晉主有滅吳之志하야 以尙書左僕射羊祜로 都督荊州諸軍事하야 鎭襄陽이러니 祜綏懷遠近하야 甚得江, 漢之心이라
與吳人
으로 開布大信
하야 降者欲去
면 皆聽之
하고 減戍
注+[通鑑要解]戍는 守邊也요 邏는 遊兵也라之卒
하야 以墾田八百餘頃
하니 其始至也
에 軍無百日之糧
이러니 及其季年
에 乃有十年之積
하니라
祜在軍
에 常
輕裘緩帶하고 身不被甲
하고 鈴, 閤之下
注+[釋義]都督閤內에 置鈴架하야 以警防不虞하니라[通鑑要解]鈴閤은 鈴下卒과 閤下威儀也라 鈴下者는 有使令則掣鈴以呼之일새 因以爲名이요 閤下威儀는 掌出入贊導及納謁受事也라에 侍衛不過十數人
이러라
기축(269) - 진晉나라 태시泰始 5년이고, 오吳나라 건형建衡 원년元年이다. -
진주晉主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뜻이 있어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양호羊祜로 하여금 형주荊州의 여러 군사軍事를 도독都督하여 양양襄陽을 진무하게 하였는데, 양호羊祜가 원근遠近의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품어 주어 양자강揚子江과 한수漢水 지역의 민심民心을 매우 얻었다.
오吳나라 사람들과 큰 신의를 펴 보여 항복한 자가 떠나가고자 하면 모두 들어주고 수자리 사는 병사와 변경을 순라하는 병사
注+[通鑑要解]수戍는 변방을 지키는 것이요, 나邏는 유병遊兵(유격대)이다. 를 줄여서
전지田地 800여
경頃을 개간하니, 그가 처음 부임해 왔을 때에는 군중에 100일 동안 먹을 군량이 없었으나 말년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10년의 저축이 있었다.
양호羊祜는
군중軍中에 있을 때에 항상 가벼운 갖옷을 입고 띠를 느슨히 매고 몸에 갑옷을 입지 않았으며
영하졸鈴下卒과
합하위의閤下威儀注+[釋義]都督의 합閤 안에 방울 다는 시렁을 설치하여 비상사태를 경계하고 방비하였다. [通鑑要解]鈴閤은 영하졸鈴下卒과 합하위의閤下威儀이다. 영하鈴下는 사령使令할 것이 있으면 방울을 들어 부르기 때문에 인하여 이로써 명칭을 삼은 것이요, 합하위의閤下威儀는 출입할 때의 찬도贊導 및 납알納謁과 수사受事를 관장한다. 이하의 시위병이 십수 명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