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申]二十一年이라 〈燕主慕容寶永康元이요 秦皇初三이요 魏皇始元年이요 涼龍飛元年이라〉
四月
에 燕主垂卒
注+[通鑑要解]垂憤太子寶 敗於魏而還하야 引兵하고 出魏不意하야 襲破之하다 過燕軍大敗處할새 軍士慟哭하야 聲振山谷하니 垂慙憤嘔血死云云이라하고 太子寶卽位
하다
○ 六月에 三河王呂光이 卽天王位하야 國號를 大涼이라하고 以世子紹로 爲太子하다
○ 魏群臣
이 勸魏王珪
하야 稱尊號
어늘 珪始建天子旌旗
하고 出警入蹕注+[頭註]天子出則稱警하니 示戒肅也요 入則言蹕하니 所以止行人淸道也라 又示出入皆有蹕하니 耳라하며 改元皇始
하다
○ 九月
에 帝崩
注+[通鑑要解]帝醉하야 寢할새 貴人이 使婢以被蒙面而弑之하고 賂左右하야 曰因魘暴崩이라하다하다
○ 魏王珪 潛自晉陽
으로 開韓信故道
注+[頭註]韓信擊趙故道라하고 自井
으로 趨中山
하니 自常山以東
으로 守宰或走或降
하야 諸郡縣
이 皆附於魏
호되 惟中山, 鄴, 信都三城
이 爲燕守
하다
然
이나 帝方溺於酒, 荒于色
하야 奏凱方旋
에 驕氣掬面
하고 曾不閱時
에 遽用讒言
하야 하야 遂使王綱不振
하고 恩威不立
이라
道子荒于朝政하고 國寶彙以小人하니 拜授之榮이 初非天旨요 鬻刑之貨 旁午權門하야 毒賦年滋하고 愁民歲廣이라
內殿嚴邃에 雜處浮屠하고 請修孔廟에 䟽入不報하고
晩年
에 하고 하니 晉祚至此
에 蓋已亡而未滅耳
니라
태원太元 21년(병신 396) - 연주燕主 모용보慕容寶의 영강永康 원년元年이고, 진秦나라 황초皇初 3년이고, 위魏나라 황시皇始 원년元年이고, 양涼나라 용비龍飛 원년元年이다. -
4월에
연주燕主 모용수慕容垂가 죽고
注+[通鑑要解]연주燕主 모용수慕容垂는 태자太子 모용보慕容寶가 위魏나라에게 패배하고 돌아온 것을 분하게 여겨 군대를 이끌고 불시에 위魏나라로 출병하여 평성平城을 습격하여 격파하였다. 연燕나라 군대가 크게 패배한 곳(參合坡)을 지날 때에 군사들이 통곡하여 그 소리가 산골짝에 진동하니, 모용수慕容垂가 부끄러워하고 분하게 여겨 피를 토하고 죽었다. 태자太子 모용보慕容寶가 즉위하였다.
○ 6월에 삼하왕三河王 여광呂光이 천왕天王에 즉위하여 국호를 대량大涼이라 하고, 세자世子 여소呂紹를 태자太子로 삼았다.
○
위魏나라의 신하들이
위왕魏王 탁발규拓跋珪에게 권하여
존호尊號를 칭하게 하자,
탁발규拓跋珪가 처음으로
천자天子의
정기旌旗를 세우고 나갈 때 경계하고 들어올 때
벽제辟除하며
注+[頭註]천자天子가 나갈 때에는 경警이라 칭하니 경계하고 엄숙함을 보이는 것이요, 들어올 때에는 필蹕이라 칭하니 행인行人들을 막고 길을 치움을 보이는 것이다. 나갈 때 경계하고 들어올 때 벽제辟除함은 또 천자天子가 나가고 들어올 때에 모두 벽제함을 보인 것이니, 출경입필出警入蹕은 호문互文이다. 황시皇始라고
개원改元하였다.
○ 9월에 황제(司馬曜)가 승하하였다.
注+[通鑑要解]효무제孝武帝가 술에 취하여 잘 적에 귀인貴人이 계집종을 시켜 황제의 얼굴을 덮어씌워 질식시켜 시해하고는 좌우左右를 뇌물로 매수하고 이르기를 “가위에 눌려 갑자기 붕崩하였다.”고 하였다.
○
위왕魏王 탁발규拓跋珪가 몰래
진양晉陽으로부터
한신韓信의 옛길
注+[頭註]옛길은 한신韓信이 조趙나라를 공격했던 옛길이다. 을 열고
정형井陘으로부터
중산中山으로 달려가니,
상산常山 이동 지방의 수령들이 혹은 달아나고 혹은 항복하여 모든
군현郡縣들이
위魏나라에 붙었으나 오직
중산中山과
업성鄴城과
신도信都 세 성만이
연燕나라를 위하여 지켰다.
“무제武帝는 즉위하자 사안謝安과 사현謝玄 등에게 위임하였다.
그러므로 신정新亭의 몇 마디 말로 환온桓溫의 기운을 충분히 꺾었고, 비수淝水의 전투에서 부진苻秦의 군대를 크게 무찌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상하上下가 화목하여 진晉나라 황실이 생기가 도는 듯 하였다.
그러나 무제武帝가 한창 술에 빠지고 여색에 빠져 개선가凱旋歌를 부르며 돌아온 뒤에 교만한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였으며, 채 한 철이 지나기도 전에 갑자기 참소하는 말을 따라 어진 보필을 멀리 물리쳐서 제왕의 기강이 떨쳐지지 못하고 은혜와 위엄이 바로 서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사마도자司馬道子가 조정의 정사를 게을리 하고 왕국보王國寶가 소인들을 모으니, 관직을 제수하는 영화가 애당초 천자天子의 뜻이 아니었고 형벌을 면제해 주는 대가로 받은 재화財貨가 권문세가權門勢家에 몰려들어서 가혹한 세금이 해마다 늘어나고 근심하는 백성들이 해마다 많아졌다.
그윽하고 깊숙한 내전內殿에 승려들이 뒤섞여 거처하였고 공자孔子의 사당을 수리하자고 청하였으나 답하지 않았다.
만년晩年에 장성長星이 변고를 알렸음에도 경계하여 깨닫지 못하였고 방위房幃의 독한 화가 희롱하는 말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진晉나라의 국운國運은 여기에 이르러 이미 망하였으나 아직 사라지지만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