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이 召河東守季布
하야 欲以爲御史大夫
러니 有言其勇
이 使酒難近
注+[釋義]王氏曰 因酒縱性曰使酒니 卽(醉)[酗]酒也라 難近者는 謂不可與之相親近也라者
어늘
至
하야 留邸
注+[釋義]王氏曰 邸는 舍也니 郡國朝宿之舍在京師者를 率名曰邸라 邸는 至也니 言所歸至也라 近世爲逆旅之稱이라一月
에 見罷
하다
季布因進曰 臣無功
하야 河東
이러니 陛下無故召臣
하시니
此는 人必有以臣欺陛下者요 今臣至에 無所受事하고 罷去하니 此는 人必有毁臣者라
陛下以一人之譽而召臣하시고 以一人之毁而去臣하시니 恐天下有以闚陛下之淺深也일까하노이다
〈史記, 漢書에 竝無淺深二字하니 此參用注文이라〉 上이 良久曰 河東은 吾股肱郡故로 特召君耳로라
○ 上
이 議以賈誼
로 任公卿之位
러니 大臣
이 多短之
注+[原註]漢書云 絳灌之屬이 害之라하야 曰 洛陽之人
이 年少初學
으로 專欲擅權
하야 紛亂諸事
라한대
後
에 帝思誼
하야 召至入見
할새 上
이 方受
坐
이러니 因感鬼神事
하야 而問鬼神之本
한대 誼具道其所以然之故
하야 至夜半
이라
帝前席이러니 旣罷에 曰 吾久不見賈生이라 自以爲過之러니 今不及也라하고 乃拜爲梁太傅하다
○ 絳侯周勃이 就國하야 每河東守尉 行縣至絳에 勃이 自畏恐誅하야 常被甲하고 令家人持兵以見之라
人有上書告勃欲反
이어늘 下廷尉
하야 逮捕
注+[釋義]逮는 及也니 辭之所及者則追捕之라 故謂之逮라勃治之
러니
薄太后曰 絳侯始誅諸呂하고 〈史記漢書에 竝無此一句라〉 綰皇帝璽하야 將兵於北軍하니
不以此時反
하고 今居一小縣
하야 顧欲反耶
注+[釋義]王氏曰 綰은 繫也요 璽는 卽(高)[皇]帝傳國璽라 北軍은 宿衛宮門內호되 於周垣下에 爲區廬하나니 勃持一節하고 入北軍而遂將之하야 以誅諸呂하고 廢少帝하고 手綰璽하니 時에 帝未卽位라 勃이 於此時不反하고 今更有異乎아잇가
상上이
하동태수河東太守계포季布를 불러서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고자 하였는데, 그의 만용이 술주정을 하여 가까이하기 어렵다고
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술에 취함으로 인하여 성질을 부리는 것을 사주使酒라 하니, 바로 술주정하는 것이다. 가까이하기 어렵다는 것은 더불어 서로 친근히 할 수 없음을 이른다.” 말하는 자가 있었다.
계포季布가 와서
저사邸舍(여관)에
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저邸는 집이니, 군국郡國에서 조회왔을 때에 유숙하는 집으로 경사京師에 있는 것을 모두 이름하여 저邸라 한다. 저邸는 이른다는 뜻이니, 돌아가 이르는 바를 말한다. 근세에는 역려逆旅(나그네를 맞이함)라는 칭호로 쓴다.” 머문 지 한 달 만에 내침을 당하였다.
계포季布가 인하여 나와서 말하기를 “신이 공功이 없으면서 하동河東을 맡고 있었는데 폐하께서 이유없이 신을 부르셨으니,
이는 사람 중에 반드시 신을 가지고 폐하를 속인 자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신이 와서 일을 받은 것이 없는데 물리쳐 버리시니, 이는 사람 중에 반드시 신을 훼방毁謗한 자가 있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한 사람이 칭찬한다 하여 신을 부르시고 한 사람이 훼방한다 하여 신을 버리시니, 신은 천하가 폐하의 깊고 얕음을 엿볼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는 모두 천심淺深 두 글자가 없으니, 이는 주注의 글을 참고하여 쓴 것이다. - 상上은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하동河東 지방은 나의 수족과 같은 고을이기 때문에 특별히 그대를 부른 것이다.” 하였다.
상上이,
가의賈誼에게
공경公卿의 지위를 맡길 것을 의논하였는데, 대신들이 많이 그를 훼방하여
注+[原註]《한서漢書》에 이르기를 “강후絳侯주발周勃과 관영灌嬰 등이 그를 방해했다.” 하였다. 말하기를 “
낙양洛陽 사람이 나이 젊은 초학자로 오로지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여 여러 가지 일을 어지럽힙니다.” 하자,
이에 천자天子 또한 뒤에 그를 소원히 하여 그의 건의를 따르지 않고 장사왕長沙王태부太傅로 삼았다.
뒤에 황제가 가의賈誼를 그리워하여 불러, 와서 들어가 뵈올 적에 상上이 막 〈제사를 지내고〉 복福을 받기 위하여 선실宣室에 앉아 있었는데, 인하여 귀신의 일에 감동하여 귀신의 근본에 대해 묻자, 가의賈誼가 그 소이연所以然의 이유를 말하여 한밤중에 이르렀다.
황제가 흥미를 느껴서 자리를 당겨 가의賈誼를 앞으로 가까이 오게 하였는데, 이미 끝나고 나서 말하기를 “내 오랫동안 가생賈生을 만나 보지 못하였기에 스스로 그보다 낫다고 여겼는데 이제 미치지 못한다.” 하고는 마침내 제수하여 양왕梁王의 태부太傅로 삼았다.
강후絳侯주발周勃이 자기 나라로 나아가서 매번 하동河東의 수守와 위尉가 현縣을 순행하여 강현絳縣에 이르면, 주발周勃이 스스로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해서 항상 갑옷을 입고 집안 사람들로 하여금 병기兵器를 잡게 하고서 그들을 만나 보았다.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려
주발周勃이 배반하려 한다고 고하자,
정위廷尉에게 내려
주발周勃을 체포하여
注+[釋義]체逮는 미침이니, 논죄하는 말이 미친 자는 쫓아가 체포한다. 그러므로 체逮라 이른다. 죄를 다스리게 했는데,
박태후薄太后가 말하기를 “강후絳侯가 처음 여러 여씨呂氏를 죽이고 -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는 모두 이 한 구句가 없음 - 황제의 옥새를 꿰어 차고서 북군北軍에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때에 배반하지 않고 지금 한 작은
현縣에 있으면서 도리어 배반하고자 하겠습니까?” 하였다.
注+[釋義]綰皇帝璽……顧欲反邪: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관綰은 매는 것이고, 새璽는 바로 황제皇帝의 전국새傳國璽이다. 북군北軍은 궁문 안을 숙위宿衛하는데, 둘러친 담장 아래에 구려區廬(초소)를 만들었다. 주발周勃이 한 절節을 가지고 북군北軍에 들어가 마침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여러 여씨呂氏를 죽이고 소제少帝를 폐한 다음 손에 옥새를 꿰어 찼으니, 이때에 문제文帝가 아직 즉위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발周勃이 이때 배반하지 않고 지금 다시 딴 마음이 있겠는가?”
황제가 이에 사자使者를 시켜 절節을 가지고 가서 강후絳侯를 사면하여 관작과 고을을 회복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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