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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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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戌] 〈宋永初三年이요 魏泰常七年이라
임술(422) - 나라 영초永初 3년이고, 나라 태상泰常 7년이다. -
五月 宋高祖疾甚이어늘 司空徐羨之 中書令傅亮 領軍將軍謝晦 鎭北將軍檀道濟 同被顧命하다
5월에 나라 고조高祖의 병이 심해지자, 사공司空 서선지徐羨之중서령中書令 부량傅亮영군장군領軍將軍 사회謝晦진북장군鎭北將軍 단도제檀道濟가 함께 고명顧命을 받았다.
高祖殂於西殿하니 太子卽位하다
고조高祖가 서쪽 궁전에서 죽으니, 태자太子가 즉위하였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宋武帝 乘桓玄之亂하야 首倡義兵하야 奮臂一呼 兇黨瓦解어늘 遂奉迎乘輿하야 再興晉室하니 厥功 已不細矣
나라 무제武帝환현桓玄의 난리를 틈타 맨 먼저 의병義兵을 일으켜서 팔을 걷어붙이고 한 번 고함치자 흉악한 역적의 무리들이 와해되어 마침내 황제皇帝를 맞이해서 다시 나라 황실을 일으켰으니, 그 공이 이미 작지 않다.
旣而 治兵整衆하야 經營四方하야 揚旗東征 則廣固潰하고 卷甲南趨 則盧循滅하고 西上 譙縱授首하고 銳卒北征 姚泓面縛하야
이윽고 군대를 다스리고 무리를 정돈하여 사방을 경영해서 기치旗幟를 날리며 동쪽을 정벌하자 광고廣固가 궤멸되었고, 갑옷을 벗어서 말아 짊어지고 남쪽으로 달려가자 노순盧循이 멸망하였으며, 편사偏師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올라가자 초종譙縱이 머리를 바쳤고, 정예병을 이끌고 북쪽을 정벌하자 요홍姚泓이 항복하였다.
遂汛掃伊, 洛하고 修奉園陵하야 震驚旃裘之心하고 發舒華夏之氣하니 南國之盛 未有過於此者也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수伊水낙수洛水 지역을 깨끗이 소탕하고 원릉園陵을 수리하고 받들어서 털가죽 옷을 입는 북쪽 오랑캐들의 마음을 놀라게 하고 중하中夏의 기풍을 발양하였으니, 남조南朝의 강성함이 이때보다 더한 적이 없었다.
惜乎
애석하다.
席不暇暖 擧千里之秦하야 付之嬰孺하고 引兵遽還하니 志在簒國이라
자리가 따뜻해질 겨를도 없이 천리千里나 되는 나라 땅을 들어서 어린 자식에게 맡기고 군대를 이끌고 급히 돌아오니, 마음이 나라를 찬탈하려는 데에 있었다.
蓋一擧足 而赫連氏 已躡踵而入關中하야 卒不復見中原之定하니 可勝歎哉
그리하여 한 발짝을 떼기 무섭게 혁련씨赫連氏가 벌써 뒤따라 관중關中으로 들어와서 끝내 다시는 중원中原이 평정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한탄스러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이나 迹其取國以來 淸簡寡欲하고 嚴整有度하며 被服布素하고 遊宴絶希하며 嬪御寡少하고 不畜私藏하며 孝于後母하고 又詔幼主當朝 母后不得預政하면 此八者 皆人君之要行이어늘 而武帝兼之하니 亦足以爲一代之良主矣로다
그러나 나라를 차지한 이후로 청렴하고 소탈해서 욕심이 적고 엄정하여 법도가 있었으며, 옷은 삼베옷과 명주옷을 입고 놀거나 잔치하는 일이 매우 적었으며, 비빈妃嬪들과 모시는 여인들이 적었고 사사로운 창고에 재물을 쌓아 두지 않았으며, 계모繼母에게 효도하였고 또 어린 군주가 조정을 맡았을 때에 모후母后가 정사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명령한 것을 살펴보면 이 여덟 가지는 모두 군주의 중요한 행실인데 무제武帝가 이것을 겸하였으니, 또한 충분히 한 시대의 훌륭한 군주라고 할 만하다.”
역주
역주1 偏師 : 주력군 이외의 군대를 가리킨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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