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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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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申] 〈梁大通二年이요 魏孝昌四 敬宗孝莊帝子攸永安元年이라
무신(528) - 나라 대통大通 2년이고, 나라 효창孝昌 4년이고, 경종敬宗 효장제孝莊帝 원자유元子攸영안永安 원년元年이다. -
正月 魏太后再臨朝注+[附註]太后胡氏 肅宗詡之母 而武始伯國珍之女也 頗事粧飾하고 穢德彰聞이라 太傅(靑)[淸]河王懌 美風儀러니 胡太后逼而幸之 江陽王繼子元叉 爲侍中, 領軍將軍하고 叉妻胡氏爲女侍中하니 叉恃寵驕恣어늘 每裁抑之하니 叉怨之하다 庚子年 遂殺懌하고 幽太后于北宮하고 詐爲太后詔하야 稱有疾하야 還政魏主러니 乙巳年 太后復臨朝하야 誅元叉하니라以來 嬖倖用事하니 政事縱하고 威恩不立注+[附註]羽林, 虎賁作亂하야 殺將軍張彛之子仲瑀어늘 只誅八人하고 其餘 不復窮治하다 高歡見之하고 還家하야 傾財結客曰 宿衛焚大臣之第어늘 朝廷懼而不問하니 事可知矣라하니라하야 盜賊蜂起注+[釋義]言盜賊之衆 如蜂之飛起也하고 封疆日注+[頭註]日蹙 謂秦, 隴以西 冀, 幷以北 皆爲盜區 淮汝淮泗之間 皆爲梁所侵也이라
정월에 나라 호태후胡太后가 다시 조정에 임어臨御注+[附註]태후太后 호씨胡氏숙종肅宗 원후元詡모후母后이니, 무시백武始伯 호국진胡國珍의 딸이다.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일삼았으며 추문이 자자하였다. 태부太傅청하왕淸河王 원역元懌이 풍채가 아름다웠는데, 호태후胡太后가 강제로 핍박하여 총애하였다. 강양왕江陽王 원계元繼의 아들인 원차元叉시중侍中영군장군領軍將軍이 되고 원차元叉의 아내인 호씨胡氏여시중女侍中이 되었는데, 원차元叉가 총애를 믿고 교만하고 방자하자 원역元懌이 그때마다 제재하고 억제하니 원차元叉가 그를 원망하였다. 경자년庚子年(520)에 원차元叉가 마침내 원역元懌을 죽이고 태후太后북궁北宮에 유폐시키고, 거짓으로 태후太后조서詔書를 만들어 병이 있다고 칭하고서 정권을 위주魏主에게 돌려주었는데, 을사년乙巳年(525)에 태후太后가 다시 조정에 임어하여 원차元叉를 죽였다.한 뒤로 총애하는 소인小人들이 용사用事하니, 정사가 해이하고 조정의 위엄과 은혜가 서지 못하여注+[附註]우림군羽林軍호분위虎賁衛가 난을 일으켜서 장군將軍 장이張彛의 아들 장중우張仲瑀를 죽였는데, 호태후胡太后가 다만 8명만 주벌하고 그 외의 사람은 더 이상 죄를 다스리지 않았다. 고환高歡이 이것을 보고 집에 돌아가 재물을 털어 문객과 교분을 맺으며 말하기를 “숙위병宿衛兵대신大臣의 집을 불태웠는데도 조정에서 두려워하여 죄를 묻지 못하니, 일을 알 만하다.” 하였다. 도적들이 벌 떼처럼 일어나고注+[釋義]도적의 무리가 벌이 떼 지어 일어나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국경이 나날이 축소되었다.注+[頭註]나날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이서와 기주冀州병주幷州 이북은 모두 도적들의 소굴이 되고, 지역은 모두 나라에게 침식당하였음을 이른다.
是時 討虜大都督爾朱榮注+[釋義]爾朱 複姓이라 其先 이니 代爲酋帥하야 居爾朱川일새 因以爲氏하니라[頭註]爾朱榮 本東胡種이니 高歡妃父 兵勢彊盛하니 魏朝憚之
이때 토로대도독討虜大都督 이주영爾朱榮注+[釋義]爾朱는 복성複姓이다. 그 선조는 계호契胡(긱호, 글호) 부락 사람이니, 대대로 추장酋長이 되어 이주천爾朱川에 거주하였으므로 인하여 성씨姓氏로 삼은 것이다.[頭註]爾朱榮은 본래 동쪽 오랑캐 종족이니, 고환高歡후비后妃의 아버지이다. 의 군세가 강성하니, 나라 조정에서 그를 두려워하였다.
高歡注+[頭註]渤海蓨人이라 字賀六渾이니 是爲北齊神武帝 往歸榮한대 榮曰 但言爾意하라
고환高歡注+[頭註]고환高歡발해渤海 수현蓨縣 사람이다. 하육혼賀六渾이니, 이가 바로 북제北齊신무제神武帝이다. 이주영爾朱榮을 찾아가자, 이주영爾朱榮이 말하기를 “다만 너의 뜻을 말해 보라.” 하였다.
歡曰 今天子闇弱하고 太后淫亂하야 注+[釋義]孼者 猶木之有蘖生也擅命하고 朝政不行하니 以明公雄武 乘時奮發이면 霸業注+[附註] 把也 把持諸侯之權이요 又把持天子之政이라 或作伯하니 蓋取牧伯長諸侯之義러니 後人 恐與侯伯字相混이라 故借用霸字하야 以別之하니라 可擧鞭而成하리이다
고환高歡이 말하기를 “지금 천자天子는 어리석고 약하며 태후太后는 음란하여 총애하는 소인小人注+[釋義]은 나무에 움이 싹트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조정의 정사가 행해지지 않고 있으니, 명공明公의 뛰어난 무략武略을 가지고 이러한 기회를 틈타 분발한다면 채찍만 들고도 패업霸業注+[附註]는 손으로 쥐는 것이니, 제후의 권력을 쥐고 또 천자의 정사를 거머쥐는 것이다. 혹은 으로 쓰니, 목백牧伯이 제후의 우두머리가 되는 뜻을 취한 것인데, 후인들이 후백侯伯이라는 글자와 혼동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패자霸字를 사용하여 구별하였다. 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大悅하야 自是 每參軍謀하다
이주영爾朱榮이 크게 기뻐하여 이로부터 늘 군사 작전에 고환高歡을 참여시켰다.
[新增]胡氏曰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魏之中葉 以門地注+[頭註]家門地位取士러니 及其衰也하야는 以停年注+[頭註]卽停解日月이니 見上己亥年이라用人이라
나라 중엽에는 문지門地(門閥)注+[頭註]문지門地가문家門지위地位이다. 로써 선비를 뽑았는데, 쇠퇴함에 미쳐서는 재직한 연수注+[頭註]정년停年은 곧 직임을 맡은 세월이니, 정해停解는 앞의 기해년조己亥年條(519)에 보인다. 로써 사람을 등용하였다.
於是 英雄散逸하고 才智不用하니 思有以振而發之로되 而天下始多故矣
이에 영웅들이 흩어지고 재주 있는 자와 지혜로운 자가 등용되지 못하니, 진작하여 분발하게 할 것을 생각하였으나 천하에 비로소 변고가 많게 되었다.
向使魏朝收而用之런들 二百年之基業 豈易傾乎
지난번에 만일 나라 조정에서 인재를 거두어 등용했더라면 2백 년의 기업基業이 어찌 쉽게 기울어졌겠는가.”
魏肅宗注+[頭註]明帝詡 亦惡鄭儼, 徐紇等호되 逼於太后하야 不能去
나라 숙종肅宗注+[頭註]숙종肅宗명제明帝 원후元詡이다. 이 또한 정엄鄭儼서흘徐紇 등을 미워하였으나 태후太后에게 견제당하여 이들을 제거하지 못하였다.
密詔榮하야 擧兵內向하야 欲以脅太后한대
위주魏主가 은밀히 이주영爾朱榮에게 명령을 내려 군대를 일으켜서 서울로 향하게 하여 태후太后를 협박하고자 하였다.
以高歡爲前鋒하야 行至上黨하니 魏主復以私詔止之하다
이주영爾朱榮고환高歡선봉先鋒으로 삼아 행군하여 상당上黨에 이르자, 위주魏主가 다시 은밀히 명령을 내려 중지하게 하였다.
儼, 紇 恐禍及己하야 陰與太后 謀酖魏主하다
정엄鄭儼서흘徐紇이 자신들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여 은밀히 태후太后와 함께 위주魏主를 독살할 것을 모의하였다.
二月癸丑 魏主暴殂注+[頭註] 急也어늘 太后改立故臨注+[釋義]隴西邑이니 屬後魏王寶暉世子注+[頭註]文帝宏之孫이니 太后欲久專政故 利其幼而立之하니 釗始生三歲
2월 계축일癸丑日(25일)에 위주魏主가 갑자기注+[頭註]은 갑자기이다. 죽자, 태후太后가 다시 죽은 임조臨洮注+[釋義]임조臨洮농서隴西의 고을이니, 후위後魏에 속한다. 원보휘元寶暉세자世子원쇠元釗注+[頭註]원쇠元釗문제文帝 원굉元宏의 손자이니, 태후太后가 정사를 오랫동안 전횡하고자 하였으므로 원쇠元釗의 나이가 어린 것을 이롭게 여겨 세운 것이다. 를 세우니, 원쇠元釗의 나이 세 살이었다.
爾朱榮 聞之하고 與元天穆注+[頭註]幷州刺史하야 以彭城武宣王注+[頭註] 顯祖獻文帝弘之子 有忠勳하고 其子長樂王子攸 素有令望이라하야 欲立之하다
이주영爾朱榮이 이 말을 듣고 원천목元天穆注+[頭註]원천목元天穆병주자사幷州刺史이다. 과 의논하여 팽성彭城 무선왕武宣王 원협元勰注+[頭註]원협元勰현조顯祖 헌문제獻文帝 원홍元弘의 아들이다. 이 충성을 다해 세운 공훈이 있고 그 아들 장악왕長樂王 원자유元子攸가 평소에 훌륭한 명망이 있다 하여 그를 세우고자 하였다.
四月 濟河하니 百官 奉璽綬하고 備法駕하야 迎敬宗注+[原註]名子攸 獻文之孫이라 卽帝位하니 是爲敬宗孝莊皇帝於河橋注+[頭註] 沈太后胡氏及幼主釗于河하고 殺王公以下二千人하야 自爲太原王이라하다
4월에 이주영爾朱榮황하黃河를 건너오니, 백관百官이 옥새와 인끈을 받들고 법가法駕를 갖추어서 경종敬宗(元子攸)注+[原註]경종敬宗은 이름이 자유子攸이니 헌문제獻文帝의 손자이다. 황제에 즉위하니, 이가 바로 경종敬宗 효장황제孝莊皇帝이다. 하교河橋에서 맞이하였다.注+[頭註]이주영爾朱榮태후太后 호씨胡氏와 어린 군주인 원쇠元釗를 황하에 빠뜨려 죽이고 왕공王公 이하 2천 명을 죽이고서 스스로 태원왕太原王이 되었다.
[新增]胡氏曰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魏氏之亂 始於世宗奉佛하야 政事不修하고 重以肅宗幼弱하고 胡后稱制하야 穢德彰聞이요
나라의 혼란은 세종世宗불법佛法을 신봉하여 정사가 닦여지지 않은 데에서 비롯되었고, 다시 숙종肅宗이 어리고 약하며 호후胡后가 조정에 임어臨御하여 를 칭해서 추문이 드러난 데에서 더욱 심해졌다.
元澄, 雍, 懌注+[頭註]司徒任城王澄 太保高陽王雍 同總國事 太傅淸河王也 才薄力弱하고 劉騰, 元叉注+[頭註]劉騰 이니 後爲司空이요 元叉 見上再臨朝注 擅權黷貨하야 以召六鎭注+[頭註] 爾朱榮爲車騎將軍으로 幷, 肆, 汾, 廣, 恒, 雲六州討虜大都督이라之兵이라
원징元澄원옹元雍원역元懌注+[頭註]사도司徒 임성왕任城王 원징元澄태보太保 고양왕高陽王 원옹元雍이 함께 국사國事를 총괄하였다. 원역元懌태부太傅 청하왕淸河王이다. 은 재주가 부족하고 힘이 약하였으며, 유등劉騰원차元叉注+[頭註]유등劉騰위장군衛將軍이니 뒤에 사공司空이 되었고, 원차元叉는 앞의 무신년戊申年(528) ‘위태후재림조魏太后再臨朝’의 에 보인다. 는 권력을 독점하고 재물을 탐하여 이주영爾朱榮육진六鎭注+[頭註]당시에 이주영爾朱榮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병주幷州사주肆州분주汾州광주廣州항주恒州운주雲州 등 6토로대도독討虜大都督이었다. 의 군대를 불러들였다.
雖然이나 其間 非無忠謀至計 排難解紛者어늘 而朝廷忽焉하야 如元匡, 崔(洸)[光], 袁飜, 李崇, 張普惠, 薛(淑)[琡], 元孚, 元(深)[諶], 元順, 元(纂)[贊], 辛雄, 路思令, 楊椿, 源子(邕)[雍]之言 皆不聽也
그러나 그 사이에 충성스러운 모의와 지극한 계책으로 국난國難을 물리치고 분란紛亂을 해결할 수 있는 자가 없지 않았는데, 조정에서 이들을 홀대하여 원광元匡최광崔光원번袁飜이숭李崇장보혜張普惠설숙薛琡원부元孚원심元諶원순元順원찬元贊신웅辛雄노사령路思令양춘楊椿원자옹源子雍 같은 사람들의 말을 모두 따르지 않았다.
然則非爾朱榮, 高歡 能爲魏毒也 魏自亡爾니라
그렇다면 이주영爾朱榮고환高歡나라의 해독이 된 것이 아니라, 나라가 스스로 망하였을 뿐이다.”
魏北海王顥注+[頭註]於帝爲從兄弟來奔이어늘 梁主以顥爲魏王하고 遣陳慶之하야 將兵送之還北하다
나라 북해왕北海王 원호元顥注+[頭註]북해왕北海王 원호元顥는 황제에게 종형제從兄弟가 된다. 나라로 도망오자, 양주梁主원호元顥위왕魏王으로 삼고 진경지陳慶之를 보내어 군대를 거느리고 그를 호송하여 북쪽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역주
역주1 : 이
역주2 : 축
역주3 契胡部落人 : 契胡는 爾朱榮을 이른다. 契는 音이 喫(긱)이니, 契丹, 契苾, 契骨이 모두 東胡의 종족이다. 北魏 道武帝의 登國 初年에 爾朱榮의 선조인 羽健이 領民酋長이 되어 契胡를 인솔하고 왔다.
역주4 嬖孼 : 폐얼
역주5 嬖孼 : 君主에게 총애를 받는 小人으로, 庶妾과 宦官 등을 가리킨다.
역주6 : 조
역주7 : 소
역주8 彭城武宣王 : 武宣은 彭城王 元勰의 시호이다.
역주9 衛將軍 : 官名으로, 지위가 다른 여러 大將軍 위에 있었다. 大臣이나 중요한 州郡의 장관에게 덧붙인 명호로, 구체적인 직임은 없었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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