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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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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宗明皇帝 下
현종명황제玄宗明皇帝
[丙子]二十四年이라
개원開元 24년(병자 736)
張守珪注+[頭註]幽州節度使 使平盧討擊使安祿山으로 討奚, 契丹注+[頭註] 音乞이라 奚之先 東胡 宇文氏之別種이니 爲契丹所幷이라 叛者할새 祿山 恃勇輕進이라가 爲虜所敗
장수규張守珪注+[頭註]장수규張守珪유주절도사幽州節度使이다. 평로토격사平盧討擊使 안녹산安祿山을 시켜 거란契丹注+[頭註]이 걸이다. 의 선조는 동호東胡이니, 우문씨宇文氏별종別種이니, 거란에게 겸병당하였다. 배반한 자들을 토벌할 적에 안녹산安祿山이 용맹함을 믿고 경솔하게 진격하다가 오랑캐에게 패하였다.
夏四月 守珪奏請斬之하니 祿山臨刑 呼曰 大夫不欲滅奚, 契丹耶
여름 4월에 장수규張守珪안녹산安祿山을 참형에 처할 것을 주청하였는데, 안녹산安祿山은 형벌을 당하기에 앞서 큰소리로 고함치기를 “대부大夫거란契丹을 멸망하고자 하지 않습니까?
奈何殺祿山 守珪亦惜其驍勇하야 欲活之하야 乃更執送京師하니
어찌하여 이 안녹산安祿山을 죽인단 말입니까?” 하니, 장수규張守珪가 그의 날래고 용맹함을 애석하게 여겨 살려 주고자 해서 마침내 다시 가두어 경사京師로 보냈다.
張九齡批注+[頭註]刊也 判也 曰 昔 誅莊賈注+[釋義]史記 司馬穰苴者 田完之苗裔也 晏嬰 薦於齊景公하니 召爲將軍하고 使莊賈監軍이러니 約出師後期어늘 軍法 後期者斬이라하야 遂斬莊賈하야 以徇三軍하니 軍士股慄이라 乃進復故地하니라 하고 孫武斬宮嬪注+[釋義]孫子武者 齊人也 以兵法으로 見吳王闔廬한대 闔廬出宮人爲二隊하고 以寵姬二人爲隊長하야 試習戰法이러니 武乃三令五申而鼓之한대 宮人笑어늘 乃斬隊長以徇하니라 하니 守珪軍令若行이면 祿山不宜免死니이다
장구령張九齡상주上奏하여 비판하기를注+[頭註]는 깎는 것이고, 비판하는 것이다. “옛날에 사마양저司馬穰苴장가莊賈를 주벌하였고注+[釋義]사기史記》에 “사마양저司馬穰苴전완田完의 후손이다. 안영晏嬰사마양저司馬穰苴나라 경공景公에게 천거하니, 경공景公이 불러서 장군으로 삼고 장가莊賈로 하여금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출병하기로 약속하고는 기일보다 늦게 오자, 군법에 기한보다 뒤늦게 온 자는 참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하여 전양저田穰苴가 마침내 장가莊賈를 참형에 처하여 삼군三軍에 조리돌리니, 군사들은 두려워 다리를 벌벌 떨었다. 이에 진격하여 옛땅을 수복했다.” 하였다.손무孫武오왕吳王총희寵姬를 참형에 처했으니,注+[釋義]손자孫子 나라 사람이다. 병법을 가지고 오왕吳王 합려闔廬를 뵙자, 합려闔廬가 궁녀들을 동원하여 두 로 만들고 총희寵姬 두 명을 대장隊長으로 임명하여 전투하는 법을 실습하게 하였다. 손무孫武가 마침내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 거듭하고 북을 쳤는데, 궁녀들이 웃고 명령을 따르지 않자, 이에 대장隊長을 참수하고 조리돌렸다.장수규張守珪군령軍令이 만약 제대로 행해졌다면 안녹산安祿山이 마땅히 죽음을 면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惜其才하야 勅令免官하고 以白衣將領하니 九齡固爭曰 祿山 失律喪師하니 於法 不可不誅 且臣觀其貌하니 有反相이라
은 그의 재주를 애석하게 여겨서 칙령勅令을 내려 그의 관직을 파면하고 평민으로서 군대를 거느리게 하니, 장구령張九齡이 굳이 간하기를 “안녹산安祿山이 군령을 어기고 패전하였으니 법에 있어 처벌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신이 그의 모습을 살펴보건대 배반할 이 있습니다.
不殺이면 必爲後患하리이다 上曰 卿勿以王夷甫識石勒注+[釋義]夷甫 晉王衍字也 石勒 上黨匈奴人이라 衍見之하고 識其有反相하야 將收之할새 勒已去矣러니 後果叛據襄國하야 僭稱後趙하고 卒禍晉室하니라 으로 枉害忠良하라하고 竟赦之하다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後患이 될 것입니다.” 하니, 이 이르기를 “석륵石勒이 배반할 상이 있음을 알아본 왕이보王夷甫고사故事가 있다 하여注+[釋義]이보夷甫나라 왕연王衍이고, 석륵石勒상당上黨의 흉노 사람이다. 왕연王衍석륵石勒을 보고 배반할 이 있음을 알고는 장차 잡아서 처형하려 하였는데, 석륵石勒이 이미 떠나간 뒤였다. 그후 석륵石勒은 과연 배반하고 양국襄國을 점거하여 후조後趙라 참칭하고 끝내 나라 황실皇室에 화를 끼쳤다. 억울하게 충량忠良한 사람을 해치지 말라.” 하고 끝내 안녹산安祿山을 사면하였다.
〈出本傳〉
- 《당서唐書 장구령전張九齡傳》에 나옴 -
[史略 史評]胡氏曰
[史略 사평史評]胡氏가 말하였다.
祿山敗軍하니 其罪應誅
안녹산安祿山이 패전하였으니, 그 죄가 응당 죽어야 한다.
九齡 直以軍法爭論이면 其理自勝이어늘 乃言未來之事하야 斷其後患이라
장구령張九齡이 곧바로 군법軍法을 가지고 간쟁하였다면 이치가 절로 우세하였을 터인데, 마침내 미래의 일을 말하여 후환後患을 결단하였다.
得以拒之하니 惜哉
그러므로 현종玄宗이 그의 말을 막을 수 있었으니, 애석하다.”
○ 秋八月壬子 群臣 皆獻寶鏡이어늘 張九齡以爲 以鏡自照 見形容이요 以人自照 見吉凶이라하야
가을 8월 임자일(5일) 천추절千秋節에 여러 신하들이 모두 보배로운 거울을 올렸는데, 장구령張九齡이 이르기를 “거울로써 스스로 비춰보면 모습을 알 수 있고, 사람으로써 스스로 비춰보면 길흉을 알 수 있다.”라고 하여,
乃述前世興廢之源하야 爲書五卷하고 謂之千秋金鑑錄이라하야 上之한대 賜書褒美하다
마침내 전대前代에 흥하고 망한 근원을 기술해서 5권의 책을 만들고 이를 일러 《천추금감록千秋金鑑錄》이라 하여 올리자, 이 편지를 하사하여 칭찬하고 아름답게 여겼다.
〈出本傳〉
- 《당서唐書 장구령전張九齡傳》에 나옴 -
[史略 史評]胡氏曰
[史略 사평史評]胡氏가 말하였다.
忠愛其君者 必思納諸無過之地하야 而不計一身之安危하고 不忠不愛者 惟其身之營하야 使君荒怠昏亂而不恤也 九齡 可謂愛君矣
“군주에게 충성하고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군주를 과실이 없는 곳에 넣을 것을 생각하여 자기 한 몸의 안위安危를 헤아리지 않으며,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오직 자신만을 영위營爲하여 가령 군주가 거칠고 게으르고 혼란해도 돌아보지 않으니, 장구령張九齡은 군주를 사랑한다고 이를 만하다.
이나 以違拂對順從하면 則有恭與不恭之似하고 以恣肆對儆戒하면 則有樂與不樂之殊하니 惟聰明睿智之君 則知違拂之爲恭而順從之爲大不恭也하고 知儆戒之可樂而恣肆之有大不樂也
그러나 군주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군주에게 순종하는 것과 상대하면 공손하고 공손하지 않은 유사한 점이 있고, 군주에게 방자한 것을 가지고 군주를 경계하는 것과 상대하면 즐겁고 즐겁지 않은 차이가 있으니, 오직 총명하고 지혜로운 군주는 공손하지 않음이 공손함이 되고 순종함이 크게 불공함이 됨을 알며, 경계함이 즐거울 만하고 방자함이 크게 즐겁지 않음이 있음을 안다.
若明皇 稍有하야 恐及危溢之心하야 使九齡常立于朝 則放心必收 禍亂必하리니 嗚呼
만약 명황明皇이 조금이라도 이미 성취한 것을 잘 보전하고 지켜서 행여 위태롭고 넘치는 데에 미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 장구령張九齡으로 하여금 항상 조정에 있게 하였다면 방탕한 마음이 반드시 거두어졌을 것이고 화란禍亂이 반드시 그쳤을 것이니, 아!
九齡 可謂古之大臣矣로다
장구령張九齡은 옛날의 대신大臣이라고 이를 만하다.”
○ 朔方節度使牛仙客 前在河西하야 能節用度하고 勤職業하니 倉庫充實하고 器械精利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 우선객牛仙客이 예전에 하서河西 지방에 있을 적에 비용을 절약하고 직임에 부지런히 힘쓰니, 창고가 충실하고 병기가 정밀하고 예리하였다.
聞而嘉之하야 欲加尙書한대 張九齡曰 不可하니이다
이 이 말을 듣고 가상히 여겨 그를 상서尙書로 삼고자 하니, 장구령張九齡이 아뢰기를 “안 됩니다.
尙書 古之納言이라
상서尙書는 옛날의 납언納言입니다.
唐興以來 惟舊相及揚歷中外有德望者 乃爲之하니 仙客 本河湟使典注+[釋義]河湟二州 竝河湟地 牛仙客 前判涼州別駕故云이라 으로 今驟居淸要하면 恐羞朝廷이니이다
나라가 일어난 이래로 오직 옛 정승과 중외의 관직을 역임하고 덕망이 있는 자라야 비로소 상서尙書가 될 수 있었으니, 우선객牛仙客사전使典(胥吏)으로서注+[釋義]하주河州황주湟州는 모두 하수河水황수湟水 지역이니, 우선객牛仙客 판양주별가判涼州別駕였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이제 갑자기 청요직淸要職에 거한다면 조정에 수치가 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上曰 然則但加實封 可乎 對曰 不可하니
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실봉實封을 가하는 것은 되겠는가?” 하니, 장구령張九齡은 대답하기를 “안 됩니다.
封爵 所以勸有功也
관작을 봉하는 것은 공이 있는 자를 권면하는 것입니다.
邊將 實倉庫, 修器械 乃常務耳
변방의 장수가 창고를 충실하게 하고 병기를 수리하는 것은 일상적인 직무일 뿐입니다.
不足爲功이니 陛下賞其勤인댄 賜之金帛 可也 裂土封之 恐非其宜니이다
공이 될 수가 없으니, 폐하께서 그의 근면함을 장려하시려면 금과 비단을 하사해 주시면 될 것이요, 땅을 떼어 작위를 봉해 주는 것은 마땅하지 않을 듯합니다.” 하였다.
黙然이어늘 李林甫言於上曰 仙客 宰相才也 何有於尙書注+[頭註]何有 何難之有 리잇고
이 묵묵히 말이 없자, 이임보李林甫에게 아뢰기를 “우선객牛仙客은 재상의 재주이니, 상서尙書에 임명하는 것이 어찌 불가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였다.注+[頭註]하유何有는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十一月 賜仙客爵隴西縣公하고 食實封三百戶注+[附註]唐爵九等이라 一曰王이니 食邑萬戶 正一品이요 二曰郡王이니 食邑五千戶 從一品이요 三曰國公이니 食邑三千戶 從[正]二品이요 四曰開國郡公이니 食邑二千戶 正[從]二品이요 五曰開國縣公이니 食邑千五百戶 從二[正三]品이요 六曰開國縣侯 食邑千戶 從三品이요 七曰開國縣伯이니 食邑七百戶 正四品上이요 八曰開國縣子 食邑五百戶 正五品上이요 九曰開國縣男이니 食邑三百戶 從五品上이라 食實封者 得眞戶하야 分食諸州하니 凡戶三丁以上爲率하야 租三之一 入于朝廷이러니 開元定制하야 以三丁爲限하고 租賦 全入封家하니라 하다
11월에 우선객牛仙客에게 농서현공隴西縣公의 작위를 하사하고 실봉實封 300호를 먹게 하였다.注+[附註]나라의 작위는 9등급이다. 첫 번째는 이니 식읍食邑이 1만 호로 정1품이고, 두 번째는 군왕郡王이니 식읍食邑이 5천 호로 종1품이고, 세 번째는 국공國公이니 식읍食邑이 3천 호로 정2품이고, 네 번째는 개국군공開國郡公이니 식읍食邑이 2천 호로 종2품이고, 다섯 번째는 개국현공開國縣公이니 식읍食邑이 1천 500호로 정3품이고, 여섯 번째는 개국현후開國縣侯이니 식읍食邑이 1천 호로 종3품이고, 일곱 번째는 개국현백開國縣伯이니 식읍食邑이 700호로 정4품 이고, 여덟 번째는 개국현자開國縣子이니 식읍食邑이 500호로 정5품 이고, 아홉 번째는 개국현남開國縣男이니 식읍食邑이 300호로 종5품 이다. 실봉實封을 먹는다는 것은 실제 봉호封戶를 얻어 여러 에서 바치는 세금을 나누어 먹는 것이니, 무릇 3 이상의 가호를 기준으로 삼아서 조세의 3분의 1을 조정에 바쳤는데, 개원開元 연간에 제도를 정하여 3으로 한정하고 조세를 전부 봉해진 집에 바쳤다.
〈出本傳〉
- 《당서唐書 장구령전張九齡傳》에 나옴 -
○ 初 欲以李林甫爲相하야 問於中書令張九齡한대
처음에 이임보李林甫를 정승으로 삼고자 하여 중서령中書令 장구령張九齡에게 묻자,
九齡對曰 宰相 繫國安危하니 陛下相林甫하시면 切(竊)恐異日 爲廟社之憂하노이다 不從하다
장구령張九齡이 대답하기를 “재상은 국가의 안위가 달려 있으니, 폐하께서 이임보李林甫를 재상으로 삼으시면 훗날 종묘사직의 우환이 될까 염려됩니다.” 하였으나 이 따르지 않았다.
九齡 方以文學으로 爲上所重이라 林甫雖恨이나曲意事之하고 侍中裴耀卿 與張九齡善하니 林甫幷疾之러라
이때 장구령張九齡이 막 문학文學으로 에게 중하게 여겨졌으므로, 이임보李林甫가 비록 한스러워하였으나 오히려 뜻을 굽혀 장구령張九齡을 섬겼고, 시중侍中 배요경裴耀卿장구령張九齡과 친하니 이임보李林甫가 그도 아울러 미워하였다.
是時 在位歲久 漸肆奢慾하야 怠於政事하니 而九齡 遇事 無細大 皆力爭之
이때에 이 재위한 지 오래되자 점점 사치스러워지고 욕망을 부려 정사를 태만히 하니, 장구령張九齡이 일을 당할 때마다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강력히 간쟁하였다.
林甫巧伺上意하고 日思所以中傷之하야 日夜 短九齡於上하니 寖疎之러니
이임보李林甫의 뜻을 교묘히 엿보고 날마다 중상中傷할 것을 생각하여 밤낮으로 에게 장구령張九齡을 헐뜯으니, 이 차츰 장구령張九齡을 멀리하였다.
於是 耀卿, 九齡 竝罷政事하고 以林甫兼中書令하고 牛仙客爲工部尙書, 同中書門下三品하다
이에 배요경裴耀卿장구령張九齡을 모두 정사에서 파하고 이임보李林甫중서령中書令을 겸하게 하고 우선객牛仙客공부상서工部尙書동중서문하同中書門下 3품에 임명하였다.
〈出本傳〉
- 《당서唐書 장구령전張九齡傳》에 나옴 -
永嘉陳氏曰
영가진씨永嘉陳氏(陳傅良)가 말하였다.
忠義 美名也 雖甚庸之君이라도 亦知高其名而願致之로되 及見其人하야는 鮮有合焉 何也
“충성과 절의는 아름다운 이름(명예)이니, 비록 매우 용렬한 군주라도 명예를 높일 줄 알아서 충의의 선비를 초치하기를 원하나, 실제로 그러한 사람을 만남에 이르러서는 뜻이 합하는 자가 적음은 어째서인가?
畏之也일새라
군주가 그를 꺼리기 때문이다.
蓋忠義之士 識高而見明하고 慮遠而憂大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는 지식이 높고 견해가 밝으며 생각이 원대하고 우려가 크다.
世方無虞하야 若可以少安矣로되 而爲痛哭流涕하야 以發天下大難之端하고
그러므로 세상에 현재 근심이 없어서 다소 편안히 여겨도 될 듯한데도 통곡하고 눈물을 흘릴 만하다고 하여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게 될 단서라 하고,
乘輿無甚失德하야 猶可以爲安也로되 而盡言極諫하야 甚者 有幽厲桓靈注+[頭註]東漢이라 之比하고
승여乘輿(황제)가 심히 덕망을 잃은 일이 없어서 그래도 편안하다고 할 만한데도 말을 다하고 지극히 간하여 심지어 유왕幽王여왕厲王환제桓帝영제靈帝注+[頭註]환령桓靈동한東漢(後漢)의 환제桓帝영제靈帝를 가리킨다. 비교하기까지 하고,
百官效職하야 亦無大姦邪未去也로되 而深懼指鹿之禍注+[頭註]指鹿 趙高指鹿爲馬 見三卷甲午年이라發於朝夕하며
백관들이 직책을 잘 수행하고 또한 크게 간사한 자를 제거하지 않음이 없는데도 윗사람을 농락하고 군주를 속여서 권세를 마음대로 부리는 화가注+[頭註]지록指鹿조고趙高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 것이니, 3권 갑오년조甲午年條에 보인다. 조석으로(당장에) 나올까 깊이 두려워하고,
嘉祥美瑞 人主之所罕見而奇焉者也어늘 則視以爲不足信하고
아름다운 상서祥瑞는 군주가 드물게 보고 기이하게 여기는 것인데도 상서를 보기를 족히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하고,
至於一日月之食, 一雨暘之愆하야는 則又從而尤之曰 此疵政之招也라하며
한 번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며 한 번 비가 오고 날이 개는 것이 질서를 잃음에 이르면 이로 인해 ‘이것은 잘못된 정사가 부른 것이다.’라고 허물하고,
射獵巡幸歌舞之娛 似未足病於治어늘 則禁而抑之하고
활 쏘고 순행하고 가무하는 즐거움은 정치에 해가 되지 않을 듯한데도 이것을 금지하여 억제하고,
宵旰之勤 吐握之疲注+[頭註]周公 一食 三吐哺하고 一沐 三握髮이라 非人所願爲者어늘 則强其必行하니 則人主安得而不畏之耶
날이 채 밝기 전에 옷을 입고 해가 진 후에 저녁밥을 먹는 수고와 먹던 밥을 뱉고 감던 머리를 쥐고 현자를 만나는 노고는注+[頭註]주공周公은 한 번 밥을 먹을 때에도 세 번이나 입속에 있는 음식을 뱉고, 한 번 머리를 감을 때에도 세 번이나 감던 머리를 쥐었다. 사람들이 행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데도 반드시 이것을 행할 것을 강요하니, 그렇다면 군주가 어찌 이들을 꺼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비록 나라 무제武帝나라 명황明皇 같은 어진 군주도 오히려 급암汲黯장구령張九齡의 강직함을 꺼림이 있었던 것이다.
아!
視時趨向 天下之人不少也 人主方是之畏하니 彼亦孰肯自冒其〈人主之〉所畏하야 而取疎遠擯斥之苦哉
때를 살펴보아 추향趨向함은 천하에 이러한 사람이 적지 않고, 군주가 충직忠直한 이들을 꺼리니, 저들이 또한 그 누가 기꺼이 군주가 꺼리는 바를 무릅쓰고서 소원하게 대하고 배척당하는 괴로움을 취하겠는가.
於是乎爭迎其好而逢其欲이라
이에 다투어 군주가 좋아하는 것으로 인도하고 원하는 것을 맞추어 준다.
是以 奸欺之患生하니 此武帝明皇之所以不免也
이 때문에 간사하고 속이는 근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무제武帝명황明皇이 화를 면치 못하게 된 이유이다.
隕石注+[頭註]이라 妖也어늘 而士方以爲嘉瑞하고 殺三子注+[頭註]見下丁丑年이라 大亂也어늘하고 大旱之變 則曰乾封之祥注+[頭註]漢武辛未年 封泰山禪한대 壬申夏하니 하다 이라하고 雨霖之害 則曰非禾稼之損注+[頭註]玄宗甲午年 憂雨傷稼러니 하다 이라하니라
운석隕石注+[頭註]나라 무제武帝 임진년(B.C.89)에 하늘에서 운석隕石이 떨어졌다. 요망한 것인데 선비들이 이것을 아름다운 상서라 하고, 세 아들을 죽인 것은注+[頭註]현종玄宗이 세 아들을 죽인 일은 뒤의 정축년(737)에 보인다. 큰 난리인데 형벌을 폐지하여 쓰지 않는다고 아첨하여 재상들이 상을 받으며, 크게 가뭄이 든 변고를 봉선封禪한 흙을 말리는 상서라 하고,注+[頭註]대한지변大旱之變 즉왈건봉지상則曰乾封之祥: 무제武帝 신미년辛未年(B.C.110)에 태산泰山봉선封禪하였는데, 임신년壬申年(B.C.109) 여름에 가뭄이 드니, 공손경公孫卿이 이리이리 말하였다. 장마가 내리는 폐해를 농사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注+[頭註]우림지해雨霖之害 즉왈비화가지손則曰非禾稼之損:현종玄宗 갑오년甲午年(754)에 장맛비가 내려 농사를 망칠까 근심하였는데, 양국충楊國忠이 이리이리 말하였다.
武帝, 明皇 皆英主也 初豈可以愚弄也哉
무제武帝명황明皇은 모두 영명한 군주이니, 처음에 어찌 우롱할 수 있었겠는가.
惟其畏節義之士故 士得以窺其所逆順하야 而售其所喜之說하야 而天下皆幾於危亡하니
다만 이들이 절의節義의 선비를 꺼렸기 때문에 선비들이 그 거슬리고 순함을 엿보아 군주가 좋아하는 말을 팔아서 천하가 모두 위태로움과 멸망에 빠진 것이니, 아!
可不鑑哉
감계鑑戒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卽位以來 所用之相 姚崇 尙通하고 宋璟 尙法하고 張嘉貞 尙吏하고 張說 尙文하고 李元, 杜 尙儉하고 韓休, 張九齡 尙直하니 各其所長也러라
이 즉위한 이래로 등용한 재상 중에 요숭姚崇은 소통함을 숭상하고 송경宋璟법치法治를 숭상하고 장가정張嘉貞이치吏治(수령의 치적)를 숭상하고 장열張說은 문학을 숭상하고 이원굉李元紘두섬杜暹절검節儉을 숭상하고 한휴韓休장구령張九齡은 정직함을 숭상하였으니, 이는 각각 그들의 장점이었다.
○ 九齡 旣得罪注+[頭註]九齡 遇事 無細大 皆爭之한대 林甫 日夜短九齡於上하니 上浸疎之하야 罷政事하다하니 自是 朝廷之士 皆容身保位하야 無復直言이러라
장구령張九齡이 죄를 얻으니,注+[頭註]장구령張九齡이 일을 만날 때마다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두 간쟁하였는데, 이임보李林甫가 밤낮으로 장구령張九齡에게 헐뜯으니, 이 점점 장구령張九齡을 멀리하여 정사를 맡은 것을 파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조정의 선비들이 모두 자기 몸을 용납받고 지위를 보전하여 다시는 직언直言하는 이가 없었다.
李林甫欲蔽塞人主視聽하고 自專大權하야 明召諫官하야 謂曰 今明主在上하시니 群臣 將順之不暇어니 烏用多言이리오
이임보李林甫가 임금의 귀와 눈을 가리고 막아 스스로 대권大權을 독차지하고자 하여 공공연히 간관을 불러 이르기를 “지금 성명聖明한 군주가 위에 계시어 여러 신하들이 순종하기에 겨를이 없어야 하니, 어찌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諸君 不見立仗馬注+[釋義] 日以八馬 列宮門外하고 號南衙立仗馬라하니라
제군들은 입장마立仗馬를 보지 못하였는가.注+[釋義]비룡구飛龍廐에 날마다 여덟 필의 말을 궁문宮門 밖에 진열하고 남아입장마南衙立仗馬라고 이름하였다.
三品料注+[釋義]食與飼同이라 唐給九品祿호되 三品 四百石也 호되 一鳴이면 輒斥去하니 悔之何及이리오
3품의 사료를 먹이되注+[釋義]와 같다. 나라는 아홉 품계의 관원에게 녹을 주되 3품은 400석이다. 혹은 ‘어삼품추두飫三品芻豆’로 되어 있다. 한 번 울면 즉시 쫓겨 가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였다.
補闕杜璡 嘗上書言事라가 明日 黜爲下注+[頭註]唐制 補闕 從七品이요 縣令 從六品이라 以此言之컨댄 則非黜也 蓋唐人重內官하고 而品高下不論也 하니 自是 諫爭路絶矣러라
보궐補闕 두진杜璡이 글을 올려 정사를 아뢰었다가 다음 날 쫓겨나 하규下邽현령縣令이 되니,注+[頭註]나라 제도에 보궐補闕은 종7품이고 현령縣令은 종6품이다. 이로써 말한다면 쫓겨난 것이 아니니, 당나라 사람들은 내관內官을 중시하고 품계의 고하高下는 따지지 않은 것이다. 이로부터 간쟁하는 길이 끊어졌다.
〈出本傳〉
- 《당서唐書 이임보전李林甫傳》에 나옴 -
○ 林甫城府注+[頭註]性之深阻 有若 深密하야 人莫窺其際
이임보李林甫注+[頭註]성질이 음험한 것이 성부城府와 같은 것이다. 성질이 음험陰險하고 치밀하여 사람들이 그의 속셈을 엿보지 못하였다.
好以甘言而陰中傷之호되 不露辭色하고 凡爲上所厚者 始則親結之라가 及勢位稍逼이면以計去之하니老奸巨猾注+[頭註] 奸也, 狡也 韻書 多詐謂之狡猾이라 如韋堅, 楊愼矜, 王鉷之類 이라도 無能逃其術者러라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인하고는 은밀하게 중상하기를 좋아하였으나 말과 안색에 드러내지 않고, 무릇 에게 두터운 총애를 받는 자와 처음에는 친하게 결탁하였다가 그의 세력과 지위가 점점 자신을 핍박하게 되면 그때마다 계책으로 제거하니, 비록 노련한 간신과 크게 교활한 자라도注+[頭註]은 간사하고 교활함이니, 《운서韻書》에 “속임수가 많은 것을 일러 교활狡猾하다고 한다.” 하였다. 노간거활老奸巨猾위견韋堅, 양신긍楊愼矜, 왕홍王鉷 등과 같은 자이다. 그의 권모술수를 피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出本傳〉
- 《당서唐書 이임보전李林甫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穰苴 : 양저
역주2 千秋節 : 당나라 황제의 탄신을 이르는 말로, 玄宗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뒤에는 天長節로 고쳐 불렀다.
역주3 持盈守成 : 持盈은 이미 성취한 大業을 잘 보전하며 지키는 것을 이르고, 守成은 創業한 뒤를 이어받아 지키는 것을 이른다.
역주4 : 미
역주5 河湟使典 : 河湟은 黃河와 湟水의 합칭이고, 또한 黃河와 湟水 사이를 가리킨다. 使典은 胥吏를 가리킨다.
역주6 實封 : 古代에 封建國家는 名義上 功臣과 貴戚에게 내려주는 食邑의 戶數가 실제로 봉해 주는 숫자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실제로 주는 封戶를 實封이라고 하였다.
역주7 指鹿 : 指鹿爲馬의 준말로, 秦나라 趙高가 자신의 권세를 시험하기 위하여 사슴을 가져다가 二世에게 바치며 말이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는 바, 군주를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8 吐握 : 吐哺握髮의 준말로, 周公이 어린 成王을 보필할 때 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밥을 먹다가도 어진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입속의 밥을 뱉고서 일어났고, 머리를 감다가도 젖은 머리를 움켜쥔 채 일어난 일을 가리킨다.
역주9 漢武帝, 唐明皇之賢 猶有憚於汲黯張九齡之直 : 汲黯은 漢나라 武帝 때의 直臣으로 이름이 높은데, 엄함으로 武帝에게 존경을 받았다. 武帝가 汲黯을 불러 中大夫로 삼았으나 자주 직간하였으므로 관직에 오래 있지 못하였다.
역주10 汲黯張九齡之直 : 위의 글은 陳傅良의 〈士論〉에 보이는 바, 陳傅良은 南宋 때 사람으로 字는 君擧이고 號는 止齋이다. 陳傅良의 〈士論〉에는 ‘汲黯韓休之直’이라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汲黯張九齡之直’이라 하여 張九齡이 재상에서 물러난 기사 뒤에 붙였다. 韓休는 唐 玄宗 때의 直臣으로, 사람됨이 강직하여 時政의 득실을 논할 때면 반드시 극진히 하였으므로, 玄宗이 후원에서 크게 놀고 사냥할 때마다 혹 韓休가 알까 두려워하여 좌우의 신하들에게 韓休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玄宗이 일찍이 거울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좋지 않은 표정을 짓자, 좌우의 신하들이 아뢰기를, “韓休가 재상이 되고부터는 폐하께서 자못 전보다 수척해지셨는데, 어찌하여 그를 내쫓지 않으십니까?” 하니, 玄宗이 이르기를, “내 얼굴은 비록 수척해졌으나, 천하는 반드시 살찔 것이다.[吾貌雖瘦 天下必肥]”라고 하였다.
역주11 漢武壬辰年 隕石 : 《前漢書》 〈郊祀志〉에 “上(武帝)이 또다시 泰山에 封禪하자, 검은 두 개의 隕石이 떨어지니, 有司가 아름다운 상서라 하여 宗廟에 올렸다.” 하였다.
역주12 三子 : 세 아들은 太子 李瑛과 鄂王 李瑤와 光王 李琚이다.
역주13 宰相以刑措受賞 : 뒤의 정축년(737) 秋七月條에 보인다.
역주14 公孫卿云云 : 元封 2년(임신 B.C.109)에 武帝가 가뭄을 걱정하자, 公孫卿이 말하기를 “黃帝 때에 封禪을 하면 날이 가물어서 封土(봉한 흙)를 3년 동안 말렸습니다.” 하니, 上이 이에 조서를 내리기를 “날씨가 가문 것은 아마도 하늘이 封土를 말리려는 것인가 보다.” 하였다.
역주15 楊國忠云云 : 玄宗이 장맛비가 내려 농사를 망칠까 근심하자, 楊國忠이 벼 중에 좋은 것을 가려 바치고 아뢰기를 “비가 비록 많이 내렸지만 농사에는 폐해가 없습니다.[雨雖多 不害稼也]” 하니, 玄宗은 사실이라고 여겼다.
역주16 : 굉
역주17 : 섬
역주18 立仗馬 : 儀仗으로 세운 말을 이르는 말로, 전하여 봉록만 축내고 소임을 다하지 않는 관원을 비유한다.
역주19 飛龍廐 : 당나라 때 御廐의 명칭이다.
역주20 : 사
역주21 一作飫三品芻豆 : 《唐書》 〈李林甫傳〉에 李林甫가 간관들에게 이르기를 “그대들은 의장에 서 있는 말들을 보지 못했는가. 종일토록 아무 소리 없이 서 있으면 3품의 꼴과 콩을 실컷 먹지만 한 번 울었다 하면 바로 쫓겨나니, 나중에 비록 울지 않으려 한들 될 수 있겠는가.[君等獨不見立仗馬乎 終日無聲 而飫三品芻豆 一鳴則黜之矣 後雖欲不鳴 得乎]”라고 하였다.
역주22 : 규
역주23 城府 : 城池와 府庫로, 마음속에 딴생각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터놓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역주24 : 담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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