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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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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 〈梁太平元年이요 魏恭帝三年이요 齊天保七年이라
병자(556) - 나라 태평太平 원년元年이고, 나라 공제恭帝 3년이고, 나라 천보天保 7년이다. -
正月 魏初建六官注+[頭註]大冢宰, 大司徒, 大宗伯, 大司馬, 大司寇, 大司空이라하야 以宇文泰 爲太師, 大冢宰하고 自餘百官 皆倣周禮하다
정월正月나라가 처음으로 육관六官注+[頭註]육관六官대총재大冢宰대사도大司徒대종백大宗伯대사마大司馬대사구大司寇대사공大司空이다. 을 세워 우문태宇文泰태사太師대총재大冢宰로 삼고, 그 나머지 백관은 모두 《주례周禮》를 따랐다.
○ 十月 魏安定文公宇文泰 病이어늘 召中山公護注+[頭註]泰之從子하야 謂曰
○ 10월에 나라 안정문공安定文公 우문태宇文泰가 병이 위독하자, 중산공中山公 우문호宇文護注+[頭註]중산공中山公 우문호宇文護우문태宇文泰종자從子이다. 를 불러 말하기를
吾諸子皆幼하고 外寇方彊하야 天下之事 屬之於汝하노니 宜努力하야 以成吾志하라
“나의 여러 아들은 모두 어리고 외구外寇는 막 강성하여 천하天下의 일을 그대에게 부탁하니, 마땅히 노력하여 내 뜻을 이루도록 하라.” 하였다.
乙亥하다
을해일乙亥日(4일)에 우문태宇文泰가 죽었다.
泰能駕馭英豪하야 得其力用하고 性好質素하야 不尙虛飾하며 明達政事하고 崇儒好古하야 凡所施設 皆依倣三代而爲之러라
우문태宇文泰는 영웅호걸들을 마음대로 부려서 그들로 하여금 전력을 다 기울이게 하였고, 성품이 질박하고 검소함을 좋아하여 겉치레를 숭상하지 않았으며, 정사에 밝게 통달하고 선비를 높이고 옛것을 좋아하여 모든 시설을 모두 삼대三代의 제도를 모방하여 만들었다.
丙子 世子覺 嗣位하야 爲太師, 大冢宰하야 出鎭同州하니 時年十五
병자일丙子日(5일)에 세자世子 우문각宇文覺이 지위를 이어받아 태사太師대총재大冢宰가 되어 나가서 동주同州진수鎭守하니, 이때 나이가 15세였다.
綱紀內外하야 撫循文武하니 人心 遂安이러라
우문호宇文護가 내외에 기강紀綱을 세워 문무백관을 어루만지니, 인심이 마침내 안정되었다.
○ 十二月 魏以(歧)[岐]陽之地 封世子覺하야 爲周公하니 魏宇文護 以周公幼弱이라하야 欲早使正位하야 以定人心이라
○ 12월에 나라가 기양岐陽 땅을 세자世子 우문각宇文覺에게 봉해 주어 주공周公으로 삼으니, 나라 우문호宇文護주공周公이 어리고 약하다 하여 일찍 황제의 자리를 바로잡아 인심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庚子 以魏恭帝詔 禪位于周注+[頭註]魏主廓 禪位于周公하니 廢魏主爲宋公하고 又弑之하니라하다
경자일庚子日(30일)에 나라 공제恭帝조명詔命으로 주공周公에게 양위讓位하였다.注+[頭註]위주魏主 원곽元廓주공周公에게 양위讓位하니, 위주魏主를 폐하여 송공宋公으로 삼았다가 또다시 시해하였다.
歷年圖曰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後魏之先 世居朔野注+[頭註]北方曰朔이라하야 有國久矣
후위後魏의 선대는 대대로 삭방朔方(北方)의 들注+[頭註]북방北方이라 한다. 에 살면서 나라를 소유한 지가 오래되었다.
道武注+[頭註]拓跋珪乘燕氏之衰注+[頭註]燕主慕容垂 時叛燕하니 見二十九卷乙未年이라하고 悉擧引弓之民하야 以憑陵中夏하니 馬首所向 無不望風奔潰
도무제道武帝注+[頭註]도무제道武帝탁발규拓跋珪이다. 나라가 쇠약한注+[頭註]연주燕主 모용수慕容垂가 이때 나라를 배반하였으니, 29권 을미년조乙未年條(395)에 보인다. 틈을 타서 활을 당겨 쏠 수 있는 백성들을 모조리 동원하여 세력을 믿고 중하中夏를 침범하니, 말머리가 향하는 곳마다 소문만 듣고도 달아나 궤멸되지 않음이 없었다.
南取幷州注+[頭註]道武 丙申年 擊燕하야 取幷州하고 東擧幽, 冀하야 兵不留行하야 而數千里之地定矣
그리하여 남쪽으로 병주幷州를 취하고注+[頭註]나라 도무제道武帝병신년丙申年(396)에 나라를 공격하여 병주幷州를 취하였다. 동쪽으로 유주幽州기주冀州를 점령하여, 군사들이 행군을 멈추지 않아서 수천 리의 땅이 평정되었다.
繼以明元太武注+[頭註]明元嗣 道武長子 太武燾 明元長子 兼靑兗, 包司豫하고 摧赫連, 開關中하며 梟蒲弘注+[頭註]前秦也 據枋頭하고 獲故趙將麻秋하야 爲將이라가 爲秋所酖하고 且前秦爲西秦乞伏乾歸所滅하니 此云梟蒲弘者 未詳이라, 呑遼碣하고 虜沮渠注+[頭註]北涼也, 幷河右하며 高車注+[頭註]北狄部落이라入臣하고 注+[頭註] 音軟이니 卽柔然이라 宋, 齊謂之芮芮라하니 北狄國이라 魏太武 以其無知하야 狀類動蟲이라 改其號曰蠕蠕이라하니라遠遁하야 自淮以北으로 逾於大漠注+[頭註]北方流沙曰漠이라 沙漠之北 匈奴南界也 卽突厥中 悉爲其有 子孫稱帝者 百有餘年하니 左袵之盛 未之有也
뒤이어 명원제明元帝태무제太武帝注+[頭註]명원제明元帝 탁발사拓跋嗣도무제道武帝장자長子이고, 태무제太武帝 탁발도拓跋燾명원제明元帝장자長子이다. 청주靑州연주兗州를 겸병하고 사주司州예주豫州를 포괄하며, 혁련씨赫連氏를 꺾고 관중關中 지방을 개척하며, 포홍蒲弘을 효수하고注+[頭註](苻)弘은 전진前秦을 가리킨다. 포홍蒲弘방두枋頭를 점거하고 옛날 후조後趙의 장수인 마추麻秋를 사로잡아 장수로 삼았다가 마추麻秋에게 독살당하였으며, 또 전진前秦서진西秦걸복건귀乞伏乾歸에게 멸망당하였으니, 여기에서 포홍蒲弘을 효수하였다고 한 것은 자세하지 않다. 요갈遼碣을 병탄하며, 저거씨沮渠氏注+[頭註]저거씨沮渠氏북량北涼이다. 를 사로잡고 하우河右를 겸병하며, 고거高車注+[頭註]고거高車북적北狄부락部落이다. 가 들어와 신하가 되고 흉노족匈奴族별종別種연연蠕蠕注+[頭註]은 음이 연이니, 곧 유연柔然이다. 나라와 나라에서는 이를 일러 예예芮芮라 하였으니, 북적北狄의 나라이다. 나라 태무제太武帝가 그들이 무지無知하여 꿈틀거리는 벌레와 비슷하다 하여 호칭을 고쳐 연연蠕蠕이라 하였다.이 멀리 도망하여, 회수淮水 이북으로부터 대막大漠(고비 사막)注+[頭註]북방北方의 사막 지역을 이라 한다. 사막沙漠의 북쪽은 흉노匈奴의 남쪽 경계이니, 바로 돌궐突厥사적沙磧이다. 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소유가 되었으며 자손 중에 황제를 칭한 자가 백여 년을 이어갔으니, 좌임左袵한 오랑캐의 성함이 일찍이 이와 같은 적이 없었다.
及孝文注+[頭註]이니 太武四世孫이라嗣世 乃貶戎狄之俗하고 修帝王之政하야 崇儒雅하고 興禮樂하야 其風聲文物 蔚然可觀矣
효문제孝文帝注+[頭註]효문제孝文帝원굉元宏이니, 태무제太武帝의 4세손이다. 가 뒤를 잇자, 마침내 융적戎狄의 풍속을 물리치고 제왕帝王의 정사를 닦아서 유아儒雅를 숭상하고 예악禮樂을 일으켜서 풍교風敎문물文物이 찬란하여 볼 만하였다.
宣武注+[頭註]이니 孝文第二子懦弱하야 不克負荷 寵信讒諛注+[頭註]趙邕, 高肇等也 見上卷辛巳年이라하고 賊虐親賢하니 元氏注+[頭註]見上卷改姓元氏注之業 於玆始衰 重之以孝明注+[頭註]이니 宣武第二子幼沖하고 胡后注+[頭註]宣武后胡氏淫恣하야 嬖倖盈朝하야 政出多門하니 賞罰無章하고 紀綱大壞
선무제宣武帝注+[頭註]선무제宣武帝원각元恪이니, 효문제孝文帝의 둘째 아들이다. 는 나약하여 임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서 참소하는 자와 아첨하는 자注+[頭註]참소하는 자와 아첨하는 자는 조옹趙邕고조高肇 등이니, 상권上卷신사년조辛巳年條(501)에 보인다. 를 총애하고 신임하며 친척과 현자를 해치고 모질게 대하니, 원씨元氏注+[頭註]원씨元氏상권上卷의 ‘개성원씨改姓元氏에 보인다. 기업基業이 이에 비로소 쇠하였고, 게다가 효명제孝明帝注+[頭註]효명제孝明帝원후元詡이니, 선무제宣武帝의 둘째 아들이다. 는 어리고 약하며 호후胡后注+[頭註]호후胡后선무후宣武后 호씨胡氏이다. 는 음란하고 방자하여 총애하는 간신들이 조정에 가득해서 정사가 여러 문에서 나오니, 상벌에 기준이 없고 기강이 크게 무너졌다.
守令貪殘하고 黎民愁怨하니 盜賊蜂起하야 日滋月益이라
수령들이 탐욕스러워 백성들을 해치며 백성들이 근심하고 원망하니, 도적들이 봉기하여 나날이 불어나고 다달이 늘어났다.
上之人 曾無悛心하고 而內自睽離하야 以招外盜
그런데도 윗사람은 일찍이 잘못을 고칠 마음이 없고 내부內部에서는 서로 이반하여 밖의 도둑을 불러들였다.
於是 爾朱榮 乘之而起하야 興晉陽之甲하야 直指伊, 洛하니 母后幼主 沈於回淵注+[頭註]戊申年 爾朱榮 擧兵晉陽하야 立長樂王子攸하고 而沈太后胡氏及幼主于河하고 公卿百官 血濡馬足注+[頭註]爾朱榮 殺王公以下二千人이라이라
이에 이주영爾朱榮이 이 틈을 타고 일어나 진양晉陽의 군사를 일으켜서 곧바로 이수伊水낙수洛水 지역으로 향하니, 모후母后와 어린 군주가 회연回淵에 빠져 죽고注+[頭註]무신년戊申年(528)에 이주영爾朱榮진양晉陽에서 군대를 일으켜 장악왕長樂王 원자유元子攸를 세우고 태후太后 호씨胡氏유주幼主 원쇠元釗를 황하에 빠뜨려 죽였다. 공경公卿백관百官들의 피가 말발굽을 적셨다.注+[頭註]이주영爾朱榮왕공王公 이하 2천 명을 죽였다.
雖孝莊注+[頭註]子攸이니 文帝弟 彭城王勰之子 音協이라勇決하야 手刃賊臣注+[頭註]庚戌年 帝殺爾朱榮이라이나 而枝黨四集하야 禍不旋踵注+[頭註]見上庚戌年이라이라
비록 효장제孝莊帝注+[頭註]효장제孝莊帝원자유元子攸이니 문제文帝의 아우이고 팽성왕彭城王 원협元勰의 아들이다. 은 음이 협이다. 가 용감하게 결단하여 적신賊臣 이주영爾朱榮을 손수 칼로 찔러 죽였으나注+[頭註]경술년庚戌年(530)에 황제가 이주영爾朱榮을 죽였다. 도당徒黨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발길을 돌려 돌아서기도 전에 화가 곧바로 닥쳤다.注+[頭註]앞의 경술년조庚戌年條(530)에 보인다.
孝武注+[頭註] 文帝子廣平懷之第三子惡高歡之偪하야 逃遁入關이라가 遭宇文之禍하야 不能自脫하야 東西分裂하야 相繼皆亡이라
효무제孝武帝注+[頭註]효무제孝武帝원수元脩이니, 문제文帝의 아들인 광평왕廣平王 원회元懷의 셋째 아들이다. 고환高歡의 핍박을 싫어하여 도망쳐 관중關中으로 들어갔다가 우문씨宇文氏의 화를 만나 스스로 벗어나오지 못하여 동위東魏서위西魏로 분열되었다가 서로 뒤이어 모두 멸망하였다.
嗚呼 人主當國家全盛之時하야 宴安怠惰하야 以失其威福之柄이면 及民心已去하고 禍亂已成하야는 雖有明斷之才라도 猶不能救어든 況庸君乎
아, 인주人主가 국가가 전성全盛할 때를 당하여 안일하고 태만하여 상벌賞罰을 내리는 군주의 권한을 잃으면 민심이 이미 떠나고 화란禍亂이 이미 이루어진 뒤에는 밝게 결단하는 재주가 있어도 구원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용렬한 군주에 있어서겠는가.”
右梁 四主 合五十六年이라
이상 나라는 네 군주에 합하여 56년이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北周起於宇文泰
북주北周우문태宇文泰에게서 시작되었다.
因元魏擾亂하야 孝武西奔 遂挾天子而令之하야 披草萊하고 立朝廷하니 其爲國也 微矣
원위元魏가 소란한 틈을 타서 효무제孝武帝(元修)가 서쪽으로 도망하자 마침내 천자天子를 끼고 호령하여 황폐한 곳을 헤치고 조정을 세우니, 그 나라가 미약하였다.
이나 卒收威定霸하고 以弱爲强하야 南淸江, 漢하고 西擧巴, 蜀하고 北控沙漠하고 東據伊, 瀍하며 而又得蘇綽之奇才하야 修一代之文物이라
그러나 끝내 위엄을 거두어 패업霸業을 정하고 약한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서, 남쪽으로는 지방을 깨끗이 소탕하고 서쪽으로는 을 점령하고 북쪽으로는 사막을 공제控制하고 동쪽으로는 이수伊水전수瀍水를 점거하였으며, 또 기이한 재주가 있는 소작蘇綽을 얻어 한 시대의 문물文物을 닦았다.
乃擯黜晉魏하고 憲章古昔하야 依周禮而建六官하고 作九命以敍官爵하니 自三代以來 官名法度 少有可觀者 唯宇文氏耳
이에 나라와 나라의 제도를 물리치고 옛 법을 헌장憲章으로 삼아서 《주례周禮》를 따라 육관六官을 세우고 구명九命을 만들어 관작官爵을 서열하니, 삼대三代 이후로 관명官名법도法度가 다소 볼 만한 것은 오직 우문씨宇文氏일 뿐이다.
이나 泰旣鴆孝武하고 又黜廢帝하니 迹其所爲하면 特亂臣賊子之所作이니 이라
그러나 우문태宇文泰효무제孝武帝를 독살하고 또 폐제廢帝를 축출하였으니, 그가 한 짓을 살펴보면 다만 난신적자亂臣賊子의 행위일 뿐이니, 하육혼賀六渾에게 비교함에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
史謂其功業如此하야 能以善終이라하니 吾誰欺
사신史臣이 ‘그의 공업功業이 이와 같아서 잘 마쳤다.’고 말하였으니, 내 누구를 속이겠는가.
欺天乎
하늘을 속인단 말인가.”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西魏自孝武西奔長安으로 軍國大權 悉由於宇文氏하야 方坐困窮屯蹇之中이어늘 而恣情縱欲하야 爲人道所不爲之事하니 不亡其何待乎
서위西魏효무제孝武帝가 서쪽 장안長安으로 달아난 뒤로부터 군국軍國대권大權이 모두 우문씨宇文氏에게서 나와서 곤궁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해 있었는데도 마음대로 욕심을 부려서 사람의 도리에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였으니, 망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는가.
文帝雖負剛斷之資 而權柄 久有所屬하야 陵遲至恭帝而見滅於周矣
문제文帝가 비록 꿋꿋하게 결단하는 자품資品을 타고났으나 권병權柄이 오랫동안 소속한 곳이 있어서 침체되어 공제恭帝에 이르러 나라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역주
역주1 : 연
역주2 : 적
역주3 : 소
역주4 視賀六渾 有慙德焉 : 賀六渾은 北齊 高歡의 字이다. 孝武帝를 세우고 정승이 되어 권력을 전횡하였는데, 孝武帝가 서쪽으로 도망하여 宇文泰에게 의탁하자 따로 孝靜帝(元善見)를 세우니, 魏나라가 東‧西로 갈라져 宇文泰와 싸우게 되었다. 慙德은 임금으로서 자신의 德이 미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뜻으로, 즉 부덕함을 이른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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