 명의 기병騎兵을 얻어 을 세웠으면 합니다.” 하였다.
帝笑曰 常勝之家 難與慮敵이니 吾方自思之호리라
황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항상 승리한 사람과는 을 도모하기 어려우니, 내 바야흐로 스스로 생각해 보겠다.” 하였다.
〈出宮傳〉
- 《후한서後漢書 장궁전臧宮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孝宣故事 : 宣帝 甘露 2년(B.C.52)에 呼韓邪單于가 조회하러 오자 황제가 그를 특별히 예우하여 지위가 제후왕의 위에 있게 하고 알현할 때에 臣이라고만 칭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게 한 일을 가리킨다.
역주2 : 원
역주3 : 면
역주4 矍鑠 : 확삭
역주5 : 삭
역주6 : 삭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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