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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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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酉]〈晉天福二年이라
정유(937) - 나라 천복天福 2년이다.
○ 南唐烈祖徐誥昇元元年이라
남당南唐 열조烈祖 서고徐誥승원昇元 원년元年이다.
○ 是歲 吳亡하니라
○ 이해에 나라가 망하였다.
晉, 蜀, 漢, 閩 南唐代吳하야 凡五國이요 吳越, 湖南, 荊南凡三鎭이라
남당南唐나라를 대신하여 모두 다섯 나라이고, 오월吳越호남湖南형남荊南 모두 세 이다. -
晉以李崧으로 爲中書侍郞同平章事하야 充樞密使하고 桑維翰으로 兼樞密使하다
나라가 이숭李崧중서시랑中書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임명하여 추밀사樞密使를 맡기고, 상유한桑維翰겸추밀사兼樞密使로 임명하였다.
新得天下하니 藩鎭 多未服從하고 或雖服從이나 反仄注+[頭註]不安也 不安하고 兵火之餘 府庫殫竭하야 民間困窮이어늘 而契丹徵求無厭이라
이때 나라가 새로 천하를 얻으니, 번진藩鎭들이 대부분 복종하지 않았고, 혹 복종하더라도 반측反仄하여注+[頭註]반측反仄은 불안해하는 것이다. 편안하지 못하였으며, 전란을 겪은 뒤에 조정의 부고府庫가 고갈되어서 민간이 곤궁하였는데 거란契丹의 무리한 요구는 만족함이 없었다.
維翰 勸晉推誠棄怨하야 以撫藩鎭하고 卑辭厚禮하야 以奉契丹하고 訓卒繕兵하야 以修武備하고 務農桑하야 以實倉廩하고 通商賈하야 以豐貨財하니 數年之間 中國稍安하니라
상유한桑維翰진주晉主에게 정성을 바치고 옛 원한을 버려 번진藩鎭을 어루만지고, 말을 낮추고 예를 후하게 하여 거란契丹을 받들며, 병졸을 훈련시키고 병기를 수선하여 무비武備를 닦고, 농업과 양잠을 힘써서 창고를 충실하게 하고, 상고商賈를 유통시켜 재화財貨를 풍족하게 할 것을 권하니, 몇 년 사이에 중국中國이 차츰 편안해졌다.
○ 三月 晉主謀徙都大梁하니 桑維翰 因說晉主하야
3월에 진주晉主대량大梁으로 천도할 것을 모의하니, 상유한桑維翰이 인하여 진주晉主를 설득하기를
以大梁北控燕, 趙하고 南通江, 淮하야 水陸都會하야 資用富饒라하니 晉主乃下詔東巡하다
대량大梁은 북쪽으로 지방‧ 지방과 통하고 남쪽으로 장강長江회수淮水와 통하여, 물에서 나오는 것과 육지에서 나오는 것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재용이 풍부합니다.”라고 하니, 진주晉主가 마침내 조서를 내려 동쪽으로 순행하였다.
○ 夏四月 晉主至汴州하다
여름 4월에 진주晉主변주汴州(大梁)에 이르렀다.
○ 八月 吳主注+[頭註]楊溥 下詔하야 禪位于齊注+[原註]하니라 하다
8월에 오주吳主注+[頭註]오주吳主양부楊溥이다. 조서를 내려 제위帝位제왕齊王 서지고徐知誥에게 선양禪讓하였다.注+[原註]제왕齊王 서지고徐知誥는 뒤에 본성本姓이씨성李氏姓을 회복하였다.
齊王誥卽皇帝位于金陵注+[原註]徐知誥也 하야 大赦하고 改元昇元하고 國號唐注+[頭註]是爲南唐이라 徐知誥 改名昇이라[通鑑要解] 徐知誥 本以李氏之子 旣擧大號 欲纂唐緖 改國號唐이라 이라하고 尊吳主曰讓皇이라하다
제왕齊王 서지고徐知誥금릉金陵에서 황제에 즉위하여注+[原註]제왕고즉황제위우금릉齊王誥卽皇帝位于金陵:제왕齊王 서지고徐知誥이다. 크게 사면령을 내리고 승원昇元으로 개원하고 국호를 이라 하였으며,注+[頭註] 이것이 남당南唐이다. 서지고徐知誥으로 개명하였다. [通鑑要解]서지고徐知誥는 본래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이미 대호大號(황제의 칭호)를 거행한 뒤에 나라의 계통을 잇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국호를 으로 고쳤다. 오주吳主를 높여 양황讓皇이라 하였다.
〈至宋朝하야 國除하니라
- 나라 때에 이르러서 나라가 없어졌다. -
역주
역주1 後復姓李 : 徐知誥는 처음에 楊行密에 의해 거두어 길러졌는데, 뒤에 吳나라 승상 徐溫의 양자가 되었다. 徐溫이 죽은 뒤에 吳나라의 정사를 전횡하여 齊王에 봉해졌다. 후에 성명을 李昇으로 고쳤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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