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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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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戌]延光元年이라
연광延光 원년元年(임술 122)
皇太后鄧氏崩注+[頭註]宮人誣告太后兄弟悝弘閶等 謀立平原君이라하니 帝怒하야 遂廢西平侯廣宗等하야 爲庶人하니라커늘 帝始親政事하다
황태후皇太后 등씨鄧氏가 별세하자,注+[頭註]궁인宮人등태후鄧太后형제兄弟, , 등이 평원군平原君을 황제로 세울 것을 모의한다고 무고誣告하니, 황제가 노하여 마침내 〈등홍鄧弘의 아들인〉 서평후西平侯 광종廣宗 등을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황제가 비로소 정사를 직접 다스렸다.
帝少號聰明故 鄧太后立之러니 及長 多不德하야 稍不可注+[通鑑要解]言意不以爲可也太后意
황제가 어렸을 적에 총명하다고 이름이 났기 때문에 등태후鄧太后가 세운 것인데, 장성하자 부덕한 일이 많아서 차츰 태후太后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注+[通鑑要解]초불가稍不可는 마음에 하다고 여기지 않음을 말한다.
及太后崩 鄧氏五侯注+[頭註]西平侯廣宗, 葉侯廣德, 西華侯忠, 陽安侯珍, 都鄕侯甫德이니 皆安帝之舅之子也 皆廢爲庶人하고 以閻皇后兄弟 竝爲卿校注+[頭註] 九卿이요 校尉하야 典禁兵하니 於是 內寵 始盛이라
태후太后가 별세하자 등씨鄧氏오후五侯注+[頭註]오후五侯서평후西平侯 광종廣宗, 섭후葉侯 광덕廣德, 서화후西華侯 , 양안후陽安侯 , 도향후都鄕侯 보덕甫德이니, 모두 안제安帝의 외숙의 아들이다. 를 모두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염황후閻皇后의 형제를 모두 구경九卿교위校尉注+[頭註]구경九卿이고, 교위校尉이다. 로 삼아서 금병禁兵을 맡게 하니, 이에 내총內寵이 비로소 성하였다.
中常侍江京等 扇動內外하야 競爲侈虐이러라
중상시中常侍 강경江京 등이 내외內外를 선동하여 다투어 사치하고 포악한 짓을 하였다.
○ 汝南太守王龔 好才愛士하야 以袁閬爲功曹하고 引進郡人陳蕃, 黃憲注+[頭註]初擧孝廉하고 又辟公府하니 人勸仕한대 暫至京師라가 卽還하야 四十八終하니라하니 不屈하고 遂就吏注+[頭註]就辟而爲吏也하다
여남태수汝南太守 왕공王龔이 인재를 좋아하고 선비를 아껴서 원랑袁閬공조功曹로 삼고 고을 사람인 진번陳蕃황헌黃憲注+[頭註]황헌黃憲이 처음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고 또 공부公府에서 부르자 사람들이 벼슬할 것을 권하니, 잠시 경사京師에 이르렀다가 곧바로 돌아와 48세에 죽었다. 등을 이끌어 등용하니, 황헌黃憲은 절개를 굽히지 않았고 진번陳蕃은 마침내 관리에 취직注+[頭註]부름에 나아가 관리가 된 것이다. 하였다.
世貧賤하야 父爲牛醫러니 潁川荀淑 遇憲於逆旅注+[頭註]客舍[通鑑要解]設館舍하야 迎客故 逆旅하니 時年 十四
황헌黃憲은 집안이 대대로 가난하고 천하여 아버지가 우의牛醫(소의 병을 치료하는 의원)가 되었는데 영천潁川순숙荀淑황헌黃憲을 여관注+[頭註]逆旅는 객사이다. [通鑑要解]館舍를 설치하여 손님(나그네)을 맞이하기 때문에 역려逆旅라 한 것이다. 에서 만나니, 이때 나이가 14세였다.
竦然異之하야 揖與語하야 移日注+[頭註]日移晷也不能去하고 謂憲曰 吾之師表로다
순숙荀淑이 공경히 예우하여 읍하고서 더불어 말을 하되 한참이 지나도록注+[頭註]이일移日은 〈시간이 흘러〉 해 그림자가 옮겨 가는 것이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황헌黃憲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나의 사표師表이다.” 하였다.
旣而 前至注+[頭註] 進也袁閬所하야 問曰 子國 有顔子하니注+[頭註]豈也識之乎 閬曰 見吾叔度注+[原註] 字叔度
이윽고 앞으로 나아가注+[頭註]은 나아감이다. 원랑袁閬의 처소에 이르러 묻기를 “그대의 고을에 안자顔子가 있으니, 그대는 알고 있는가?注+[頭註]이다. ” 하니, 원랑袁閬이 말하기를 “우리 숙도叔度(黃憲)注+[原註]황헌黃憲숙도叔度이다. 를 보았는가?” 하였다.
是時 同郡戴良 才高倨傲호되 而見憲이면 未嘗不正容하고 及歸 罔然若有失也어늘
이때 같은 고을의 대량戴良이 재주가 뛰어나 거만하였으나 황헌黃憲을 보면 용모를 단정히 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돌아와서는 망연자실하였다.
其母問曰 汝復從牛醫兒來耶
그 어머니가 묻기를 “네가 또 우의牛醫의 아들을 따라 놀다가 왔느냐?” 하니,
對曰 良 不見叔度 自以爲無不及이러니 旣覩其人瞻之在前이라가 忽然在後하야 固難得而測矣라하더라
대답하기를 “제가 숙도叔度를 보기 전에는 스스로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여겼는데, 이미 그를 본 뒤에는 바라봄에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어서 진실로 측량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다.
陳蕃及周擧 常相謂曰 時月之間注+[頭註]自朔至晦爲一月이요 三月爲一時 不見黃生이면 則鄙吝之萌注+[釋義]鄙吝之意[頭註]作事可卑賤者 謂之鄙 作事可羞愧者 謂之吝이라 復存乎心矣라하더라
진번陳蕃주거周擧가 항상 서로 이르기를 “한 철이나 한 달 동안注+[頭註]초하루부터 그믐까지를 한 달[月]이라 하고, 3개월을 한 철[時]이라 한다.황생黃生을 보지 않으면 비루하고 인색한 생각注+[釋義]鄙吝은 모색茅塞이라는 뜻과 같다.[頭註]일을 함에 낮고 천하게 여길 만한 것을 라 이르고, 일을 함에 부끄러워할 만한 것을 이라 이른다. 이 다시 마음속에 생긴다.” 하였다.
太原郭泰注+[原註]郭泰 字林宗이라 少遊汝南할새 先過袁閬하야 不宿而退하고 進往從憲하야 累日方還이어늘
태원太原곽태郭泰注+[原註]곽태郭泰임종林宗이다. 가 젊어서 여남汝南에서 놀 때에 먼저 원랑袁閬을 방문했을 때에는 유숙留宿하지 않고 그대로 물러 나오고, 나아가서 황헌黃憲을 따라 놀 때에는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돌아왔다.
或以問泰한대 泰曰 奉高之器注+[釋義]奉高 袁閬字也 譬諸注+[釋義]王氏曰 氿音軌 字從九無點이라 或作汍하니 誤也 通作檻이라 爾雅註云 氿 泉仄出也 從傍出也 泉涌出也 雖淸而易注+[通鑑要解] 量也이어니와
혹자가 곽태郭泰에게 그 이유를 묻자, 곽태郭泰가 말하기를 “봉고奉高(袁閬注+[釋義]봉고奉高원랑袁閬이다. )의 기국器局은 비유하면 궤람氿濫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氿는 음이 궤이니, 글자 모양이 구자九字를 따르고 점이 없다. 혹은 으로 쓰니, 잘못이다. 과 통한다. 《이아爾雅》의 에 이르기를 “氿는 샘물이 옆으로 나오니 곁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고, 은 샘물이 용솟음쳐 곧바로 나오는 것이다.” 하였다. 이 비록 맑지만 측량하기 쉬운注+[通鑑要解]은 헤아림이다. 것과 같다.
叔度 汪汪若千頃波하야 澄之不淸하고 之不濁하야 不可量也라하더라
그러나 숙도叔度는 넓디넓은 천경千頃의 물결과 같아서 맑게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흐리게 해도 흐려지지 않아 측량할 수가 없다.” 하였다.
[史略 史評]范曄曰
[史略 사평史評]范曄이 말하였다.
黃憲 言論風旨 無所傳聞焉이로되 士君子見之者 靡不服深遠하야 去玼吝이라
황헌黃憲의 언론과 풍지風旨는 전하여 알려진 것이 없으나 선비와 군자君子 중에 그를 만나 본 자들은 그의 심원深遠함에 감복하여 자신의 잘못과 인색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予曾祖穆侯以爲 憲 하고 하니 若及門於孔氏 인저하시니라
그러므로 나의 증조曾祖이신 목후穆侯는 이르시기를 ‘황헌黃憲은 유순하여 순함에 처하고 마음이 깊어 와 같았으니, 만약 공씨孔氏의 문하에 이르렀다면 안회顔回처럼 거의 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茅塞 : 사람들이 다니는 산길이 잠시 사용하면 길을 이루지만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자라서 길을 막는 것으로, 마음이 물욕에 가려짐을 이른다. 《孟子》 〈盡心 下〉에 보인다.
역주2 氿濫 : 궤함
역주3 : 읍
역주4 : 효
역주5 隤然其處順 : 《周易》 〈繫辭傳〉에 “坤은 순하니 사람에게 간략함으로 보여 준다.[夫坤 隤然 示人簡矣]”라고 보이는 바, 隤는 유순한 모양이다.
역주6 淵乎其似道 : 《老子》에 ‘淵乎似萬物之宗’이라고 보이는 바, 마음이 깊어서 헤아릴 수 없음을 이른다.
역주7 其殆庶乎 : 《周易》 〈繫辭傳〉에 “顔氏의 아들(顔回)은 거의 道에 가까울 것이다.[顔氏之子 其殆庶幾乎]”라고 보이는 바, 후에 ‘殆庶’는 어진 덕이 있는 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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