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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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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丑]〈晉泰始五年이요 吳建衡元年이라
晉主有滅吳之志하야 以尙書左僕射羊祜 都督荊州諸軍事하야 鎭襄陽이러니 祜綏懷遠近하야 甚得江, 漢之心이라
與吳人으로 開布大信하야 降者欲去 皆聽之하고 減戍注+[通鑑要解] 守邊也 遊兵也之卒하야 以墾田八百餘頃하니 其始至也 軍無百日之糧이러니 及其季年 乃有十年之積하니라
祜在軍輕裘緩帶하고 身不被甲하고 鈴, 閤之下注+[釋義]都督閤內 置鈴架하야 以警防不虞하니라[通鑑要解]鈴閤 鈴下卒 閤下威儀也 鈴下者 有使令則掣鈴以呼之일새 因以爲名이요 閤下威儀 掌出入贊導及納謁受事也 侍衛不過十數人이러라


기축(269) - 나라 태시泰始 5년이고, 나라 건형建衡 원년元年이다. -
진주晉主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뜻이 있어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양호羊祜로 하여금 형주荊州의 여러 군사軍事도독都督하여 양양襄陽을 진무하게 하였는데, 양호羊祜원근遠近의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품어 주어 양자강揚子江한수漢水 지역의 민심民心을 매우 얻었다.
나라 사람들과 큰 신의를 펴 보여 항복한 자가 떠나가고자 하면 모두 들어주고 수자리 사는 병사와 변경을 순라하는 병사注+[通鑑要解]는 변방을 지키는 것이요, 유병遊兵(유격대)이다. 를 줄여서 전지田地 800여 을 개간하니, 그가 처음 부임해 왔을 때에는 군중에 100일 동안 먹을 군량이 없었으나 말년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10년의 저축이 있었다.
양호羊祜군중軍中에 있을 때에 항상 가벼운 갖옷을 입고 띠를 느슨히 매고 몸에 갑옷을 입지 않았으며 영하졸鈴下卒합하위의閤下威儀注+[釋義]都督의 안에 방울 다는 시렁을 설치하여 비상사태를 경계하고 방비하였다. [通鑑要解]鈴閤은 영하졸鈴下卒합하위의閤下威儀이다. 영하鈴下사령使令할 것이 있으면 방울을 들어 부르기 때문에 인하여 이로써 명칭을 삼은 것이요, 합하위의閤下威儀는 출입할 때의 찬도贊導납알納謁수사受事를 관장한다. 이하의 시위병이 십수 명에 지나지 않았다.


역주
역주1 : 라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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