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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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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申]二十一年이라 〈燕主慕容寶永康元이요 秦皇初三이요 魏皇始元年이요 涼龍飛元年이라
태원太元 21년(병신 396) - 연주燕主 모용보慕容寶영강永康 원년元年이고, 나라 황초皇初 3년이고, 나라 황시皇始 원년元年이고, 나라 용비龍飛 원년元年이다. -
四月 燕主垂卒注+[通鑑要解]垂憤太子寶 敗於魏而還하야 引兵하고 出魏不意하야破之하다 過燕軍大敗處할새 軍士慟哭하야 聲振山谷하니 垂慙憤嘔血死云云이라하고 太子寶卽位하다
4월에 연주燕主 모용수慕容垂가 죽고注+[通鑑要解]연주燕主 모용수慕容垂태자太子 모용보慕容寶나라에게 패배하고 돌아온 것을 분하게 여겨 군대를 이끌고 불시에 나라로 출병하여 평성平城을 습격하여 격파하였다. 나라 군대가 크게 패배한 곳(參合坡)을 지날 때에 군사들이 통곡하여 그 소리가 산골짝에 진동하니, 모용수慕容垂가 부끄러워하고 분하게 여겨 피를 토하고 죽었다. 태자太子 모용보慕容寶가 즉위하였다.
○ 六月 三河王呂光 卽天王位하야 國號 大涼이라하고 以世子紹 爲太子하다
○ 6월에 삼하왕三河王 여광呂光천왕天王에 즉위하여 국호를 대량大涼이라 하고, 세자世子 여소呂紹태자太子로 삼았다.
○ 魏群臣 勸魏王珪하야 稱尊號어늘 珪始建天子旌旗하고 出警入蹕注+[頭註]天子出則稱警하니 示戒肅也 入則言蹕하니 所以止行人淸道也 又示出入皆有蹕하니 하며 改元皇始하다
나라의 신하들이 위왕魏王 탁발규拓跋珪에게 권하여 존호尊號를 칭하게 하자, 탁발규拓跋珪가 처음으로 천자天子정기旌旗를 세우고 나갈 때 경계하고 들어올 때 벽제辟除하며注+[頭註]천자天子가 나갈 때에는 이라 칭하니 경계하고 엄숙함을 보이는 것이요, 들어올 때에는 이라 칭하니 행인行人들을 막고 길을 치움을 보이는 것이다. 나갈 때 경계하고 들어올 때 벽제辟除함은 또 천자天子가 나가고 들어올 때에 모두 벽제함을 보인 것이니, 출경입필出警入蹕호문互文이다. 황시皇始라고 개원改元하였다.
○ 九月 帝崩注+[通鑑要解]帝醉하야할새 貴人 使婢以被蒙面而弑之하고 賂左右하야 曰因魘暴崩이라하다하다
○ 9월에 황제(司馬曜)가 승하하였다.注+[通鑑要解]효무제孝武帝가 술에 취하여 잘 적에 귀인貴人이 계집종을 시켜 황제의 얼굴을 덮어씌워 질식시켜 시해하고는 좌우左右를 뇌물로 매수하고 이르기를 “가위에 눌려 갑자기 하였다.”고 하였다.
○ 魏王珪 潛自晉陽으로 開韓信故道注+[頭註]韓信擊趙故道하고 自井으로 趨中山하니 自常山以東으로 守宰或走或降하야 諸郡縣 皆附於魏호되 惟中山, 鄴, 信都三城 爲燕守하다
위왕魏王 탁발규拓跋珪가 몰래 진양晉陽으로부터 한신韓信의 옛길注+[頭註]옛길은 한신韓信나라를 공격했던 옛길이다. 을 열고 정형井陘으로부터 중산中山으로 달려가니, 상산常山 이동 지방의 수령들이 혹은 달아나고 혹은 항복하여 모든 군현郡縣들이 나라에 붙었으나 오직 중산中山업성鄴城신도信都 세 성만이 나라를 위하여 지켰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武帝卽位 而能委任謝安, 謝玄等이라
무제武帝는 즉위하자 사안謝安사현謝玄 등에게 위임하였다.
하고 淝水一戰 大敗苻秦之師
그러므로 신정新亭의 몇 마디 말로 환온桓溫의 기운을 충분히 꺾었고, 비수淝水의 전투에서 부진苻秦의 군대를 크게 무찌를 수 있었다.
是以 上下輯睦하야 晉室 似有生意矣
이 때문에 상하上下가 화목하여 나라 황실이 생기가 도는 듯 하였다.
이나 帝方溺於酒, 荒于色하야 奏凱方旋 驕氣掬面하고 曾不閱時 遽用讒言하야 하야 遂使王綱不振하고 恩威不立이라
그러나 무제武帝가 한창 술에 빠지고 여색에 빠져 개선가凱旋歌를 부르며 돌아온 뒤에 교만한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였으며, 채 한 철이 지나기도 전에 갑자기 참소하는 말을 따라 어진 보필을 멀리 물리쳐서 제왕의 기강이 떨쳐지지 못하고 은혜와 위엄이 바로 서지 못하였다.
道子荒于朝政하고 國寶彙以小人하니 拜授之榮 初非天旨 鬻刑之貨 旁午權門하야 毒賦年滋하고 愁民歲廣이라
그리하여 사마도자司馬道子가 조정의 정사를 게을리 하고 왕국보王國寶가 소인들을 모으니, 관직을 제수하는 영화가 애당초 천자天子의 뜻이 아니었고 형벌을 면제해 주는 대가로 받은 재화財貨권문세가權門勢家에 몰려들어서 가혹한 세금이 해마다 늘어나고 근심하는 백성들이 해마다 많아졌다.
內殿嚴邃 雜處浮屠하고 請修孔廟 䟽入不報하고
그윽하고 깊숙한 내전內殿에 승려들이 뒤섞여 거처하였고 공자孔子의 사당을 수리하자고 청하였으나 답하지 않았다.
晩年 하고 하니 晉祚至此 蓋已亡而未滅耳니라
만년晩年장성長星이 변고를 알렸음에도 경계하여 깨닫지 못하였고 방위房幃의 독한 화가 희롱하는 말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나라의 국운國運은 여기에 이르러 이미 망하였으나 아직 사라지지만 않았을 뿐이다.”
역주
역주1 平城 : 당시 魏나라의 도성이었다.
역주2 互文 : 같은 글을 두 번 쓰지 않고 생략하여 한 가지만 기록하는 것으로 나갈 때에도 警‧蹕을 하고 들어올 때에도 警‧蹕을 하는데, 각각 나누어 한 가지만 써서 出警入蹕이라 한 것을 이른다.
역주3 : 형
역주4 新亭數語 足折桓溫之氣 : 桓溫이 장차 晉나라 황실을 차지하고자 하여 新亭에 이르러 호위병을 크게 진열하고 謝安과 王坦之를 불러 그 자리에서 살해하고자 하였다. 謝安이 이때 桓溫을 만나 보고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諸侯가 道가 있으면 지키는 것이 사방의 이웃 나라에 있다.’고 하였는데, 明公은 어찌 굳이 장벽 뒤에 사람을 숨겨 두어 지키게 한단 말인가?” 하였는 바, 이 내용은 앞의 寧康 元年(373) 2月條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5 疎退賢輔 : 王國寶는 王坦之의 아들이었는데, 謝安이 그 사람됨을 미워하여 매양 억제하고 등용하지 않으니, 謝安을 원망하였다. 이에 王國寶가 會稽王 司馬道子에게 謝安을 참소하여 황제에게 이간질하니, 황제가 점점 謝安을 멀리하였다.
역주6 長星告變 猶不警悟 : 長星은 彗星의 일종으로 兵亂 등 재앙을 예고한다고 알려졌다. 이때 長星이 나타나자, 황제는 이를 싫어하여 華林園에서 술잔을 들고 축수하기를 “長星이 나에게 한 잔 술을 권하니, 예로부터 어찌 萬年 天子가 있겠는가.” 하였다.
역주7 房幃烈禍 起自戲言 : 房幃는 휘장을 친 宮中을 이른다. 張貴人은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後宮 중에 총애가 으뜸이었다. 황제가 취중에 희롱하여 말하기를 “너는 나이로 보면 마땅히 폐출해야 한다.” 하니, 張貴人이 이를 원망하여 계집종을 시켜 황제가 술에 취했을 때에 황제의 얼굴을 덮어씌워 시해하였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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