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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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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子]四年이라
건무建武 4년(무자 28)
吳漢, 王梁 擊破五校於臨平하다
오한吳漢왕량王梁오교五校임평臨平에서 격파하였다.
○ 耿弇, 遵等 討張豐於涿郡하야 禽(擒)之하다
경엄耿弇제준祭遵 등이 장풍張豐탁군涿郡에서 토벌하여 사로잡았다.
○ 王莽末 天下亂이어늘 臨淮大尹侯霸 獨能保全其郡이러니 帝徵霸會壽春하야 拜尙書令하다
왕망王莽 말엽에 천하가 혼란하였는데, 임회대윤臨淮大尹 후패侯霸가 홀로 그 고을을 보전하니, 황제가 후패侯霸를 불러 수춘壽春에서 만나 상서령尙書令을 제수하였다.
朝廷 無故典하고 又少舊臣이라
이때 조정에는 옛 전적典籍이 없고 또 옛 신하가 적었다.
明習故事하야 收錄遺文하야 條奏前世善政法度하야 施行之하다
후패侯霸고사故事를 밝게 익혀 유문遺文을 수록해서 전대前代의 좋은 정사와 법도를 조목조목 아뢰어 시행하게 하였다.
〈出霸傳〉
- 《후한서後漢書 왕패전王霸傳》에 나옴 -
○ 更始之末 公孫述 卽皇帝位於成都하다
경시更始 말년에 공손술公孫述성도成都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
隗囂使馬援으로 往觀述한대 素與述同里相善注+[釋義] 閭也 里門曰閈이라 蓋援, 述 皆扶風茂陵人故云이라이라
외효隗囂마원馬援으로 하여금 가서 공손술公孫述을 만나 보게 하였는데, 마원馬援은 평소 공손술公孫述과 한 마을 사람으로 서로 친하였다.注+[釋義]은 마을이니, 마을의 문을 이라 한다. 마원馬援공손술公孫述이 모두 부풍현扶風縣 무릉茂陵 사람이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以爲旣至握手歡如平生이러니 而述 盛陳陛衛注+[通鑑要解]於階陛間 大布兵衛也하고 以延援入하야 交拜禮畢 使出就館하고 更爲援하야 製都布單衣注+[釋義] 一作答하니 答布 出安子國이라 單衣 若朝服, 交讓冠注+[通鑑要解]謂賓主相見禮之冠이라하고 會百僚於宗廟中하고 立舊交之位하다
마원馬援은 자신이 찾아가면 손을 잡고 평소처럼 반가워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공손술公孫述이 뜰에 호위병을 진열하고注+[通鑑要解]뜰에 호위병을 많이 세운 것이다. 마원馬援을 맞이하여 들어오게 해서 교배례交拜禮를 마친 다음 나가서 관사館舍에 있게 하고, 다시 마원馬援을 위해서 도포단의都布單衣注+[釋義]는 어떤 에는 으로 되어 있으니, 답포答布백첩포白疊布이니 안자국安子國에서 나온다. 단의單衣조복朝服중단中單과 같은 것이다. 교양관交讓冠注+[通鑑要解]교양관交讓冠빈주간賓主間로 서로 만나 볼 때에 쓰는 관을 이른다.을 만들어 착용시키고 백관百官들을 종묘 가운데 모아놓고서 옛날 사귀던 친구의 자리를 세우게 하였다.
鸞旗注+[頭註]編羽毛하야 列繫幢傍하고 載於車上 謂之鸞旗 駕出則陳於道而先行이라旄騎注+[釋義] 警蹕注+[釋義]所警者 戒肅也 止行人也[頭註]天子出則稱警하니 示戒肅也 入則言蹕하니 所以止行人淸道也 言出入者 就車하야 磬折注+[釋義]謂人曲體揖之 若磬之形也 按磬 一片黑石이니 縣(懸)在虡上하여 擊之 其形中曲하야 垂兩頭하니 言人要(腰)側似也而入하니 禮饗官屬 甚盛이러라
공손술公孫述난기鸞旗注+[頭註]깃털과 털을 엮어서 깃발 옆에 나열하여 매달고 수레 위에 싣고 다니는 것을 난기鸞旗라 하니, 거가車駕가 출행하면 길에 늘어놓아 앞서 간다. 모기旄騎注+[釋義]모기旄騎모두旄頭기병騎兵이다. 경필警蹕(辟除)注+[釋義]警은 경계하고 엄숙히 하는 것이고, 행인行人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頭註]天子가 나갈 때에는 이라고 칭하니 경계하고 엄숙히 함을 보이는 것이요, 들어올 때에는 이라고 하니 행인行人을 멈추게 하여 길을 치우는 것이다. 출입出入이라고 말한 것은 호문互文이다. 을 하고 수레에 올라 경쇠 모양처럼 허리를 굽혀 을 하고注+[釋義]경절磬折은 사람이 몸을 굽혀 읍하기를 석경石磬의 모양과 같이 함을 이른다. 은 한 조각의 검은 돌이니, 이것을 종틀 위에 매달아 두드린다. 그 모양이 중간이 구부러져서 양끝이 아래를 향하니, 사람이 허리를 굽힌 모양이 이와 비슷함을 말한 것이다. 들어오니 로 연향함과 관속官屬들이 매우 성대하였다.
欲授援以封侯大將軍位하니 賓客 皆樂留어늘
마원馬援에 봉하고 대장군大將軍의 지위를 제수하려 하니, 빈객들은 모두 머무는 것을 좋아하였다.
曉之曰 天下雌雄 未定이어늘 公孫 不吐哺走迎國士注+[釋義]按魯世家 周公戒伯禽曰 我嘗一沐三握髮하고 一飯三吐哺하야 起以待士로되 猶恐失天下之賢人이라하니라하야 與圖成敗하고
마원馬援이 그들을 깨우치기를 “천하가 아직 자웅雌雄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공손公孫이 먹던 밥을 뱉고 달려가 국사國士를 맞이해서注+[釋義]살펴보건대 《사기史記》 〈노세가魯世家〉에 “주공周公이 아들 백금伯禽에게 경계하기를 ‘〈식사할 때나 머리 감을 때에 선비가 찾아오면〉 나는 일찍이 한 번 머리 감을 때에도 세 번 감던 머리를 거머쥐고, 한 번 밥을 먹을 때에도 세 번 먹던 밥을 뱉고 일어나서 선비를 영접하면서도 행여 천하 현인賢人들의 마음을 잃을까 두려워하였다.’ 했다.” 하였다. 함께 성패成敗를 도모하지 않고,
修飾邊幅注+[釋義]王氏曰 邊 畔也 田有界畔이라 布帛廣曰幅이니 修飾者 若布帛之修整邊幅也하야 如偶人形하니 此子何足久稽天下士乎아하고
도리어 변폭邊幅(위의와 용모)을 수식하여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은 밭두둑이니, 밭에는 경계에 두둑이 있다. 포백布帛의 너비를 이라 하니, 외면을 수식修飾하는 것이 포백布帛변폭邊幅(올이 풀리지 않게 짠 가장자리 부분)을 정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허수아비 인형과 같으니, 이 사람이 어찌 천하의 선비를 오랫동안 머물게 하겠는가.” 하고는,
因辭歸하야 謂囂曰 子陽 井底蛙注+[釋義] 水蟲이니 形似蝦蟆하니 言如蛙坐井中하야 所見者小也
인하여 하직하고 돌아가서 외효隗囂에게 이르기를 “자양子陽(公孫述의 )은 우물 안의 개구리注+[釋義]는 물에서 사는 동물이니, 모양이 하마蝦蟆와 같은 바, 개구리가 우물 안에 앉아있는 것과 같아서 보는 것이 작음을 말한 것이다. 일 뿐입니다.
妄自尊大하니 不如이니이다
망령되이 스스로 높은 체하고 큰 체하니, 동방東方(洛陽의 광무제光武帝)에 전념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囂乃使援하야 奉書洛陽하니 初到 帝在宣德殿南廡下하야 但幘注+[釋義] 堂下周屋也 髮有巾曰幘이라坐迎이라
외효隗囂가 마침내 마원馬援을 사신으로 삼아 낙양洛陽에 글을 받들어 올리게 하니, 마원馬援이 처음 이르렀을 때에 황제가 선덕전宣德殿 남쪽 행랑 아래에서 두건만 쓰고注+[釋義]帝在宣德殿南廡下 단책但幘: 아래에 둘러 있는 집이다. 머리에 두건이 있는 것을 이라 한다. 앉아서 맞이하였다.
笑謂援曰 卿 遨遊二帝間하니 今見卿 使人大慙注+[通鑑要解]言自慙德薄而稱帝也이로다
황제가 웃으며 마원馬援에게 이르기를 “이 두 황제(公孫述과 자신)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니, 지금 을 만남에 사람으로 하여금 크게 부끄럽게注+[通鑑要解]이 적으면서 황제라고 칭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함을 말한 것이다. 한다.” 하였다.
頓首辭謝하고 因曰 當今之世 니이다
마원馬援이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상엔 단지 군주가 신하를 가려서 쓸 뿐만 아니라, 신하 또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합니다.
臣與公孫述同縣하야 少相善이라
신은 공손술公孫述과 한 고을 사람이라서 어려서부터 서로 친합니다.
臣前至蜀 述陛戟注+[釋義]謂陳列棨戟於階陛之下하야 以爲儀衛而後 進臣하더니
신이 지난번 에 이르렀을 때에 공손술公孫述은 창을 잡은 호위병을 뜰에 세운注+[釋義]폐극陛戟은 계단과 뜰 아래에 창을 진열하여 세워서 위의威儀호위護衛로 삼음을 이른다. 뒤에야 신을 나오게 하였습니다.
臣今遠來어늘 陛下何知非刺客姦人而簡易若是잇고 帝復笑曰 卿非刺客이라 顧說客耳로다
신이 지금 먼 곳에서 왔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자객刺客과 간사한 사람이 아닌 줄을 아시고, 소탈하고 쉽게 대하기를 이와 같이 하십니까?” 하니, 황제가 다시 웃으며 말하기를 “경은 자객刺客이 아니라 다만 세객說客일 뿐이다.” 하였다.
援曰 天下 反復盜名字者注+[頭註]盜名字 謂僭竊名號하야 稱帝稱王也 不可勝數러니 今見陛下호니 恢廓大度 同符高祖
마원馬援이 말하기를 “천하에 반복하여 제왕帝王명자名字를 도둑질한 자注+[頭註]명자名字를 도둑질한다는 것은 제왕帝王명호名號를 참람하게 훔쳐서 를 칭하고 을 칭함을 이른다. 를 이루 셀 수가 없었는데, 이제 폐하를 뵈니 넓고 큰 도량이 고조高祖와 똑같습니다.
乃知帝王 自有眞也로소이다
이제야 제왕帝王이 본래 진짜가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하였다.
〈馬援傳〉
-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 채
역주2 : 한
역주3 [頭註]白疊布 : 疊은 本作氎이라 南史云 高昌國에 有草實하니 如繭中絲라 爲細纑하고 名曰白疊이라하니 取以爲布면 甚軟白이라 纑는 布縷也라 疊은 본래 氎으로 되어 있다. 《南史》에 이르기를 “高昌國에 초목의 열매(木花를 가리킴)가 있는데, 누에고치 속의 실과 같으므로 가느다란 실을 만들고 이름하기를 白疊이라고 하니, 이것을 취하여 布를 만들면 매우 부드럽고 희다.” 하였다. 纑는 布縷이다.
역주4 中單 : 옛날 朝服의 속옷이며, 汗衫을 널리 가리키기도 한다.
역주5 旄頭之騎 : 旄頭는 騎士의 별칭으로, 《漢官儀》에 “옛날에는 羽林軍을 뽑아서 旄頭를 삼아 머리를 풀고 행렬의 선두가 되게 했다.[舊選羽林爲旄頭 被髮先驅]” 하였으며, 魏文帝의 《列異傳》에 “秦나라 文公이 南山의 큰 梓나무를 베니, 한 마리의 푸른 소가 달아나 豐水 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 소가 豐水에서 나오자 기병을 시켜 소를 공격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상투가 풀어져 머리가 흩어지자, 소가 두려워하여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旄頭騎를 설치하여 先驅가 되게 했다.” 하였다.
역주6 互文 : 똑같은 내용이 두 곳에 나올 경우 같은 내용을 일일이 쓰지 않고 각기 한 가지만 쓰는 것을 이른다. 예컨대 제왕이 나갈 때에도 警‧蹕을 하고 들어올 때에도 警蹕을 하는데, 나갈 때에는 警만 말하고 들어올 때에는 蹕만 말한 것이 바로 互文이다.
역주7 專意東方 : 專意는 專念과 같으며, 東方은 光武帝가 있는 洛陽을 가리킨다.
역주8 : 冠은 弁冕의 총칭이고 幘은 頭巾이다. 옛날에는 冠만 있고 幘은 없었으니, 幘은 비천한 執事들이 쓰는 것이었는데 그 뒤에 귀한 자와 천한 자가 모두 썼는 바, 곧 武裝을 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9 非但君擇臣 臣亦擇君 : 《孔子家語》 〈觀周〉에 “군주가 비록 그 신하의 德器를 헤아리지 않더라도 신하는 그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군주는 이미 신하를 가려서 맡기고 신하 또한 군주를 가려서 섬기는 것이다.[君雖不量於其身 臣不可以不忠於其君 是故 君旣擇臣而任之 臣亦擇君而事之]”라고 보인다.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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