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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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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巳]十八年이라
건안建安 18년(계사 213)
正月 曹操進軍濡須口하야 號步騎四十萬이라하고 攻破孫權江西營하니 率衆七萬禦之하다
정월正月조조曹操가 군대를 유수濡須 어구로 진출시키면서 보병과 기병이 40만 명이라 이름하고 장강長江 서안西岸에 있는 손권孫權의 진영을 공격하여 쳐부수니, 손권孫權이 군사 7만 명을 거느리고 막았다.
相守月餘 操見其舟船器仗 軍伍整肅하고 歎曰 生子 當如孫仲謀注+[釋義]孫權字 如劉景升注+[釋義]劉表字兒子 豚犬耳라하더라
서로 대치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조조曹操손권孫權의 선박과 병장기와 군대의 항렬이 정돈되고 엄숙한 것을 보고는 감탄하기를 “자식을 낳으려면 마땅히 손중모孫仲謀(孫權)注+[釋義]중모仲謀손권孫權이다. 와 같아야 할 것이요, 유경승劉景升(劉表)注+[釋義]경승景升유표劉表이다. 의 자식(劉琮)은 다만 돼지와 개일 뿐이다.” 하였다.
○ 五月 以冀州十郡으로 封曹操爲魏公하고 加九錫하다
○ 5월에 기주冀州의 열 으로 조조曹操를 봉하여 위공魏公으로 삼고 구석九錫을 가하였다.
○ 劉備進圍成都하니 劉璋城中 尙有精兵三萬人이요 穀帛 支一年이라
유비劉備가 전진하여 성도成都를 포위하니, 이때 유장劉璋 안에는 아직도 정예병 3만 명이 있고 곡식과 비단이 1년을 버틸 수 있었다.
吏民 咸欲死戰이어늘 璋言 父子注+[頭註]璋父焉이라在州二十餘年 無恩德以加百姓하니 何心能安이리오하고 遂開城出降이어늘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결사적으로 싸우고자 하였으나 유장劉璋은 말하기를 “우리 부자父子注+[頭註]부자父子유장劉璋과 그의 아버지 유언劉焉이다. 가 고을에 있은 지 20여 년에 백성에게 은덕을 베푼 것이 없으니, 어찌 마음에 편안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성문城門을 열고 나와 항복하였다.
備遷璋于公安注+[釋義]公安 本地名油口 劉備立營於此하고 改名公安縣하니 屬荊州하니라하고 盡歸其財物하고
유비劉備유장劉璋공안公安으로 옮기고는注+[釋義]공안公安은 본래 지명이 유구油口이다. 유비劉備가 이곳에 진영을 세우고 공안현公安縣이라고 이름을 고쳤으니, 형주荊州에 속하였다. 그의 재물을 모두 돌려보내었다.
備領益州牧하다
유비劉備익주목益州牧을 겸하였다.
蘇東坡曰
소동파蘇東坡가 말하였다.
取之以仁義하고 守之以仁義者 周也 取之以詐力하고 守之以詐力者 秦也 以秦之所以取 取之하고 以周之所以守 守之者 漢也 仁義詐力雜用하야 以取天下者 此孔明之所以失也
인의仁義로써 취하고 인의仁義로써 지킨 것은 나라요, 사력詐力(속임수와 무력)으로써 취하고 사력詐力으로써 지킨 것은 나라요, 나라가 취한 것(속임수와 무력)으로 취하고 나라가 지킨 것(仁義)으로 지킨 것은 나라요, 인의仁義사력詐力을 뒤섞어 써서 천하를 취하려 한 것은 공명孔明이 실패한 이유이다.
且夫行一不義하고 殺一不辜而得天下 有所不爲而后 天下忠臣義士樂爲之用이라
또 한 가지라도 불의不義한 일을 행하고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서 천하를 얻는 일을 하지 않은 뒤에야 천하의 충신忠臣의사義士가 기꺼이 그를 위해 쓰여지는 것이다.
劉表之喪 昭烈在荊州러니 孔明 欲襲殺其孤注+[頭註] 謂劉表子琮이라한대 昭烈不忍也
유표劉表가 죽었을 때에 소열昭烈형주荊州에 있었는데, 공명孔明유표劉表의 아들을 습격하여 죽이려 하자注+[頭註]유표劉表의 아들 유종劉琮을 이른다. 소열昭烈이 차마 하지 못하였다.
其後 劉璋 以好逆之어늘 至蜀不數月 扼其吭하고 拊其背하야 而奪其國하니 此其與曹操異者幾希矣
그러나 그 뒤에 유장劉璋호의好意소열昭烈을 맞이하였으나 지방에 이른 지 몇 달이 못 되어 그의 목을 조르고 그의 등을 쳐서 그의 나라를 빼앗았으니, 이는 조조曹操와 다른 점이 별로 없는 것이다.
曹劉之不敵 天下之所共知也
소열昭烈조조曹操를 대적할 수 없음은 천하 사람들이 함께 아는 바이다.
言兵이면 不若操之多하고 言地 不若操之廣하고 言戰이면 不若操之能하니 所恃以勝之者 獨以其區區之忠義注+[頭註]區區 猶勤勤也 有以激天下之心耳
병력으로 말하면 조조曹操만큼 많지 못하고, 영토로 말하면 조조曹操만큼 넓지 못하고, 전술로 말하면 조조曹操만큼 능하지 못하였으니, 소열昭烈이 믿고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간곡한 충의忠義注+[頭註]구구區區근근勤勤(매우 간곡함)과 같다. 로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것일 뿐이었다.
孔明遷劉璋 旣已失天下忠臣義士之望이어늘 乃始治兵振旅하야 爲仁義之師하야 東嚮長驅而欲天下響應이면 蓋亦難矣니라
공명孔明유장劉璋을 〈공안公安으로〉 옮겨 이미 천하의 충신忠臣의사義士들의 바람을 잃었는데, 그제서야 비로소 군대를 다스리고 군대를 정돈하여 인의仁義의 군사라고 하여 동쪽을 향해 멀리 달려가서 천하 사람들이 호응하기를 바란다면 이는 또한 어려운 것이다.”
[新增]葉氏曰
[新增]葉氏가 말하였다.
昭烈 以信義聞天下어늘 而有攻劉璋之事 何耶
소열昭烈신의信義로써 천하에 알려졌는데, 유장劉璋을 공격한 일이 있음은 어째서인가?
議者以璋善遇昭烈이어늘 反扼其吭而奪之國하니 豈得爲有義리오하니 吾竊以爲不然이라
의논하는 자들은 ‘유장劉璋소열昭烈을 잘 대우하였는데 도리어 그의 목을 조르고 그의 나라를 빼앗았으니, 어찌 신의信義가 있다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나 나는 그 말이 옳지 않다고 여긴다.
昭烈之取劉璋 正所以爲義也
소열昭烈유장劉璋익주益州를 취한 것은 바로 의리를 행한 것이다.
夫所謂仁義之師者 不爲無名之擧하야 征伐以討其不王耳
이른바 인의仁義의 군대라는 것은 명분 없는 일을 하지 아니하여 천자天子에게 조회 오지 않는 자를 정벌하여 토벌할 뿐이다.
方董卓之亂하야 雄豪競逐에도 猶皆以討賊尊漢爲名이어늘 劉焉 乃陰懷異志注+[頭註] 靈帝政衰어늘 乃求交趾牧하야 避世難이러니 未行 聞益州有天子氣하고 謀領益州牧하야 撫納離叛하야 陰圖異計하니라하고 乘間據有益州하야 偃然有不臣之心이라
동탁董卓이 반란할 때를 당하여 영웅호걸들이 경쟁할 때에도 오히려 모두 역적을 토벌하고 나라를 높이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는데, 유언劉焉은 속에 딴 마음을 품고注+[頭註]유언劉焉영제靈帝의 정사가 혼란해지자, 마침내 교지목交趾牧이 될 것을 청하여 세상의 난리를 피하려 하였는데, 떠나기 전에 익주益州천자天子의 기운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꾀하여 익주목益州牧을 겸한 다음 이반離叛한 자들을 어루만지고 불러들여서 은밀히 딴 계책을 도모하였다. 틈을 타서 익주益州를 점거하여 버젓이 신하 노릇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품었다.
造乘輿하고 하며 遣米賊注+[頭註]張魯 自祖父以來 世爲五斗米道하야 爲人療病하고 令病家出米五斗하니 號五斗米師 聚衆寇叛하니 時謂之米賊이라하야 殺漢使하고 助馬騰注+[頭註]馬超父也 與圖山東할새 留騰屯郿하니라하야 襲長安이라
그리하여 천자天子가 타는 수레를 만들고 검각劍閣을 차단하였으며, 오두미적五斗米賊注+[頭註]장로張魯조부祖父 이래로 대대로 오두미도五斗米道를 신봉하여 사람들을 위해 병을 치료해 주고 병자病者의 집에서 쌀 5를 내게 하니, 오두미사五斗米師라 이름하였다. 여러 도적들을 모아 반란하니, 당시에 이를 미적米賊이라 하였다.을 보내어 나라 사자使者를 죽이게 하고 마등馬騰注+[頭註]마등馬騰마초馬超의 아버지이니, 처음에 유언劉焉이 그와 함께 산동山東을 도모할 때에 마등馬騰을 남겨 두어 땅에 주둔하게 하였다. 을 도와 장안長安을 습격하게 하였다.
方王室傾壞之秋하야 而乃自規便利하야 圖竊神器하니 玆蓋漢之奸賊二袁董卓輩爾 仁人所必誅者
왕실이 기울어지고 무너질 때를 당하여 마침내 스스로 편리함을 엿보아 신기神器를 도둑질하려고 도모하였으니, 이는 나라의 간사한 역적인 원소袁紹원술袁術, 동탁董卓의 무리일 뿐이니, 인인仁人이 반드시 토벌해야 할 대상이다.
漢帝已收殺其子로되 而恨未戮及其身하니 然則焉之罪 其可忍耶
나라 황제가 이미 그의 자식을 잡아 죽였으나 한스럽게도 주륙誅戮이 그의 몸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그렇다면 유언劉焉의 죄를 어찌 차마 용납할 수 있겠는가.
及璋以孽息闇弱으로 復盜王土하니 昭烈 方仗義兵하야 攘群盜하야 以復漢室하니
유장劉璋유언劉焉서자庶子로 어리석고 약하면서 또다시 왕의 땅을 도둑질할 때, 소열昭烈은 막 의병義兵을 내세워 도둑들을 물리쳐서 나라 황실을 회복하고 있었다.
此而不誅 漢室 當何興耶
이러한데도 유장劉璋을 토벌하지 않는다면 나라 황실이 어찌 일어날 수 있겠는가.
過劇賊之鄕而不追擊捕取 豈足爲天吏哉
흉악한 역적의 고을을 지나면서 추격하여 잡아 죽이지 않는다면 어찌 천리天吏가 될 수 있겠는가.
昭烈之擧 上以攄注+[頭註]音摴 舒也漢帝之憤하고 下以誅劉焉之奸이니 厥功大矣
그러므로 소열昭烈의 이 일은 위로는 나라 황제의 울분을 풀어 주고注+[頭註]는 음이 저(터)이니, 폄이다. 아래로는 유언劉焉의 간사함을 토벌한 것이니, 그 공로가 크다.
何負義之有리오
어찌 신의信義를 저버림이 있겠는가.
故曰 取劉璋者 正所以爲義也라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소열昭烈유장劉璋을 취한 것은 바로 의리를 행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備之自新野奔江南也 荊, 楚群士 從之如雲이로되 而劉巴獨詣魏公操어늘
유비劉備신야新野에서 강남江南으로 도망할 때에 지방의 여러 선비들이 구름처럼 따라왔으나 유파劉巴는 홀로 위공魏公 조조曹操에게 갔다.
諸葛亮 以書招之 巴不從하니 備深以爲恨이라
제갈량諸葛亮이 편지로 그를 불렀으나 유파劉巴가 따르지 않으니, 유비劉備가 매우 한스러워하였다.
巴遂入蜀하야 依劉璋이러니 備攻成都 令軍中曰 有害巴者 誅及三族이라하더니
유파劉巴가 마침내 으로 들어가서 유장劉璋에게 의지하였는데, 유비劉備성도成都를 공격할 때에 군중軍中에 명령하기를 “유파劉巴를 해치는 자가 있으면 주벌이 삼족三族에게 미칠 것이다.” 하였다.
及得巴 甚喜러라
유비劉備유파劉巴를 얻게 되자, 매우 기뻐하였다.
是時 益州郡縣 皆望風景(影)附注+[釋義] 讀曰影이니 言服從之易 如影之隨形也호되 獨黃權注+[通鑑要解]其時 黃權 廣漢長也 閉城堅守라가 須璋稽注+[頭註]音啓 稽首服從也服乃降이라
이때 익주益州군현郡縣들이 모두 풍성風聲을 듣고 그림자처럼 따랐으나注+[釋義]으로 읽으니, 복종하기 쉬움이 그림자가 그 형체를 따름과 같음을 말한다. 유독 황권黃權注+[通鑑要解]황권黃權이 이때 광한장廣漢長으로 있었다. 만은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다가 유장劉璋이 머리를 조아려注+[頭註]는 음이 계이니, 머리를 오랫동안 조아려 복종하는 것이다. 복종하기를 기다리고서야 비로소 항복하였다.
於是 董和, 黃權, 李嚴等 本璋之所授用也 吳懿, 費觀等 璋之婚親也 璋之所擯棄也 劉巴 宿昔之所忌恨注+[附註]忌恨璋之迎備也 巴諫曰 備 雄人也 入必爲害하리이다 旣迎 又諫曰 若使備討張魯 是放虎於山林也니이다 璋不聽이어늘 閉門稱疾이러니 及先主定益州 孔明薦之하야 後爲尙書令하니라로되 備皆處之顯任하야 盡其器能하니 有志之士 無不競勸하고 益州之民 是以大和러라
이에 동화董和황권黃權이엄李嚴 등은 본래 유장劉璋이 제수하여 등용한 바요, 오의吳懿비관費觀 등은 유장劉璋의 혼인한 친척이요, 팽양彭羕유장劉璋이 물리쳐 버린 바요, 유파劉巴는 옛부터 꺼리고 한스러워하던 바였으나注+[附註]유장劉璋유비劉備를 맞이하는 것을 꺼리고 한스러워한 것이다. 유파劉巴가 간하기를 “유비劉備는 영웅이니, 들어오면 반드시 폐해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유장劉璋이 이미 유비劉備를 맞이하자, 유파劉巴는 또다시 간하기를 “만약 유비劉備로 하여금 장로張魯를 토벌하게 한다면 이는 호랑이를 산속에 풀어놓는 것입니다.” 하였으나 유장劉璋이 듣지 않자 문을 닫고 병을 칭탁하였다. 선주先主익주益州를 평정하자 제갈공명諸葛孔明이 그를 천거하여 뒤에 상서령尙書令이 되었다. 유비劉備가 모두 현달한 직임에 처하게 하여 그 기국器局과 능력을 다하게 하니, 뜻있는 선비들이 다투어 권면하지 않음이 없었고 익주益州의 백성들이 이 때문에 크게 화목하였다.
○ 成都之圍也 備與士衆約호되 若事定이면 府庫百物 孤無預焉이라하더니
성도成都를 포위하였을 때에 유비劉備가 군사들과 약속하기를 “만약 일이 안정되면 부고府庫의 온갖 물건은 내가 간여하지 않겠다.” 하였는데,
及拔成都 士衆 皆捨干戈하고 赴諸藏하야 競取寶物하니 軍用 不足이라
성도成都를 함락하자 군사들이 모두 방패와 창을 버리고 여러 창고로 달려가서 보물을 다투어 취하니, 군대의 재용이 부족하였다.
備甚憂之어늘 劉巴曰 此易耳니이다
유비劉備가 이를 매우 걱정하자, 유파劉巴가 말하기를 “이는 해결하기가 쉽습니다.
但當鑄直(値)百注+[頭註]一錢直百文曰 直百이라하고 平諸物價하야 令吏爲官市하소서
다만 백전百錢注+[頭註]1전의 값어치가 100(錢)인 것을 직백直百이라 한다. 짜리 돈을 주조하고 여러 물가를 공평하게 해서 관리들로 하여금 에서 물건을 팔게 하소서.” 하였다.
備從之러니 數月之間 府庫充實이러라
유비劉備가 그의 말을 따르니, 수개월 사이에 부고府庫가 충실하였다.
○ 諸葛亮 佐備治蜀할새 頗尙嚴峻하니 人多怨歎者
제갈량諸葛亮유비劉備를 보좌하여 을 다스릴 적에 준엄함을 자못 숭상하니, 사람들 중에 원망하고 한탄하는 자가 많았다.
法正 謂亮曰 昔 高祖入關 約法三章하시니 秦民 知德이어늘
법정法正제갈량諸葛亮에게 이르기를 “옛날에 고조高祖관중關中에 들어갔을 때에 삼장三章만을 약속하니, 나라 백성들이 은덕을 알았습니다.
今君 假借威力하야 跨據一州하야 初有其國 未垂惠撫
그런데 지금 이 위엄과 무력을 빌려서 한 를 점거하여 처음 그 나라를 소유함에 은혜롭게 어루만짐을 아직 베풀지 않았습니다.
且客主之義注+[頭註]以亮等初至라하야 爲客이요 益州人士則主也 宜相降下 願緩刑弛禁하야 以慰其望하라하니
또 나그네와 주인의 의리注+[頭註]제갈량諸葛亮 등이 처음 이르렀다 하여 이라 하고, 익주益州인사人士들을 주인이라 한 것이다. 는 서로 낮추어야 하니, 형벌을 늦추고 금령禁令을 풀어 주어서 백성들의 바람을 위로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亮曰 君 知其一이요 未知其二로다
제갈량諸葛亮이 말하기를 “그대는 한 가지만 알고 두 가지는 알지 못하는구나.
秦以無道 政苛民怨하야 匹夫大呼 天下土崩이어늘 高祖因之하시니 可以弘濟어니와 劉璋 暗弱하야 德政不擧하고 威刑不肅하니 蜀土人士 專權自恣하야 君臣之道 漸以陵替
나라가 무도함으로 인해 정사가 가혹하고 백성들이 원망하여 필부匹夫가 크게 고함치자 천하가 여지없이 와해되었는데, 고조高祖께서 이를 인하셨으니 너그러움으로 구제할 수 있거니와, 유장劉璋은 어리석고 약하여 덕정德政이 거행되지 못하고 형법刑法이 엄숙하지 못하니 지방의 인사人士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방자하여 군신君臣가 점점 침체되었다.
寵之以位하야 位極則殘注+[頭註]이라하고 順之以恩하야 恩竭則慢하나니 所以致敝 實由於此
지위로써 총애하여 지위가 극에 이르면 해치고,注+[頭註]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으로 되어 있다. 은혜로써 순히 하여 은혜가 다하면 태만해지니, 피폐함을 초래한 것이 실로 여기에 연유하였다.
吾今威之以法하니 法行則知恩이요 限之以爵하니 爵加則知榮이니
지금 나는 법으로 위엄을 보이니 법이 행해지면 은혜를 알 것이요, 작위로 제한하니 작위가 가해지면 영화로움을 알 것이다.
榮恩竝濟하고 上下有節이면 爲治之要 於斯而著矣니라
영화와 은혜가 서로 이루어 주고 상하上下가 절도가 있으면 정치하는 요점이 여기에 드러날 것이다.” 하였다.
○ 劉備以零陵蔣琬으로 爲廣都長注+[釋義]廣都縣 屬成都府 猶令也이러니 備嘗因遊觀하야 奄至廣都하야 見琬衆事不治注+[釋義]理效也하고 時又沈醉注+[頭註]沈溺於酒也어늘
유비劉備영릉零陵장완蔣琬광도장廣都長注+[釋義]광도현廣都縣성도부成都府에 속하였다. 과 같다. 으로 삼았는데, 유비劉備가 일찍이 유람하다가 인하여 갑자기 광도廣都에 이르러서 장완蔣琬을 보니, 온갖 일이 다스려지지注+[釋義]는 다스린 효험이다. 못하였고 이때 또 술에 취해 있었다.注+[頭註]침취沈醉는 술에 빠진 것이다.
備大怒하야 將加罪戮한대 諸葛亮 請曰 蔣琬 社稷之器 非百里之才也
유비劉備가 크게 노하여 장차 죄를 다스려 죽이려고 하였는데, 제갈량諸葛亮이 청하기를 “장완蔣琬사직社稷(국가)을 다스릴 기국器局이요, 백리百里 되는 을 다스릴 재목이 아닙니다.
其爲政 以安民爲本하고 不以修飾爲先하니 願主公注+[頭註]去聲이니 再也加察之하소서
그가 정사를 할 때에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을 근본으로 삼았고 남들 보기 좋게 겉을 꾸미는 것을 우선으로 삼지 않았으니, 주공主公께서는 다시注+[頭註]거성去聲이니, 다시이다. 살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備雅注+[頭註]素也敬亮하야 乃不加罪하고 倉卒 但免官而已러라
유비劉備가 평소注+[頭註]는 평소이다. 제갈량諸葛亮을 공경하여 마침내 장완蔣琬에게 죄를 가하지 않고 창졸간에 다만 그의 관직만을 파면하였다.
○ 魏尙書令荀攸卒하다
나라 상서령尙書令 순유荀攸가 죽었다.
深密有智防注+[頭註]智以料事하고 防以保身이라하야 自從操攻討 常謀謨注+[通鑑要解]慮一事劃一計爲謀 汎議將定其謀曰謨帷幄하니 時人及子弟 莫知其所言이러라
순유荀攸는 깊고 치밀하고 지모智謀와 방비注+[頭註]지혜로써 일을 헤아리고, 방비하여 몸을 보전하는 것이다. 가 있어서 조조曹操를 따라 공격하고 토벌한 뒤로부터 항상 유악帷幄에서 계책을 세우니,注+[通鑑要解]한 가지 일을 생각하고 한 가지 계책을 꾀하는 것을 라 하고, 널리 의논하여 장차 를 정하려 하는 것을 라 한다. 당시 사람들과 그의 자제子弟들이 그가 말한 내용을 알지 못하였다.
操常稱荀文若注+[釋義]荀彧字進善 不進不休 荀公達注+[釋義]荀攸字去惡 不去不止라하고 又稱二荀令注+[頭註]文若, 公達이라之論人 久而益信하니 吾沒世不忘이라하더라
조조曹操가 항상 칭하기를 “순문약荀文若(荀彧)注+[釋義]문약文若순욱荀彧이다. 은 좋은 계책을 올릴 때에 그 계책이 쓰여지지 않으면 건의를 그만두지 않고, 순공달荀公達(荀攸)注+[釋義]공달公達순유荀攸이다. 은 잘못을 간할 때에 그 잘못이 제거되지 않으면 간언을 그치지 않았다.” 하였고, 또 칭하기를 “두 순령荀令注+[頭註]이순령二荀令순문약荀文若(荀彧)과 순공달荀公達(荀攸)이다. 이 인물을 논평함에 오래될수록 더욱 신복信服하게 하니, 내가 종신토록 잊지 못한다.” 하였다.
역주
역주1 斷劍閣 : 劍閣은 長安에서 西蜀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예로부터 험준한 요해지로 유명하였다.
역주2 : 양
역주3 資治作賤 : 지위(벼슬)가 극에 이르면 천해진다[位極則賤]로 해석한 것이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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