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2)

통감절요(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子]三年이라
3년(경자 B.C.141)
十二月 帝崩하고 太子卽皇帝位하니 年十六이러라
12월에 황제가 하고 태자가 황제의 지위에 오르니, 나이가 16세였다.
〈出本紀〉
- 《한서漢書 경제기景帝紀》에 나옴 -
漢書
한서漢書》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漢興 接秦之弊하야 自天子 不得具鈞駟注+[釋義]王氏曰 天子駕駟馬하니 其色宜齊同이로되 言當時國家貧하야 天子不能具鈞色之駟馬 漢書 作醇駟하니 與純同이니 一色也하고 而將相 或乘牛車하고 齊民 無蓋藏注+[釋義]如淳曰 齊等하야 無有貴賤이라 故曰齊民이니 若今言平民也 記王制曰 古者 公田 籍而不稅라하니 其法 計口授田하야 初無貧富不均之患이라 故曰齊民이니 言民業均齊也 無蓋藏 謂無物可蓋藏也 月令 孟冬 命百官하야 謹蓋藏이라한대 府庫囷倉 有藏物也이라
나라가 일어날 적에 나라의 피폐함을 이어서 천자天子로부터 같은 색깔의 사마駟馬를 갖추지 못하였고,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천자天子사마駟馬를 타니, 말의 색깔이 똑같아야 하는데, 당시에 국가가 가난하여 천자天子가 똑같은 색깔의 사마駟馬를 갖출 수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한서漢書》에는 ‘순사醇駟’로 되어 있는데, 에 ‘과 같으니, 색깔이 똑같은 것이다.’ 하였다.” 장수와 정승이 혹 소가 끄는 수레를 탔으며, 평민들은 덮어 보관할 만한 물건이 없었다.注+[釋義]여순如淳이 말하였다. “등급이 똑같아서 귀천이 없으므로 제민齊民이라 한 것이니, 지금 평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이르기를 “옛날에 공전公田은 백성들의 힘을 빌려 경작하고 세금을 거두지 않았다.” 하였으니, 그 법이 식구를 계산하여 전지田地를 주어서 애초에 빈부가 똑같지 않은 근심이 없었기 때문에 제민齊民이라 한 것이니, 백성의 생업이 똑같음을 말한 것이다. 무개장無蓋藏은 덮어 보관할 만한 물건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월령月令〉에 “맹동孟冬백관百官에게 명하여 개장蓋藏을 삼간다.” 하였는데, 에 “부고府庫균창囷倉에 보관한 물건이 있다.” 하였다.
天下已平 高祖乃令賈人으로 不得衣絲乘車하고 重租稅以困辱之러니 孝惠, 高后時 爲天下初定이라하야 復弛商賈之律이라
천하가 이미 평정되자, 고제高帝가 마침내 상인들로 하여금 비단옷을 입거나 수레를 타지 못하게 하였고, 조세를 무겁게 하여 곤욕스럽게 하였는데, 효혜제孝惠帝고후高后 때에는 천하가 처음으로 평정되었다 하여 다시 상고商賈를 제재하는 법률을 풀어주었다.
이나 亦不得仕宦爲吏하고 量吏祿, 官用하야 以賦於民하고 而山川園池市井租稅之入 自天子 以至于封君湯沐邑 皆各爲私奉養焉하야 不領於天下之經費하고 하야 以給中都官注+[頭註]京師諸官府호되 歲不過數十萬石이러라
그러나 시정市井(상인)의 자손이 또한 벼슬하여 관리가 될 수는 없었으며, 관리의 녹봉을 헤아리고 관청의 비용을 헤아려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고, 산천山川원지園池시정市井에 대한 조세의 수입을 천자天子로부터 봉군封君(제후)의 탕목읍湯沐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각 사사로이 봉양하게 하여 천하의 경비에 넣지 않고, 산동山東의 곡식을 조운漕運하고 수송하여 중도中都(京師)의 여러 관부官府注+[頭註]중도관中都官경사京師의 여러 관부官府들이다. 공급하였으나 1년에 수십만 석에 지나지 않았다.
繼以孝文, 孝景 淸淨恭儉하야 安養天下하니 〈史無此二句〉 七十餘年之間 國家無事하고 非遇水旱之災하야 民則人給家足하야 都鄙注+[頭註]國都及邊鄙 廩庾皆滿하고 而府庫 餘貨財하야 京師之錢 累巨萬이라
뒤이어 효문제孝文帝효경제孝景帝청정淸淨하고 공손하고 검소하여 천하를 편안히 기르니, - 《사기史記》에는 이 두 가 없음 - 70여 년 동안 국가에 일이 없고 수재水災한재旱災를 만나지 않아, 백성들은 사람마다 넉넉하고 집집마다 풍족하여 도비都鄙(도시와 시골)에注+[頭註]도비都鄙국도國都변비邊鄙(먼 시골)이다. 창고가 모두 가득하고 부고府庫재화財貨가 남아서 경사京師의 돈이 여러 거만巨萬이었다.
貫朽而不可校하고 太倉之粟 陳陳相因하야 充溢露積注+[通鑑要解] 音恣 儲蓄也 凡指所聚之物而言之則去聲이요 聚物而積累之則入聲也於外하야 至腐敗不可食이라
그리하여 돈꿰미가 썩어서 돈이 얼마인지를 따질 수가 없고, 태창太倉의 곡식이 묵고 묵어 서로 쌓여서 차고 넘쳐 밖에 노적을 쌓아서注+[通鑑要解]은 음이 자이니 저축함이다. 무릇 모아놓은 물건을 가리켜 말할 때에는 이고, 물건을 모아 쌓아놓는 것을 가리켜 말할 때에는 이다. 곡식이 부패하여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衆庶街巷注+[頭註]邑中道也 又直曰街 曲曰巷이라 阡陌 田間界也 又壟也有馬하니 而阡陌之間 成群하야 乘字牝者 擯而不得聚會注+[釋義]王氏曰 字牝 畜母也 漢書音義曰 皆乘父馬하니 有牝馬間其間이면 則相이라 故斥不得聚會하고 守閭閻者食粱肉하고 爲吏者長子孫注+[釋義]時無事하야 吏不數遷하야 至於子孫長大而不轉職任이라하고 居官者以爲姓號注+[釋義]王氏曰 謂以官名爲姓氏 如淳曰 倉氏庾氏 則倉庫吏之後
여러 서민들도 길거리에注+[頭註]가항街巷 안의 길이니, 또 곧은 것을 라 하고 굽은 것을 이라 한다. 천맥阡陌은 밭 사이의 경계이고 또 밭두둑이다. 말을 보유하니, 길 사이에 말이 무리를 이루어서 새끼 딸린 암말을 탄 자는 물리쳐 모임에 모이지 못하게 하고,注+[釋義]乘字牝者 빈이부득취회擯而不得聚會: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자빈字牝은 새끼를 기르는 어미 말이다. 《한서음의漢書音義》에 ‘사람들이 모두 수말을 탔으니, 암말이 그 사이에 끼면 서로 차고 물기 때문에 배척하여 모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였다.” 여염을 지키는 자들이 기장과 고기를 먹고, 관리가 된 자는 자손이 장성할 때까지 계속하였고(직임을 바꾸지 않았고),注+[釋義]당시에 일이 없어 관리들이 자주 옮겨 다니지 않아서 자손이 장성하고 큼에 이르도록 직임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관직에 있는 자는 관명을 의 칭호로 삼았다.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관직의 이름을 가지고 성씨를 삼음을 이른다. 여순如淳이 말하기를 ‘창씨倉氏유씨庾氏는 창고를 맡은 관리의 후손이다.’ 하였다.”
人人自愛而重犯法注+[釋義] 難也하야 先行義而後絀(屈)辱焉이러라
이 때문에 사람마다 자기 몸을 아껴서 법을 범하는 것을 어렵게 여겨注+[釋義]은 어렵게 여김이다. 자신이 를 행함을 우선으로 여기고 남에게 굴욕을 보이는 것을 뒤에 하였다.
當此之時하야 罔(網)疏而民富하고 役財驕溢하야 或至兼幷하며 豪黨之徒 以武斷於鄕曲注+[釋義]鄕曲豪富 無官位로되 而以威勢主斷曲直이라 故曰武斷이라 秦國策注 曲者 里之一曲이니 如韋曲杜曲이라하고 宗室有土注+[頭註]宗室受封邑有地者 公卿大夫以下 爭事奢侈하야 室廬輿服 僭于上하야 無限度하니 物盛而衰 固其變也
이때를 당하여 법망法網이 엉성하고 백성들이 부유하며 재물을 쓰는 것이 교만하고 지나쳐서 혹은 겸병兼幷함에 이르렀으며, 세력 있는 무리들이 향곡鄕曲에서 무력을 사용하여 위세를 부리고,注+[釋義]豪黨之徒 이무단어향곡以武斷於鄕曲:향곡鄕曲에 부유한 자들은 관직과 지위가 없었으나 위세威勢곡직曲直을 결단함을 주관하였다. 그러므로 무단武斷이라 한 것이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의 에 “이란 마을의 한 굽이이니, 위곡韋曲두곡杜曲과 같다.” 하였다. 토지를 소유한 종실宗室注+[頭註]유토有土종실宗室로서 봉읍封邑을 받아 토지를 소유한 자이다. 공경公卿대부大夫 이하가 다투어 사치를 일삼아서 집과 수레와 의복이 보다 참람하여 한도가 없었으니, 사물이 성하면 쇠하는 것은 진실로 변화의 이치이다.
自是之後 孝武內窮侈靡하고 外攘夷狄하니 天下蕭然하야 財力耗矣러라
이로부터 효무제孝武帝가 안으로는 사치와 화려함을 지극히 하고 밖으로는 이적夷狄을 물리치니, 천하가 소란하여 재력이 소모되었다.”
班固贊曰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경제기景帝紀에 말하였다.
孔子稱 斯民也 三代之所以直道而行也라하시니 信哉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지금 이 백성들은 삼대시대三代時代에 정직한 를 행하던 백성이다.’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周秦之弊 罔(網)密文峻이로되 而奸軌注+[頭註] 音咎 與究通하니 亂在外爲奸이요 在內爲軌不勝이러니 漢興 掃除煩苛하고 與民休息하며 至于孝文하야 加之以恭儉하고 孝景遵業하야 五六十載之間 至於移風易俗하야 黎民醇厚하야
나라와 나라의 병폐는 법망이 치밀하고 법조문이 준엄하였으나 간사한 자들을注+[頭註]는 음이 구이니 와 통하는 바, 이 외부에 있는 것을 이라 하고 내부에 있는 것을 라 한다. 감당하지 못하였는데, 나라가 일어나자 번거롭고 까다로운 법령을 제거하고 백성들과 함께 편안히 쉬었으며, 효문제孝文帝에 이르러서는 겸하여 공손하고 겸손하였고 효경제孝景帝선왕先王기업基業을 따라 5, 60년 동안 풍속을 바꿈에 이르러서 백성들이 순후醇厚하였다.
周云成康하고 漢言文景하니 美矣
그리하여 나라에서는 성왕成王강왕康王을 칭하고 나라에서는 문제文帝경제景帝를 말하니, 참으로 아름답다.”
致堂管見曰
치당致堂(胡寅)의 《독사관견讀史管見》에 말하였다.
文景養民 厚矣 稽諸仲尼之言이면 則亦富庶之而已 未有以敎之也
문제文帝경제景帝가 백성을 기른 것이 후하였으나 중니仲尼의 말씀을 가지고 상고해 보면 또한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고 많게 하였을 뿐이요 가르침이 있지는 못하였다.
이나 文帝 寬厚長者 以德化民하야 無事則謙抑如不能하고 有事則英氣奮發이어니와
그러나 문제文帝관후寬厚장자長者라서 으로써 백성들을 교화하여, 일이 없으면 겸양하여 능하지 못한 것처럼 하였고 일이 있으면 영기英氣가 빛을 발하였다.
景帝 刻薄任數하야 以詐力御下하야 平居則誅賞肆行하고 緩急則惴慄失措하며 而又以無寵廢正后하야 而夫婦之道薄하고 以無罪廢太子하야 而父子之恩睽하고 過愛梁王하야 輕許傳位하야 而兄弟之好 不終하고 信讒用佞하야 絀申屠嘉注+[頭註]鼂錯寵幸하야 言事輒聽하고 法令多更定이라 丞相嘉自絀疾錯러니 因事請誅錯호되 上不聽한대 嘉嘔血死하니라하고 戮鼂錯하고 殺周亞夫注+[頭註]亞夫子盜賣官物하야 連汚亞夫하야 下廷尉한대 嘔血死하니라하야 而君臣之義 有缺하니 其大致懸絶 如此
그러나 경제景帝는 각박하고 술수術數에 맡겨서 속임수와 힘으로 아랫사람들을 제어하여, 평소에는 주벌과 상을 제멋대로 행하고 위급한 일이 발생하면 두려워서 조처할 바를 몰랐으며, 또 총애가 없다 하여 정후正后를 폐해서 부부간夫婦間가 박해졌고, 죄없이 태자太子를 폐하여 부자간父子間의 은혜가 괴리되었고, 양왕梁王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경솔하게 전위傳位하겠다고 허락하여 형제간兄弟間의 우호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였고, 참소하는 말을 믿고서 간신을 등용하여 신도가申屠嘉注+[頭註]조조鼂錯가 총애를 받아 일을 말하면 그때마다 들어주고 법령을 많이 변경하였다. 신도가申屠嘉가 내침을 당하고는 조조鼂錯를 미워하였는데, 일로 인하여 조조鼂錯를 죽일 것을 청하였으나 이 들어주지 않으니, 신도가申屠嘉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내치고 조조鼂錯를 죽이고 주아부周亞夫를 죽여서注+[頭註]주아부周亞夫의 아들이 관청의 물건을 도둑질하여 팔아서 죄가 주아부周亞夫에게까지 연루되어 정위廷尉에게 내리니, 주아부周亞夫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군신간君臣間의 의리에 결함이 있었으니, 대체상大體上에 현격함이 이와 같았다.
獨節儉愛民一事 克遵前業耳 夫豈可與文帝同稱也哉
다만 절약하고 검소하여 백성을 사랑한 한 가지 일만이 전왕前王을 따랐을 뿐이니, 어찌 문제文帝와 함께 칭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市井之子孫 : 《史記正義》에 “옛날에는 시장이 있지 않았으므로 아침에 우물에 모여 물을 길을 때에 물건을 가지고 가서 우물가에서 사고팔았기 때문에 市井이라 했다.” 하였다. 市井은 商人을 이르는 바, 곧 商賈의 자손을 가리킨다.
역주2 : 탁
역주3 漕轉山東粟 : 漕는 배로 실어 나르는 것이고 轉은 수레로 실어 나르는 것이다. 山東은 函谷關 이동 즉 關東 지방이다.
역주4 踶齧 : 제설
역주5 長子孫 : 뒤의 14권에도 보이는 바, 一說에는 長子孫을 長子와 長孫으로 이어간 것으로 해석하였다.
역주6 : 자
역주7 : 적
동영상 재생
1 [경자] 3년
동영상 재생
2 [경자] 3년 362
동영상 재생
3 [경자] 3년 526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