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未]元熙元年이라 〈魏泰常四年이요 夏眞興元年이라〉
晉室旣衰에 中原雲擾하니 戎狄腥羶之氣 瀰漫河, 洛하고 薰蒸岱, 華하야 宮闕蕪沒하고 陵廟隳焚이라
元帝
注+[頭註]琅琊王睿라以宗室疎屬
으로 遯居江表
하니 天下士民有思晉者 皆裹糧而歸之
하야 國於荊揚之間
하야 子孫相承
하야 不絶如線
이라
獨明帝
注+[頭註]紹니 元帝長子라英武
하야 克淸大
注+[頭註]憝는 惡也니 謂王敦이라러니 不幸享國不永
하고 自餘
는 孱弱孤危
하야 外陵內叛
하야 寄命於虎狼之口
하야 幾遇呑食者
矣
라
然이나 卒能保其位號하야 宗廟血食이 百有餘年은 何哉오
有王導, 卞壼, 溫嶠, 陶侃, 謝安, 謝幼度
注+[頭註]玄字라爲之臣也
일새라
群賢旣沒에 而道子, 元顯之徒輔之하니 敗亡이 不亦宜乎아
劉裕弑安帝而立恭帝러니 卒爲裕所簒하니 而昌明後二帝之讖이 應矣로다
元帝는 忘國大讐하야 無恢復之志하고 惟明帝는 才略最優호되 又降年不永하고 餘皆碌碌하야 不足算也라
嘗怪王敦, 蘇峻構亂하고 桓溫廢立하야 屢起逆謀하고 桓玄已簒이라 然이나 猶綿歷百有餘年之久者는 尙賴王導, 祖逖, 溫嶠, 謝安, 謝玄, 王坦之諸賢이 忠義奮發하야 平內難하고 却强秦하야 以扶持之也일새라
然而卒莫能恢拓中原者는 蓋以導知寬簡植國하야 而不能從祖逖雍丘益兵之語하고 安知和靜鎭國하야 而不能從謝玄乘勝自往彭城之謀故也라
群賢旣沒에 而道子, 元顯之徒輔之하니 敗亡이 不亦宜乎아
원희元熙 원년元年(기미 419) - 위魏나라 태상泰常 4년이고, 하夏나라 진흥眞興 원년元年이다. -
7월에 송공宋公 유유劉裕가 작위가 승진되어 송왕宋王이 되었다.
“진晉나라 황실이 이미 쇠약해지자 중원中原이 소란하니, 오랑캐의 비린내 나는 기운(야만스러운 풍속)이 황하黃河와 낙수洛水 지역에 가득히 퍼지고 대산岱山과 화산華山까지 올라가서 궁궐이 황폐해지고 능묘가 무너지고 불탔다.
원제元帝注+[頭註]원제元帝는 낭야왕琅琊王 사마예司馬睿이다. 가 종실의 먼 친족으로 도망하여
강동江東 지방에 거주하니,
진晉나라를 그리워하는 천하의 선비와 백성들이 모두 양식을 싸가지고 그에게 귀부하여
형주荊州와
양주揚州의 사이에 나라를 세워서 자손들이 서로 계승하여 실낱같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오직
명제明帝注+[頭註]명제明帝는 사마소司馬紹이니, 원제元帝의 장남이다. 만이
영명英明하고
무용武勇이 있어서 악의 원흉인
왕돈王敦注+[頭註]대憝는 악이니, 대대大憝는 왕돈王敦을 이른다. 을 깨끗이 제거하였으나 불행히도 국가를 소유한 햇수가 길지 못하였고, 그 밖에는 잔약하고 외롭고 위태로워서 밖에서는 능멸하고 안에서는 배반하여 호랑이의 입에 목숨을 맡겨서 거의 먹힐 뻔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지위와 명호를 보전하여 종묘宗廟에 혈식血食을 올린 것이 백여 년이나 이어진 것은 어째서인가?
왕도王導‧
변곤卞壼‧
온교溫嶠‧
도간陶侃‧
사안謝安‧
사유도謝幼度(謝玄)
注+[頭註]유도幼度는 사현謝玄의 자字이다. 가 신하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 죽자 사마도자司馬道子와 사마원현司馬元顯의 무리가 보필하였으니, 패망함이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유유劉裕가 안제安帝를 시해하고 공제恭帝를 세웠는데, 끝내 유유劉裕에게 찬탈당하였으니, 창명昌明의 뒤에 두 황제가 있다는 참언讖言이 맞은 것이다.”
“원제元帝는 국가의 큰 원수를 잊어 중원中原을 회복할 뜻이 없었고, 명제明帝는 재주와 지략이 가장 넉넉하였으나 또 하늘이 내려 준 수명이 길지 못하였으며, 그 밖에는 모두 녹록碌碌하여 따질 것이 못 된다.
내 일찍이 왕돈王敦과 소준蘇峻이 난리를 일으키고 환온桓溫이 자기 마음대로 군주를 폐위하고 세워서 여러 번 역모를 일으켰으며 환현桓玄이 이미 찬탈하였는데도 오히려 진晉나라의 국통國統이 백여 년 동안이나 면면히 이어진 것을 괴이하게 여겼으니, 이는 왕도王導‧조적祖逖‧온교溫嶠‧사안謝安‧사현謝玄‧왕탄지王坦之 등 여러 현인賢人들이 충의심忠義心을 분발하여 내란을 평정하고 강한 진秦나라를 물리쳐서 진晉나라를 부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중원中原을 회복하지 못한 것은 왕도王導는 너그러움과 간략함으로 나라를 세울 줄만 알아서 옹구雍丘에 병력을 더 증원해 달라는 조적祖逖의 말을 따르지 못하였고, 사안謝安은 온화함과 고요함으로 나라를 진정鎭定할 줄만 알아서 승세를 타고 직접 팽성彭城으로 가겠다는 사현謝玄의 계책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 죽자 사마도자司馬道子와 사마원현司馬元顯의 무리가 보필하였으니, 패망함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상 동진東晉과 서진西晉은 합하여 156년이니, 모두 15제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