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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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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戊戌]〈晉咸寧四年이요 吳天紀二年이라
무술(278) - 나라 함녕咸寧 4년이고, 나라 천기天紀 2년이다. -
正月 晉羊祜面陳伐吳之計한대 晉主善之
정월에 나라 양호羊祜진주晉主를 대면하여 나라를 정벌할 계책을 아뢰니, 진주晉主가 이를 좋게 여겼다.
以祜疾하야 不宜數入이라하야 更遣張華하야 就問籌策한대
양호羊祜가 병 때문에 자주 들어올 수 없다 하여 다시 장화張華를 보내어 찾아가서 계책을 묻게 하자,
祜曰 孫皓暴虐已甚하니 於今 可不戰而克이어니와 若皓不幸而沒하고
양호羊祜가 말하기를 “손호孫皓는 포악함이 너무 심하니 현재는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지만 만약 손호孫皓가 불행히도 죽고
吳人 更立令主 雖有百萬之衆이라도 長江 未可窺也 將爲後患矣리라
나라 사람들이 다시 훌륭한 군주를 세운다면 비록 백 만의 병력이 있더라도 장강長江을 엿볼 수 없을 것이니 장차 후환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華深然之어늘 祜曰 成吾志者 子也라하더라
장화張華가 그의 말을 깊이 옳게 여기니, 양호羊祜가 말하기를 “내 뜻을 이룰 수 있는 자는 그대이다.” 하였다.
晉主欲使祜臥護諸將이어늘 祜曰 取吳 不必臣行이어니와 但旣平之後 當勞聖慮耳
진주晉主양호羊祜로 하여금 누워서 여러 장수들을 지휘하게 하고자 하니, 양호羊祜가 말하기를 “나라를 취하는 것은 굳이 신이 출전할 것이 없습니다만 평정한 뒤에는 성상聖上께서 심사숙고하셔야 합니다.
功名之際 臣不敢居어니와 若事了인댄 當有所付授 願審擇其人注+[通鑑要解]以東南壤界濶遠하니 當得人以鎭撫之也하소서
공명功名을 꾀하는 즈음은 신하가 감히 차지할 수가 없지만, 만약 일이 끝나고 나면 마땅히 맡길 사람이 있어야 하니, 적임자를 신중히 가리시기注+[通鑑要解]동남쪽 경계는 넓고 머니, 마땅히 적임자를 얻어서 진무鎭撫해야 한다. 바랍니다.” 하였다.
○ 十月 晉以衛瓘으로 爲尙書令하다
○ 10월에 나라가 위관衛瓘상서령尙書令으로 삼았다.
是時 朝野咸知太子昏愚注+[頭註]太子 卽惠帝衷也 武帝炎之子하야 不堪爲嗣어늘
이때 조야朝野에서는 태자太子注+[頭註]태자太子는 곧 혜제惠帝 사마충司馬衷이니,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아들이다. 혼우昏愚하여 후사後嗣가 될 수 없음을 다 알고 있었다.
每欲陳啓而未敢發이러니 侍宴凌雲臺注+[通鑑要解]卽魏文帝之所作也 할새 陽醉하야 跪晉主牀前하야 曰 臣 欲有所啓하노이다
위관衛瓘이 매번 이것을 아뢰고자 하였으나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는데, 마침 능운대凌雲臺注+[通鑑要解]능운대凌雲臺는 곧 나라 문제文帝(曹丕)가 지은 것이다. 에서 진주晉主를 모시고 잔치할 적에 위관衛瓘이 거짓으로 취한 체하여 진주晉主용상龍牀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신이 아뢰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였다.
晉主曰 公所言 何耶 欲言而止者三이라가 因以手撫牀하고此座可惜이로소이다
진주晉主가 말하기를 “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하니, 위관衛瓘이 말하려고 하다가 그만두기를 세 차례 하고는, 인하여 손으로 용상龍牀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이 자리가 아깝습니다.” 하였다.
晉主意悟하고 因謬曰 公眞大醉耶아하니 於此 不復有言하다
진주晉主가 마음속으로 그의 의향意向을 깨닫고 인하여 거짓으로 말하기를 “이 참으로 크게 취했는가?” 하니, 위관衛瓘이 이에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 十一月 晉太醫注+[通鑑要解]司馬程據 獻雉頭裘注+[釋義]以雉頭毛 織爲裘어늘 晉主焚之於殿前하고 勅內外하야 敢有獻奇技異服者 罪之하리라하다
○ 11월에 나라 태의太醫注+[通鑑要解]태의太醫종정宗正에 속하였다. 사마정거司馬程據치두구雉頭裘注+[釋義]치두구雉頭裘는 꿩 머리의 털을 짜서 갖옷을 만든 것이다. 를 바치자, 진주晉主가 이것을 궁전 앞에서 불태우고 내외內外에 명령을 내려 “감히 기이한 기예技藝와 이상한 복식服飾을 바치는 자가 있으면 죄를 주겠다.” 하였다.
○ 晉羊祜疾篤하야 擧杜預自代어늘 乃以預 爲鎭南大將軍, 都督荊州諸軍事하다
나라 양호羊祜가 병이 위독하자 두예杜預를 천거하여 자신을 대신하게 하니, 마침내 두예杜預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도독형주제군사都督荊州諸軍事로 삼았다.
祜卒하니 晉主哭之甚哀하다
양호羊祜가 죽으니, 진주晉主가 통곡하며 몹시 슬퍼하였다.
南州民注+[頭註]南州 荊州也 聞祜卒하고 爲之罷市하니注+[頭註]邑中道也 哭聲 相接하고 吳守邊將士 亦爲之泣이러라
남쪽 고을 백성들注+[頭註]남쪽 고을은 형주荊州이다. 양호羊祜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위하여 시장을 파하니 거리注+[頭註]은 고을 안의 길이다. 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서로 이어졌고, 나라의 변경을 지키는 장병들도 그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다.
祜好遊峴山注+[釋義]在襄陽城南十里이러니 襄陽人 建碑立廟於其地하고 歲時祭祀하니 望其碑者 無不流涕 因謂之墮淚碑라하니라
양호羊祜현산峴山注+[釋義]현산峴山양양성襄陽城 남쪽 10리 지점에 있다. 을 유람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양양襄陽 사람들이 그곳에 비석을 세우고 사당을 건립하고는 세시歲時에 제사를 올리니, 비석을 바라보는 자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가 없었으므로 인하여 이 비를 일러 타루비墮淚碑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宗正 : 皇帝의 친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관직이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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