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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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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寅]〈晉天福七年六月 晉主重貴立하니라
임인(942) - 나라 천복天福 7년 6월에 진주晉主 석중귀石重貴가 즉위하였다.
○ 漢主玢光天元年이라
한주漢主 유분劉玢광천光天 원년元年이다.
○ 是歲 凡五國, 三鎭이라
○ 이해에 모두 다섯 나라이고 세 이다. -
夏四月 漢高祖注+[附註]南漢也 劉隱之弟 初名巖이라 梁封隱하야 爲南平王이러니 隱卒 繼封爲南海王이라가 丁丑年 稱帝하고 國號大越하며 戊寅年 改國號大漢하고 改名하니라 弘度 龑之子也 本傳 龑音嚴이라 하니 秦王弘度 卽皇帝位하야 更名玢하다
여름 4월에 나라 고조高祖注+[附註]나라 고조高祖남한南漢의 군주이다. 유은劉隱의 아우이니, 처음 이름은 이다. 나라가 유은劉隱남평왕南平王에 봉하였는데, 유은劉隱이 죽자 유암劉巖이 뒤를 이어 남해왕南海王에 봉해졌다가 정축년丁丑年(917)에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대월大越이라 하였으며, 무인년戊寅年(918)에 국호를 대한大漢이라 고치고 이름을 으로 고쳤다. 유홍도劉弘度의 아들이다. 본전本傳에 “은 음이 이다.” 하였다. 죽으니, 진왕秦王 유홍도劉弘度가 황제에 즉위하여 이름을 으로 고쳤다.
○ 六月 晉主殂하니 馮道注+[頭註]守司徒兼侍中이라 與景延廣으로 議以國家多難하니 宜立長君이라하고 乃奉廣晉尹齊王重貴注+[原註]帝兄之子[頭註] 廣晉 本紀 作大(太)原하니라爲嗣하니 是日 齊王 卽皇帝位하다
6월에 진주晉主(石敬瑭)가 죽으니, 풍도馮道注+[頭註]풍도馮道수사도守司徒 겸시중兼侍中이다. 경연광景延廣과 함께 의논하기를 “국가에 어려움이 많으니, 마땅히 장군長君(長子)을 세워야 한다.” 하고 마침내 광진윤廣晉尹 제왕齊王 석중귀石重貴注+[原註]석중귀石重貴는 황제(石敬瑭)의 (石敬儒)의 아들이다. [頭註]광진廣晉은 〈고조본기高祖本紀〉에 태원太原으로 되어 있다. 받들어 후사로 삼으니, 이날 제왕齊王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延廣以爲己功이라하야 始用事하니라
경연광景延廣은 〈황제를 세운 것이〉자신의 공이라 하여 비로소 권력을 행사하였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晉祖以唐朝之親으로 地尊勢重이어늘 迫於猜疑하야 請兵契丹하야 賂以土地하고 而取人之國이라
나라 고조高祖나라 금련禁臠의 친척(駙馬)으로 지위가 높고 권세가 중하였는데 황제의 시기와 혐의에 핍박을 받아 거란에게 군대를 청하여 토지土地로써 뇌물을 주고 남의 나라를 차지하였다.
跡其以中國之君으로 而屈身夷狄하면 玩好珍異 旁午道途호되 小不如意하면 譙責繼之하야 當時朝野 莫不痛心이로되 而晉祖事之 殊無赧色이라
중국中國의 군주로서 오랑캐에게 몸을 굽힌 것을 찾아보건대, 완호품과 진귀한 물건을 거란에 바친 것이 도로에 이어졌으나 조금이라도 거란의 마음에 차지 않으면 견책이 이어져서, 당시 조야朝野의 사람들 가운데 가슴 아파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나라 고조高祖는 거란을 섬김에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夫以어든 況附夷狄以伐中國하고 又從而取之者乎
옛사람은 한 가지라도 불의不義의 일을 행하고 한 사람이라도 무죄한 사람을 죽이고 천하를 얻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오랑캐에게 붙어서 중국中國을 정벌하고 또 따라서 나라를 차지함에 있어서랴.
綱目 書晉上尊號於契丹하고 契丹加晉主尊號 所以著中國夷狄首足倒懸之極이니 其惡契丹而賤敬瑭也 甚矣로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나라가 거란에게 존호尊號를 올리고, 거란이 진주晉主에게 존호尊號를 가했다.’라고 쓴 것은 중국中國이적夷狄이 마치 머리와 발이 거꾸로 전도된 것처럼 상하가 도치됨이 극에 달하였음을 나타낸 것이니, 거란을 미워하고 석경당石敬瑭을 천시함이 심하다.”
○ 晉主之初卽位也 大臣 議奉表稱臣告哀於契丹이러니 景延廣注+[頭註]天平節度使侍衛馬步都虞侯 請致書稱孫而不稱臣注+[通鑑要解]因契丹主令高祖稱하야 用家人之禮致書也 하다
진주晉主가 처음 즉위할 적에 대신大臣들이 표문을 받들어 올리고 이라 칭하며 거란契丹에게 상사喪事를 알릴 것을 의논하였는데, 경연광景延廣注+[頭註]경연광景延廣천평절도사天平節度使 시위마보도우후侍衛馬步都虞侯이다. 〈표문을 올리지 말고〉편지를 보내되 이라 칭하고 이라 칭하지 말 것을 청하였다.注+[通鑑要解]경연광景延廣의 의논은〉契丹主가 고조高祖(石敬瑭)로 하여금 아황제兒皇帝라고 칭하게 한 것을 이용하여 가인家人를 써서 편지를 보낸 것이다.
契丹 大怒하야 遣使來責讓이어늘 延廣 復以不遜語注+[附註]延廣 囚契丹使라가 已而 遣歸曰 說爾主호되 先帝 爲北朝所立이라 稱臣奉表어니와 今上 中國所立이니 稱孫足矣 翁怒來하면 則孫有十萬橫磨劍이라하니라 答之하다
거란契丹이 크게 노하여 사자를 보내어 꾸짖자, 경연광景延廣이 다시 불손한 말로注+[附註]불손한 말이란 경연광景延廣거란契丹의 사신을 가두었다가 이윽고 돌려보내며 말하기를 “돌아가거든 네 임금에게 말하기를 ‘선제先帝북조北朝(契丹)에서 세웠기 때문에 이라고 칭하고 표문을 받들어 올렸지만, 금상今上중국中國에서 세웠으니 이라고 칭하면 충분하다. 할아버지(契丹主)가 노하여 와서 교전한다면 손자는 십만 자루의 잘 연마한 검을 차고 상대할 뿐이다.’라고 하라.” 하였다. 답하였다.
契丹盧龍節度使趙延壽注+[原註]本唐人이니 晉初 爲契丹所虜하니라 欲代晉帝中國하야 屢說契丹擊晉한대 契丹主頗然之하니라
거란契丹노룡절도사盧龍節度使 조연수趙延壽注+[原註]조연수趙延壽는 본래 나라 사람인데, 나라 초기에 거란契丹에게 사로잡혔다. 나라를 대신해서 중국中國의 황제가 되고자 하여 자주 거란契丹을 설득해서 나라를 공격하게 하니, 거란주契丹主가 자못 그 말을 옳게 여겼다.
○ 契丹 〈太宗會同五年이라
거란契丹 - 태종太宗 회동會同 5년이다. -
역주
역주1 : 엄
역주2 禁臠(련) : 임금이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물건으로, 임금의 사위를 가리킨다. 東晉의 武帝가 晉陵公主를 위하여 王珣에게 배필을 구하게 하니, 王珣이 謝混을 천거하였는데, 武帝가 謝混을 駙馬로 삼으려다가 얼마 안 되어 붕어하였다. 이에 袁山松이 자기의 딸을 謝混에게 시집보내고자 하였으나 王珣이 袁山松에게 “禁臠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謝混은 끝내 공주에게 장가들었다. 禁臠은 본래 돼지의 목덜미 살인데, 晉나라 元帝가 강남으로 천도한 뒤에 公私間에 매우 궁핍하여 돼지를 잡으면 목덜미 살은 元帝에게만 올린 데에서 유래하였다.
역주3 : 련
역주4 古人……猶且不爲 : 이 내용은 《孟子》 〈公孫丑 上〉에 보인다.
역주5 兒皇帝 : 五代時代 契丹의 제도에 군주가 죽으면 무덤 곁에 집을 짓되 이를 일러 明殿이라고 하고, 아울러 學士 1명을 두어 詔書를 초하는 일을 맡게 하였는데, 큰 경조사를 만나게 되면 學士가 죽은 임금의 이름으로 글을 짓고 새로 즉위한 임금은 兒皇帝라고 칭하였다. 後晉의 石敬瑭은 거란의 도움으로 즉위한 뒤에 거란의 군주인 耶律德光를 높여 아버지라 하고, 거란의 풍속을 따라 스스로 兒皇帝라고 칭하였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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