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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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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十七年이라 〈周武氏久視元年〉
春正月 帝在東宮하다
○ 太后信重梁文惠公注+[頭註]中宗卽位하야 하고 諡曰文惠하니라 狄仁傑하니 群臣 莫能及이라
謂之國老注+[通鑑要解]仁傑 屢以老疾乞骸로되 不許하고 每見 而太后常止其拜曰 每見公拜 亦身痛이라하더니 及薨하야 太后泣曰 朝堂空矣라하다 自是 朝廷有大事 衆或不決이어든 太后輒歎曰 天奪吾國老 何太早耶아하니라而不名이러라
仁傑面引廷爭注+[釋義]謂當朝廷而諫爭이라 하니 太后每屈意從之러라
太后嘗問仁傑호되 朕欲得一佳士하야 用之하노니 誰可者 仁傑曰 未審陛下欲何所用之니이다
太后曰 欲用爲將相이로라
仁傑對曰 文學醞藉注+[頭註]漢書注 如醞釀有薦藉也라하고 綱目 醞作縕하고 蓋藉積也 有雅量之稱이니 猶言度量寬博也 則蘇味道, 李嶠 固其選矣
必欲取卓注+[釋義]卓犖 有材辨也 奇材인댄 則有荊州長史張柬之하니 其人雖老 宰相材也니이다
太后擢柬之하야하다
數日 又問仁傑한대 對曰 前薦柬之러니 尙未用也시니이다 太后曰 已遷矣로라
對曰 臣所薦者 宰相이요 非司馬也니이다 乃遷이러니 久之 卒用爲相하니라
仁傑 又嘗薦夏官侍郞姚元崇 監察御史桓彦範 太州刺史敬暉等數十人이러니 率爲名臣하다
或謂仁傑曰 天下桃李注+[附註]趙簡子謂陽虎曰 惟賢者爲能(推)[報]恩이요 不肖者 不能矣 夫植桃李者 夏得休息하고 秋得其食하며 夏不得休息하고 秋得其刺焉하나니 今子之所(得)[植]者 蒺藜也라하니 後世 通以所薦士爲桃李者 本此 一說 喩有名實之人이라 悉在公門로다 仁傑曰 薦賢 爲國이요 非爲私니라


사성嗣聖 17년(경자 700) - 나라 무씨武氏구시久視원년元年 -
봄 정월에 황제가 동궁東宮에 있었다.
태후太后양문혜공梁文惠公注+[頭註]중종中宗이 즉위하여 적인걸狄仁傑양국공梁國公에 봉하였고 시호를 문혜文惠라 하였다. 적인걸狄仁傑을 신임하고 소중히 여기니, 여러 신하 중에 그에게 미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태후가 항상 그를 국로國老注+[通鑑要解]적인걸狄仁傑이 자주 노쇠함과 질병을 이유로 벼슬을 내놓고 물러갈 것을 청하였으나 태후가 허락하지 않았고, 적인걸狄仁傑이 매번 뵈올 때마다 태후는 항상 그가 절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매번 공이 절하는 것을 보면 내 몸이 아프다.” 하였다. 적인걸狄仁傑이 별세하자, 태후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조정이 텅 빈 것 같다.” 하였다. 이로부터 조정에 큰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혹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태후는 그때마다 탄식하기를 “하늘이 우리 국로國老를 빼앗아감이 어찌 그리도 빠르단 말인가.” 하였다. 칭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적인걸狄仁傑이 조정에서 대면하여 직언하고 간쟁하기를注+[釋義]정쟁廷爭은 조정에서 간쟁함을 이른다. 좋아하니, 태후가 매번 뜻을 굽혀 그의 의견을 따랐다.
태후가 일찍이 적인걸狄仁傑에게 묻기를 “이 한 걸출한 선비를 얻어 등용하고자 하니 누가 좋겠는가?” 하니, 적인걸狄仁傑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태후가 말하기를 “등용하여 장상將相으로 삼고자 한다.” 하니,
적인걸狄仁傑이 대답하기를 “찾으시는 선비가 문학文學이 높고 온자醞藉한(아량있고 점잖은)注+[頭註]온자醞藉는 《한서漢書에 “술을 빚을 때 짚자리를 까는 것과 같다.” 하였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는 으로 되어 있고, 그 에 “은 쌓아두는 것이다. 아량이 있음을 일컫는 말이니, 도량이 넓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였다. 사람이라면 소미도蘇味道이교李嶠가 진실로 선발에 적합하고,
반드시 탁월하고 출중한注+[釋義]탁락卓犖은 재주와 분별력이 있는 것이다. 기이한 재목을 취하고자 한다면 형주장사荊州長史장간지張柬之가 있으니, 그 사람이 비록 늙었으나 재상의 재목입니다.” 하였다.
태후가 장간지張柬之를 발탁하여 낙주洛州사마司馬로 삼았다.
며칠 뒤에 또다시 적인걸狄仁傑에게 인재를 천거할 것을 요구하자, 적인걸狄仁傑이 대답하기를 “전에 장간지張柬之를 천거하였는데 아직도 등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니, 태후가 말하기를 “내 이미 뽑아 등용하였노라.” 하였다.
적인걸狄仁傑이 말하기를 “신이 천거한 것은 재상宰相의 재목이지 사마司馬의 재목이 아니었습니다.” 하니, 마침내 장간지張柬之를 옮겨 추관秋官(刑部) 시랑侍郞으로 삼았고, 오랜 뒤에 마침내 등용하여 정승으로 삼았다.
적인걸狄仁傑이 또 일찍이 하관夏官(兵部) 시랑侍郞요원숭姚元崇, 감찰어사監察御史환언범桓彦範, 태주자사太州刺史경휘敬暉 등 수십 명을 천거하였는데, 대부분 유명한 신하가 되었다.
혹자가 적인걸狄仁傑에게 말하기를 “천하의 복숭아와 오얏이注+[附註]조간자趙簡子양호陽虎에게 이르기를 “오직 현자만이 은혜에 보답할 수 있고, 불초한 자는 보답하지 못한다. 복숭아와 오얏나무를 심은 자는 여름에는 그늘에서 휴식할 수 있고 가을에는 그 열매를 먹을 수 있지만, 질려蒺藜(납가새)를 심은 자는 여름에도 휴식하지 못하고 가을에도 그 가시만을 얻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 자네가 심은 것은 질려蒺藜이다.” 하니, 후세에 통상적으로 천거된 선비를 도리桃李라고 칭하는 것은 여기에서 근원하였다. 일설一說에 “명분과 실상이 있는 사람을 비유한다.” 하였다. 모두 공의 문하에 있다.” 하니, 적인걸狄仁傑이 대답하기를 “현자를 천거함은 나라를 위한 것이지 내 개인의 사사로움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였다.


역주
역주1 封梁國公 : 狄仁傑은 생전에 燕國公에 봉해지고, 사후에 梁國公에 追封되었다.
역주2 國老 : 본래는 연로하여 사직하고 물러나는 卿‧大夫‧士를 가리키나 여기에서는 덕이 높고 명망이 중한 늙은 신하에 대한 敬稱으로 쓰였다.
역주3 : 락
역주4 洛州司馬 : 司馬는 일반적으로 長史보다 품계가 낮으나 京畿司馬는 다른 州의 長史보다 품급이 높다. 洛州는 神都(洛陽)가 있는 곳이어서 司馬가 從四品下이고 荊州長史는 從五品上이었다.
역주5 秋官侍郞 : 刑部侍郞으로 正四品下이다.
역주6 蒺藜 : 질려

통감절요(7)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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