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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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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亥] 〈梁敬帝紹泰元年이요 魏恭帝廓二年이요 齊天保六年이요 後梁中宗宣帝蕭詧(天)[大]定元年이라
을해(555) - 나라 경제敬帝소태紹泰 원년元年이고, 나라 공제恭帝 원곽元廓의 2년이고, 나라 천보天保 6년이고, 후량後梁 중종中宗 선제宣帝 소찰蕭詧대정大定 원년元年이다.
○ 凡四國이라
○모두 네 나라이다. -
正月 梁王詧 卽皇帝位於江陵하고 上疏於魏 則稱臣하고 奉其正朔注+[頭註]周建子, 商建丑, 夏建寅이니 是改正也 周夜半, 商鷄鳴, 夏平旦이니 是改朔也하다
정월에 양왕梁王 소찰蕭詧강릉江陵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나라에 상소할 적에 신하라고 칭하고 정삭正朔注+[頭註]나라는 건자월建子月, 나라는 건축월建丑月, 나라는 건인월建寅月을 정월로 삼았으니 이는 정월을 고친 것이요, 나라는 야반夜半, 나라는 계명鷄鳴, 나라는 평단平旦을 썼으니 이는 초하루를 고친 것이다. 을 받들었다.
○ 二月 梁晉安王方智 至自尋陽하야 卽梁王位하니 時年十三이라
○ 2월에 나라 진안왕晉安王 소방지蕭方智심양尋陽에서 와서 양왕梁王에 즉위하니, 이때 나이가 13세였다.
以太尉王僧辯으로 爲都督中外諸軍事하고 加陳霸先征西大將軍하다
태위太尉 왕승변王僧辯도독중외제군사都督中外諸軍事로 삼고 진패선陳霸先에게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하였다.
○ 齊注+[頭註]北齊高洋이라與王僧辯書하야 以爲嗣主沖注+[頭註]하니 稚也 音妙 弱也하야 未堪負荷 貞陽侯淵明注+[頭註]武帝兄長沙王懿之子也 以年以望으로 堪保金陵이니 以爲梁主하야 納於彼國하라
注+[頭註]북제北齊고양高洋이다. 나라가 왕승변王僧辯에게 서신을 보내어 이르기를 “사주嗣主는 어려서注+[頭註]과 통하니 어린 것이요, 는 음이 묘이니 약한 것이다. 군주의 직임을 감당할 만하지 못하고 정양후貞陽侯 소연명蕭淵明注+[頭註]소연명蕭淵明무제武帝의 형인 장사왕長沙王 소의蕭懿의 아들이다. 이 나이로 보나 명망으로 보나 금릉金陵을 보전할 만하니, 그를 양주梁主로 삼아서 저들의 나라로 들여보내라.” 하였다.
癸卯 淵明 入建康하야 丙午 卽皇帝位하고 以晉安王으로 爲皇太子하다
계묘일癸卯日(5월 24일)에 소연명蕭淵明건강建康으로 들어가서 병오일丙午日(5월 27일)에 황제에 즉위하고 진안왕晉安王황태자皇太子로 삼았다.
○ 初 梁王僧辯 與陳霸先으로 共滅侯景하고 情好甚篤이러니 及僧辯 納貞陽侯淵明하야는 霸先 遣使苦爭하야 往返數四호되 僧辯 不從이라
○ 처음에 나라 왕승변王僧辯진패선陳霸先과 함께 후경侯景을 멸망시키고 정의情誼가 매우 돈독하였는데, 왕승변王僧辯정양후貞陽侯 소연명蕭淵明을 받아들이자 진패선陳霸先이 사자를 보내어 극력 간쟁해서 사자가 왕복하기를 서너 차례 하였으나 왕승변王僧辯이 따르지 않았다.
霸先 乃擧兵襲僧辯하야 執而縊殺之하니 貞陽侯淵明 遜位하고 出就邸하다
진패선陳霸先이 이에 군대를 일으켜 왕승변王僧辯을 습격해서 사로잡아 목을 졸라 죽이니, 정양후貞陽侯 소연명蕭淵明이 황제의 자리를 내어놓고 나가서 사저私邸로 갔다.
冬十月 晉安王 卽皇帝位하다
겨울 10월에 진안왕晉安王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 初 魏太師泰 以漢, 魏官繁이라하야 命蘇綽及尙書令盧辯하야 依周禮하야 更定六官하다
○ 처음에 나라 태사太師 우문태宇文泰의 관직이 너무 많다고 하여 소작蘇綽상서령尙書令 노변盧辯에게 명해서 《주례周禮》를 따라 다시 육관六官으로 정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正朔 : 冊曆을 가리킨다. 예전에 帝王이 새로 나라를 세우면 歲首를 고쳐 新曆을 천하에 반포하여 시행하였다.
역주2 : 묘
역주3 : 충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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