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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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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申]〈二年〉
갑신(24) - 경시更始 2년 -
更始至長安하야 居長樂宮할새 升前殿하니 郞吏以次列庭中이라
경시更始장안長安에 이르러서 장락궁長樂宮에 거처할 적에 전전前殿에 오르니, 낭리郎吏들이 차례로 뜰 가운데에 나열하였다.
更始하야 俛首刮席注+[釋義] 與俯同하니 低頭也 古刹反이니 摩也하야 不敢視하고 委政於하고 日夜飮讌後庭하야 以至群小膳夫注+[通鑑要解]具食也 庖人知味하야 必加善故 字形以善이라 皆濫授官爵하니
경시更始가 부끄러워하여 머리를 숙이고 자리만 만지작거리며注+[釋義]와 같으니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은 古刹反(괄)이니 만지는 것이다. 감히 신하를 쳐다보지 못하였으며, 정사를 조맹趙萌에게 맡기고는 밤낮으로 후정後庭에서 술 마시고 잔치하면서 여러 소인들과 선부膳夫注+[通鑑要解]선부膳夫는 음식을 장만하는 자이니, 푸줏간을 맡은 사람은 음식 맛을 잘 알아서 반드시 더 좋게 하기 때문에 자형字形선자善字를 붙인 것이다. 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부로 관작을 제수하였다.
長安 爲之語曰 竈下養 中郞將注+[釋義]王氏曰 炊烹爲養이니 言此徒亦得授中郞將이라 按百官表 中郞有五官左右三將하니 秩皆比二千石이라이요 爛羊胃 騎都尉注+[釋義] 武帝置羽林騎러니 至宣帝하야 令騎都尉監之하고 〈秩〉比二千石하니라 爛羊頭 關內侯注+[釋義]列侯 出關就國이요 侯但爵(身其)[其身]이니 有家累者 與之關內之邑하야 食其租稅하니라라하니 由是 關中離心하고 四海怨叛이러라
장안長安 사람들이 이 때문에 말하기를 “부엌에서 밥 짓고 요리하는 사람은 중랑장中郞將이고注+[釋義]竈下養 중랑장中郞將: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밥 짓고 요리하는 것을 이라 하니, 이러한 무리 또한 중랑장中郞將에 제수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한서漢書》 〈백관표百官表〉에 ‘중랑中郞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좌중랑장左中郞將, 우중랑장右中郞將 3명이 있으니, 품계가 모두 비이천석比二千石이었다.’ 하였다.” 의 밥통을 굽는 사람은 기도위騎都尉注+[釋義]처음에 무제武帝우림기羽林騎를 두었는데,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서 기도위騎都尉를 두어 이들을 감독하게 하고 품계가 비이천석比二千石이었다. 이고 의 머리를 삶는 사람은 관내후關內侯注+[釋義]열후列侯관문關門을 나가 본국本國으로 나아가고, 관내후關內侯는 다만 자신에게만 관작을 내리는 것이니, 딸린 가솔家率이 있는 자는 관내關內을 주어 조세를 먹게 한 것이다. 이다.” 하니, 이로 말미암아 관중關中 지방의 민심民心이 이반되고 온 천하가 원망하고 배반하였다.
○ 大司馬秀至하니 王子接注+[頭註] 名也 武帝五世孫廣陽王嘉之子 起兵薊中하야 以應王郞이라
대사마大司馬 유수劉秀계현薊縣에 이르니, 마침 왕자王子 注+[頭註]은 이름이니, 무제武帝의 5세손인 광양왕廣陽王 유가劉嘉의 아들이다. 계현薊縣에서 군대를 일으켜 왕랑王郞에게 호응하였다.
城內擾亂注+[頭註]王郞移檄하야 購光武하니라이어늘 秀趣(促)駕而出하야 不敢入城邑하고 舍食注+[通鑑要解]師一宿曰舍道傍하다
안이 요란하자注+[頭註]왕랑王郞격문檄文을 돌려서 광무光武를 잡으면 상을 주겠다고 내걸었다. 유수劉秀가 멍에를 재촉하여 나와서 감히 성읍城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길가에 묵으면서 밥을 먹었다.注+[通鑑要解]군대가 하룻밤을 묵는 것을 라고 한다.
〈出本紀〉
-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나옴 -
注+[釋義]蕪蔞故城 在晉州饒陽縣北하니 亭亦在焉이라하니 天寒洌이라
무려정蕪蔞亭注+[釋義]무려蕪蔞의 옛 진주晉州 요양현饒陽縣 북쪽에 있으니, 정자도 있다. 에 이르니 이때 날씨가 몹시 추웠다.
馮異上豆粥하고 至下曲陽注+[釋義]在鉅鹿郡이라하야 聞王郞兵在後하고 從者皆恐이러니注+[釋義] 或作沲 地理志 滹沱河 自代郡鹵城縣東으로 去參合縣하고 又東經眞定南關하고 又東過霸州文安하야 入海하니 候吏還白호되 河水流注+[釋義] 音斯 流冰也하고 無船不可濟니이다
풍이馮異가 〈먹을 것이 없어서〉 팥죽을 올렸고, 하곡양下曲陽注+[釋義]곡양曲陽거록군鉅鹿郡에 있다. 의 여관에 이르러서 왕랑王郞의 군대가 뒤에 있다는 말을 듣고 수행하던 자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는데, 호타하滹沱河注+[釋義]는 혹 로도 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호타하滹沱河대군代郡 노성현鹵城縣 동쪽으로부터 참합현參合縣으로 흘러가고, 또 동쪽으로 진정眞定 남관南關을 경유하고, 또 동쪽으로 패주霸州 문안文安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 에 이르니 정탐하는 관리가 돌아와 아뢰기를 “하수河水해빙解冰이 되어 유빙流冰이 떠다니고注+[釋義]는 음이 사(시)이니 유빙流冰(물 위에 떠다니는 얼음덩이)이다. 배가 없어 건널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秀使王霸往視之한대 霸恐驚衆하고 欲且前阻水注+[頭註] 進也 恃險自固也하야 還卽詭曰 冰堅可度(渡)라하니 官屬 皆喜
유수劉秀왕패王霸로 하여금 가서 살펴보게 하자 왕패王霸는 사람들이 놀랄까 염려하고 또 앞으로 나아가 물에 의지하여 막고자 해서注+[頭註]은 전진함이고, 는 험함을 믿고 스스로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돌아와 즉시 거짓말하기를 “얼음이 단단히 얼어 건널 수가 있습니다.” 하니, 관속官屬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秀笑曰 候吏果妄語也로다하고 遂前比至河하니이라
유수劉秀가 웃으며 말하기를 “정탐하는 관리가 참으로 망령된 말을 하였다.” 하고는 마침내 앞으로 나아가 하수河水에 이르니, 하수河水의 얼음이 또한 얼어 있었다.
乃令王霸護度하야 未畢數騎而冰解하니라
이에 왕패王霸로 하여금 호위하여 건너게 하였는데, 몇 가 남아 다 건너기 전에 얼음이 풀렸다.
〈出王霸傳〉
- 《후한서後漢書 왕패전王霸傳》에 나옴 -
永嘉陳氏曰
영가진씨永嘉陳氏(陳傅良)가 말하였다.
古之人君 不恃其或然之數而忽其必然之理하니 或然之數者 天也 必然之理者 人也
“옛날의 인군人君혹연或然(혹 그럴지도 모르는)의 운수를 믿고서 필연적인 이치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니, 혹연或然의 운수라는 것은 천운天運이고 필연적인 이치라는 것은 사람이다.
天意之不集이라도 人事猶可以自盡이어니와 幸乎天而人不繼之 鮮有不敗事者矣
하늘의 뜻이 사람과 합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일은 오히려 스스로 다할 수 있지만 하늘에 요행만을 바라고 사람의 일이 뒤따르지 못하면 실패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
漢之高帝光武 蓋嘗得乎天矣
나라 고제高帝광무제光武帝는 일찍이 천운天運을 얻었었다.
睢水之圍 幾入乎項氏之掌握이러니 而以大風脫하고 滹沱之役 幾塡於餓虎之喙矣러니 而以冰合濟하니 是豈人力也哉
고조高祖수수睢水에 포위되었을 때에 항씨項氏의 손아귀에 들어갈 뻔하였으나 큰 바람 때문에 벗어났고, 광무제光武帝호타하滹沱河의 싸움에서 굶주린 호랑이의 입에 들어갈 뻔하였으나 얼음이 얼어서 물을 건넜으니, 이것이 어찌 인력人力이었겠는가?
天也
천운天運이다.
二君於此 不以其幾不免者自沮하고 亦不以其幸而免者自賀하야
그러나 이 두 임금은 이때 거의 면하지 못할 뻔한 를 가지고 스스로 저상沮喪하지 않고, 또한 우연히 를 면한 것을 가지고 스스로 축하하지 않았다.
方且益聽三傑注+[頭註]子房, 蕭何, 韓信이라之謀하고 而延攬二十八將之族하야 以伺其隙하고 而俟其可乘之機하야 卒之垓下之圍合而項氏擒하고 邯鄲之戰交而王郞虜하니 是果天耶
그리하여 고조高祖는 세 호걸豪傑注+[頭註]세 호걸은 자방子房(張良), 소하蕭何, 한신韓信이다. 의 계책을 더욱 따르고 광무제光武帝는 스물여덟 장수의 무리를 취해서 상대방의 틈을 엿보고 탈 만한 기회를 기다려서, 고조高祖는 끝내 해하垓下에서 포위하여 항씨項氏를 사로잡았고 광무제光武帝한단邯鄲에서 교전交戰하여 왕랑王郞을 사로잡았으니, 이것이 과연 천운天運인가?
人耶
인력人力인가?
能知高帝五年之業 不成於睢水之脫而成於垓下之勝하고 光武之中興 亦不在於滹沱之濟而在於邯鄲之克이면 則知人君之有爲於天下者 其始也 雖天啓之 而成之者 常以人也
고제高帝가 5년 동안 이룩한 제업帝業수수睢水의 탈출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해하垓下의 승리에서 이루어졌음을 알며, 광무제光武帝중흥中興이 또한 호타하滹沱河를 건넘에 있지 않고 한단邯鄲의 승리에 있었음을 안다면, 인군人君으로서 천하에 훌륭한 일을 행하는 자가 그 처음은 비록 하늘이 열어 주지만 성공함은 항상 사람에게 달려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嗟乎 天之欲啓是君而使之有所就者 不遽爾也 置諸危而福之하고 投諸難而全之하야 使之迫於利害하야 而深其謀하고 臨於死生하야 以固其志하며 挫其驕矜하고 抑其果銳하야 以大其所受어늘 而人君者不能因乎天而善用之하고 而方且安乎天而棄其所以在人하야 退處乎無事之地하야 亦坐觀夫自定之勢 則向之所以福之者 乃所以禍之也 全之者 所以敗之也
아, 하늘이 이 임금을 열어 주어 성취하게 하려고 할 때에는 갑자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위태로운 곳에 두어 을 내려 주고 어려운 곳에 던져두어 온전하게 해 주어서 이해利害에 절박하여 그 계책을 깊게 세우고 사생死生에 임하여 의지를 굳게 하며, 교만함과 자랑하는 마음을 꺾고 과단성과 날카로운 기세를 억제해서 큰 기국器局을 만들어 수용受容하는 바를 크게 하려고 하는 것인데, 임금된 자가 하늘이 내려 준 기회를 잘 이용하지 못하고, 하늘이 정한 운수에 안주하여 사람에게 달려 있는 일을 버리고 아무 탈이 없는 곳에 물러나 있으면서 또한 스스로 안정되는 형세를 앉아서 보기만 한다면 지난번에 복을 내려 준 것은 바로 를 준 것이고 지난번에 온전하게 해 준 것은 바로 패망하게 한 것이다.
嗚呼 人君 有天下之慮어든 其毋以天之所以福我而全我者 而自取禍敗也哉인저
아, 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뜻을 가지고 있다면 하늘이 나에게 복을 내려 주고 나를 온전하게 해 주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 화와 패망을 취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至南宮注+[釋義]地理志 信都郡南宮縣이라 按信都 今冀州是也하야 遇大風하야 秀引車入道傍空舍하니 馮異 抱薪하고 鄧禹
남궁南宮注+[釋義]남궁南宮은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신도군信都郡 남궁현南宮縣이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신도信都는 지금의 기주冀州가 이곳이다. 에 이르러 큰 바람을 만나서 유수劉秀가 수레를 이끌고 길가의 빈집에 들어가니, 풍이馮異는 나무섶을 안아 오고 등우鄧禹는 불을 피웠다.
秀對竈燎衣러니 馮異復進麥飯하다
유수劉秀가 아궁이에 옷을 말리고 있었는데 풍이馮異가 다시 보리밥을 올렸다.
馳赴信都注+[釋義]地理志 趙地北有信都라하니 按今冀州是 春秋 爲晉東陽地러니 三家分晉하야 因屬趙 秦於此 置信都縣하고 屬鉅鹿하니라하니 是時 郡國 皆降王郞호되 獨信都太守任光 和戎注+[釋義]郡名也 王莽 分鉅鹿〈郡〉하야 爲和戎하니라太守 不肯從이러니 聞秀至大喜하고 邳肜 亦自和戎來會하다
달려서 신도군信都郡注+[釋義]신도信都는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나라 땅 북쪽에 신도信都가 있다.” 하였으니, 살펴보건대 지금의 기주冀州가 이곳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는 나라 동양東陽 땅이었는데, 삼가三家(韓, , )가 나라를 나눔에 따라 나라에 소속되었다. 나라가 여기에 신도현信都縣을 설치하고 거록군鉅鹿郡에 소속시켰다. 에 이르니, 이때 군국郡國이 모두 왕랑王郞에게 항복하였으나 오직 신도태수信都太守 임광任光화융和戎注+[釋義]화융和戎은 고을 이름이니, 왕망王莽거록군鉅鹿郡을 나누어 화융和戎을 만들었다. 太守 비융邳肜만은 따르려고 하지 않았는데, 임광任光유수劉秀가 왔다는 말을 듣고는 크게 기뻐하였고 비융邳肜 또한 화융和戎에서 와서 모였다.
〈以上 參用任光邳肜二傳文〉議者多言호되
- 이상은 《후한서後漢書》 〈임광전任光傳〉과 〈비융전邳肜傳〉의 글을 참고하여 썼음 -
可因信都兵하야 自送西還長安이라한대 邳肜曰 吏民 歌吟思漢 久矣
의논하는 자들이 많이 말하기를 “신도信都의 군대를 인하여 스스로 호송하고 장안長安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하자, 비융邳肜이 아뢰기를 “관리와 백성들이 노래하면서 나라를 그리워한 지가 오래입니다.
今卜者王郞 假名因勢하야 驅集烏合之衆하야 遂振燕, 趙之地 無有根本之固하니 明公 奮二郡之兵하야 以討之 何患不克이리오
지금 점치는 자인 왕랑王郞이 이름을 빌리고 세력을 이용해서 오합지졸들을 모아 마침내 지방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으나 근본의 견고함이 없으니, 명공明公께서 신도信都화융和戎의 군대를 분발시켜 토벌한다면 어찌 이기지 못함을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今釋此而歸 豈徒空失河北이리오
이제 이들을 버려두고 돌아간다면 어찌 다만 헛되이 하북河北만을 잃을 뿐이겠습니까.
必更驚動三輔하야 損威重하리니 非計之得者也니이다 秀乃止하다
반드시 다시 삼보三輔 지방을 놀라게 하여 중한 위엄을 훼손시킬 것이니,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하니, 유수劉秀가 마침내 중지하였다.
任光 發傍縣하야 得精兵四千人하니 稍合至萬人이라
임광任光이 이웃 에서 징발하여 정병精兵 4천 명을 얻으니, 병력이 차츰 모여 만 명에 이르렀다.
移檄邊郡하야 共擊邯鄲하니 郡縣 還復響應이러라
변방 고을에 격문檄文을 돌려서 함께 한단邯鄲을 공격하게 하니, 군현郡縣들이 돌아와 다시 호응하였다.
〈出本紀〉
-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나옴 -
○ 秀披輿地圖注+[釋義] 閱視也 畫也 地象車輿載物이라 故曰輿(也)[地]하야 指示鄧禹曰 天下郡國 如是어늘 今始乃得其一注+[頭註]初得廣阿郡也하니 子前言以吾慮天下不足定 何也 禹曰 方今海內이라
유수劉秀여지도輿地圖를 펴서注+[釋義]는 펴보는 것이고 는 그림이다. 땅은 수레가 물건을 싣는 것과 비슷하므로 여지輿地라고 한 것이다. 등우鄧禹에게 가리켜 보이며 말하기를 “천하의 군국郡國이 이와 같이 많은데 지금에야 비로소 그중 하나를 얻었으니,注+[頭註]그 하나를 얻었다는 것은 처음으로 광아군廣阿郡을 얻은 것이다. 그대가 전에 나를 가지고 생각해 보건대 천하는 굳이 평정할 것도 못 된다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등우鄧禹가 대답하기를 “현재 해내海內가 소란합니다.
人思明君 猶赤子之慕慈母하나니 古之興者 在德薄厚 不以大小也니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명군明君을 생각하기를 적자赤子자모慈母를 사모하듯이 하니, 옛날에 흥왕興旺한 자는 후박厚薄에 달려 있었고 국토의 크기로써 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出鄧禹傳〉
- 《한서漢書 등우전鄧禹傳》에 나옴 -
○ 四月 秀進攻邯鄲하야 連戰破之하다
○ 4월에 유수劉秀한단邯鄲으로 진격하여 연달아 싸워 격파하였다.
○ 五月 王霸追斬王郞하다
○ 5월에 왕패王霸왕랑王郞을 추격하여 목을 베었다.
秀收郞文書하야 得吏民與郞交關注+[頭註]이요 通也謗毁者數千章하야 秀不省하고 會諸將燒之하고令反側子自安하노라
유수劉秀왕랑王郞의 문서를 거두어 관리와 백성들이 왕랑王郞교관交關(內通)注+[頭註]는 결탁함이요, 은 통함이다. 하여 유수劉秀를 훼방한 문서를 수천 장 얻었는데, 유수劉秀가 살펴보지 않고 제장諸將들을 모아 놓고 문서를 불태우며 말하기를 “반측자反側子(輾轉反側하여 불안해 하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 안심하게 한다.” 하였다.
〈出本紀〉
-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나옴 -
○ 秀部分吏卒하야 各隷諸軍할새 士皆言願屬大樹將軍이라하니 大樹將軍者 偏將軍馮異也
유수劉秀가 관리와 병졸들을 나누어서 각각 제군諸軍에 예속시킬 때에 군사들이 모두 말하기를 “대수장군大樹將軍에게 소속되기를 원한다.”라고 하니, 대수장군大樹將軍편장군偏將軍 풍이馮異였다.
爲人 謙退不伐注+[釋義](隷)[語] 孟之反不伐이라한대 (堯)[饒]氏曰 伐 如伐木之伐이니 凡人矜誇其能 乃所以自(伐)[戕]其能也 故謂之伐이라하니라하야 勅吏士하야 非交戰受敵이면 常行諸營之後하고 每所止舍 諸將 竝論功이어든 異常獨屛樹下
사람됨이 겸손하고 공로를 자랑하지 않아서注+[釋義]논어論語》에 “맹지반孟之反은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하였는데, 요씨饒氏(饒魯)가 말하기를 “벌목伐木과 같으니,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자랑함은 바로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공을 자랑함을 이라 한다.” 하였다. 관리와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적과 교전하거나 적의 침공을 받은 경우가 아니면 항상 여러 군영의 뒤에 있게 하고, 매번 머무는 곳에서 제장諸將들이 함께 을 논하면 풍이馮異는 항상 홀로 나무 아래로 물러가 있었다.
軍中 號曰大樹將軍이라하니라
그러므로 군중에서 그를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 불렀다.
〈出馮異傳〉
- 《후한서後漢書 풍이전馮異傳》에 나옴 -
○ 更始遣使하야 立秀爲蕭王注+[釋義]括地志 今徐州縣 古蕭叔國也하고 悉令罷兵이어늘
경시更始사자使者를 보내어 유수劉秀를 세워 소왕蕭王注+[釋義]는 《괄지지括地志》에 “지금 서주현徐州縣이 옛날 소숙국蕭叔國이다.” 하였다. 으로 삼고 군대를 모두 해산하게 하자,
耿弇 進曰 百姓 患苦王莽하야 復思劉氏러니
경엄耿弇이 나아가 아뢰기를 “백성들이 왕망王莽에게 시달려 다시 유씨劉氏를 그리워하였는데,
今更始爲天子 而諸將擅命하고 貴戚縱橫注+[頭註] 放縱也 恣橫也하야 虜掠自恣하니 元元叩心하야 更思莽朝
이제 경시更始천자天子가 됨에 제장諸將들이 제멋대로 명령을 내리고 귀척貴戚들이 방종하고 횡포를 부려注+[頭註]은 방종함이요, 은 제멋대로 함이다. 노략질을 자행하니, 백성들이 가슴을 치고 다시 왕망王莽의 조정을 생각합니다.
是以 知其必敗也하노이다
저는 이 때문에 경시更始가 반드시 패할 줄을 압니다.
功名已著하니 〈本傳 無此句〉以義征伐이면 天下 可傳檄而定也
공명功名이 이미 드러났으니, - 《후한서後漢書 경시전更始傳》에는 이 가 없음 - 로써 정벌한다면 격문檄文만 돌리고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습니다.
天下 至重하니 公可自取하고 毋令他姓得之하소서 〈以上 出弇本傳〉
천하는 지극히 소중하니, 은 스스로 취하고 타성他姓으로 하여금 얻게 하지 마소서.” 하였다. - 이상은 《후한서後漢書 경엄전耿弇傳》의 내용임 -
蕭王 乃辭以河北未平하야 不就徵하니 始貳於更始러라
소왕蕭王이 마침내 하북河北이 아직 평정되지 않은 것을 구실삼아 부름에 나아가지 않으니, 비로소 경시更始와 갈라지게 되었다.
〈以上 出本紀〉
- 이상은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나옴 -
○ 是時 諸賊銅馬, 鐵脛, 尤來, 大槍, 上江, 靑犢, 富平, 獲索注+[釋義]八者 皆是賊名이라[頭註]獲索等諸賊 或以山川土地爲名하고 或以軍容强盛爲號하니라 하니 合數百萬人이라
○ 이때 여러 동마銅馬, 철경鐵脛, 우래尤來, 대창大槍, 상강上江, 청독靑犢, 부평富平, 획색獲索注+[釋義]銅馬 이하 여덟 가지는 모두 의 이름이다.[頭註]獲索 등 여러 들이 혹은 산천과 토지에 따라 이름하고, 혹은 군용軍容의 강성함을 따라 이름한 것이다. 등이 각각 부곡部曲(군대)을 거느리니, 무리가 합하여 수백만 명이었다.
所在寇掠이러니 蕭王 擊銅馬於注+[釋義]地理志 鉅鹿郡 有鄡縣이라할새 吳漢 將突騎하고 來會淸陽하니 士馬甚盛이라
있는 곳마다 도둑질하고 노략질하였는데, 가을에 소왕蕭王동마銅馬교현鄡縣注+[釋義]는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거록군鉅鹿郡교현鄡縣이 있다.” 하였다. 에서 공격할 때에 오한吳漢돌기突騎를 거느리고 청양淸陽으로 와서 모이니, 군사와 말이 매우 강성强盛하였다.
銅馬食盡夜遁이어늘 蕭王 追擊於館陶하야 悉破降之하고 封其渠帥하야 爲列侯하다
동마銅馬가 양식이 다하여 밤에 도망하자, 소왕蕭王관도館陶에서 추격해서 모두 격파하여 항복시키고 큰 우두머리를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았다.
諸將 未能信賊하고 降者亦不自安이러니 知其意하고 勅令降者 各歸營勒兵하고 自乘輕騎하야 按行部陳한대
제장諸將들도 을 믿지 못하고 항복한 자들도 스스로 안심하지 못하였는데, 소왕蕭王이 그 뜻을 알고는 칙령을 내려 항복한 자들로 하여금 각각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 무장하게 한 다음 직접 경무장한 기마를 타고서 부대部隊진영陣營을 순행하니,
降者相語曰 蕭王 하니 安得不投死乎리오하고 由是皆服이어늘
항복한 자들이 번갈아 서로 말하기를 “소왕蕭王진심眞心을 미루어 사람의 뱃속에 넣어 두니, 어찌 목숨을 바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는 이로 말미암아 모두 복종하였다.
悉以降人으로 分配諸將하니 遂數十萬이라
이에 항복한 사람을 여러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어 배속시키니, 무리가 마침내 수십만이었다.
關西號秀爲銅馬帝라하니라
그러므로 관서關西 지방에서는 유수劉秀를 이름하여 동마제銅馬帝라 하였다.
〈出本傳〉
- 《후한서後漢書 오한전吳漢傳》에 나옴 -
○ 赤眉樊崇等 將兵攻長安이어늘 蕭王 將北徇燕, 趙러니 赤眉必破長安하고 又欲乘釁幷關中이나 而不知所寄하야
적미赤眉번숭樊崇 등이 군대를 거느리고 장안長安을 공격하자, 소왕蕭王이 장차 북쪽으로 지방을 순행하려 하였는데, 적미赤眉가 반드시 장안長安을 격파할 것을 헤아리고는 또 이 틈을 타서 관중關中(長安)을 겸병하고자 하였으나 맡길 만한 사람을 찾지 못하였다.
乃拜鄧禹前將軍注+[頭註]漢有前將軍, 後將軍하니라하야 中分麾下精兵三萬人하야 遣西入關하다
이에 등우鄧禹전장군前將軍注+[頭註]나라에는 전장군前將軍후장군後將軍이 있었다. 에 임명하고 휘하의 정병精兵 3만 명을 반으로 나누어 주고 서쪽으로 보내 관중關中에 들어가게 하였다.
○ 蕭王 以河內險要富實이라하야 欲擇諸將守河內者而難其人하야 問於鄧禹한대
소왕蕭王하내河內 지방이 험한 요새이고 풍부하고 충실하다 하여 제장諸將 중에서 하내河內를 지킬 자를 뽑으려 하였는데 적임자를 신중히 가리기 위하여 등우鄧禹에게 물으니,
禹曰 寇恂 文武備足하야 有牧民御衆之才하니 非此子 莫可使也니이다
등우鄧禹가 대답하기를 “구순寇恂문무文武를 겸비하여 백성을 기르고 무리를 거느릴 수 있는 재주가 있으니, 이 사람이 아니면 시킬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乃拜恂河內太守하야 行大將軍事하고 蕭王 謂恂曰
이에 구순寇恂하내태수河內太守로 임명하여 대장군大將軍의 일을 행하게 하고는 소왕蕭王구순寇恂에게 이르기를
高祖留蕭何守關中이러시니 吾今 委公以河內하노니 當給足軍粮하고 率厲士馬하야 防遏他兵하야 勿令北度而已로라
“옛날에 고조高祖소하蕭何를 남겨 두어 관중關中을 지키게 하였는데, 지금 내가 에게 하내河內를 맡기노니, 마땅히 군량을 풍족하게 공급하며 병사와 군마軍馬를 인솔하고 격려하여, 다른 군대를 막아서 다시 북쪽으로 건너오지 못하게 할 뿐이다.” 하였다.
〈出恂傳〉
- 《후한서後漢書 구순전寇恂傳》에 나옴 -
○ 蕭王 親送鄧禹하야 至野王이러니 禹旣西 蕭王 乃復引兵而北하다
소왕蕭王이 친히 등우鄧禹를 전송하여 야왕野王에 이르렀는데, 등우鄧禹가 서쪽으로 가자 소왕蕭王이 마침내 다시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갔다.
寇恂 調餱糧注+[原註]調 謂計發之也[通鑑要解]餱 乾食也 詩乃裹餱糧이라하니라하고 治器械하야 以供軍하야 軍雖遠征이나 未嘗乏絶이러라
구순寇恂후량餱糧을 조달하고注+[原註]調는 계산하여 징발함을 이른다. [通鑑要解]餱는 말린 밥이니 《시경詩經》에 “말린 밥과 양식을 싼다.” 하였다. 병기를 수리하여 군대에 공급해서 군대가 비록 멀리 정벌하였으나 일찍이 물자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
〈以上 出寇恂等傳〉
- 이상은 《후한서後漢書 구순전寇恂傳》 등에 나옴 -
역주
역주1 羞怍 : 수작
역주2 趙萌 : 딸이 更始의 夫人이 됨으로 인해 大司馬에 오르고 권력을 자행하였다.
역주3 : 계
역주4 蕪蔞 : 무루
역주5 滹沱 : 호타
역주6 : 시
역주7 : 설
역주8 邳肜 : 비융
역주9 : 휴
역주10 : 효
역주11 各領部曲 : 《續漢志》에 이르기를 “대장군의 營에는 5部가 있고 部에는 3校尉가 있으며, 部 아래에는 曲이 있고 曲에는 軍候 1인이 있다.[大將軍營有五部 部三校尉 部下有曲 曲有軍候一人]” 하였다.
역주12 : 교
역주13 : 경
역주14 推赤心 置人腹中 : 赤心은 진심으로, 곧 蕭王이 자기들을 의심하지 않고 진심으로 믿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5 : 탁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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