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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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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午]六年이라
건원建元 6년(병오 B.C.135)
武安侯田蚡 爲丞相하다
무안후武安侯 전분田蚡이 승상이 되었다.
驕侈하야 治宅 甲諸第注+[通鑑要解]爲諸第之最也 以甲乙之次言之 則甲爲上故 田園 極膏注+[頭註]腹之下肥曰腴故 取以喩肥膏之地하고 市買郡縣物하야 相屬於道하며 多受四方賂遺하야 其家金玉婦女狗馬聲樂玩好 不可勝數러라
전분田蚡은 교만하고 사치하여 잘 꾸민 집이 여러 저택 중에 으뜸이었고,注+[通鑑要解]갑제제甲諸第는 여러 집들 중에 으뜸이 된 것이니, 갑을甲乙의 차례로 말하면 이 되기 때문이다. 전원田園이 매우 비옥하고,注+[頭註]아랫배의 살진 부분을 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취하여 기름진 땅을 비유한 것이다. 군현郡縣의 물건을 사들여 길에 서로 이어졌으며, 사방의 뇌물을 많이 받아서 그 집의 금옥金玉부녀婦女, 개와 말, 음악과 완호품玩好品을 이루 다 셀 수가 없었다.
每入奏事 坐語移日하고 所言 皆聽하니 薦人 或起家至二千石하야 權移主上이라
매번 궁중에 들어가 일을 아뢸 적마다 과 앉아서 말하면 해의 그림자가 바뀌도록 오랫동안 말하고 전분田蚡이 말하는 것을 이 모두 들어주니, 사람을 천거함에 혹 기가起家하여(평민의 집안을 일으켜) 이천석二千石에 이르게 하여 권력이 주상主上에게서 옮겨 갔다.
上乃曰 君除吏盡未
이 이에 말하기를 “그대가 관리를 다 제수하였는가?
吾亦欲除吏로라하더라
나 또한 관리를 제수하고자 한다.” 하였다.
嘗請考工地注+[釋義]考工 少府官屬也 百官表 少府有考工室하니 工作器械之所益宅한대 上怒曰 君何不遂取武庫오하니 是後 乃稍退하다
일찍이 고공考工의 땅으로注+[釋義]고공考工소부少府관속官屬이다. 《한서漢書》 〈백관표百官表〉에 “소부少府고공실考工室이 있으니, 기계器械를 만드는 곳이다.” 하였다. 자기 저택을 늘려줄 것을 청하자, 이 노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마침내 무고武庫를 취하지 않는가?” 하니, 이 뒤로 비로소 다소 수그러들었다.
〈出史田蚡本傳〉
- 《사기史記 전분전田蚡傳》에 나옴 -
陳季雅曰
진계아陳季雅가 말하였다.
政權 不可一日不在朝廷이라
정권政權은 하루도 조정朝廷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不在朝廷이면 則在臺閣注+[頭註]尙書諸司하고 不在臺閣이면 則在宮闈하니 在朝廷則治하고 在臺閣則亂하고 在宮闈則亡하니
조정朝廷에 있지 않으면 대각臺閣(御史臺와 관각館閣)에注+[頭註]대각臺閣상서尙書의 여러 이다. 있고 대각臺閣에 있지 않으면 궁위宮闈(妃嬪과 환관宦官)에 있으니, 조정朝廷에 있으면 다스려지고 대각臺閣에 있으면 어지러워지고 궁위宮闈에 있으면 망한다.
國家之興亡治亂 皆本諸此
국가國家흥망興亡치란治亂이 모두 여기에 근본하였다.
田蚡 招徠賓客하고 薦進人才하야 起家至二千石하니 在當時 固不免専權之失이라
전분田蚡빈객賓客들을 초청하고 인재人才를 천거하여 등용해서 이천석二千石에까지 이르게 하였으니, 당시에 진실로 권력을 독단하는 잘못을 면치 못하였다.
使武帝以蚡所用 多非其人이면 則選擇一相하야 委任責成 亦奚不可리오
만일 무제武帝전분田蚡이 등용한 자 중에 비적임자가 많다고 여겼다면 한 정승을 선발하여 임무를 맡기고 성공을 책임지우는 것이 또한 어찌 불가하였겠는가.
乃何帝不能堪하고 欲攬威福之權하야 歸之一己
어찌하여 무제武帝는 이것을 감내하지 못하고, 스스로 위엄과 복을 주는 권력을 잡아서 한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고자 하였는가.
이나 聰明 有所不逮 則耳目 必有所寄
그러나 총명聰明이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으면 이목耳目(사찰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맡기게 된다.
置加官及尙書之屬하니 自此已後 薦引人物 盡在左右侍從之人하여
그러므로 가관加官상서尙書의 등속을 더 두었으니, 이 다음부터는 인물人物을 천거하는 것이 오직 좌우左右에서 시종侍從하는 사람에게 있게 되었다.
衛靑幸則薦主父偃하고 嚴助幸則薦朱買臣하고 楊得意幸則薦司馬相如하니 與其假借左右 孰若與宰相同之也리오
그리하여 위청衛靑이 총애받으면 주보언主父偃을 천거하고 엄조嚴助가 총애받으면 주매신朱買臣을 천거하고 양득의楊得意가 총애받으면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천거하였으니, 좌우左右의 측근에게 권력을 빌려주기보다는 어찌 재상과 함께 하는 것만 하겠는가.
大抵天下之事 制之在始하니 政權 最不可下移
대저 천하天下의 일은 처음에 제대로 하여야 하니, 정권政權은 더더욱 아랫사람에게 옮겨 주어서는 안 된다.
一移之後 所失當愈下
한번 옮겨진 뒤에는 잘못이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是故 元成以後 政歸閹孺注+[頭註]이요 幼少之稱이라하야 而宰相之權愈輕하니 未必不自武帝始也니라
이 때문에 원제元帝성제成帝 이후에는 정권이 환관들에게注+[頭註]은 환관이고, 는 어린아이의 칭호이다. 돌아가 재상의 권력이 더욱 가볍게 되었으니, 이는 무제武帝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 東海太守注+[釋義]東海 古徐州分이니 今海州是也 太守掌治其郡이라汲黯 爲主爵都尉하다
동해태수東海太守注+[釋義]동해東海는 옛 서주徐州의 경내이니, 지금의 해주海州가 이곳이다. 태수太守가 그 고을을 관장하여 다스렸다. 급암汲黯주작도위主爵都尉가 되었다.
黯爲謁者하야 以嚴見憚이러니 河內失火하야 延燒千餘家어늘
처음에 급암汲黯알자謁者가 되어서 엄숙함으로 존경을 받았는데, 하내河內에 잘못하여 불이 나서 천여 가호를 연달아 태웠다.
使黯往視之한대 還報曰 家人失火하야 屋比延燒 不足憂也
급암汲黯을 시켜 가서 시찰하게 하였는데,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집안 사람이 잘못하여 불이 나서 나란히 있는 집들이 잇따라 탄 것은 근심할 것이 못 됩니다.
臣過河南하니 貧人 傷水旱萬餘家하야 或父子相食이라
신이 하남河南을 지나는데 가난한 사람들 만여 가호가 홍수와 가뭄의 해를 입어 혹은 부자간에 서로 잡아먹었습니다.
謹以便宜 持節發倉粟하야 以振貧民하오니 請歸節하고 伏矯制注+[頭註] 托也 托天子詔制 漢律 矯制之罪 論責棄市하니라之罪하노이다 賢而釋之하다
신이 삼가 편의便宜대로 을 가지고 창고의 곡식을 풀어 가난한 백성을 구휼하였으니, 청컨대 을 돌려 드리고 황제의 명령을 사칭한注+[頭註]는 칭탁함이니 천자天子조제詔制(명령)를 사칭한 것이다. 나라 법률에 천자의 명령를 사칭한 죄는 논책論責하여 기시棄市하였다. 죄를 받겠습니다.” 하니, 이 어질게 여겨 풀어주었다.
其在東海할새 治官理民 好淸靜注+[釋義]淸靜者 老氏無爲之學也하야 其治 務在無爲하고 引大體하야 이러라
동해군東海郡에 있을 적에 관청을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림에 청정淸靜함을注+[釋義]청정淸靜이라는 것은 노씨老氏무위無爲의 학문이다. 좋아하여 그 다스림이 되도록 무위無爲에 있었고, 대체大體를 이끌어 문법文法에 구애받지 않았다.
爲人 性倨少禮하고 面折하야 不能容人之過
급암汲黯은 사람됨이 성품이 거만하고 예의禮儀가 적으며, 면전에서 상대방을 꺾어 남의 과실을 용납하지 못하였다.
天子方招文學儒者할새 上曰 吾欲云云注+[釋義]王氏曰 云云者 猶言如此如此 史略其辭耳 張晏曰 所言 欲施仁義也하노라
이때 천자天子가 막 문학하는 유자儒者들을 초빙하였는데, 이 말하기를 “내 이리이리 하고자 하노라.” 하였다.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운운云云이라는 것은 ‘여차여차如此如此’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사신史臣이 그 말을 간략히 했을 뿐이다.” 장안張晏이 말하였다. “말한 내용이 인의仁義를 베풀고자 하는 것이었다.”
黯對曰 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하시니 奈何欲效唐虞之治乎잇가 黙然怒變色而罷朝하니
급암汲黯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속에는 욕심(욕망)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仁義를 베푸시니, 어떻게 요순堯舜의 정치를 본받고자 하십니까?” 하니, 이 묵묵히 있다가 노하여 얼굴빛을 변하고 조회를 파하였다.
公卿 皆爲黯懼러니 退謂左右曰 甚矣
공경公卿들이 모두 급암汲黯을 위하여 두려워하였는데, 이 물러가 좌우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심하다.
汲黯之
급암汲黯의 우직함이여.”라고 하였다.
群臣 或數黯한대 黯曰 天子置公卿輔弼之臣 寧令從諛承意하야 陷主於不義乎
여러 신하들이 혹 급암汲黯의 잘못을 수죄數罪하자, 급암汲黯이 대답하기를 “천자天子공경公卿과 보필하는 신하를 둔 것이, 어찌 이들로 하여금 따라서 아첨하고 뜻을 받들어서 군주를 불의不義에 빠뜨리려는 것이겠는가.
且已在其位하니 縱愛身이나 奈辱朝廷何
또 내가 이미 그 지위에 있으니, 비록 내 몸을 아끼나 어떻게 조정을 욕되게 하겠는가.” 하였다.
多病이어늘 莊助爲請告注+[釋義]李斐曰 休謁之名 吉曰告 凶曰寧이라 孟康曰 古者 名吏休假(暇)曰告 師古曰 告者 請謁之言이니 謂請休耳 漢諸書云謝病 皆同義 初學記 漢律 吏二千石有予告賜告하니 予告者 在官有功最하야 法所當得者也 賜告 病滿三月當免이면 天子優賜其告하야 使得〈帶〉印綬, 將官屬하고 歸家理疾이라 成帝時 二千石賜告 不得歸家하고 和帝時 予賜皆絶하니라러니 上曰 汲黯 何如人哉
급암汲黯이 병이 많자, 장조莊助가 그를 위하여 고가告暇(病暇)를 청하였는데,注+[釋義]이비李斐가 말하였다. “휴알休謁(休暇)의 명칭은 길한 것은 라 하고, 흉한 것은 이라 한다.” 맹강孟康이 말하였다. “옛날에 관리들의 휴가를 이름하여 라 하였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였다. “라는 것은 청알請謁하는 말이니, 휴가를 청함을 이른다.” 나라 때의 여러 책에 사병謝病이라 말한 것이 모두 같은 뜻이다. 《초학기初學記》에 “나라 법률에 ‘이천석二千石의 관리에게는 여고予告사고賜告가 있으니, 여고予告는 관직에 있으면서 이 있어 법에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이르고, 사고賜告는 병이 3개월이 되어서 마땅히 면직免職하게 되면 천자天子가 우대하여 고가告暇를 주어서 인수印綬를 차고 관속官屬을 거느리고 집에 돌아가 병을 치료하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성제成帝 때에 이천석二千石에게 사고賜告할 적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고, 화제和帝 때에 여고予告사고賜告가 모두 없어졌다.” 하였다. 이 말하기를 “급암汲黯은 어떠한 사람인가?” 하니,
助曰 使黯任職居官이면 無以踰人注+[釋義]漢書 踰作瘉하니 勝也이어니와이나 至其輔少主守成하야는 深堅注+[釋義]謂志操深遠堅固하야 不可奪也하야
장조莊助가 대답하기를 “만일 급암汲黯이 관직을 맡아 관청에 있으면 남보다 나을 것이注+[釋義]유인踰人은 《한서漢書》에 로 되어 있는데, 에 “는 나음이다.” 하였다. 없으나, 어린 군주를 보필하여 수성守成함에 이르러서는 의지가 깊고 견고해서,注+[釋義]심견深堅은 지조가 심원하고 견고하여 빼앗을 수 없음을 이른다.
招之不來 麾之不去리니 雖自謂賁, 育注+[釋義]孟賁, 夏育 古之勇士 皆衛人이라 賁能生拔牛角하고 育力擧千鈞하니라이라도 亦不能奪之矣리이다
다른 사람이 불러도 오지 않고 내쳐도 떠나가지 않을 것이니, 비록 스스로 맹분孟賁하육夏育이라고注+[釋義]분육賁育맹분孟賁하육夏育으로 옛날 용사이니, 모두 나라 사람이다. 맹분孟賁은 살아 있는 소의 뿔을 뽑았고, 하육夏育은 힘이 천균千鈞을 들었다. 이르더라도 또한 그의 마음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上曰 然하다
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古有이러니 至如黯하야는 近之矣로다
옛날에 사직社稷의 신하가 있었는데, 급암汲黯에 이르러는 이에 가깝도다.” 하였다.
〈出黯本傳〉
- 《한서漢書 급암전汲黯傳》에 나옴 -
錢文子注+[頭註]宋孝宗時人이라
전문자錢文子注+[頭註]전문자錢文子나라 효종孝宗 때 사람이다. 말하였다.
人君好名 爲治之累也
인군人君이 명예를 좋아함은 정치에 누가 된다.
夫好名者 必外慕하나니 外慕者 躬行 有所不及이면 則敗矣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겉을 사모하니, 겉을 사모하는 자는 몸소 실천함이 미치지 못하면 실패한다.
武帝嘉唐虞하고 樂商周하야 狹小漢家制度하고 而有長駕遠馭之志어늘
무제武帝을 아름답게 여기고 나라와 나라를 좋아하여 나라의 제도를 협소하다고 여기고 훌륭한 정책을 써서 멀리까지 어거하려는 뜻이 있었다.
申公 一言警之以力行이로되 而帝不悟하고 汲黯 面質之以多欲이로되 而帝又不悟하야 外嗜仁義之美하고 而卒之躬行之力虧하니 則亦好名而已矣
그러나 신공申公이 한마디 말로 역행力行할 것을 경계하였으나 무제武帝가 깨닫지 못하였고, 급암汲黯이 면전에서 욕심이 많다고 질정하였으나 무제武帝가 또 깨닫지 못하여, 겉으로만 인의仁義의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끝내 몸소 실천하는 힘이 부족하였으니, 그렇다면 또한 명예만 좋아하였을 뿐이다.
高帝憚叔孫之制하야 令取其易行하고 文帝恐釋之大言하야 則曰 卑之하야 無甚高論이라하니
고제高帝숙손통叔孫通의 제도를 꺼려서 행하기 쉬운 것을 취하게 하였고, 문제文帝장석지張釋之가 큰소리치는 것을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낮추어서 너무 높게 의논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蓋亦以爲慕古之名이나 而躬行 有所不至 要不若顧其力之可爲而行之爾
고조高祖문제文帝 또한 옛날의 높은 명예를 사모하였으나 몸소 실천함이 지극하지 못한 바가 있으면 요컨대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가를 돌아보아 행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긴 것이다.
天下之患 莫大於力不足而强爲之하니 武帝有志於慕古 而治効遠不逮於高文이라
천하의 병통은 힘이 부족한데도 억지로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무제武帝고인古人을 사모함에 뜻이 있었으나 다스려진 효험이 멀리 고제高帝문제文帝에 미치지 못하였다.
愚故以好名으로 爲人主之累也하노라
나는 이 때문에 명예를 좋아하는 것을 인주人主의 누로 삼는 것이다.”
[新增] 胡氏曰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汲黯多欲之言 豈惟深中武帝之病이리오
급암汲黯의 ‘(욕망, 욕심)이 많다’는 말은 어찌 다만 무제武帝의 병통을 깊이 지적하였을 뿐이겠는가.
凡爲人君 莫不然矣
무릇 군주가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다.
堯舜禹湯文武 則無欲者矣어니와 自餘賢主 則能窒欲者也
, , , , 문왕文王무왕武王은 욕심이 없는 자이지만 그 나머지 어진 군주는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겨 욕심을 막은 자이다.
屈於物欲하야 不知自反이면 則昏亂危亡之君이요 內多欲而外施仁義 則五假之之徒也
물욕物欲에 굴복당하여 스스로 돌이킬 줄 모르면 혼란하여 나라를 위망危亡에 빠뜨리는 군주이고, 속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仁義를 베풀면 인의仁義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오패五霸의 무리이다.
所謂欲 或酒或色, 或貨利, 或宮室, 或遊畋, 或狗馬, 或博奕이라
이른바 이라는 것은 혹은 주색酒色, 혹은 화리貨利, 혹은 궁실宮室, 혹은 놀이와 사냥, 혹은 개와 말, 혹은 장기와 바둑이다.
或詞藝圖書以爲文하고 或撫劍疾視以爲武하고 或闢土服遠以爲功하고 或耽佛好仙以爲高하야 雖汚潔不齊하고 欲有大小이나 皆足以變移志慮하고 荒廢政理하니
혹은 문예와 도서를 으로 삼고, 혹은 검을 뽑아 상대방을 노려보는 것을 로 삼고, 혹은 국토를 개척하고 먼 외국을 굴복시킴을 으로 삼고, 혹은 불교를 숭상하고 신선神仙을 사모함을 고상함으로 삼아서, 비록 더럽고 깨끗함이 똑같지 않고 욕망에 크고 작음이 있으나 모두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정치를 황폐하게 한다.
雖欲勉行仁義라도 而行之無本이면 其不足以感人心而正民志矣
그리하여 비록 힘써 인의仁義를 행하더라도 행실에 근본이 없으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백성들의 뜻을 바로잡지 못한다.
人君 莫大乎修身이요 而修身 莫先於寡欲이니 欲誠不行이면 則心虛而善入하고 氣平而理勝하야 動無非理 事無不善이니 唐虞之治 不越此矣니라
그러므로 인군人君은 몸을 닦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고, 몸을 닦음은 욕망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먼저할 것이 없으니, 욕망이 진실로 행해지지 않으면 마음이 비어 이 들어가고 가 화평하여 이치가 우세해서, 동함에 이치 아닌 것이 없고 일마다 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당우唐虞의 정치가 이에 벗어나지 않는다.”
역주
역주1 : 유
역주2 不拘文法 : 文法은 法制, 法規 따위를 이른다.
역주3 : 당
역주4 社稷之臣 : 종묘와 사직을 편안히 하는 신하를 이른다.
역주5 :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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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오]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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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오] 6년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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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병오] 6년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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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병오] 6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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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병오] 6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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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병오] 6년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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