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竇武
注+[頭註]太后之父라, 陳蕃, 胡廣
으로 參錄尙書事
注+[頭註]三人을 謂之參이라하다
○ 初에 竇太后之立也에 陳蕃이 有力焉이러니 及臨朝에 政無大小히 皆委於蕃이라
蕃與竇武
로 同心戮力하야 以獎
注+[頭註]助也요 崇也라王室
하고 徵天下名賢李膺, 杜密, 尹勳, 劉瑜等
하야 皆列於朝廷
하야 與共參政事
하니 於是
에 天下之士 莫不延頸
注+[通鑑要解]延은 引也라하야 想望太平
호되 而中常侍曹節, 王甫等
이 共相朋結
하고 諂事太后
하야 太后信之
하니 蕃, 武疾之
러라
嘗共會朝堂할새 蕃이 私謂武曰 曹節, 王甫等이 自先帝時로 操弄國權하야 濁亂海內하니 今不誅之면 後必難圖라하니 武深然之어늘
會
에 有日食之變
이어늘 蕃
이 謂武曰 昔
에 蕭望之困一石顯
注+[釋義]元帝時에 宦官石顯이 誣譖望之하니 望之飮鴆自殺하니라하니 況今石顯數十輩乎
아
武乃白太后하야 誅曹節等이라호되 太后猶豫未忍이러라
曹節
이 召尙書
하야 脅使作詔版
注+[釋義]木簡爲之하니 其長이라 唐高宗時에 〈詔幷州〉 婦人〈年〉八十以上을 皆版授하니라 史炤曰 謂不加告命하고 以版策授之라하야 拜王甫爲黃門令
하고 持節捕收武等
하니 武不受詔
라
王甫將虎賁羽林等合千餘人하고 圍武하니 武自殺이어늘
梟首雒陽都亭하고 收捕宗親賓客姻屬하야 悉誅之하고 遷皇太后於南宮하니
曹節等이 竊弄神器하니 固天下所同疾이요 竇氏는 以至親으로 操重柄하야 招延耆德하야 相與協謀하니 勦除姦凶이 其勢易矣라
然而身敗功頹하야 貽國後患者는 幾事不密而禍成於猶豫也일새 豈不惜哉아
두무竇武注+[頭註]두무竇武는 태후太后의 아버지이다. ‧
진번陳蕃‧
호광胡廣을 나란히
녹상서사錄尙書事로 삼았다.
注+[頭註]3명을 참參이라 이른다.
○ 예전에 두태후竇太后가 황후皇后로 봉해질 때에 진번陳蕃이 공로가 있었는데, 두태후竇太后가 조정에 임어臨御하게 되자 크고 작은 정사를 가리지 않고 모두 진번陳蕃에게 맡겼다.
진번陳蕃이
두무竇武와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모아 왕실을 돕고
注+[頭註]장獎은 도움이고 높임이다. 천하의 유명한
현사賢士인
이응李膺‧
두밀杜密‧
윤훈尹勳‧
유유劉瑜 등을 불러서 모두 조정에 나열하여 함께 정사에 참여하게 하니, 이에 천하의 선비들이 목을 빼고
注+[通鑑要解]연延은 늘임이다. 태평성세太平盛世를 기대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나
중상시中常侍 조절曹節과
왕보王甫 등은 함께 서로 결탁하고 아첨으로써
태후太后를 섬겨서
태후太后가 이들을 신임하니,
진번陳蕃과
두무竇武가 이들을 미워하였다.
이들이 일찍이 함께 조정에 모여 있을 때에 진번陳蕃이 두무竇武에게 은밀히 이르기를 “조절曹節과 왕보王甫 등이 선제先帝(桓帝) 때부터 국가의 권력을 쥐고 농간하여 온 천하를 혼탁하고 어지럽게 하니, 지금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뒤에는 반드시 도모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니, 두무竇武가 깊이 옳게 여겼다.
이에
진번陳蕃이 크게 기뻐하여 손으로 자리를 밀치고(박차고)
注+[頭註]추推는 침이다. 일어났다.
마침
일식日食의 변고가 있자,
진번陳蕃이
두무竇武에게 이르기를 “옛날
소망지蕭望之는
석현石顯 한 명에게 곤궁을 당하였는데,
注+[釋義]원제元帝 때에 환관 석현石顯이 소망지蕭望之를 모함하니, 소망지蕭望之가 짐독鴆毒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더구나 지금
석현石顯과 같은 자가 수십 명에 이름에랴.
일식日食을 인하여 환관宦官들을 배척하고 파면하여 하늘의 변고를 막아야 한다.” 하였다.
두무竇武가 마침내 태후太后에게 아뢰고 조절曹節 등을 죽이려 하였으나 태후太后가 유예猶豫하고 차마 결행하지 못하였다.
조절曹節이
상서尙書를 불러 위협해서
조판詔版注+[釋義]조판詔版은 목간木簡으로 만드니, 길이가 1척尺 1촌寸이다. 당唐나라 고종高宗 때에 조령詔令을 내려 병주幷州의 80세 이상인 부인婦人에게 모두 판책版冊에 써서 군군郡君을 제수하게 하였다. 사소史炤가 말하기를 “조판詔版은 고명告命(사령장)을 가하지 않고 판책版冊에 써서 제수함을 이른다.” 하였다. 을 만들게 하여
왕보王甫를
황문령黃門令에 임명하고는
절節을 잡고
두무竇武 등을 체포하게 하니,
두무竇武가
조명詔命을 받지 않았다.
진번陳蕃을 붙잡아 북시옥北寺獄으로 보내어 살해하였다.
왕보王甫가 호분虎賁과 우림군羽林軍 등 도합 천여 명을 거느리고 두무竇武를 포위하니, 두무竇武가 자살하였다.
그의 머리를 낙양雒陽의 도정都亭에 효시梟示하고 그의 종친宗親과 빈객賓客과 인척姻戚들을 체포해서 모두 죽였으며 황태후皇太后를 남궁南宮으로 옮겼다.
이에 여러 소인小人들이 뜻을 얻고 사대부士大夫들이 모두 기운을 잃었다.
“조절曹節 등이 신기神器(천자의 자리)를 도둑질하여 희롱하니 진실로 천하 사람들이 함께 미워한 바이고, 두씨竇氏는 지친至親으로 중한 권세를 잡아 나이 많고 덕 있는 자들을 불러 맞이해서 서로 더불어 함께 도모하였으니 간흉姦凶을 제거하기가 형세상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실패하고 공이 무너져서 나라에 후환을 끼친 것은 기밀機密의 일이 치밀하지 못하고 유예하여 결단하지 못한 데서 화禍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