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儀說魏襄王曰 梁地
는 四平
하야 無名山大川之限
하고 卒戍楚, 韓, 齊, 趙之境
하야 守亭障
注+[頭註]亭은 候望者所居요 障은 山中小城이라 漢制塞上要害處에 別築爲城하고 置吏士하야 以捍寇하니 卽此亭障也라者 不下十萬
하니 梁之地勢 固戰場也
라
夫諸侯之約從
에 盟
水之上
하야 結爲兄弟以相堅也
어니와
今親兄弟同父母
라도 尙有爭錢財相殺傷
이어늘 而欲恃
覆蘇秦之餘謀
하시니
魏王
이 乃倍(背)從約而因儀
하야 以請成
注+[頭註]成은 平也, 和也라于秦
하니 張儀歸復相秦
하다
제齊나라 대부大夫가 소진蘇秦과 은총을 다투어 소진蘇秦을 찔러 죽였다.
장의張儀가
위魏나라
양왕襄王을 설득하기를 “
양梁나라 땅은 사방이 평평하여 명산 대천의 한계가 없고 병사들이
초楚‧
한韓‧
제齊‧
조趙의 국경에 수자리를 가서
정장亭障을 지키는
注+[頭註]정亭은 망루望樓에서 관망하는 자가 머무는 곳이고, 장障은 산속의 작은 성城이다. 한漢나라 제도에 변방의 요해처要害處에 별도로 성城을 쌓고 관리와 군사를 배치하여 적을 막았으니, 바로 정장亭障이다. 자가 10만명을 밑돌지 않으니,
양梁나라의 지형은 진실로 전쟁터입니다.
제후들이 약종約從할 때에 원수洹水 가에서 맹세하여 형제兄弟를 맺고 서로 우호를 견고히 하였으나,
지금 친형제로 부모를 함께 한 자들도 오히려 돈과 재물을 다투어 서로 죽이고 상해傷害를 입히는 자가 있는데, 번복하는 소진蘇秦의 남은 계책을 믿으려 하시니,
성공할 수 없음이 또한 분명합니다.” 하였다.
위왕魏王이 마침내
종약從約을 배반하고
장의張儀를 인하여
진秦나라에 화친을 청하니,
注+[頭註]성成은 평온함이요 화친함이다. 장의張儀가
진秦나라로 돌아가 다시 정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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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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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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