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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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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未]永康元年이라
영강永康 원년元年(정미 167)
陳蕃 旣免 朝臣 震栗하야 莫敢復爲黨人言者
진번陳蕃 등이 면직된 뒤에, 조신朝臣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다시는 당인黨人을 위하여 말하는 자가 없었다.
賈彪曰 吾不西行注+[通鑑要解] 潁川人이니 自潁川으로 至雒陽 爲西行이라이면 大禍不解라하고 乃入雒陽하야 說城門校尉竇武 尙書霍하야 使訟之하니
가표賈彪가 말하기를 “내가 서쪽(雒陽)으로 가지 않으면注+[通鑑要解]가표賈彪영천潁川 사람이니, 영천潁川에서 낙양雒陽에 이르려면 서쪽으로 가야 한다. 큰 화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낙양雒陽에 들어가서 성문교위城門校尉 두무竇武상서尙書 곽서霍諝 등을 설득하여 호소하게 하니,
武上疏曰 陛下卽位以來 未聞善政하고
마침내 두무竇武상소上疏하여 아뢰기를 “폐하께서 즉위한 이래로 선정善政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近者 奸臣牢修 造設黨議하야 遂收前司隷校尉李膺等하야 逮考連及 數百人이요 曠年拘錄호되 事無效驗이라
근자에 간신인 뇌수牢修당의黨議를 만들어 내어 마침내 사례교위司隷校尉 이응李膺 등을 체포해서 잡아다 고문하여 연루된 자가 수백 명이요, 해가 지나도록 죄인들을 구류하여 기록하였으나 일에 분명한 징험이 없습니다.
膺等 誠陛下稷, 注+[通鑑要解]六書 通用契字也라하니라, 伊, 呂之佐注+[釋義] 名棄 姓姬氏 姓子氏 皆舜之臣이라 伊尹 名摯 殷湯之相이요 呂望 周武王之相姜太公也 從其封姓이라 故曰呂어늘 而虛爲奸臣賊子之所誣枉하니 惟陛下 留神澄省하소서
이응李膺 등은 진실로 폐하의 注+[通鑑要解]설자卨字는 《육서六書》에 “계자契字와 통용된다.” 하였다. 이윤伊尹여망呂望과 같은 훌륭한 보좌注+[釋義]稷, , , 여지좌呂之佐:은 이름이 이고 희씨姬氏이며, 자씨子氏이니, 모두 임금의 신하이다. 이윤伊尹은 이름이 이니 나라 탕왕湯王의 정승이고, 여망呂望나라 무왕武王의 정승인 강태공姜太公이니 그 봉한 을 따랐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다. 인데, 헛되이 간신姦臣적자賊子들에게 모함을 당하였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유념하여 밝게 살피소서.” 하였다.
書奏 霍諝亦爲表請하니 帝意稍解하야
글을 아뢰자 곽서霍諝 또한 표문表文을 올려 청하니, 황제의 마음이 다소 풀어졌다.
使中常侍王甫 就獄訊黨人할새 范滂等 皆三木囊頭注+[釋義]謂桎梏加於頭及手足也[頭註]三木 頭及手足 皆有械하고 更以物覆頭也 暴於階下
중상시中常侍 왕보王甫로 하여금 옥에 나아가 당인黨人들을 심문하게 하였는데, 범방范滂 등이 모두 목과 손발에 형틀을 차고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 쓴注+[釋義]桎梏(형틀)을 목과 손발에 가함을 이른다.[頭註]三木은 머리와 손과 발에 모두 형틀이 있는 것이고, 또다시 물건(자루)을 머리에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채 뜰 아래에 서 있었다.
甫以次辨詰曰 卿等 更相拔擧하야 迭爲脣齒하니 其意如何
왕보王甫가 차례로 논변하여 묻기를 “ 등은 번갈아 서로 사람을 발탁하고 천거해서 번갈아 입술과 이가 되었으니, 그 뜻이 무엇인가?” 하였다.
滂曰 仲尼有言하사대 見善如不及하며 見惡如探湯이라하시니 欲使善善同其淸하고 惡惡同其汚
범방范滂이 말하기를 “중니仲尼께서 말씀하기를 ‘선함을 보거든 미치지 못할 듯이 하며, 악함을 보거든 끓는 물에 손을 담근 것처럼 피하라.’ 하였으니, 나는 선량한 사람들이 그 깨끗함을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고, 악하고 나쁜 사람들이 그 더러움을 함께하는 것을 미워하게 만들려 하였다.
謂王政之所願聞이러니 不悟更以爲黨이로다
그리하여 조정에서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을 듣기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것을 가지고 다시 우리들을 당인黨人이라고 지목할 줄은 깨닫지 못하였다.
古之修善 自求多福이러니 今之修善 身陷大戮이로다
옛날에 선행善行을 닦음은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에 선행善行을 닦음은 몸을 죽임에 빠뜨린다.
身死之日 願埋滂於首陽山側하야 上不負皇天하고 下不愧夷齊注+[頭註]餓死首陽山이라하라하니 甫愍然爲之改容하고 乃得竝解桎梏注+[通鑑要解]繫手曰桎이요 繫足曰梏이라이러라
나는 이 몸이 죽는 날 수양산首陽山 곁에 묻어 주어 위로는 황천皇天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백이伯夷숙제叔齊注+[頭註]백이伯夷숙제叔齊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다. 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하니, 왕보王甫가 측은히 여겨 얼굴빛을 고치고 이에 모두 질곡桎梏(형틀)注+[通鑑要解]손에 채우는 것을 (수갑)이라 하고, 발에 채우는 것을 (차꼬)이라 한다. 을 풀어 주었다.
李膺等 又引宦官子弟하니 宦官하야 請帝以天時宜赦라하야 六月 赦天下改元하고 黨人二百餘人 放歸田里하고 書名三府하야 禁錮注+[通鑑要解] 鑄銅鐵 塞隙也 謂塞其仕進之路也終身하다
이응李膺 등이 또다시 환관의 자제들을 죄망罪網으로 끌어들이니, 환관들이 두려워하여 황제에게 천시天時를 이유로 마땅히 사면해야 한다고 청하여 6월에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영강永康이라 고치며, 당인黨人 200여 명을 추방하여 전리田里에 돌려보내고 이들의 이름을 삼부三府에 써서 종신토록 금고禁錮注+[通鑑要解]는 동과 철을 주조할 때에 틈을 막는 것이니, 금고禁錮는 벼슬에 나아가는 길을 막음을 이른다. 하게 하였다.
范滂 往候霍諝而不謝한대
범방范滂곽서霍諝에게 가서 문후하고 고맙다고 사례하지 않았다.
或讓之어늘 滂曰 昔 叔向 不見祁奚하니 吾何謝焉注+[釋義]王氏曰 叔向 名肸이요 姓羊舌氏 弟羊舌虎 皆春秋晉公族也 祁奚 姓名이니 晉大夫也 左傳襄二十(一)[二]年 晉之執政范宣子殺欒盈之黨할새 叔虎與焉이어늘 宣子竝囚叔向이라 祁奚聞之하고 見宣子曰 鯀殛而禹興하니 奈何以虎而棄社稷고한대 宣子說하여 以言諸平公而免之러니 祁奚不見叔向而歸하고 叔向亦不告免焉而朝 註言 祁奚爲國이요 非私叔向也 叔向不告謝祁奚하고 卽往朝君 明不爲己也라하니라이리오
혹인或人이 그를 꾸짖자, 범방范滂이 말하기를 “옛날에 숙향叔向기해祁奚를 만나 보지 않았으니, 내 어찌 사례할 것이 있겠는가?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기를 “숙향叔向은 이름이 이고 양설씨羊舌氏이니, 아우 양설호羊舌虎와 함께 모두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의 공족公族이었다. 기해祁奚성명姓名이니 나라 대부大夫이다.” 하였다. 《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 22년조年條에 “나라의 집정執政범선자范宣子난영欒盈당인黨人을 죽일 적에 숙호叔虎가 여기에 참여되자, 범선자范宣子숙향叔向을 함께 가두었다. 기해祁奚가 이 말을 듣고 범선자范宣子를 만나 보고 말하기를 ‘을 귀양 보냈는데도 임금이 일어났으니, 어찌하여 숙호叔虎 때문에 사직社稷을 〈위하는 숙향叔向을〉 버리십니까?’ 하였다. 범선자范宣子가 기뻐하고 나라 평공平公에게 말하여 죄를 면하였는데 기해祁奚숙향叔向을 만나 보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으며, 숙향叔向 또한 면죄되었음을 고하지 않고 조회했다.” 하였다. 에 이르기를 “기해祁奚는 국가를 위한 것이고 숙향叔向을 사사로이 봐준 것이 아니며, 숙향叔向기해祁奚에게 면죄되었음을 고하여 사례하지 않고 즉시 가서 군주에게 조회한 것은 기해祁奚가 자신을 풀어 준 것이 자기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하였다. ” 하였다.
南歸汝南注+[釋義]句絶이라 漢汝南郡 後周改蔡州하니 今汝寧府是하니 南陽士大夫迎之者 車數千兩이라
범방范滂이 남쪽으로 고향인 여남汝南注+[釋義]여남汝南에서 를 뗀다. 나라 여남군汝南郡후주後周채주蔡州로 고쳤으니, 지금의 여녕부汝寧府가 이곳이다. 에 돌아오니, 남양南陽사대부士大夫들이 그를 영접하기 위하여 타고 온 수레가 수천 대에 이르렀다.
鄕人殷陶, 黃穆 侍衛於滂하야 應對賓客한대 滂謂陶等曰 今子相隨 重吾禍也라하고 遂遁還鄕里하다
같은 고을 사람인 은도殷陶황목黃穆범방范滂의 곁에서 모시고 호위하여 빈객들을 응대하자, 범방范滂은도殷陶 등에게 이르기를 “이제 자네들이 서로 따라다니면 이는 나의 를 가중시키는 것이다.” 하고, 마침내 도망하여 향리鄕里로 돌아갔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桓帝하야 姦邪肆虐 流衍四方하야 賢愚混殽하고 是非逆置하니 可謂亂矣
환제桓帝는 정권이 오후五侯에게 옮겨 가고 형벌이 삼옥三獄에 지나쳐서 간사한 자가 사나운 짓을 함부로 함에 해독이 사방에 퍼져서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가 뒤섞이고 시비是非가 도치되었으니, 혼란하다고 이를 만하였다.
이나 猶綿綿不至於絶者 上則有公卿大夫陳蕃, 李膺, 楊秉, 劉寵, 李固, 杜喬之徒 面折廷爭하야 用公義以扶其危하고 下則有韋布之士符融, 郭泰, 范滂, 許劭之流 立私論以捄其敗
그런데도 오히려 면면히 이어져서 끊김에 이르지 않았던 것은 위에는 공경대부公卿大夫진번陳蕃이응李膺양병楊秉유총劉寵이고李固두교杜喬의 무리가 면전에서 꺾고 조정에서 간쟁하여 공의公義로써 위태로움을 붙들어 줌이 있었고, 아래에는 포의布衣의 선비인 부융符融곽태郭泰범방范滂허소許劭의 무리가 사론私論을 세워 실패를 바로잡아 줌이 있었기 때문이다.
是以 政治雖濁이나 而風俗不衰
이 때문에 정치가 비록 혼탁하였으나 풍속이 쇠하지 않은 것이다.
惜乎
애석하다.
黨錮諸君子 生玆不辰하야 適丁亂世하야 解紐하고 陰邪得路하야 天下大勢 如長江大河不可復返이어늘 而諸君子 欲以區區之口舌 障其流而廻其瀾하고 激其濁而揚其淸하니 豈不難哉
당고黨錮에 걸린 여러 군자君子들이 이처럼 나쁜 때에 태어나서 난세亂世를 맞이하여 건강乾綱이 해이해지고 음사陰邪(음험하고 간사함)가 길을 얻어서 천하天下대세大勢장강長江대하大河가 흘러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과 같이 되었는데, 여러 군자君子가 구구한 입과 혀를 가지고 그 흐름을 막고 그 물결을 되돌리며 그 탁함을 맑게 하고 그 깨끗함을 드날리고자 하였으니,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且私相品題하야 自立禍的하야 而不知挾彈操弓者睥睨於左右矣 天地一網罟
또 사사로이 인물을 품평하여 스스로 의 표적을 세워서 탄환을 끼고 활을 잡고 있는 자가 좌우에서 엿보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으니, 하늘과 땅이 하나의 그물이었다.
高飛竟何益
높이 난다 한들 끝내 무슨 유익함이 있었겠는가?
哀哉
아! 슬프다.”
○ 初 詔書下하야 擧鉤黨注+[釋義] 劾也 鉤黨者 相鉤引其黨與也할새 郡國所奏相連及者 多至百數로되 唯平原相史弼 獨無所上하니 詔書前後迫切하야 州郡注+[頭註] 剔髮也笞掾史
○ 처음에 조서를 내려 당인黨人들을 끌어넣어 검거注+[釋義]는 탄핵함이요, 구당鉤黨은 그 당여黨與들을 서로 끌어넣는 것이다. 할 때에 군국郡國에서 아뢰어 서로 연루된 자가 많게는 백여 명에 이르렀으나 오직 평원상平原相 사필史弼만이 상주上奏한 것이 없자, 조서를 전후로 절박하게 내려 주군州郡에서 아전의 머리를 깎고注+[頭註]은 머리털을 깎는 것이다. 볼기를 쳤다.
從事注+[釋義]從事 中都官也 主察擧百官犯法者[通鑑要解]靑州從事 坐平原傳舍하야 而責弼也坐傳舍하야 責曰 詔書疾惡黨人하야 旨意懇惻이라
종사관從事官注+[釋義]從事는 중도관中都官이니, 백관百官 중에 법을 범한 자를 살펴 적발하는 것을 주관하는 자이다. [通鑑要解]靑州의 종사從事평원平原객사客舍에 앉아 사필史弼을 꾸짖은 것이다. 전사傳舍(驛舍)에 앉아서 꾸짖기를 “께서 당인黨人들을 미워하여 조서에 말씀하신 뜻이 간곡하다.
靑州六郡注+[釋義]今益都府 本漢北海郡이니 禹貢靑州也 六郡 謂濟南, 平原, 樂安, 北海, 東萊, 齊國이라 其五 有黨이어늘 平原 何治而得獨無 弼曰 先王 疆理天下 畫界分境하야 水土異齊注+[釋義]言不同和也 水火木金土五者不相入也하고 風俗注+[附註]異齊 記曰 凡居民材 必因天地寒暖燥濕廣谷大川하야 異制하니 民生其間者異俗하야 則剛柔輕重遲速異(制)[齊] 風俗 凡民察五常之性 而其剛柔緩急하야 音聲不同 繫水土之風氣故 謂之風이요 好惡所舍 動靜無常하야 隨君上之情欲故 謂之俗이라不同하니
청주靑州에 속한 여섯 注+[釋義]익도부益都府는 본래 나라 북해군北海郡이니, 우공禹貢청주靑州이다. 여섯 제남군濟南郡, 평원군平原郡, 낙안군樂安郡, 북해군北海郡, 동래군東萊郡, 제국군齊國郡을 이른다. 중에 다섯 당인黨人이 있는데, 평원군平原郡은 어떻게 다스렸기에 홀로 당인黨人이 없는가?” 하니, 사필史弼이 말하기를 “선왕先王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 경계를 긋고 나누어서 수토水土가 같지 않고注+[釋義]이제異齊는 똑같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주례周禮》의 오제五齊오행五行이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풍속이 동일하지 않다.注+[附註]이제異齊는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무릇 백성들이 사용하는 재료를 쌓아 둘 적에는 반드시 천지天地의 춥고 더움과 건조하고 습함과 넓은 골짜기와 큰 냇물을 따라 제도가 다르니, 그 사이에 사는 백성들도 풍속이 달라 강하고 유순하고 경솔하고 후중하고 느리고 빠름이 똑같지 않다.” 하였다. 풍속風俗은, 무릇 백성들이 오상五常의 성품을 살필 때에 그 강하고 유순하고 느리고 급하여 음성의 똑같지 않음이 수토水土풍기風氣에 관계되므로 이것을 이라 이르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머무는 바에 동정動靜이 일정하지 않아서 군주와 윗사람의 하고자 함을 따르기 때문에 이라 이르는 것이다.
他郡 自有 平原 自無하니 胡可相比리오
다른 당인黨人이 있으나 평원군平原郡은 본래 없으니, 어찌 서로 견줄 수 있겠는가?
若承望上司하야 誣陷良善하고 淫刑濫罰하야 以逞非理 則平原之人 戶可爲黨하리니
만약 상사上司의 지시를 받들어 선량한 사람을 모함하고 지나친 형벌을 내려서 도리가 아닌 일을 함부로 행한다면 평원군平原郡 사람들이 가가호호마다 당인黨人이 될 것이다.
注+[頭註]去聲이라有死而已 所不能也로라
은(나는)注+[頭註]거성去聲(정승)이다. 죽음이 있을 뿐이니, 나는 결코 할 수 없다.” 하였다.
○ 十二月丁丑 帝崩하고 竇太后臨朝하니
○ 12월 정축丁丑일에 황제가 별세하고 두태후竇太后가 조정에 임어臨御하였다.
城門校尉竇武 定策禁中하고 迎河間孝王注+[頭註]章帝子曾孫宏하야 立之하니 時年 十二러라
성문교위城門校尉 두무竇武가 궁중에서 계책을 정하고 하간河間 효왕孝王注+[頭註]효왕孝王장제章帝의 아들이다. 증손曾孫을 맞이하여 그를 세우니, 이때 나이가 12세였다.
역주
역주1 : 서
역주2 : 설
역주3 政遷五侯 刑淫三獄 : 五侯는 다섯 명의 宦官을 侯에 봉한 것으로 單超는 新豐侯에, 徐璜은 武原侯에, 左悺은 上蔡侯에, 具瑗은 東武陽侯에, 唐衡은 汝陽侯에 봉해졌다. 三獄은 세 가지 刑獄 사건으로, 李固와 杜喬, 李雲과 杜衆, 成瑨과 劉質의 獄事를 가리키는 바, 이들 여섯 명은 모두 直諫을 하다가 혹은 참소를 당하여 下獄되어 죽거나, 혹은 棄市刑을 당하였다.
역주4 乾綱 : 《周易》의 乾卦는 純剛의 德을 지녔다 하여 天道와 人君에게 비하는 바, 곧 군주의 권위와 기강을 말한 것이다.
역주5 周禮五齊 : 《周禮》 〈天官 酒正〉에 五齊는 宗廟 등의 큰 제사에 사용하는 다섯 가지 술로, 첫 번째는 찌꺼기가 둥둥 떠 있는 泛齊, 두 번째는 찌꺼기를 거르지 않은 술인 醴齊, 세 번째는 濁酒인 盎齊, 네 번째는 술 찌꺼기가 밑에 가라앉아 있는 붉은색의 緹齊, 다섯 번째는 탁주와 청주가 반반씩 섞여 있는 沈齊인데, 큰 제사에 사용하는 술은 질박함을 숭상하여 찌꺼기를 제거하지 않고 맛이 없는 술을 첫째로 친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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