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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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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延熹二年이라
연희延熹 2년(기해 159)
梁冀一門 前後七侯, 三皇后注+[附註]章帝后恭懷皇后 梁竦之女也 順帝后順烈皇后 竦孫梁商之女也 桓帝后懿憲皇后 亦商之女也 梁冀亦商之子, 六貴人, 二大將軍이요 夫人女食邑稱君注+[頭註]如和平元年 封梁冀妻孫壽爲襄城君之類者七人이요 尙公主注+[頭註]見六卷이라 奉也 奉事公主 不敢斥言娶也者三人이요 其餘卿將尹校注+[通鑑要解] 九卿이요 中郞將이요 河南尹, 京兆尹也 諸校尉也五十七人이라
양기梁冀는 한 가문에서 전후에 걸쳐 7명의 와 3명의 황후皇后注+[附註]세 명의 황후皇后장제章帝공회황후恭懷皇后양송梁竦의 딸이었고, 순제順帝순열황후順烈皇后양송梁竦의 손자인 양상梁商의 딸이었고, 환제桓帝의헌황후懿憲皇后 또한 양상梁商의 딸이었으니, 양기梁冀 또한 양상梁商의 아들이다. 와 6명의 귀인貴人과 2명의 대장군大將軍이 배출되었으며, 부인과 여자로서 식읍食邑을 소유하고 을 칭한注+[頭註]화평和平 원년元年양기梁冀손수孫壽를 봉하여 양성군襄城君으로 삼은 것과 같은 따위이다. 자가 7명이고 공주公主에게 장가든注+[頭註]공주公主에게 장가든 것은 6권에 보인다. 은 받듦이니, 공주를 받들어 섬기는 것이요, 감히 장가든다고 곧바로 가리켜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가 3명이고, 그 나머지 구경九卿중랑장中郞將(河南尹, 경조윤京兆尹)과 교위校尉注+[通鑑要解]구경九卿이고, 중랑장中郞將이고, 하남윤河南尹경조윤京兆尹이고, 는 여러 교위校尉이다. 가 57명이었다.
冀專擅威柄하야 凶恣日積하고 秉政 幾二十年 威行內外하니 天子拱手하야 不得有所親與
양기梁冀가 위엄과 권세를 전천專擅하여 흉악함과 방자함이 날로 쌓이고 정권을 잡은 지가 거의 20년에 가까워서 위엄이 내외內外에 행해지니, 천자天子는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을 뿐 친히 관여하는 바가 없었다.
帝旣不平之러니 又遣客하야 刺殺議郞邴尊이어늘 帝大怒하야 呼中常侍超, 徐璜 黃門令具 小黃門注+[頭註]中常侍, 黃門, 小黃門 竝宦官名이라史左悺, 唐衡하야 定議誅之한대
황제가 이미 이것을 불평해 하고 있었는데, 양기梁冀가 또다시 자객을 보내어 의랑議郞 병존邴尊을 찔러 죽이니, 황제가 크게 노하여 중상시中常侍선초單超서황徐璜, 황문령黃門令구원具瑗, 소황문사小黃門史좌관左悺당형唐衡注+[頭註]중상시中常侍황문黃門소황문小黃門은 모두 환관의 관직 명칭이다. 을 불러서 의논을 정하고 양기梁冀를 주벌하였다.
冀及妻壽卽日 皆自殺하니 百姓 莫不稱慶이러라
양기梁冀와 그의 아내 가 당일로 모두 자살하니, 백성들이 경하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收冀財貨하야 縣官 斥賣注+[釋義] 棄也 謂不用而賣之也하니 合三十餘萬萬이라
양기梁冀재화財貨를 거두어 현관縣官방매放賣注+[釋義]은 버림이니, 사용하지 않고 파는 것을 이른다. 하니 도합 30여 만만萬萬이었다.
以充王府하야 用減天下稅租之半注+[釋義]王氏曰 以充王府用 用字 當屬下句 因也 因是除減天下稅租之半이라하고 散其苑囿하야 以業窮民하고
이것을 왕부王府에 충당하여 이로써 천하의 조세의 절반을 감면해 주었고,注+[釋義]以充王府 용감천하세조지반用減天下稅租之半:왕씨王氏가 말하였다. “ ‘충왕부용充王府用’의 용자用字는 마땅히 아래 에 붙여야 한다. 은 인함이니, 이로 인하여 천하의 조세의 절반을 감면해 준 것이다.” 그의 동산을 흩어서 곤궁한 백성들에게 주어 경작하게 하였다.
封單超, 徐璜等五人하야 爲縣侯하니 世謂之五侯注+[通鑑要解]單超新豐侯, 徐璜武原侯, 具瑗東武陽侯, 左悺上蔡侯, 唐衡汝陽侯也러라
선초單超서황徐璜 등 5명을 봉하여 현후縣侯로 삼으니, 세상에서 이들을 일러 오후五侯注+[通鑑要解]오후五侯선초單超신풍후新豐侯이고, 서황徐璜무원후武原侯이고, 구원具瑗동무양후東武陽侯이고, 좌관左悺상채후上蔡侯이고, 당형唐衡여양후汝陽侯이다. 라 하였다.
[新增]尹氏曰
[新增]尹氏가 말하였다.
梁冀之死 桓帝特以恣橫으로 怒而殺之爾 非能討有罪而正王誅也注+[頭註]冀鴆殺質帝
양기梁冀가 죽은 것은 환제桓帝가 다만 그가 방자하고 전횡한다고 하여 노여워해서 죽인 것일 뿐이요, 그가 지은 죄를 토벌하여 왕법王法으로 마땅히 주벌해야 할 것을 바로잡은注+[頭註]정왕주正王誅양기梁冀질제質帝를 짐독으로 죽인 죄를 바로잡는 것이다. 것은 아니다.
이나 當冀擅權之時하야는 誠有未易然者어니와 迨其旣斃하야는 無復顧慮어늘 漢朝諸人 盍亦申告于朝하야 糾擧本初注+[通鑑要解]質帝年號鴆毒之禍하야 顯明大義하야 討其不赦之罪
그러나 양기梁冀가 권력을 독단할 때를 당해서는 진실로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가 이미 죽음에 미쳐서는 다시 돌아보고 염려할 것이 없는데도 나라 조정의 여러 사람들이 어찌하여 또한 조정에 사실을 보고하여 본초本初注+[通鑑要解]본초本初질제質帝의 연호이다. 연간에 질제質帝짐독鴆毒으로 시해한 화를 규찰하여 적발해서 대의大義를 드러내어 밝혀 그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토벌하지 않았는가.
殘其身하고 汚瀦其宮이면 庶幾討賊之義 暴白注+[頭註] 顯示也 明白也於天下어늘 而當時則不暇也하니 吁可歎哉인저
그 몸을 죽이고 그 집을 웅덩이로 만들었다면 거의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가 천하에 드러나 분명해졌을注+[頭註]은 드러내 보이는 것이고 명백함이다. 터인데 당시에는 이에 미칠 겨를이 없었으니, 아! 탄식할 만하다.”
大司農黃瓊 爲太尉하다
대사농大司農 황경黃瓊태위太尉가 되었다.
是時 新誅梁冀하니 天下想望異政이라
이때 양기梁冀를 갓 죽였으므로 천하 사람들이 새로운 정사를 생각하고 기대하였다.
黃瓊 首居公位하야 乃擧奏州郡 素行貪汚하야 至死徙者十餘人하니 海內翕然稱之러라
황경黃瓊이 첫 번째로 의 지위에 올라 마침내 주군州郡에서 평소 탐오貪汚를 저지른 자를 적발하여 아뢰어서 죽거나 유배간 자가 10여 명에 이르니, 온 천하가 흡연翕然(일치하는 모양)히 칭찬하였다.
辟汝南范滂하니 少厲淸節하야 爲州里所服이러니
황경黃瓊여남汝南범방范滂을 부르니, 범방范滂은 젊어서부터 깨끗한 절개를 닦아서 주군州郡향리鄕里에서 심복心服을 받았다.
爲淸詔使注+[通鑑要解]三公府 有淸詔員하니 以承詔使也하야 案察注+[頭註] 行察也 又考也, 驗也冀州할새
그를 청조사淸詔使注+[通鑑要解]삼공三公청조원淸詔員을 두었으니, 황제의 명령을 받드는 사신이다. 로 삼아 기주冀州 지방을 안찰案察注+[頭註]은 가서 살피는 것이요, 또 상고하는 것이고 징험하는 것이다. 하게 하였다.
登車注+[釋義] 撮持也 馬轡也하고 慨然有澄淸天下之志하니 守令贓汚注+[通鑑要解]吏受賂也 凡非理所得財賄 皆曰贓也者 皆望風解印綬去러라
그리하여 범방范滂이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注+[釋義]은 잡는 것이고, 는 말고삐이다. 개연慨然히 천하를 깨끗이 할 뜻을 두니, 수령守令으로서 부정을 저지르고 탐욕스러운注+[通鑑要解]장오贓汚는 관리가 뇌물을 받는 것이니, 무릇 비리非理로 얻은 재물을 모두 이라고 한다. 자들이 모두 풍성風聲만 듣고도 인수印綬를 풀어 놓고 떠나갔다.
○ 尙書令陳蕃 上疏하야 薦五處士하니 豫章徐穉 彭城姜肱 汝南袁注+[頭註] 音橫이라 京兆韋著 潁川李이라
상서령尙書令 진번陳蕃이 상소하여 5명의 은사隱士를 천거하니, 예장豫章서치徐穉팽성彭城강굉姜肱여남汝南원굉袁閎注+[頭註]은 음이 횡이다. 경조京兆위저韋著영천潁川이담李曇이었다.
帝悉以安車注+[釋義]車以蒲裹故 安也 若今之小車으로 備禮徵之호되 皆不至러라
황제가 안거安車注+[釋義]안거安車는 수레를 부들로 싸기 때문에 편안하니, 지금의 작은 수레와 같은 것이다.현훈玄纁으로 를 갖추어 이들을 불렀으나 모두 오지 않았다.
性方峻注+[通鑑要解]端正峻急也하야 不接賓客호되 唯穉來 特設一이라가 去則縣(懸)之러라
진번陳蕃은 성품이 방정하고 준엄하여注+[通鑑要解]방준方峻은 단정하고 준엄한 것이다. 빈객들을 접대하지 않았으나 오직 서치徐穉가 오면 특별히 걸상 한 개를 비치했다가 〈앉게 하고〉 그가 떠나면 거두어 매달아 놓았다.
帝又徵安陽魏桓이어늘 其鄕人 勸之行한대
황제가 또 안양安陽위환魏桓을 부르자 그 고향 사람들이 갈 것을 권하였는데,
桓曰 夫干祿求進 所以行其志也어늘 後宮千數 其可損乎 廐馬萬匹 其可減乎 左右權豪 其可去乎
위환魏桓이 말하기를 “녹봉을 구하고 등용되기를 구하는 것은 자신의 뜻을 행하려고 해서인데, 지금 천 명으로 헤아려지는 후궁後宮을 줄일 수 있겠으며, 만 필이나 되는 마구간의 말을 줄일 수 있겠으며, 좌우左右권신權臣들과 호강豪强한 자들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하니,
皆對曰 不可라한대
모두 대답하기를 “불가능하다.” 하였다.
乃慨然歎曰 使桓生行死歸 於諸子 何有哉注+[通鑑要解]君忤强諫하야 死而後歸하니 勸行者 復何益也리오오하고 遂隱身不出하다
위환魏桓이 마침내 개연慨然히 탄식하기를 “가령 내가 살아서 갔다가 죽어서 돌아온다면 여러분들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注+[通鑑要解]어제자하유재於諸子何有哉는 ‘내가 나아가면 군주를 거스르고 강력하게 간하여 죽은 뒤에야 돌아올 것이니, 가기를 권한 자에게 다시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 하고는 마침내 몸을 숨기고 나가지 않았다.
○ 帝旣誅梁冀 權勢專歸宦官하니 五侯尤貪縱하야 傾動內外러라
○ 황제가 이미 양기梁冀를 처형하자 권세가 오로지 환관宦官에게 돌아가니, 오후五侯가 더욱 탐욕스럽고 방종하여 조정 내외를 경동傾動(기세가 진동하여 사람들을 두렵게 함)시켰다.
○ 帝從容問侍中爰延호되 何如主也 對曰 陛下爲漢中主注+[通鑑要解]中才之主也니이다
○ 황제가 조용히 시중侍中 원연爰延에게 묻기를 “짐은 어떠한 군주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폐하는 나라의 중간 정도의 군주注+[通鑑要解]중주中主는 〈현명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재주를 지닌 군주이다. 이십니다.” 하였다.
帝曰 何以言之 對曰 尙書令陳蕃 任事則治하고 中常侍黃門 與政則亂이라
황제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렇게 말하는가?” 하자, 대답하기를 “상서령尙書令 진번陳蕃이 일을 맡으면 다스려지고, 중상시中常侍황문黃門이 정사에 참여하면 혼란해집니다.
是以 知陛下可與爲善이며 可與爲非注+[通鑑要解]顧補佐者何如耳니이다 帝曰 昔 朱雲 廷折欄檻注+[頭註]折欄檻 在十四卷己酉年이라이러니 侍中 面稱朕違하니 敬聞闕注+[頭註]失也 過也라하고 拜五官中郞將하다
이 때문에 폐하께서는 더불어 을 하실 수도 있고, 더불어 잘못을 하실 수도 있음注+[通鑑要解]可與爲善 가여위비可與爲非:보좌補佐하는 자가 어떠한 지를 돌아볼 뿐임을 말한 것이다. 을 아는 것입니다.” 하니, 황제가 말하기를 “옛날에 주운朱雲은 조정에서 난간을 부러뜨렸는데,注+[頭註]주운朱雲이 난간을 부러뜨린 일은 14권 기유년조己酉年條에 있다. 지금 시중侍中은 면전에서 짐의 잘못을 말하니 공경히 잘못注+[頭註]은 실수이고 잘못이다. 을 듣겠다.” 하고 원연爰延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에 임명하였다.
○ 九月 以大鴻臚劉寵注+[通鑑要解]齊悼惠王之後也으로 爲司空하다
○ 9월에 대홍려大鴻臚 유총劉寵注+[通鑑要解]유총劉寵나라 도혜왕悼惠王의 후예이다. 사공司空으로 삼았다.
嘗爲會稽太守하야 簡除注+[頭註] 與揀同이라煩苛하고 禁察非法하니 郡中 大治
유총劉寵이 일찍이 회계태수會稽太守가 되어서 번거로움과 까다로움을 제거注+[頭註]과 같다. 하고 불법을 금하여 살피니, 고을 안이 크게 다스려졌다.
徵爲將作大匠이러니 山陰縣 有五六老叟 自若山谷間出하야 人齎百錢하고 以送寵曰
조정朝廷에서 불러서 장작대장將作大匠을 삼았는데, 산음현山陰縣에 사는 5, 6명의 노인이 약사산若邪山 골짜기 사이로부터 나와 사람마다 백전百錢씩 가지고 와서 유총劉寵을 전송하며 말하기를
山谷鄙生 未嘗識郡朝注+[通鑑要解]曰郡朝 公府廳事曰府朝어니와 他守時 吏發求民間注+[釋義]言吏於徵發時 求取於百姓이라하야 至夜不絶하고 或狗吠竟夕하야 民不得安이러니
“산골짝의 비천한 인생이 일찍이 군청郡廳의 일注+[通鑑要解]청사廳事군조郡朝라 하고, 공부公府청사廳事부조府朝라 한다. 을 알지 못했습니다마는 다른 태수太守가 부임해 왔을 때에는 아전들이 백성들에게 징발하고 요구하여注+[釋義]이발구민간吏發求民間은 관리들이 징발할 때에 백성에게 요구하여 받음을 말한 것이다. 밤이 되어도 끊이지 않고, 혹은 개 짖는 소리가 밤새도록 이어져서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가 없었는데,
自明府下車以來 狗不夜吠하고 民不見吏하니 年老 遭値聖明이러니
훌륭하신 명부明府께서 부임한 이래로는 개들이 밤중에 짖지 않고 백성들이 아전을 보지 못하니, 나이가 늙어 성명聖明한 시대를 만났습니다.
今聞當見棄去故 自扶奉送하노이다
그런데 이제 저희들을 버리고 떠나가신다는 말을 들었기에 스스로 부축하고 나와서 전송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寵曰 吾政 何能及公言邪
유총劉寵이 말하기를 “나의 정사가 어찌 들의 말씀에 미칠 수 있겠는가?
勤苦父老라하고 爲人選一大錢注+[頭註] 去聲이요 謂每一人이라하야 受之하다
부로父老에게 수고를 끼쳤도다.” 하고는 사람들을 위하여 대전大錢 한 개씩을 골라서注+[頭註]거성去聲이고, 은 한 사람씩을 이른다. 받았다.
○ 郭泰 博學善談論이라
곽태郭泰박학博學하고 담론談論을 잘하였다.
初遊雒陽할새 時人 莫識호되 陳留 符融 一見嗟異하고 因以介注+[附註]古人相見 必因紹介以傳辭하니라 紹者 繼也 介者 因也 言因人以相接見也 介不一人故 禮云 紹介以傳命이라하니라[通鑑要解]介 繼紹也 言及之意也 古者 主有儐이요 客有介 介者 因也 因人以相接見也 導也 接賓以禮曰儐이라於河南尹李膺한대
처음 낙양雒陽에 갔을 때에 당시 그를 아는 사람들이 없었으나 진류陳留부융符融이 한번 보고는 감탄하고 특이하게 여겨 하남윤河南尹 이응李膺에게 소개하였다.注+[附註][附註]옛사람은 서로 만나 볼 때에 반드시 소개를 통하여 말을 전하였다. 는 이어받음이고 는 통함이니, 사람을 통하여 서로 접견함을 말한다. 는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에 “소개하여 명령을 전달한다.” 하였다. [通鑑要解]介는 이어받음이니, 말이 미친다는 뜻이다. 옛날에 주인은 을 두고 손님은 를 두었다. 는 통함이니, 사람을 통해 서로 접견하는 것이다. 은 인도함이니, 손님을 로 접대하는 것을 이라 한다.
膺與相見하고 曰 吾見士多矣로되 未有如郭林宗者也로다
이응李膺곽태郭泰와 서로 만나 보고는 말하기를 “내가 선비를 많이 만나 보았지만 곽림종郭林宗(郭泰)과 같은 자는 있지 않았다.
其聰識通朗 高雅密博 今之華夏 鮮見其儔라하고 遂與爲友하니 於是 名震京師러라
그의 총명한 식견과 통명通明함, 고아高雅함과 박학함은 지금의 중화中華에서는 그를 필적할 만한 자를 보기 어렵다.” 하고는 마침내 그와 더불어 벗하니, 이에 명성이 경사京師에 진동하였다.
後歸鄕里할새 衣冠諸儒送至河上하니 車數千兩이라
뒤에 향리鄕里로 돌아갈 때에 의관衣冠을 차린 여러 선비들이 전송하여 황하黃河 가에 이르니, 전송 나온 수레가 수천 대였다.
唯與泰同舟而濟하니 衆賓 望之하고 以爲神仙이러라
이응李膺이 오직 곽태郭泰와 한 배를 타고 건너가니, 여러 손님들이 멀리서 바라보고는 신선神仙이라고 여겼다.
泰性明知人하고 好獎訓士類하야 周遊郡國이러니
곽태郭泰는 천성이 총명하여 사람을 잘 알아보고 선비들을 장려하고 가르치기를 좋아하면서 군국郡國주유周遊하였다.
孟敏 客居太原할새 墮地注+[釋義] 負也 落也호되 不顧而去어늘
맹민孟敏이 나그네로 태원太原에 있을 때에 시루를 메고 가다가 땅에 떨어뜨렸는데도注+[釋義]는 메는 것이고, 는 떨어짐이다.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갔다.
泰見而問其意한대 對曰 甑已破矣 視之何益이리오
곽태郭泰가 보고 그 이유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시루가 이미 깨졌으니 돌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였다.
泰知其德性하고 因勸令遊學하야 遂知名當世하니라
곽태郭泰는 그의 덕성德性이 훌륭함을 알고는 인하여 그에게 권고하여 유학遊學하게 해서 마침내 이름이 당대에 알려졌다.
或問范滂曰 郭林宗 何如人 滂曰 隱不違親注+[釋義]隱不違親者 介子推之類也 新序曰 晉文公反國하여 介子推無爵이라 去之介山이러니 文公求不得하여 焚山而死하니라 左傳 作介之推하니 介姓이요 推名이요 語助聲이라[通鑑要解]雖隱이라도 不背父母하고 貞不絶俗注+[釋義]貞不絶俗者 柳下惠之類也 柳下惠 春秋時魯公族이니 姓展이요 名禽이요 字季 居柳下而施德惠하여 因以爲號하니라[通鑑要解]雖貞勁이라도 不棄風俗이라하야 天子不得臣이요 諸侯不得友
혹자가 범방范滂에게 묻기를 “곽림종郭林宗은 어떠한 사람인가?” 하니, 범방范滂이 말하기를 “숨어도 어버이를 떠나지 않고注+[釋義]숨어도 어버이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개자추介子推와 같은 무리이다.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에 이르기를 “나라 문공文公망명亡命 생활을 하다가 본국으로 돌아와 군주가 되어서 개자추介子推에게는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개자추介子推가 떠나 개산介山으로 갔는데, 그 후 문공文公이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그를 나오게 하기 위하여〉 에 불을 질렀는데 타 죽었다.” 하였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는 개지추介之推로 되어 있으니, 에 “이고, 는 이름이고, 는 어조사이다.” 하였다. [通鑑要解]비록 숨더라도 부모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곧음을 지키더라도 세속을 끊지 아니하여注+[釋義]곧음을 지키더라도 세속을 끊지 않는다는 것은 유하혜柳下惠와 같은 무리이다. 유하혜柳下惠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 공족公族으로, 성이 이고 이름이 이고 인 바, 유하柳下라는 고을에 살면서 과 은혜를 베풀었으므로 인하여 호로 삼은 것이다. [通鑑要解]비록 곧더라도 세속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천자가 신하로 삼을 수 없고 제후가 벗으로 삼을 수 없다.
吾不知其他로라
나는 그 밖의 것은 모르겠다.” 하였다.
陳留仇香 至行純嘿호되 鄕黨 無知者
진류陳留구향仇香이 지극한 효행이 있고 순후하고 침묵하였으나 향당鄕黨에서 그를 알아주는 자가 없었다.
年四十 爲蒲亭長注+[釋義]蒲亭 在陳留郡考城縣이라 漢因秦하여 大率十里一亭하고 亭有長以禁盜賊하니라이러니 民有陳元 獨與母居할새
나이 40에 포정장蒲亭長注+[釋義]포정蒲亭진류군陳留郡 고성현考城縣에 있다. 나라는 나라 제도를 따라서 대체로 10에 1을 두고 에는 이 있어 도적을 금하였다. 이 되었는데, 백성 중에 진원陳元이란 자가 홀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母詣香하야 告元不孝注+[通鑑要解]元母告元不孝어늘 香曰 吾近日 過元舍러니 廬屋整頓하고 耕耘以時하니 此非惡人이라 寡養孤苦하니 何以一朝之憤으로 棄歷年之勤乎아하니 母涕泣而起하니라어늘 到元家하야 爲陳人倫孝行하야 譬以禍福之言한대 感悟하야 卒爲孝子러라
그의 어머니가 구향仇香을 찾아와서 진원陳元의 불효함을 고발하였는데,注+[通鑑要解]진원陳元의 어머니가 진원陳元이 불효한다고 고발하자, 구향仇香이 말하기를 “내가 근래에 진원陳元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집이 정돈되어 있고 논밭을 갈고 김매기를 제때에 하니, 이는 악한 사람이 아니다. 과부가 되어서 고아를 어렵게 길렀으니, 어찌 하루아침의 분심으로 여러 해 동안 부지런히 기른 것을 버린단 말인가?” 하니,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일어났다. 구향仇香진원陳元의 집에 이르러 인륜人倫효행孝行을 말하고 아울러 화복禍福응보應報를 가지고 타이르니, 진원陳元이 감동하고 깨달아 마침내 효자가 되었다.
考城令注+[釋義]考城縣 屬陳留하니 今睢州縣이라王奐 署香注+[頭註] 謂除官이라爲主簿하고 謂之曰 聞在蒲亭 陳元 不罰而化之라하니 得無少鷹鸇之志注+[釋義]左傳 季孫行父曰 見無禮於君者 誅之 如鷹鸇之逐鳥雀也라하니라 香曰 以爲鷹鸇 不若鸞鳳故 不爲也로라
고성령考城令注+[釋義]고성현考城縣진류陳留에 속하니, 지금의 수주현睢州縣이다. 왕환王奐구향仇香을 임명注+[頭註]는 관직을 제수함을 이른다. 하여 주부主簿를 삼고 그에게 이르기를 “내 들으니 포정蒲亭에 있을 때에 진원陳元을 처벌하지 않고 교화시켰다 하니, 응전鷹鸇의 뜻注+[釋義]춘추좌전春秋左傳문공文公 18년조年條계손행보季孫行父가 말하기를 “군주에게 무례한 자를 보면 그를 주벌하기를 매와 새매가 참새를 쫓듯이 해야 한다.” 하였다. 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니, 구향仇香이 말하기를 “응전鷹鸇이 봉황새만 못하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다.” 하였다.
奐曰 注+[釋義]枳似橘이라 周禮曰 橘踰淮北而爲枳 是也 小棗叢生者之林 非鸞鳳所集이요 百里 非大賢之路라하고 乃以一月資香하야 使入太學하니 郭泰, 符融 齎刺注+[通鑑要解] 持也 書姓名以通於尊者曰刺謁之하고 因留宿이러니
왕환王奐은 말하기를 “탱자나무와 가시나무注+[釋義]탱자나무는 귤과 유사하다. 《주례周禮》 〈동관冬官 고공기考工記〉에 이르기를 “귤나무가 회수淮水를 넘어 북쪽으로 오면 탱자가 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은 멧대추나무로 총생叢生하는 것이다. 숲은 봉황새가 앉을 곳이 아니요, 백리百里 되는 작은 고을은 대현大賢의 길이 아니다.” 하고는 한 달치 녹봉을 구향仇香에게 주어 구향仇香으로 하여금 태학太學에 들어가게 하니, 곽태郭泰부융符融이 명함을 가지고 찾아가注+[通鑑要解]는 가져가는 것이다. 성명을 써서 존자尊者에게 통하는 것을 라 한다. 배알하고 인하여 유숙하였다.
明旦 泰拜之曰 君 泰之師 非泰之友也라하니라
다음 날 아침 곽태郭泰가 그에게 절하며 말하기를 “은 저의 스승이요, 저의 벗이 아닙니다.” 하였다.
[史略 史評]茅容危坐하야 獨與衆異하고 孟敏墮甑호되 無所顧惜하니 是皆生質之美 如此로되
[史略 사평史評]茅容은 무릎 꿇고 앉아 홀로 여러 사람과 달랐고, 맹민孟敏은 시루를 땅에 떨어뜨렸으나 돌아보고 애석해하는 바가 없었으니, 이는 모두 타고난 자질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았던 것이다.
自非先達有見之士 獎勸而造就之 鮮有不湮沒者 若郭泰 可謂能成人之美矣로다
그러나 만일 먼저 통달하여 식견이 있는 선비가 이들을 장려해서 성취하게 하지 않았다면 매몰되지 않은 자가 적었을 것이니, 곽태郭泰와 같은 자는 남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었다고 이를 만하다.
역주
역주1 : 선
역주2 : 완
역주3 攬轡 : 람비
역주4 : 횡
역주5 : 담
역주6 : 훈
역주7 : 탑
역주8 廷折欄檻 : 成帝 때 朱雲이 대신의 무능함을 지적하고, 승상이며 왕의 師傅인 安昌侯 張禹를 죽여 나머지 사람들을 격려하라고 청하자, 成帝가 노하여 朱雲을 죽이게 하였다. 御史가 朱雲을 끌어내리려 하자, 朱雲이 대궐의 난간을 부여잡으니, 난간이 부러졌다. 이때 朱雲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신은 죽어서 龍逄과 比干을 따라 지하에서 놀면 만족합니다.” 하니, 御史가 마침내 朱雲을 데리고 갔다. 左將軍 辛慶忌가 冠을 벗고 대궐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이 신하가 평소 狂直하기로 알려졌으니, 만일 그 말이 옳다면 처벌해서는 안 되고 그 말이 그르더라도 진실로 용납해야 합니다.” 하니, 成帝의 노여움이 풀렸다. 뒤에 난간을 고칠 때를 당하여 成帝가 말하기를 “바꾸지 말고 그대로 보수해서 直言한 신하를 旌表하라.” 하였다.
역주9 : 야
역주10 廳事 : 廳은 일을 다스리는 곳이므로 廳事라고 한 것이다.
역주11 荷甑 : 하증
역주12 : 지
역주13 : 봉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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