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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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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三十年이라
30년(병자 B.C.285)
旣滅宋而驕하야 乃南侵楚하고 西侵三晉하고 欲幷하야 爲天子
나라 민왕湣王나라를 멸망시키고는 교만해져서 마침내 남쪽으로 나라를 침공하고 서쪽으로 삼진三晉을 침공하고 두 나라를 겸병兼倂하여 천자天子가 되고자 하였다.
燕昭王 日夜 撫循其人하고 乃與樂毅 謀伐齊할새
나라 소왕昭王이 밤낮으로 백성들을 어루만져 따르게 하고, 마침내 악의樂毅나라를 정벌할 것을 도모하였다.
하야 以樂毅 爲上將軍하고 幷將秦, 魏, 韓, 趙之兵하야 以伐齊하니
소왕昭王이 군대를 모두 일으켜 악의樂毅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는 의 군대를 아울러 거느리고 나라를 정벌하였다.
齊湣王 悉國中之衆하야 以拒之할새 戰于濟西하야 齊師大敗
나라 민왕湣王이 국중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항거할 적에 제서濟西에서 싸워 나라 군대가 대패하였다.
遂進軍한대 齊人 大亂失度하니 湣王 出走하다
악의樂毅가 마침내 진군進軍하자 나라 사람들이 크게 혼란하여 법도를 잃으니, 민왕湣王이 나가 도망하였다.
樂毅入臨淄注+[釋義]臨淄水 出泰山梁縣西北하야 入汶하니 隋置淄州 括地志云 靑州臨淄縣 一名齊城이니 古營丘地 今益都屬縣이라하야 取寶物祭器注+[釋義]凡王者大祭祀 必陳設文物軒車彛器等하니 因謂此爲祭器하야 輸之於燕하니 燕王 封樂毅하야 爲昌國注+[釋義]地志 齊〈郡〉有昌國縣이라 括地志云 漢武更山陽爲昌國하니 今曹州城武東北三十二里梁丘故城하고 遂使留徇注+[釋義]巡師宣令也齊城之未下者하다
악의樂毅나라 도성都城임치臨淄注+[釋義]임치수臨淄水태산泰山 양보현梁父縣 서북쪽에서 나와 문수汶水로 들어가니, 나라 때 치주淄州를 두었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청주靑州 임치현臨淄縣은 일명 제성齊城이니 옛날 영구營丘 땅으로 지금 익도益都속현屬縣이다.” 하였다.에 들어가 보물寶物제기祭器를 취하여注+[釋義]왕자王者가 크게 제사 지낼 때에 반드시 문물文物헌거軒車이기彛器(종묘의 제기) 등을 진설하니, 인하여 이런 것들을 일러 제기祭器라고 한 것이다.나라로 수송하니, 연왕燕王악의樂毅를 봉하여 창국昌國注+[釋義]창국昌國은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제군齊郡창국현昌國縣이 있다.” 하였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나라 무제武帝산양山陽을 고쳐 창국昌國이라 하였으니, 지금의 조주曹州 성무城武 동북쪽 32리 양구梁丘의 옛 이 이곳이다.” 하였다. 君을 삼고 마침내 나라에 머물면서 나라 성 가운데 아직 항복하지 않은 곳을 순행하여注+[釋義]유순留徇은 군대를 순행하여 명령을 선포하는 것이다. 항복받게 하였다.
齊王 走莒注+[釋義]今益都莒州是 故莒子國이니 郭周四十餘里어늘 楚 使注+[釋義] 姓也 楚人이니 江都易王傳 有美人淖姬한대 蘇林註 淖音 泥淖之淖 尼敎反이라 將兵救齊하고 因爲齊相이러니 淖齒欲與燕分齊地하야 乃遂弑王於鼓里하다
제왕齊王注+[釋義]는 지금의 익도益都 거주莒州가 바로 이곳이다. 옛날에 자작子爵의 나라이니, 성곽의 둘레가 40여 리였다. 땅으로 도망가자 나라가 요치淖齒注+[釋義]이다. 나라 사람이니, 《한서漢書》 〈강도역왕전江都易王傳〉에 “미인 요희淖姬가 있다.” 하였는데, 소림蘇林에 “이뇨泥淖로 읽으니, 尼敎反(뇨)이다.” 하였다.를 시켜 병력을 인솔하고 나라를 구원하게 하고, 인하여 나라 정승이 되게 하였는데, 요치淖齒나라와 함께 나라 땅을 나누어 소유하고자 하여 마침내 민왕湣王고리鼓里에서 시해하였다.
[史略 史評]荀子曰
[史略 사평史評]荀子가 말하였다.
國者 天下之利用也 人主者 天下之利勢也
“나라는 천하의 이로운 쓰임이고, 인주人主는 천하의 이로운 권세이다.
得道以持之 則大安也 大榮也 積美之源也 不得道以持之 則大危也 大累也 有之不如無之
를 얻어 이를 유지하면 크게 편안하고 크게 영화롭고 아름다움이 쌓이는 근원이며, 를 얻어 이를 유지하지 못하면 크게 위태롭고 크게 누가 되니, 있는 것이 없는 것만 못하다.
及其綦也하야는 索爲匹夫라도 不可得也 齊湣 是也니라
그 심함에 미쳐서는 필부匹夫가 되려 해도 될 수가 없으니, 나라 민왕湣王나라 헌왕獻王이 이들이다.”
○ 毅聞畫邑注+[釋義]括地志云 戟里城 在臨淄西北三十里하니 春秋棘邑也 又名畫邑이니 王蠋所居人王하고 令軍中하야 環畫邑三十里無入하고 使人請蠋한대 謝不往이어늘
악의樂毅화읍畫邑注+[釋義]화읍畫邑은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극리성戟里城임치臨淄 서북쪽 30리 지점에 있으니, 춘추시대春秋時代극읍棘邑이다. 또 화읍畫邑이라고도 이름하니, 왕촉王蠋이 살던 곳이다.” 하였다. 사람 왕촉王蠋이 어질다는 말을 듣고는 군중軍中에 명령하여 화읍畫邑 30리를 에워싸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시켜 왕촉王蠋을 초청하였으나 왕촉王蠋이 사양하고 가지 않았다.
燕人曰 不來 吾且屠邑注+[頭註] 殺也 殺其民 若屠六畜然也하리라 蠋曰 忠臣 不事二君이요 烈女二夫
나라 사람이 위협하기를 “오지 않으면 내 장차 고을을 도륙屠戮하겠다.”注+[頭註]는 죽임이니, 백성을 죽이기를 육축六畜(집에서 기르는 여섯 가지 가축인 소, 말, 양, 돼지, 개, 닭)을 도살하듯이 하는 것이다. 하니, 왕촉王蠋이 말하기를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烈女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齊王 不用吾諫故 退而耕於野러니
제왕齊王이 내 간언諫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물러나 들에서 농사짓고 있었는데,
國破君亡 吾不能存하고 而又欲劫之以兵하니
나라가 격파되고 군주가 망함에 내가 보존하지 못하였고 또 그대들이 군대로 위협하니,
吾與其不義而生으론 不若死라하고 遂經其頸而死하니라
내 의롭지 못하게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하고는 마침내 목을 매어 죽었다.
○ 燕師乘勝長驅하니 齊城러라
나라 군대가 승승장구하니, 나라 들이 모두 멀리서 기세만 보고도 달아나 무너졌다.
樂毅修整燕軍하야 禁止侵掠하고 求齊之逸民하야 顯而禮之注+[釋義]逸民者 節行超逸也 林少穎曰 逸 俊逸之逸이니 如俊民之義 非隱逸也 禮之 謂以禮遇之也하며 寬其賦斂하고 除其暴令하고 修其舊政하니 齊民 喜悅이라
악의樂毅나라 군대를 정돈하여 침략하는 것을 금지하고 나라의 일민逸民(뛰어난 인물)을 찾아 드러내어 예우하였으며,注+[釋義]일민逸民은 절행이 뛰어난 것이다. 임소영林少穎(林之奇)이 말하였다. “준일俊逸(재주가 뛰어남)의 이니, 준민俊民이라는 뜻과 같고 은일隱逸을 말한 것이 아니다. 예지禮之로써 대우함을 이른다.” 부역과 세금을 관대하게 하고 포악한 명령을 제거하고 옛 정사政事를 닦으니, 나라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祀桓公, 管仲於郊하고 表賢者之閭하고 封王蠋之墓하니 六月之間 注+[釋義]彼自歸伏曰下 又以兵威伏人曰下齊七十餘城하야 皆爲郡縣하다
환공桓公관중管仲교외郊外에서 제사하고 어진 자의 마을 문에 정표旌表하고 왕촉王蠋의 무덤을 봉분하니, 여섯 달 사이에 나라 70여 성을 항복시켜注+[釋義]저가 스스로 귀순하여 항복하는 것을 라고 하고, 또 군대의 위세로 남을 굴복시키는 것을 라고 한다. 모두 군현郡縣을 만들었다.
역주
역주1 : 민
역주2 [譯註]二周 : 東周와 西周를 이른다. 赧王이 미약하여 東周와 西周로 나뉘어 정사를 다스려서 각각 한 도읍에 거하였기 때문에 二周라 한 것이다. 西周의 王城은 지금의 河南이고, 東周의 鞏은 지금의 成周 洛陽이다.
역주3 [譯註]王悉起兵 : 赧王 30年條에는 31年條의 내용이 섞여 있는 바, ‘王悉起兵’ 이하부터 32年條 이전까지의 내용이 《資治通鑑》에는 赧王 31年條에 보인다.
역주4 : 보
역주5 : 뇨
역주6 [譯註]宋獻 : 宋나라 獻公으로, 이름은 偃이다. 獻公은 宋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齊나라 湣王에게 패망하였는 바, 獻은 시호이며 또 다른 시호는 康이다. 이 내용은 《荀子》 〈霸王篇〉에 보인다.
역주7 : 촉
역주8 : 경
역주9 [譯註]望風奔潰 : 望風은 바람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그 기세에 놀라 달아남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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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자] 30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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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자] 30년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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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병자] 30년 155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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