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1)

통감절요(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午]三十六年이라
36년(임오 B.C.279)
秦王 會趙王於할새 王與趙王으로 飮酒酣
진왕秦王조왕趙王하외河外민지澠池에서 회맹會盟할 적에 진왕秦王조왕趙王과 함께 술을 마셔 취하였다.
秦王 請趙王鼓瑟注+[頭註] 二十五絃이니 伏羲所作이라 趙人善瑟故 秦王請鼓之하니라한대 趙王 鼓之어늘 藺相如復請秦王擊缶注+[釋義] 盛酒瓦器 秦俗 擊之以節樂이라 爾雅云 盎 謂之缶라한대 盆也한대 秦王 不肯이라
진왕秦王조왕趙王에게 비파를 탈 것을 청하자注+[頭註]비파는 스물다섯 개의 줄이 있는 현악기이니, 복희씨伏羲氏가 만든 것이다. 나라 사람이 비파를 잘 탔기 때문에 진왕秦王이 비파를 타기를 청한 것이다. 조왕趙王이 비파를 타니, 인상여藺相如가 다시 진왕秦王에게 질장구를 칠 것을 청했으나注+[釋義]는 술을 담는 질그릇이니, 나라 풍속에 이것을 두드려 음악의 장단을 맞추었다. 《이아爾雅》에 이르기를 “을 일러 라 한다.” 하였는데, 에 “동이이다.” 하였다. 진왕秦王은 치려 하지 않았다.
相如曰 五步之內注+[釋義]禮記 八尺爲步 今以周尺六尺四寸爲步 此言五步之內 蓋言至近也 리이다 左右欲刃相如어늘
인상여藺相如가 말하기를 “5注+[釋義]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옛날에는 8척을 1보라 하였고, 지금은 주척周尺으로 6척 4촌을 1보라 한다.” 하였다. 여기에서 5보의 안이라고 말한 것은 지극히 가까움을 이른다.에서 신이 목의 피를 대왕에게 뿌리겠습니다.” 하니, 좌우左右의 신하들이 인상여藺相如를 칼로 찌르고자 하였다.
相如張目하니 左右皆靡
인상여藺相如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으니,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흩어졌다.
하야 爲一擊缶하고 罷酒하다
진왕秦王이 기뻐하지 않으면서 조왕趙王을 위하여 한 번 질장구를 치고 술자리를 파하였다.
秦終不能有加於趙하고 趙人亦盛爲之備하니 秦不敢動이러라
나라는 끝내 나라에 침략을 가하지 못하였고 나라 사람들도 성대히 대비하니, 나라가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다.
趙王 歸國하야 以藺相如爲上卿하니 位在廉頗之右
조왕趙王이 서울로 돌아와 인상여藺相如상경上卿으로 삼으니, 지위가 염파廉頗의 위에 있었다.
廉頗曰 我見相如하면 必辱之하리라 相如聞之하고 每朝 常稱病하고 不欲爭列하야
염파廉頗가 말하기를 “내 인상여藺相如를 만나면 반드시 모욕을 주겠다.” 하니 인상여藺相如가 이 말을 듣고 매번 조회할 때마다 항상 병을 칭탁하여 반열班列을 다투고자 하지 않았다.
出而望見이면 輒引車避匿하니 其舍人注+[頭註]親近左右之通稱也 後遂以爲親屬官號하니라 皆以爲恥
그리하여 나가다가 염파廉頗가 멀리 보이면 번번이 수레를 이끌고 피하여 숨으니, 사인舍人注+[頭註]사인舍人좌우左右에 가까이 있는 사람의 통칭인데, 후세에는 마침내 친속親屬관명官名으로 삼았다. 이 수치스럽게 여겼다.
相如曰 子視廉將軍컨대 孰與秦王 曰 不若이니이다
인상여藺相如가 말하기를 “그대가 보기에 염장군廉將軍진왕秦王이 누가 더 무서운가?” 하니, “진왕秦王만 못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相如曰 夫以秦王之威로도 而相如廷叱之하고 辱其群臣하니 相如雖駑 獨畏廉將軍哉
인상여藺相如가 말하기를 “진왕秦王의 위엄에도 내가 조정에서 그를 꾸짖고 여러 신하들을 모욕하였으니, 내가 비록 노둔하나 유독 염장군廉將軍을 두려워하겠는가?
顧吾念之컨대 彊秦之所以不敢加兵於趙者 徒以吾兩人在也
다만 내가 생각건대 강한 나라가 감히 우리 나라에 침략을 가하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우리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今兩虎共鬪 其勢不俱生이니 吾所以爲此者 先國家之急而後私讐也로라
이제 두 마리 범이 함께 싸우면 그 형세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니,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국가의 위급함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원수를 뒤로 하는 것이다.” 하였다.
廉頗聞之하고 肉袒負荊注+[頭註] 楚也 可以爲鞭이니 蓋令其鞭己以謝罪也하야 至門謝罪하고 遂 爲之交注+[釋義] 斷也 崔浩曰 言交契深重하야 要齊生死하야 雖斷頸而無悔 是爲刎頸之交하니라
염파廉頗가 이 말을 듣고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지고 注+[頭註]은 가시나무이니 채찍을 만들 수 있는 바, 자신을 채찍질하게 하여 사죄謝罪한 것이다. 인상여藺相如의 문(집)에 이르러 사죄하고 마침내 문경지교刎頸之交注+[釋義]은 자름이다. 최호崔浩가 말하였다. “교분이 깊고 중해서 생사를 함께 하고자 하여 비록 목을 베이더라도 후회함이 없음을 이르니, 이것을 문경지교刎頸之交라 한다.” 를 맺었다.
龜山楊氏曰
구산양씨龜山楊氏(楊時)가 말하였다.
趙社稷安危之機 不在璧之存亡이라
나라 사직社稷의 편안하고 위태로운 기틀은 벽옥璧玉존망存亡에 달려 있지 않았다.
夫以小事大 古人有以皮幣犬馬珠玉而不得免者注+[頭註]謂太王事 見孟子하니라어든 況一璧乎
약소국으로서 강대국을 섬길 때에 옛사람은 짐승의 가죽과 폐백과 개와 말과 주옥을 가지고 섬겼어도 위태로움을 면할 수 없는 경우가 있었는데,注+[頭註]면할 수 없다는 것은 나라 태왕太王의 일을 이르니,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에 보인다. 하물며 한 벽옥에 있어서이겠는가.
雖與之라도 可也
비록 이것을 나라에 준다 해도 괜찮은 것이다.
相如計不出此라가 不三數年 趙卒有覆軍陷城之禍者하니 徒以璧爲之祟也
그런데 인상여藺相如는 이러한 계책을 내지 않았다가 수삼 년이 못되어 나라는 끝내 군대가 전복되고 성이 함락되는 화가 있었으니, 이는 한갓 이 벽옥이 빌미가 된 것이다.
然則全璧歸趙 何益哉
그렇다면 벽옥을 온전히 보전하여 나라로 돌아온 것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至於澠池之會하야는 則其危又甚矣
민지澠池회맹會盟에 이르러서는 그 위태로움이 더 심하였다.
相如智勇 不足重趙하야 使秦不敢惴注+[頭註] 憂懼也 言秦不敢使趙憂懼也하고 乃欲以頸血濺之하니 豈孔子所謂暴虎憑河하야 死而無悔者歟
인상여藺相如의 지혜와 용맹이 나라를 중하게 만들어서 나라가 〈나라를〉 감히 두려워하게 하지 못하고는注+[頭註]는 근심하고 두려워함이니, 나라가 감히 나라로 하여금 〈나라를〉 두려워하고 근심하게 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마침내 목의 피를 뿌리고자 하였으니, 어찌 공자孔子의 이른바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고 맨몸으로 황하黃河를 건너다가 죽어도 후회함이 없다.’는 자가 아니겠는가.”
○ 是時 齊地皆屬燕호되 獨莒, 卽墨 未下
이때에 나라 땅이 모두 나라에 속하였으나 오직 즉묵卽墨만이 항복하지 않았다.
樂毅圍卽墨하니 卽墨大夫出戰而死어늘
악의樂毅즉묵卽墨을 포위하니 즉묵대부卽墨大夫가 나와 싸우다가 죽었다.
卽墨人曰 安平之戰 田單宗人注+[頭註]田單 臨淄市掾이니 齊之踈族이라 宗人 官名也 周禮 有都宗人, 家宗人하니 掌禮與其衣服宮室車旗之禁令이라 以鐵籠得全注+[釋義]田單 使其宗人으로 以鐵籠傅車轊 音附 音衛 傅者 截其軸하야 與轂齊하야 以鐵鍱傅軸末하고於鐵中하야 以制轂하야 堅而易進也 車軸頭也[頭註]得全 以鐵籠傅車轊 及城潰 人爭門出할새 皆以軸折被擒이로되 獨單宗人 得免하야 奔卽墨하니라하니 多智習兵이라하고 因共立以爲將하야 以拒燕하다
즉묵卽墨사람들이 말하기를 “안평安平의 전투에서 전단田單종인宗人만이注+[頭註]전단田單임치臨淄 시장의 아전이니, 나라의 먼 왕족王族이었다. 종인宗人관명官名이다. 《주례周禮》에 도종인都宗人가종인家宗人이 있는 바, 의복衣服궁실宮室거기車旗금령禁令을 맡았다. 철롱鐵籠으로 온전하였으니,注+[釋義]田單이 종인宗人으로 하여금 철롱鐵籠을 수레바퀴 축의 끝 부분에 붙이게 한 것이다. 에 “는 음이 부이고 는 음이 위이다. 는 수레바퀴 축을 잘라 수레바퀴통과 똑같게 하고 쇳조각을 수레바퀴 축의 끝 부분에 붙인 다음 빗장을 철롱鐵籠 가운데에 걸어서 바퀴통을 제어하여 견고하고 나아가기 쉽게 한 것이다. 는 차축의 끝 부분이다.” 하였다. [頭註]得全은 철롱鐵籠을 차축에 붙인 것이니, 이 함락되자 사람들이 다투어 성문을 나올 적에 모두 차축이 부러져 사로잡혔으나 유독 전단田單종인宗人만은 죽음을 면하여 즉묵卽墨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이는 지혜가 많고 병법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고는 인하여 함께 세워서 장군으로 삼아 나라에 항거하였다.
○ 樂毅圍二邑三年 未下
악의樂毅즉묵卽墨 두 고을을 포위한 지 3년이 되었는데도 함락하지 못하니,
讒之於燕昭王曰 樂毅 智謀過人하야 伐齊呼吸之間 剋七十餘城하고 今不下者兩城爾
혹자가 나라 소왕昭王에게 참소(모함)하기를 “악의樂毅지모智謀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서 나라를 정벌하여 숨쉬는 사이(잠깐 동안)에 70여 개의 성을 이기고 지금 함락시키지 못한 것은 두 성뿐이니,
非其力不能拔이라 欲久仗兵威하야 以服齊人하야 南面而王爾라하다
그 힘이 함락시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군대의 위엄에 의지하여 나라 사람들을 복종시켜 남면南面하여 왕 노릇 하려는 것입니다.” 하였다.
昭王 於是 置酒大會하고 引言者하야 斬之하고 遣國相하야 立樂毅爲齊王하니 毅惶恐不受하고 拜書하야 以死自誓
소왕昭王이 이에 술자리를 베풀어 크게 사람들을 모으고, 참소한 자를 끌어내어 목을 베고는 국상國相을 보내어 악의樂毅를 세워 제왕齊王으로 삼으니, 악의樂毅가 황공하여 받지 않고 글을 올려 죽음으로써 스스로 맹세하였다.
由是 齊人 服其義하고 諸侯畏其信하야 莫敢復有謀者러라
이 때문에 나라 사람들은 그 의리에 감복하고 제후諸侯들은 그의 신의를 두려워하여 감히 다시는 도모하는 자가 없었다.
頃之 昭王薨하고 惠王立하니 惠王 自爲太子時 嘗不快於樂毅러라
얼마 후 소왕昭王이 죽고 혜왕惠王이 즉위하니, 혜왕惠王은 태자가 되었을 때부터 일찍이 악의樂毅를 좋게 여기지 않았다.
田單 聞之하고 乃縱反間注+[釋義]孫子兵法曰 反間者 因敵間而用之也 凡軍之所欲擊 城之所欲攻 人之所欲殺 必先知其守將左右謁者(間)[門]者舍人之姓名하고 令吾之間으로 必索敵間之來間我者하야 因而利〈之〉하고 導〈而〉舍之 故反間 可得用也라하니라曰 樂毅與燕新王으로 有隙하야 畏誅而不敢歸하고 以伐齊爲名하니 齊人 唯恐他將來 卽墨殘矣라하다
전단田單은 이 말을 듣고 마침내 반간反間을 놓아注+[釋義]손자병법孫子兵法》에 말하였다. “반간反間은 적의 첩자를 인하여 이용하는 것이니, 무릇 군대를 공격하고자 하고 성을 공략하고자 하고 사람을 죽이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수장守將좌우左右 알자謁者와 문지기와 사인舍人성명姓名을 알아낸 다음 반드시 우리측 첩자로 하여금 적국의 첩자로서 우리나라에 와서 첩자 노릇 하는 자를 찾아내어 우리 쪽에 유리하게 이용하고 유도하여 놓아 보낸다. 그러므로 반간反間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말하기를 “악의樂毅나라의 새로 즉위한 왕과 틈이 있어서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감히 돌아가지 못하고 나라를 정벌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으니, 나라 사람들은 행여 다른 장수가 오면 즉묵卽墨이 잔파할까 두려워한다.” 하였다.
燕王已疑러니 得齊反間하고 乃使騎劫注+[釋義]姓名也代將하고 而召樂毅한대
연왕燕王이 이미 악의樂毅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나라의 반간反間을 얻고는 마침내 기겁騎劫注+[釋義]기겁騎劫성명姓名이다. 으로 하여금 대신 장수가 되게 하고 악의樂毅를 불렀다.
毅遂犇(奔)趙하니 燕將士由是 憤惋不和러라
이에 악의樂毅나라로 도망가니, 나라 장병들이 이로 말미암아 분해 하며 불화하였다.
田單 乃身操 版注+[釋義]與臿通하니 鍫也하야 與士卒分功하고 妻妾 編於行伍注+[頭註]二十五人爲行이요 伍人爲伍之間하고 盡散飮食하야 饗士하며 令甲卒皆伏하고 使老弱女子 乘城注+[釋義]登城而守也約降하니 燕軍益懈
전단田單이 마침내 몸소 판자와 삽을 잡고注+[釋義]과 통하니 가래이다. 사졸들과 일을 나누고, 처첩妻妾항오行伍의 사이에 편입시키고注+[頭註]25명을 이라 하고 5명을 라 한다. 음식을 모두 흩어 군사들을 먹이며, 갑옷 입은 병사들을 모두 매복시키고 노약자와 여자들로 하여금 에 올라가注+[釋義]승성乘城은 성에 올라가서 지키는 것이다. 항복할 것을 약속하게 하니, 나라 군사들이 더욱 해이해졌다.
田單 乃收城中하야 得牛千餘하야 爲絳繒衣호되 畫以五采龍文하고 束兵刃於其角하고 而灌脂束葦於其尾하야 燒其端하고 鑿城數十穴하야 夜縱牛하고 壯士五千人 隨其後하니
전단田單이 마침내 안에서 거두어 천여 마리의 소를 얻어서 붉은 비단옷을 만들어 입히되 오채五采와 용 무늬를 그리고 소의 뿔에 병기와 칼날을 묶어 매고는 기름을 부은 갈대를 소꼬리에 묶어 그 끝에 불을 붙이고, 에 수십 군데 구멍을 뚫은 다음 밤에 소를 풀어놓고 장사 5천 명이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
牛尾熱하야 怒而奔燕軍이라
소는 꼬리가 뜨거워지자 성이 나서 나라 군대로 달려갔다.
燕軍 大驚視牛하니 皆龍文이라
나라 군사들이 크게 놀라 소를 바라보니 모두 용의 문채였다.
所觸 盡死傷이요 而城中 鼓譟從之하고 老弱 皆擊銅器爲聲하니 聲動天地
소에게 받쳐 모두 죽거나 부상을 당하였으며, 안에서는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소의 뒤를 따르고 노약자들이 모두 구리 그릇을 두드려 소리를 내니,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燕軍 大敗走어늘 齊人 殺騎劫하고 追亡 逐注+[頭註]逃亡者追之하고 奔北者逐之 北方 幽陰之地 軍敗曰北하니 所過城邑 皆叛燕하고 復爲齊하야 齊七十餘城 皆復焉이라
나라 군사들이 대패하여 도망하자, 나라 사람들은 기겁騎劫을 죽이고 도망하는 자를 추격하고 패주敗走하는 자를 쫓아가니,注+[頭註]추망축북追亡逐北는 도망가는 자를 추격하고, 패하여 달아나는 자를 쫓는 것이다. 북방北方은 그윽한 음지陰地이기 때문에 군대가 패주하는 것을 라 한다. 지나가는 성읍城邑들이 모두 나라를 배반하고 다시 나라가 되어서 나라 70여 성이 모두 수복되었다.
乃迎襄王於莒하야 入臨淄하니 封田單하야 爲安平君하다
마침내 양왕襄王에서 맞이하여 임치臨淄로 들어오니, 전단田單을 봉하여 안평군安平君을 삼았다.
○ 田單 將攻狄할새 往見魯仲連한대 仲連曰 將軍攻狄 不能下也리라
전단田單(북쪽 오랑캐)을 공격하려 할 적에 노중련魯仲連을 찾아가서 만나 보니, 노중련魯仲連이 말하기를 “장군이 을 공격함에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田單曰 臣 以卽墨破亡餘卒 破萬乘之燕하고 復齊之墟어늘 今攻狄而不下 何也오하고 上車弗謝而去하다
전단田單이 말하기를 “신이 즉묵卽墨의 패망하고 남은 병졸로 만승萬乘나라를 격파하고 나라의 옛 땅을 수복하였는데 지금 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지 못한다고 함은 어째서인가?” 하고, 수레에 올라 하직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갔다.
遂攻狄하야 三月不克하니 田單 乃懼하야 問魯仲連한대
마침내 을 공격하여 석 달이 되어도 이기지 못하니, 전단田單이 비로소 두려워하여 노중련魯仲連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仲連曰 將軍之在卽墨 坐則織蕢하고 立則杖鍤하야 爲士卒倡하니 當此之時하야 將軍 有死之心하고 士卒 無生之氣
노중련魯仲連이 대답하기를 “장군이 즉묵卽墨에 있을 적에는 앉으면 삼태기를 짜고 서면 삽을 잡아 사졸들의 창도가 되었으니, 이때를 당하여 장군은 죽으려는 마음이 있었고 사졸士卒들은 살려는 기운이 없었다.
所以破燕也어니와 將軍 東有夜(掖)邑注+[釋義]益封田單以夜邑萬戶하니 今益都萊州掖縣 是也之奉하고 西有淄上之娛하고
이 때문에 나라를 격파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장군이 동쪽으로는 액읍掖邑注+[釋義]전단田單에게 액읍夜邑 만 호를 더 봉해 주니, 지금의 익도益都 내주萊州 액현掖縣이 이곳이다. 의 받듦이 있고 서쪽으로는 치수淄水 가의 즐거움이 있고
黃金橫帶而騁乎淄, 注+[釋義] 音繩이라 淄水 出淄州淄川縣하고 澠水 出益都臨淄縣이라之間하야 有生之樂하고 無死之心하니 所以不勝也니라
황금을 띠에 두르고 치수淄水승수澠水注+[釋義]은 음이 승이다. 치수淄水치주淄州 치천현淄川縣에서 발원하고 승수澠水익도益都 임치현臨淄縣에서 발원한다. 사이를 달려서 사는 즐거움이 있고 죽으려는 마음이 없으니, 이 때문에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다.
田單曰 單之有心 先生志之矣로다하고 明日 乃厲(勵)氣循城하야 立於矢石注+[頭註]越范蠡始制石砲하니 重十二斤이라 爲機以發하면 行三百步之所하야 援枹鼓之하니 狄人 乃下하다
전단田單이 말하기를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선생이 알았다.” 하고는 다음날 마침내 기운을 가다듬어 성을 순행하여 화살과 돌이 쏟아지는注+[頭註]나라 범려范蠡가 처음으로 석포石砲를 만드니, 무게가 12이었다. 틀을 만들어 발사하면 300를 날아갔다. 곳에 서서 북채를 당겨 북을 치니, 적인狄人이 마침내 항복하였다.
역주
역주1 [譯註]河外澠池 : 河外는 河內와 상대하여 말한 것으로, 옛날에 黃河 以北의 濟源부터 修武까지의 일대를 河內라 하고, 黃河 以南의 陝州부터 洛陽 以西까지를 河外라 하였다.
역주2 : 민
역주3 [譯註]請得以頸血濺大王 : 자신의 목을 찔러 그 피를 대왕에게 뿌리겠다는 것은 자신도 죽고 아울러 상대방도 죽일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역주4 : 질
역주5 [譯註]王不豫 : 《資治通鑑》에는 ‘王不懌’으로 되어 있는데, 朝鮮朝 中宗의 諱가 懌이므로 피하여 豫자로 바꾼 것이다.
역주6 舍人 : 지금의 개인비서와 같은 것으로 戰國時代에 大夫들은 家臣인 舍人을 두었는데, 뒤에는 정식 관직이 되었다. 朝鮮朝에도 議政府의 4품인 舍人이 있었다.
역주7 刎頸 : 문경
역주8 舍人 : 지금의 개인비서와 같은 것으로 戰國時代에 大夫들은 家臣인 舍人을 두었는데, 뒤에는 정식 관직이 되었다. 朝鮮朝에도 議政府의 4품인 舍人이 있었다.
역주9 : 할
역주10 : 삽
역주11 : 배
역주12 : 승
동영상 재생
1 [임오] 36년 215
동영상 재생
2 [임오] 36년 475
동영상 재생
3 [임오] 36년 109
동영상 재생
4 [임오] 36년 428
동영상 재생
5 [임오] 36년 417
동영상 재생
6 [임오] 36년 297
동영상 재생
7 [임오] 36년 478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