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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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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寅]七年이라 〈周武氏天授元年〉
사성嗣聖 7년(경인 690) - 나라 무씨武氏 천수天授 원년元年 -
春正月 帝在房州하다
봄 정월에 황제가 방주房州에 있었다.
○ 十一月 太后享萬象神宮注+[附註]武后作明堂할새 飾以黃金하고 號曰萬象〈神〉宮이라 大饗할새 太后爲初獻하고 皇后爲亞獻하고 太子爲終獻하니 周國先王 亦與饗焉이라 丙辰年 贈武士彠爵周國公하고 甲申年 立武氏하다 하고 赦天下하다
11월에 태후太后만상신궁萬象神宮에서注+[附註]무후武后명당明堂을 만들 적에 황금으로 장식하고 만상신궁萬象神宮이라 이름하였다. 크게 제향을 올릴 적에 태후太后초헌관初獻官이 되고 황후皇后아헌관亞獻官이 되고 태자太子종헌관終獻官이 되니, 나라 선왕先王에게도 함께 제향을 올렸다. 병진년(656)에 무후武后의 친정 아버지인 무사확武士彠에게 주국공周國公의 관작을 추증하고 갑신년(684)에 무씨武氏칠묘七廟를 세웠다. 제향을 올리고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
始用周正注+[通鑑要解]改十一月爲正月十二月爲臘月夏正月爲一月註 云 臘者 歲之終也 하야 改永昌注+[頭註]己丑年이니 太后永昌元年이라 元年十一月하야 爲載初元年正月하다
처음으로 나라의 역법曆法注+[通鑑要解]자치통감資治通鑑》의 ‘하정夏正(현재의 음력陰曆)의 11월을 고쳐 정월로 삼고, 12월을 섣달로 삼고, 하정夏正의 정월을 1월로 삼았다.’는 내용의 에 이르기를 “은 한 해의 마지막이다.” 하였다. 사용하여 영창永昌注+[頭註]영창永昌기축년己丑年(689)이니, 태후太后 영창永昌 원년元年을 말한다. 원년元年 11월을 고쳐 재초載初 원년元年 정월正月이라 하였다.
○ 時 侯思正, 王義弘注+[頭註]資治, 本傳 竝作王弘義 新進하야 入獄者非死 不出하니 朝廷 人人自危하야 相見 莫敢交言하고 道路以目이라
이때 후사정侯思正왕의홍王義弘注+[頭註]왕의홍王義弘은 《자치통감資治通鑑》과 《신당서新唐書》 〈왕홍의전王弘義傳〉에 모두 왕홍의王弘義로 되어 있다. 새로 등용되어서 감옥에 들어간 자들이 죽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니, 조정의 사대부들이 사람마다 스스로 위태롭게 여겨 서로 만날 적에 감히 말을 나누지 못하고 도로에서 눈짓만 교환할 뿐이었다.
或因入朝하야 密遭掩捕하니 每朝 輒與家人訣注+[頭註]이라 曰 未知復相見否아하니라
혹 조정에 들어갔다가 아무도 모르게 체포당하니, 이로 인하여 신하들이 아침마다 집안 식구들과 결별하기를注+[頭註]에 대한 주석은 37권에 보인다. “내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였다.
法官 競爲深酷호되徐有功, 杜景儉 獨存平恕하니 被告者皆曰 遇來, 注+[原註]來俊臣 侯思正이라 必死 遇徐, 必生이라하더라
이 당시 법관들이 다투어 까다롭고 혹독하였으나 오직 사형승司刑丞 서유공徐有功두경검杜景儉만은 공평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간직하니, 피고들이 모두 말하기를 “내준신來俊臣후사정侯思正注+[原註]내후來侯내준신來俊臣후사정侯思正이다. 만나면 반드시 죽고, 서유공徐有功두경검杜景儉을 만나면 반드시 산다.” 하였다.
有功 初爲蒲州司法하야 以寬爲治하고 不施注+[頭註] 短杖이요 捶也[通鑑要解] 唐制 法曹司法參軍事 掌鞫獄麗法하고 督盜賊하고 知贓賄沒入이라 하니 吏相約호되 有犯徐司法杖者 衆共斥之라하더라
서유공徐有功이 처음 포주蒲州사법참군사司法參軍事가 되어 관대함으로 정사를 다스리고 형장刑杖을 행하지 않으니,注+[頭註]는 짤막한 회초리이고, 은 매질함이다. [通鑑要解]나라 제도에 법조法曹사법司法참군사參軍事는 죄인을 국문하여 법률을 시행하고 도적을 독찰督察하는 것을 관장하고, 장죄贓罪를 지은 죄인의 재산을 몰수하여 관아에 들여오는 일을 맡았다. 관리들이 서로 약속하기를 ‘서사법徐司法에게 죄를 지어 형장刑杖의 형벌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여럿이 함께 배척하자.’ 하였다.
迨官滿토록 不杖一人호되 職事亦修하고
그리하여 임기가 차도록 한 사람도 매질하지 않았으나 직무가 또한 닦여졌다.
累遷司刑丞하야 酷吏所誣構者 有功 皆爲直之하니 前後所活 數十百家러라
여러 번 승진하여 사형승司刑丞에 이르렀는데, 혹리酷吏들이 거짓으로 꾸며 만든 옥사를 서유공徐有功이 다 신원伸寃해 주니, 전후로 살려 준 것이 수십 가호 내지 백 가호였다.
司刑丞李日知 亦尙平恕
사형승司刑丞 이일지李日知 또한 공평함과 관대함을 숭상하였다.
少卿胡元禮注+[頭註]元禮也 胡人이라 故稱胡 見上丙戌年이라 欲殺一囚어늘 日知以爲不可라하야 往復數四한대
사형소경司刑少卿 호원례胡元禮注+[頭註]호원례胡元禮는 바로 색원례索元禮이니, 호인胡人이기 때문에 라고 부른 것이다. 앞의 병술년조丙戌年條(686)에 보인다. 한 죄수를 죽이고자 하였는데, 이일지李日知가 불가하다 하여 쌍방간에 두서너 차례 옥신각신 다투었다.
元禮怒曰 元禮不離刑曹 此囚終無生理라하고 日知曰 日知不離刑曹 此囚終無死法이라하야
호원례胡元禮가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형조刑曹를 떠나지 않는 한 이 죄수는 끝내 살 수 있는 이치가 없다.” 하니, 이일지李日知가 말하기를 “내가 형조刑曹를 떠나지 않는 한 이 죄수는 끝내 사형시킬 수 있는 법이 없다.” 하였다.
竟以兩狀列上이러니 日知果直이러라
마침내 두 사람의 문서를 나란히 올렸는데, 이일지李日知가 과연 옳았다.
○ 九月 侍御史傅遊藝 帥關中百姓하고 詣闕上表하야 請改國號曰周라하고 賜皇帝姓武氏어늘 太后可之하다
9월에 시어사侍御史 부유예傅遊藝관중關中의 백성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아가 표문表文을 올려 국호를 라 고치고 황제(睿宗)에게 무씨성武氏姓을 하사할 것을 청하자 태후太后가 이를 허락하였다.
乃御則天樓하야 赦天下하고 하야 改元하고 上尊號曰聖神皇帝라하고 以豫王旦爲皇嗣하야 賜姓武氏하고 立武氏七廟于神都注+[頭註]則天 甲申年 改東都爲神都 하고 以傅遊藝 爲左玉鈴衛大將軍하다
무후武后가 마침내 측천루則天樓에 나아가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나라를 고쳐 나라라 하여 천수天授개원改元하고 자신의 존호尊號를 올려 성신황제聖神皇帝라 하였으며, 예왕豫王 이단李旦황사皇嗣로 삼아 무씨성武氏姓을 하사하고 무씨武氏의 조상을 모시는 칠묘七廟신도神都注+[頭註]측천무후則天武后가 갑신년(684)에 동도東都(洛陽)를 고쳐 신도神都라 하였다. 세우고, 부유예傅遊藝좌옥령위대장군左玉鈴衛大將軍으로 삼았다.
遊藝期年之中 하니 時人 謂之四時仕宦이라하니라
부유예傅遊藝가 1년 동안에 크게 등용되어 청색‧녹색‧붉은색‧자주색의 관복을 두루 입으니, 당시 사람들이 이를 일러 사시사환四時仕宦이라 하였다.
[新增]胡氏曰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君子有言호되 臣居尊位 羿, 莽 是也 猶可言也어니와 婦居尊位 武氏 是也 非常之變이라 不可言也注+[頭註]以上 易坤六五爻 程傳說也
군자君子(程頤)가 말씀하기를 ‘신하가 존위尊位(제왕의 지위)에 거함은 후예后羿왕망王莽이 이 경우이니 그래도 말할 수 있으나, 부인婦人존위尊位에 있는 것은 여와씨女媧氏무씨武氏(則天武后)가 이 경우이니, 이는 비상非常한 변고여서 말할 수 없다.注+[頭註]신거존위臣居尊位……不可言也:이상은 《주역周易곤괘坤卦 육오효사六五爻辭에 대한 《정전程傳》의 내용이다.
蓋興廢 常理也 陰居尊位 非常之變故也라하니라
흥하고 폐함은 떳떳한 이치이고, 존위尊位에 거함은 비상한 변고이다.’ 하였다.
呂氏 爲而未成하고 武氏 遂革唐命이라
여씨呂氏(呂后)는 이를 행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고 무씨武氏는 마침내 나라의 을 바꾸었다.
然傳記以來 三千年間 纔一人耳로되 亦不及終其身而復하니 後世或有欲爲是者 豈無其漸이리오
그러나 전기傳記가 있은 이래로 3천 년 동안 겨우 한 사람뿐이었는데, 또한 자기 몸을 마치기도 전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으니, 후세에 혹 이런 일을 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어찌 그 조짐이 없겠는가.
仁人義士監於高宗하야 必逆有以處之矣리라
인인仁人의사義士들은 고종高宗감계鑑戒로 삼아서 반드시 미리 대처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역주
역주1 七廟 : 7대의 조상을 ‧모신 사당을 이른다. 《禮記》 〈王制〉에 “천자는 七廟이니, 三昭와 三穆에 太祖의 사당까지 합하여 七廟이다.[天子七廟 三昭三穆 與太祖之廟而七]”라고 하였는 바, 칠묘는 四親廟(父‧祖‧曾祖‧高祖)와 二祧廟(遠祖) 및 始祖廟를 가리킨다.
역주2 始用周正 : 周正은 周代의 曆法이다. 古代의 역법은 夏代에는 建寅月을 사용하니 이것을 夏正이라 하고, 殷代에는 建丑月을 사용하니 이것을 殷正이라 하고, 周代에는 建子月을 정월로 삼았으니 이것을 周正이라 하였다. 建寅은 북두칠성의 자루가 寅方을, 建丑은 丑方을, 建子는 子方을 가리키는 달을 이른다. 북두칠성의 자루란 정사각형으로 있는 네 별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직선으로 있는 세 별을 가리키는 바, 一晝夜에 한 바퀴를 돌고 조금 더돌아 1년에 366번을 돈다. 그리하여 초저녁에 북두칠성의 자루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가를 보아 春‧夏‧秋‧冬을 알았는데, 子‧丑‧寅‧卯의 12방위는 곧 북두칠성의 자루가 가리키는 방향을 나타낸 것이다. 周나라는 冬至를 기준하여 현재 음력의 동짓달을, 殷나라는 섣달을, 夏나라는 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사용하였는 바, 후대에는 대체로 夏正을 사용하였다.
역주3 見三十七卷 : “訣은 이별함이니, 죽을 사람과 작별하는 것을 訣이라 한다.”라고 보인다.
역주4 司刑丞 : 관직 이름으로, 大理寺 丞을 말한다. 司刑은 司刑寺의 簡稱으로, 光宅 원년(684)에 大理寺를 司刑寺로 고쳤는데, 中宗 神龍 원년(705)에 원래의 명칭으로 다시 고쳤다.
역주5 敲扑 : 고복
역주6 : 삭
역주7 以唐爲周 : 《新唐書》에 “武氏는 姬氏에서 나왔다. 周나라 平王의 어린 아들이 태어났을 때에 손에 武라는 손금이 있어 마침내 武로 氏를 삼았다.[武氏出自姬姓 周平王少子生 而有文在手曰武 遂以爲氏]”라는 내용이 보이는 바, 則天武后가 국호를 周라 한 것은 자신이 周나라 姬氏의 후손임을 자처한 것이다. 그러므로 則天武后가 武氏의 七廟를 神都에 세울 때에도 周나라 文王을 추존하여 始祖文皇帝라 하고, 文王의 妃인 姒氏를 文定皇后로, 平王의 少子 武를 睿祖康皇帝로 추존하였다. 또 高宗 때(656) 자신의 아버지인 武士彠에게 周國公의 관작을 추증하였다.
역주8 歷衣靑綠朱紫 : 唐나라 제도에 文武官 3품 이상은 자주색, 4품은 짙은 홍색, 5품은 옅은 홍색, 6품은 짙은 녹색, 7품은 옅은 녹색, 8품은 짙은 청색, 9품은 옅은 청색 관복을 입었다. 여기에서 청색‧녹색‧붉은색‧자주색의 관복을 두루 입었다는 것은 8‧9품으로부터 3품에까지 이르렀음을 이른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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