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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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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午]十二年이라
12년(병오 B.C.195)
冬十月 與布兵으로 遇於西하야 大戰하다
겨울 10월에 경포黥布의 군대와 땅 서쪽에서 만나 크게 싸웠다.
布軍敗하야 走渡淮하야 數戰不利어늘
경포黥布의 군대가 패하여 도망해서 회수淮水를 건너 여러 번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하였다.
與百餘人으로 走江南이러니 令別將追之한대陽人 殺布玆鄕民田舍하다
그리하여 백여 명과 함께 강남江南으로 달아나자, 별장別將으로 하여금 추격하게 하였는데, 번양番陽 사람이 경포黥布자향玆鄕의 백성 전사田舍(농막)에서 죽였다.
〈出史記本傳〉
- 《사기史記 경포전黥布傳》에 나옴 -
○ 十一月 過魯할새 以太牢注+[頭註]凡用牲 繫養曰牢 牛曰太牢 羊曰小牢 將祭 必先擇牲하야 繫于牢하니 閑也, 圈也 防禁觸也 祠孔子하다
11월에 나라를 지날 적에 태뢰太牢注+[頭註]무릇 희생을 제사에 사용할 때에 희생을 매어 놓고 기르는 곳을 라 하니, 소를 태뢰太牢라 하고 양을 소뢰小牢라 한다. 장차 제사 하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희생을 골라서 에 매어 기르니, 는 막는 것이고 짐승을 가두는 우리인 바, 치받는 것을 막고 금하는 것이다.공자孔子에게 제사 하였다.
[新增] 愚按 尹氏曰
내가 살펴보건대 윤씨尹氏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自堯舜禹湯文武旣沒 天生孔子하야 爲萬代仁義禮樂之宗主하시니 生民之類 不至糜爛絶滅者 吾聖道扶持之功用也
, , , , 문왕文王무왕武王이 이미 별세함으로부터 하늘이 공자孔子를 내시어 만대의 인의仁義예악禮樂종주宗主로 삼았으니, 생민生民(백성)의 무리가 문드러지고 없어짐에 이르지 않은 것은 우리 성인聖人(孔子)의 가 부지한 공로였다.
自秦燔詩書, 坑學士 天下大亂하야 其禍至於陳項하야 極矣
나라가 를 불태우고 학사學士를 구덩이에 묻어 죽인 뒤로부터 천하가 크게 혼란하여 그 진승陳勝항적項籍에게 이르러 지극하였다.
漢高之興 以馬上得天下하야 不事詩書하고 嫚罵하야 其視儒道 不啻之不相入이라
나라 고조高祖가 일어날 때에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얻어 를 일삼지 않았고, 거만하게 꾸짖으며 선비의 에 오줌을 누어서, 유도儒道를 보기를 네모난 자루와 둥근 구멍이 서로 맞지 않는 것처럼 여길 뿐만이 아니었다.
이나 過魯祠孔子於兵戈倥偬之日이라
그러나 나라를 지날 적에 공자孔子에게 제사 한 것이 마침내 병기와 창이 시끄럽게 일어나던 날에 보인다.
綱目 特筆予之하니 亦以見天理之在人心하야 自有不可得而泯沒者
그러므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특별히 써서 허여하였으니, 또한 천리天理가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스스로 민멸泯滅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漢氏四百年基業 其精神命脈 蓋在於此
나라 4백 년의 기업基業이, 그 정신精神명맥命脈이 여기에 있었다.
自是而後 儒道稍稍振起하야 除挾書禁하고 置博士官하고 開獻書路 迭見於繼世之後하니 亦足以見當時崇尙之意
이로부터 이후로 유도儒道가 차츰 떨치고 일어나서 협서挾書를 금지하는 법령을 없애고 박사博士의 관직을 설치하고서 책을 올리는 길을 연 것이 몇 대를 계승한 뒤에 차례로 보이니, 또한 당시에 숭상한 뜻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이나 漢治終於不古者 粗得其一二之緖餘하고 而精微體用 未之明也일새라
그러나 나라 정치가 끝내 예스럽지 못한 것은 한두 가지의 실마리만을 대강 얻고, 정미精微체용體用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雖然이나 吾道在天地間 如一元之氣周流磅礴하야 未始一日不存하니 不以秦而泯하고 不以漢而興이라
그러나 우리 유도儒道가 천지 사이에 있음은 한 원기元氣가 두루 유행하여 가득히 성함과 같아서 일찍이 단 하루도 있지 않은 적이 없으니, 나라라고 하여 없어지지도 않고 나라라고 하여 일어나지도 않는다.
時君世主 苟能知其功用之大하야 振而起之 則聖人綏來動和之效 帝王時雍迓衡之治 可復見於天下矣리라
세상의 군주들이 만일 그 공용功用의 큼을 알아서 진작하여 일으킨다면, 편안하게 하면 오고 동하게 하면 화응和應하는 성인聖人의 효험과 이에 화락하게 하고 태평을 맞이하는 제왕帝王의 다스림을 다시 천하에 볼 수 있을 것이다.
惜乎
애석하다!
漢人 不足以語此니라
나라 사람은 이것을 말할 수 없다.”
還過沛宮할새 置酒하야 悉召故人父老하고 酒酣 自爲歌起舞하고
이 돌아오는 길에 패궁沛宮을 지날 적에 술자리를 베풀고 고인故人(옛 친구)과 부로父老들을 모두 부른 다음 술이 취하자, 이 직접 노래하고 일어나 춤을 추었다.
〈本紀曰 上擊筑注+[釋義]以竹曲五弦之樂也 應氏曰 似琴而大頭하니 以竹擊之 故名筑이라 師古曰 今筑 形似瑟而小하고 細(頭)[項]라自歌曰 大風起兮雲飛揚이로다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이르기를 “상이 注+[釋義]은 대나무를 구부려 다섯 줄을 맨 악기이다. 응씨應氏가 말하였다. “과 비슷한데 머리가 크니 대나무로 치기 때문에 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였다. “지금의 은 모양이 과 비슷하면서 작고 목이 가늘다.” 치고 스스로 노래하기를 ‘대풍大風이 일어나니 구름이 날도다.
威加海內兮歸故鄕이로다
위엄이 해내海內에 더해지고 고향에 돌아오도다.
安得猛士兮守四方고하고 上迺起舞하다
어이하면 용맹한 장사를 얻어 사방을 지킬 것인가.’ 하고는 이 마침내 일어나 춤을 추었다.” 하였다.
泣謂沛父兄曰 游子悲故鄕이로라
- 이 울면서 패현沛縣부형父兄들에게 이르기를 “떠돌이인 이 사람은 고향을 그리워한다.
自沛公으로 以誅暴逆하야 遂有天下하니 其以沛 爲朕湯沐邑注+[釋義]謂以其賦稅 供湯沐之具也[頭註] 湯沐 王制註 浴用湯하고 沐用潘이라하니 淅米汁이라 洗身也 濯髮也하라하다
짐이 패공沛公으로부터 포악하고 반역하는 자들을 주벌하고 마침내 천하를 소유하였으니, 패현沛縣을 짐의 탕목읍湯沐邑으로注+[釋義]탕목읍湯沐邑은 그 지방의 세금을 가지고 황제의 목욕하는 비용에만 씀을 이른다. [頭註]탕목湯沐은 《예기禮記》 〈왕제王制〉의 에 “몸을 씻을 때에는 끓인 물을 사용하고 머리를 감을 때에는 쌀뜨물을 사용한다.” 하였으니, 은 쌀을 씻어낸 뿌연 즙이다. 은 몸을 씻는 것이고, 은 머리를 감는 것이다. 삼겠다.” 하였다.
〈出史本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史略 史評] 廬陵劉氏曰
여릉유씨廬陵劉氏가 말하였다.
自坑焚禍烈 吾道幾墜러니 高帝以不事詩書之資 方破布還하야 乃能動念及此하야 至以太牢祀孔子하니 帝亦有大過人者矣
나라가 서적을 불태우고 유생儒生들을 구덩이에 묻어 죽여 가 혹독해짐으로부터 우리 가 거의 실추되었는데, 고제高帝에 종사하지 않은 자질로 막 경포黥布를 격파하고 돌아와서는 마침내 생각이 이에 미쳐서 태뢰太牢공자孔子를 제사함에 이르렀으니, 고제高帝는 또한 보통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점이 있는 자이다.
漢四百年吾道之重 實自此始
나라 4백 년 동안 우리 유도儒道의 중함이 실로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綱目 特書美之
그러므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특별히 이것을 써서 찬미한 것이다.
이나 其君天下而私一邑 後世 不能無譏焉이니라
그러나 천하에 군주가 되어서 한 고을을 사사로이 한 것은 후세에 비판이 없지 못하다.”
○ 立兄子濞하야 爲吳王하고 王三郡五十三城하다
형의 아들 를 세워서 오왕吳王으로 삼고 3 53에 왕 노릇 하게 하였다.
○ 上 從破布歸하야 疾益甚하야 愈欲易太子어늘
상이 경포黥布를 격파하고 돌아온 뒤로부터 병이 더욱 심하여 더욱 태자를 바꾸고자 하였다.
張良호되 不聽이라 叔孫通 諫曰
장량張良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자, 숙손통叔孫通이 간하기를
晉獻公 以驪姬之故 廢太子하고 立奚齊注+[釋義]獻公太子 名申生이라 獻公伐驪戎하야 得驪姬하야 生奚齊한대 公欲廢申生而立之러니 申生 薦祭母之胙於公이어늘 驪姬預置毒胙中이라가 公欲享한대 姬止之曰 宜試之하소서 與犬하니 犬死하고 與小臣하니 小臣死 申生 聞之懼하야 奔新城이어늘 公乃誅其傅한대 申生自殺하니라라가 晉國亂者數十年이요
나라 헌공獻公여희驪姬 때문에 태자를 폐하고 해제奚齊를 세웠다가注+[釋義]헌공獻公태자太子는 이름이 신생申生이다. 헌공獻公여융驪戎을 정벌해서 여희驪姬를 얻어 해제奚齊를 낳자, 헌공獻公신생申生을 폐하고 해제奚齊를 세우려고 하였다. 이때 마침 신생申生이 어머니를 제사 한 고기를 헌공獻公에게 바치니, 여희驪姬가 미리 고기 속에 독약을 넣어 두었다가 헌공獻公이 먹으려고 하자 여희驪姬가 만류하며 말하기를 “마땅히 시험해 보셔야 합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고기를 개에게 주니 개가 죽고, 소신小臣에게 주니 소신小臣이 죽었다. 신생申生이 이를 듣고 두려워하여 신성新城으로 달아났는데, 헌공獻公이 마침내 그 사부師傅를 죽이자 신생申生자살自殺하였다.나라가 혼란한 것이 수십 년이었으며,
以不蚤(早)定扶蘇注+[釋義]扶蘇 始皇長子也 不早定太子之位라가 後以諫坑儒獲罪하야 使監蒙恬軍於上郡이러니 始皇崩 趙高乃詐爲遺詔하야 賜扶蘇死하니라라가 令趙高 得以詐立胡亥하야 自使滅祀하니 陛下所親見이니이다
나라가 일찍 부소扶蘇를 태자로 정하지 않았다가注+[釋義]부소扶蘇시황始皇장자長子이니, 태자太子의 자리를 일찍 정하지 않았다가 뒤에 유생儒生들을 묻어 죽인 일을 간하다가 죄를 얻어 상군上郡에 있던 몽념蒙恬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시황始皇이 죽자 조고趙高는 마침내 거짓으로 유조遺詔를 만들어 부소扶蘇에게 주어 죽게 하였다.조고趙高로 하여금 거짓으로 호해胡亥를 세우게 해서 스스로 종사宗祀를 멸망하게 하였으니, 이는 폐하께서 직접 보신 바입니다.
今太子仁孝 天下皆聞之하니 陛下必欲廢適(嫡)而立少인댄 願先伏誅하야호리이다
이제 태자의 인자하고 효성스러움을 천하 사람들이 모두 들어서 알고 있는데, 폐하께서 기필코 적자適子를 폐하고 소자少子를 세우고자 하신다면 신은 원컨대 먼저 죽임을 받아 목의 피로써 땅을 더럽히겠습니다.” 하였다.
帝曰 吾直戲耳로라 叔孫通曰 太子 天下本이라 本一搖 天下震動하나니
황제가 말하기를 “내 다만 농담하였을 뿐이다.” 하니, 숙손통叔孫通이 말하기를 “태자는 천하의 근본이니, 근본이 한 번 흔들리면 천하가 진동합니다.
奈何以天下戲乎잇가
어찌하여 천하를 가지고 농담을 하신단 말입니까?” 하였다.
大臣固爭者多
이때 대신 중에 굳이 간쟁하는 자가 많았다.
知群臣心 皆不附趙王하고 乃止不立하다
은 여러 신하들의 마음이 모두 조왕趙王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마침내 중지하고 조왕趙王을 태자로 세우지 않았다.
〈出史叔孫通傳〉
- 《사기史記 숙손통전叔孫通傳》에 나옴 -
張良傳云
사기史記》 〈장량전張良傳〉에 말하였다.
呂后使建成侯呂澤으로 劫良호되 爲我畫計하라한대 良曰 此 難以口舌爭也
여후呂后건성후建成侯 여택呂澤으로 하여금 장량張良을 위협하게 하여 ‘나를 위해 계책을 세우라’ 하니, 장량張良이 말하기를 ‘이는 구설口舌로 간쟁하기가 어렵습니다.
顧上所不能致者四人注+[釋義]四人 謂東園公, 綺里季, 夏黃公, 里先生이라 音義曰 東, 綺, 夏, 甪 四姓也 甪字하니 音鹿이라 索隱曰 東園公 姓唐이요 字宣明이니 居園中하야 因號焉이라 夏黃公 姓崔 名廣이요 字少道 齊人이니 隱居夏里하야 因號焉이라 甪里先生 河內軹人이니 泰伯之後 姓周 名術이요 字元道 京師號曰霸上先生이요 一曰甪里先生이라이니 固請이면 宜來리니 令上見之 則一助也리라
돌아보건대 이 초치하지 못한 자가 네 사람인데,注+[釋義]네 사람은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을 이른다. 《음의音義》에 이르기를 “, , , 은 네 이다. 녹자甪字는 두 점을 따르고 아래는 용자用字이니 음이 록이다.” 하였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동원공東園公이고 선명宣明이니 원중園中에 살았으므로 인하여 로 삼은 것이다. 하황공夏黃公이고 이름이 이고 소도少道이고 나라 사람이니 하리夏里에 은거하였으므로 인하여 로 삼은 것이다. 녹리선생甪里先生하내河內 지현軹縣 사람이니 태백泰伯의 후손이다. 이고 이름이 이고 원도元道이니 경사京師에서 패상선생霸上先生이라 호하였고 일설一說에는 녹리선생甪里先生이라 하였다. 이들을 굳이 청하면 마땅히 올 것이니, 으로 하여금 이들을 보시게 하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呂澤 使人奉太子書하야 卑辭厚禮하야 迎此四人하다
여택呂澤이 사람을 시켜 태자의 편지를 받들어 겸손한 말과 후한 예로 이 네 사람을 맞이하였다.
四人하야 客建成侯所러니 及宴置酒 太子侍할새 四人者從太子하니 年皆八十有餘 須(鬚)眉注+[頭註] 面毛也 今以須爲所須字하고 而別作鬚 在頤曰須 在頰曰髥也皓白하고 衣冠甚偉
네 사람이 와서 건성후建成侯의 처소에 손님으로 머물렀는데, 잔치하여 술자리를 베풀게 되자, 태자가 황제를 모실 적에 네 사람이 태자를 따라오니, 나이가 모두 80여 세여서 수염과 눈썹이注+[頭註]는 얼굴의 수염이니, 지금은 자를 ‘소수所須[필요한 바]’의 자로 삼고, 수염이라는 뜻은 따로 수자鬚字를 만들어 쓴다. 수염이 턱에 난 것을 라 하고, 수염이 뺨에 난 것을 이라 한다. 희고 의관이 매우 거룩하였다.
怪問曰 何爲者 四人 前對하야 各言其姓名하니
이 괴이하게 여겨 묻기를 ‘이들은 무엇하는 자들인가?’ 하니, 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 대답하여 각기 자신들의 성명을 말하였다.
上迺驚曰 吾求公호되 避逃我러니 今公 何自從吾兒游乎
은 마침내 놀라며 말하기를 ‘내가 들을 찾았으나 나를 도망하여 피하더니, 이제 들이 어찌하여 스스로 내 아들을 따라 노는가?’ 하였다.
四人曰 陛下輕士善罵하시니 臣等 義不辱故 恐而亡匿이러니
네 사람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선비들을 경시하고 꾸짖기를 잘하시니, 신들이 의리상 욕을 당할 수가 없으므로 두려워서 도망해 숨었던 것입니다.
今聞太子仁孝恭敬愛士하시니 天下莫不延頸하야 願爲太子死者
그런데 이제 듣자오니, 태자가 인자하고 효성스럽고 공경하며 선비들을 사랑하시어, 천하 사람들이 목을 늘이고 태자를 위해 죽기를 원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臣等로소이다
그러므로 신들이 온 것입니다.’ 하였다.
上曰 煩公하노니 幸卒調護注+[頭註]調 謂和平也 謂保安之也太子하라
이 ‘공들에게 번거롭게 당부하노니 부디 끝까지 태자를 조호調護하라.’注+[頭註]調화평和平함을 이르고, 는 보호하여 편안히 함을 이른다. 하였다.
四人 爲壽已畢 趨去어늘 目送之하고 召戚夫人하야 指視曰
네 사람이 축수祝壽하기를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나가자, 이 눈여겨 전송하고 척부인戚夫人을 불러 이들을 가리켜 보이며 말하기를
我欲易之러니 彼四人 爲之輔하야 羽翼 已成하니 難動矣라하고 罷酒하니
‘내가 태자를 바꾸고자 하였는데, 저 네 사람이 태자의 보필이 되어 우익羽翼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동요시키기가 어렵다.’ 하고는 이 술자리를 파하였다.
竟不易太子者 本招此四人之力也러라
끝내 태자를 바꾸지 않은 것은 장량張良이 본래 이 네 사람을 불러온 힘이었다.”
[史略 史評] 胡氏曰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善乎 子房之能納說也
자방子房은 말을 아뢰기를 잘하였다.
不先事而强聒하고 不後事而失幾하야 不問則不言하고 言則必當其可
일에 앞서서 억지로 떠들지 않고 일에 뒤늦어 기회를 잃지 아니하여,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고 말하면 반드시 그 옳음에 합당하였다.
聽之易而用之不難也
그러므로 듣기가 쉽고 따르기가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至於招致四人하야 以安太子하야는 則其績尤偉어늘
네 사람(商山四皓)을 초치하여 태자太子를 편안히 함에 이르러서는 그 공적이 더욱 훌륭한데,
而司馬公 乃致疑焉하야 以爲若審有此 子房 爲子植黨하야 以拒父也라하니
사마온공司馬溫公은 도리어 의심하여 말하기를 ‘만약 참으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이는 자방子房이 아들을 위하여 도당徒黨을 심어서 아버지를 막은 것이다.’ 하였으니,
夫高祖之雄傑 豈四叟所能抗이며 而大臣力諫之强 豈不賢於四叟之助리오
고조高祖웅걸雄傑함이 어찌 네 노인이 항거할 수 있는 바였겠으며, 대신大臣들이 강력히 간함이 어찌 네 노인의 도움보다 낫지 않았겠는가.
嗚呼 是未知春秋深許이요 而易有納約自牖之象也
아, 이는 《춘추春秋》에 수지首止의 맹약을 깊이 허여하고, 《주역周易》에 ‘사람을 깨우치되 밝은 곳으로부터 한다.’는 이 있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今特據舊史하야 復詳載其事云이라
그러므로 이제 특별히 옛 역사책에 의거하여 다시 그 일을 자세히 기재하는 것이다.”
相國何 以長安地陿하고 上林中 多空地棄注+[釋義]謂多有空隙之地하야 捐棄無用이라라하야 願令民으로 得入田하고 毋收藁하야 爲禽獸食하노이다
상국相國 소하蕭何가 ‘장안長安은 땅이 좁고 상림원上林苑은 가운데에 빈 땅으로 버려진 것이 많다.’注+[釋義]다공지기多空地棄는 빈 땅이 많이 있어서 버려지고 쓸모가 없음을 이른다.고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들어와 농사를 짓되 짚을 거두지 말아서 금수의 먹이로 삼게 할 것을 원하였다.
大怒曰 相國 多受賈人財物하야 爲請吾苑이라하고 下廷尉하야 械繫之러니
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상국相國이 장사꾼들의 재물을 많이 받고서 그들을 위하여 내 동산을 청한다.” 하고는 정위廷尉에게 내려 형틀에 묶었다.
數日 王衛尉注+[釋義]衛尉 秦官이니 掌宮門衛屯兵이라 姓也 史失其名이라라가 前問曰 相國 胡大罪완대 陛下繫之시니잇고 上曰 受賈하고 請吾苑하야 以自媚於民故 繫治之로라
며칠 뒤에 왕위위王衛尉注+[釋義]위위衛尉나라 관직이니, 궁궐문을 지키는 병사를 관장하는 자이다. 이니, 역사책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모시고 있다가 앞으로 나아가 묻기를 “상국相國이 무슨 큰 죄가 있기에 폐하께서 갑자기 구속하셨습니까?” 하니, 이 말하기를 “장사꾼들의 돈을 받고 내 동산을 청하여 스스로 백성들에게 잘 보이려 하였으므로 구속하여 죄를 다스린 것이다.” 하였다.
王衛尉曰 有便於民而請之하니 眞宰相事니이다
왕위위王衛尉가 말하기를 “백성에게 편리함이 있어 청한 것이니, 이는 참으로 재상이 해야 할 일입니다.
且陛下距楚數歲 陳豨, 黥布反 陛下自將而往하시니 當是時하야 相國 守關中이라
또 폐하께서 나라와 대치한 지가 몇 년이었고, 진희陳豨경포黥布가 배반하자 폐하께서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토벌하러 가셨으니, 이때를 당하여 상국相國관중關中을 지켰습니다.
關中 搖足이면 則關以西 非陛下有也어늘 相國 不以此時爲利하고 今乃利賈人之金乎잇가 帝不豫注+[通鑑要解] 悅也 感衛尉之言이라 故慙悔而不悅也하야 是日 使使持節하야 赦出何하다
관중關中이 발(기초)이 흔들렸으면 관중關中 이서以西는 폐하의 소유가 아니었을 터인데, 상국相國이 이때를 이로움으로 삼지 않고 이제 마침내 장사꾼들의 돈을 이로움으로 삼겠습니까.” 하니, 이 기뻐하지 않고는注+[通鑑要解]는 기쁨이니, 왕위위王衛尉의 말에 감동되었기 때문에 부끄럽고 뉘우쳐 기뻐하지 않은 것이다. 이날 사자使者를 시켜 을 가지고 가서 소하蕭何를 사면하여 내보내게 하였다.
何入謝어늘 帝曰 相國 爲民請苑이어늘 吾不許하니 不過爲桀紂主 而相國 爲賢相이라
소하蕭何가 들어와 사례하자, 황제가 말하기를 “상국相國이 백성을 위하여 동산을 청하였는데 내 허락하지 않았으니, 나는 와 같은 군주에 불과하고 상국相國은 어진 재상이 되었다.
吾故繫相國하야 欲令百姓聞吾過로라
그러므로 내가 고의로 상국相國을 구속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나의 과실을 듣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하였다.
〈出蕭相國世家〉
- 《사기史記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에 나옴 -
○ 上 擊布時 爲流矢所中하야 行道疾甚이어늘
경포黥布를 공격할 때에 유시流矢에 맞아 길을 가는 도중에 병이 심하였다.
呂后迎良醫入見한대 嫚罵之曰 吾以布衣 持三尺注+[釋義]三尺 三尺劍也 上制 劍長三尺이요 重三斤十二兩이라하야 取天下하니 此非天命乎
여후呂后가 훌륭한 의원을 맞이하여 들어와 보게 하자, 이 거만하게 꾸짖기를 “내가 포의布衣로 3을 잡고注+[釋義]3은 3이다. 상고시대上古時代의 제도에 은 길이가 3이고 무게가 3 12이었다. 천하를 취하였으니, 이는 천명天命이 아니겠는가.
命乃在天하니 雖扁鵲注+[釋義]春秋時良醫也 齊勃(渤)海郡鄭縣人이라 姓秦이요 名越人이라 〈黃帝〉八十一難序云 秦越人 與軒轅時扁鵲相類 故仍號扁鵲이요 又家於盧國하야 因名盧醫라하니라인들 何益이리오하고 遂不使治疾하다
이 바로 하늘에 달려 있으니, 비록 편작扁鵲인들注+[釋義]편작扁鵲춘추시대春秋時代양의良醫이니, 나라 발해군渤海郡 정현鄭縣 사람이다. 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팔십일난서八十一難序에 이르기를 “진월인秦越人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 때의 편작扁鵲과 서로 비슷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편작扁鵲이라 이름하고, 또 노국盧國에서 살았으므로 인하여 노의盧醫라고도 이름한다.” 하였다.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병을 치료하지 못하게 하였다.
〈出本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 呂后問曰 陛下百歲後 蕭相國 旣死어든 誰令代之잇고 上曰 曹參니라
여후呂后가 묻기를 “폐하가 백세百歲가 된(돌아가신) 뒤에 소상국蕭相國이 이미 죽으면 누구로 하여금 대신하게 해야 합니까?” 하니, 이 대답하기를 “조참曹參이 괜찮다.” 하였다.
問其次한대 曰 王陵어니와이나하니 陳平 可以助之 陳平 知(智)有餘 然難獨任이라
그 다음을 묻자 대답하기를 “왕릉王陵이 괜찮으나 조금 우직하니 진평陳平이 도울 수 있으며, 진평陳平은 지혜는 충분하나 홀로 맡기기는 어렵다.
周勃 重厚少文이나이나 安劉氏者 必勃也 可令爲太尉니라
주발周勃이 후중하고 문아文雅가 적으나 우리 유씨劉氏를 편안히 할 자는 주발周勃이니, 그를 태위太尉로 삼을 만하다.” 하였다.
呂后復問其次한대 上曰 此後니라
여후呂后가 다시 그 다음을 묻자, 이 말하기를 “이 뒤는 또한 네가 알 바가 아니다.” 하였다.
〈出本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 夏四月 帝崩하다
○ 여름 4월에 황제가 하였다.
[新增] 唐仲友曰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看帝屬呂后하면 合知諸呂終爲平勃所制니라
고제高帝여후呂后를 부탁한 것을 보면 여러 여씨呂氏들이 끝내 진평陳平주발周勃에게 제어 당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史略 史評] 愚按 高帝起布衣하야 提三尺劍하야 八年而成帝業하니 何其速哉
내가 살펴보건대 고제高帝포의布衣로 일어나 삼척三尺의 검을 잡고서 8년 만에 제업帝業을 이루었으니, 어쩌면 그리도 신속한가.
惟寬仁愛人하고 知人善任而已
이는 오직 너그럽고 인자하여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알아 잘 맡겼기 때문이다.
其入關也 不殺子嬰하고 約法三章하야 而大本以立이요 其伐楚也 縞素興師하야 不忘故主하야 而大義以明이라
관중關中에 들어가서는 자영子嬰을 죽이지 않고 삼장三章의 법을 약속하여 큰 근본이 확립되었고, 나라를 정벌할 때에는 군사들에게 소복素服을 입히고 군대를 일으켜서 옛 군주를 잊지 아니하여 대의大義가 밝아졌다.
當是之時하야 張良 說謀하고 韓信 行兵하고 蕭何 給餉하니 用人者昌 固其宜也
이때를 당하여 장량張良은 계책을 말하고 한신韓信은 군대를 운용하고 소하蕭何군량軍糧을 공급하였으니, 사람을 잘 등용한 자가 번창함이 진실로 당연한 것이다.
及天下已定하야는 則赦季布하야 以旌委身徇主之烈士하고 斬丁公하야 以厲懷私結恩之姦臣하고 祀孔子하야 以崇繼天立極之大聖하니
그리고 천하가 이미 평정됨에 미쳐서는 계포季布를 사면하여 몸을 바쳐 군주를 위한 열사烈士를 표창하였고, 정공丁公을 목 베어서 사심私心을 품고 은혜를 맺은 간신姦臣을 징계하였으며, 공자孔子를 제사 하여 하늘의 뜻을 이어 표준을 세운 대성인大聖人을 높였다.
其慮事深遠 如此하니 子孫享有天祿四百餘年 不亦宜乎
일을 생각함의 깊고 원대함이 이와 같았으니, 자손이 천록天祿을 4백여 년 동안 누림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나 殺韓信, 醢彭越하야 而君臣之義虧하고 疎呂后, 寵戚姬하야 而夫婦之道缺하고 欲易太子하야 而父子之恩乖하고 至於不事詩書하고冠侮士하며 禮文制度 大抵襲秦하니 漢治所以不能復古 惜哉로다
그러나 한신韓信을 죽이고 팽월彭越을 젓 담가서 군신간君臣間의 의리가 훼손되었고, 여후呂后를 소원히 하고 척희戚姬를 총애하여 부부간夫婦間가 무너졌고, 태자太子를 바꾸고자 하여 부자간父子間의 은혜가 괴리되었고, 시서詩書를 일삼지 않고 에 오줌을 누어 선비를 업신여김에 이르렀으며, 예문禮文제도制度가 대체로 나라를 인습하였으니, 이는 나라의 다스림이 옛날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니, 애석하다.
○ 初 高祖不修文學而性明達하고 好謀能聽하야 自監門 見之如舊
처음에 고조高祖문학文學을 닦지 않았으나 성품이 총명하고 통달하며, 지모智謀를 좋아하고 남의 의견을 잘 들어 감문監門수졸戍卒도 한 번만 보면 구면舊面과 같았다.
初順民心하야 作三章之約이러니 天下旣定 命蕭何하야 次律令注+[釋義]以初約三章之法 不足以禦奸이라 故命蕭何하야 (操)[捃]摭秦法하야 作律九章이라 謂第其輕重이라하고 韓信 申軍法하고 張倉 定章程注+[釋義]如淳曰 章 歷數之章術也 法式也 謂權衡丈尺斛斗之平法이라 (贊)[瓚]曰 按茂陵{中}書 丞相爲工用程數其中이라하니 言百工用材多少之量及制度之程品 是已 謂始計定之也하고 叔孫通 制禮儀하고 又與功臣으로 剖符作誓注+[釋義] 析符竹이니 使世襲其爵而誓之曰 使黃河如帶하고 泰山若礪토록 國以永存하야 爰及苗裔라하니라하야 丹書鐵券注+[釋義] 符契也 以鐵鐫之하야 朱書字也 國之所以示信이라 後唐明宗 問趙鳳曰 帝王賜人鐵券 何也 對曰 與之立誓하야 令其子孫으로 長享爵祿耳라하니라 金匱石室注+[釋義]金匱 猶金縢也 以誓書 藏之匱中而緘之以金하야 不欲人開之 又以石爲室하고 置匱其中하야 藏於宗廟하야 使與國同休 藏之宗廟하니 雖日不暇給注+[通鑑要解] 足也 衆事煩多하야 常汲汲也이나 規摹(模)注+[通鑑要解] 正圓之器 規倣也 取喩規摹 謂立制垂範也 與模同이라弘遠矣러라
처음에 민심民心을 순응하여 삼장三章의 약속을 만들었는데, 천하가 이미 평정되자 소하蕭何에게 명하여 율령律令을 차례로 정하게 하고,注+[釋義]처음에 약속한 3만 가지고는 간사함을 충분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소하蕭何에게 명하여 나라 을 뽑아 율법律法 9을 만든 것이다. 경중輕重을 차례 매김을 이른다.한신韓信에게 군법軍法을 펴게 하고 장창張倉에게 장정章程을 정하게 하고注+[釋義]여순如淳이 말하였다. “역수曆數장술章術이고, 법식法式이니 권형權衡장척丈尺곡두斛斗를 공평하게 하는 법을 이른다.” 설찬薛瓚이 말하기를 “살펴보건대 《무릉서茂陵書》에 ‘승상丞相공인工人들이 사용하는 것을 위하여 그 가운데를 정수程數한다.’ 하였으니, 백공百工들이 쓰는 재목의 다소多少제도制度정품程品을 말했다는 것이 이것이다.” 은 처음에 계획하여 정함을 이른다.숙손통叔孫通에게 예의禮儀를 짓게 하였고, 또 공신들과 부절符節을 나누어 맹약하는 글을 만들어서注+[釋義]부죽符竹을 쪼개는 것이니, 작위爵位세습世襲하게 하고 맹세하기를 “황하黃河가 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닳아도 나라가 길이 보존되어 후손에게까지 미친다.”라고 하였다.단서丹書철권鐵券注+[釋義]부계符契(符節)이다. 단서철권丹書鐵券은 쇠에 새겨 주사朱砂로 글자를 쓰는 것이니, 국가에서 신의를 보이는 것이다. 후당後唐명종明宗조봉趙鳳에게 “제왕帝王이 사람들에게 철권鐵券을 하사함은 어째서인가?” 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그와 더불어 맹세하여 그 자손으로 하여금 길이 작록爵祿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금궤金匱석실石室注+[釋義]금궤金匱금등金縢과 같으니 맹세한 글을 궤 속에 보관하고 쇠줄로 묶어서 사람들이 열지 못하게 하고자 한 것이요, 또 돌로 집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궤를 넣어 종묘宗廟에 간직해서 국가와 아름다움을 함께 누리게 하는 것이다. 넣어 종묘宗廟에 보관하니, 비록 시일은 부족하였으나注+[通鑑要解]은 넉넉함이니, 여러 일이 많아서 항상 여유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규모는 원대하였다.注+[通鑑要解]는 둥근 것을 바로잡는 기구이고 는 모방하는 것이니, 규모規摹를 취하여 비유함은 제도를 세우고 모범을 드리움을 이른 것이다. 와 같다.
〈出漢書本紀〉
- 《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에 나옴 -
[新增] 唐仲友曰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誤聽守關計하야 取項羽怒라가 賴張良免하고 誤聽立六國計라가 賴張良不敗事하고 誤聽使者十輩言하야 圍平城이라가 遂用婁敬和親約하고 誤欲止宮休舍라가 賴張良諫止하고 誤欲敗項羽라가 賴蕭何諫就封하고 誤罵齊使라가 賴良平諫止하고 誤欲西歸라가 賴良平諫追羽하고 誤言安事詩書라가 賴陸賈諫聽하고 誤不知尊太公이라가 賴家令言注+[附註]家令 說太公曰 皇帝雖子 人主也 太公雖父 人臣也 奈何令人主拜人臣而使威重不行乎잇가 朝太公할새 太公 擁篲迎門却行이어늘 上大驚하야 下扶太公한대 太公曰 帝 人主 奈何以我亂天下法이리오한대 上乃尊太公하야 爲太上皇하고 賜家令金百斤하다 家令 掌太公家卽聽하고 誤欲易太子라가 賴張良招四皓定하고 誤囚蕭何라가 賴王衛尉諫改하니 誤處 皆緣不學이요 改處 皆緣性明達이니 若使高祖學이면 亦無此誤리라
관중關中을 지키라는 계책을 잘못 따라 항우項羽에게 노여움을 샀다가 장량張良에게 힘입어 화를 면하였고, 육국六國을 세우라는 계책을 잘못 따랐다가 장량張良에게 힘입어 일을 패하지 않았고, 사자使者 열 명의 말을 잘못 따라 평성平城에 포위당했다가 마침내 누경婁敬의 말을 써서 화친을 맺었고, 〈함양咸陽에 들어가〉 잘못 나라 안에 머물면서 휴식하려고 했다가 장량張良간언諫言에 힘입어 중지하였고, 잘못 항우項羽를 공격하려고 했다가 소하蕭何간언諫言에 힘입어 봉지封地한중漢中으로 나아갔고, 잘못 나라(韓信)의 사자使者를 꾸짖다가 장량張良진평陳平간언諫言에 힘입어 중지하였고, 잘못 서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가 장량張良진평陳平간언諫言에 힘입어 항우項羽를 추격하였고, 잘못 를 일삼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가 육가陸賈간언諫言에 힘입어 들었고, 잘못 태공太公을 높일 줄 몰랐다가 가령家令의 말에注+[附註]가령家令고조高祖의 아버지인 태공太公을 설득하기를 “황제가 비록 아들이나 군주이고 태공太公이 비록 아버지이나 신하이니, 어찌 군주로 하여금 신하에게 절하게 하여 황제의 위엄이 행해지지 않게 하십니까?” 하였다. 뒤에 태공太公을 뵈올 적에 태공太公이 빗자루를 잡고 문에서 맞이하여 뒷걸음질 치니, 이 크게 놀라 수레에서 내려 태공太公을 부축하였다. 태공太公은 말하기를 “황제는 군주이니, 어찌 나 때문에 천하의 법을 어지럽힌단 말입니까?” 하니, 이 마침내 태공太公을 높여 태상황太上皇이라 하고 가령家令에게 백 근의 을 하사하였다. 에 “가령家令태공太公의 집을 관장하는 관원이다.” 하였다. 힘입어 따랐고, 잘못 태자太子를 바꾸고자 했다가 장량張良사호四皓를 불러온 것에 힘입어 정하였고, 잘못 소하蕭何를 가두었다가 왕위위王衛尉간언諫言에 힘입어 고쳤으니, 잘못된 부분은 모두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고 고친 부분은 모두 천성天性이 밝게 통달했기 때문이니, 만약 고조高祖가 배웠더라면 또한 이런 잘못이 없었을 것이다.”
班固贊曰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에 말하였다.
漢帝 本系出自唐帝
나라 고제高帝는 본래 계통이 임금에게서 나왔다.
降及于周하고 在秦作劉러니 涉魏而東하야 遂爲豐公하니 豐公 蓋太上皇父也
후대로 내려와 나라에 이르고 나라에서는 유씨성劉氏姓이 되었는데 나라로 들어가 동쪽으로 가서 마침내 풍공豐公이 되니, 풍공豐公태상황太上皇의 아버지이다.
由是推之하면 漢承堯運하야 德祚已盛하고 斷蛇著符하야 旗幟尙赤하야 協於火德하니 自然之應 得天統矣니라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나라는 임금의 을 이어서 복록福祿이 이미 성하였고, 뱀을 죽여 부험符驗이 드러나서 기치旗幟적색赤色을 숭상하여 화덕火德에 맞았으니, 자연의 응함이 천통天統을 얻은 것이다.”
敍傳曰
한서漢書》 〈서전敍傳〉에 말하였다.
皇矣漢祖 纂堯之緖하니 實天生德하야 聰明神武
“훌륭한 나라 고조高祖여, 임금의 계통을 이으니 실로 하늘이 을 내어 총명하고 신무神武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기강을 세우지 못하고, 나라(項羽)의 그물에서 빠져나왔다.
爰玆發迹하야 斷蛇奮旅하고 神母告符하야 朱旗乃擧
이에 자취를 드러내어 뱀을 죽이고 군대를 일으켰으며, 신모神母부험符驗을 고하여 붉은 깃발을 이에 들었다.
粤蹈秦郊하니 嬰來稽首
나라 교외郊外를 밟으니 진왕秦王 자영子嬰이 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革命創制 三章是紀하야 應天順民하니 五星同晷
혁명革命하여 제도를 만들 때에 삼장三章을 만들어 천심天心에 응하고 민심民心에 순응하니 오성五星이 함께 빛났다.
項氏畔換하야 黜我巴漢하니 西土宅心하고 戰士憤怨이라
항씨項氏가 강성하여 자신을 파한巴漢으로 내치니, 서쪽 지방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오고 전사戰士들은 분개하고 원망하였다.
乘釁而運하야 席卷三秦하고 割據河山하야 保此懷民이라
틈을 타서 움직여 삼진三秦을 석권하고 산하山河를 점거하여 을 그리워하는 우리 백성들을 보호하였다.
股肱蕭曹 社稷是經하고 爪牙信布 腹心良平 龔行天罰하야 赫赫明明이라
고굉股肱과 같은 소하蕭何조참曹參사직社稷을 경영하고, 조아爪牙와 같은 한신韓信경포黥布, 복심腹心과 같은 장량張良진평陳平과 함께 천벌을 행하여 혁혁赫赫하고 명명明明하였다.”
班彪王命論曰
반표班彪왕명론王命論에 말하였다.
蓋在高祖 其興也有五하니 一曰帝堯之苗裔 二曰體貌多奇異 三曰神武有徵應이요 四曰寬明而仁恕 五曰知人善任使
고조高祖 때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 다섯 가지 이유가 있었으니, 첫 번째는 제요帝堯의 후손이요, 두 번째는 체모體貌기이奇異함이 많은 것이요, 세 번째는 신무神武하여 징험이 있는 것이요, 네 번째는 너그럽고 밝으면서도 인자한 것이요, 다섯 번째는 사람을 알아 잘 맡긴 것이다.
加之以誠信好謀하고 達於聽受하야 見善如不及하고 用人如由己하며 從諫如順流하고 趣(趨)時如嚮(響)赴
게다가 성실하고 도모하기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받아들여 을 보면 미치지 못할 듯이 하였고 사람을 등용할 때에 자기 몸과 같이 하였으며, 간언諫言을 따르기를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하고 시기를 맞추기를 메아리가 울리는 것처럼 하였다.
當食吐哺하야 納子房之策하고 拔足揮洗하야 揖酈生之說하며 寤戍卒之言하야 斷懷土之情하고 高四皓之名하야 割肌膚之愛하며 擧韓信於行陣하고 拔陳平於亡命하야 英雄陳力하고 群策畢擧하니 此高祖之大略 所以成帝業也니라
밥을 먹다가 먹던 밥을 뱉고서 장자방張子房의 계책을 받아들이고, 발 씻던 것을 치우고서 역생酈生의 말에 하였으며, 수자리 살러 가는 군사의 말을 받아들여 고향을 그리워하는 을 끊었고, 상산商山 사호四皓의 명성을 높게 여겨 피붙이의 사랑을 끊었으며, 한신韓信행진行陣에서 들어 쓰고 진평陳平을 망명온 사람 중에서 발탁하여, 영웅들이 힘을 펴고 여러 계책이 다 시행되었으니, 이는 고조高祖의 큰 도략이 제업帝業을 이룬 것이다.”
역주
역주1 : 기
역주2 : 파
역주3 : 뇨
역주4 枘鑿 : 예조
역주5 : 현
역주6 [譯註]以頸血汙地 : 한 번 죽음을 아까워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7 : 녹
역주8 從兩點下用 : 두 점을 따르고 아래는 用字이면 角이 된다. 그리하여 角里로 쓰기도 하며 甪里로 쓰기도 한다.
역주9 [譯註]首止之盟 : 首止는 春秋時代 衛나라의 땅으로 지금의 河南省 睢縣에 있었다. 周나라 惠王이 庶子인 帶를 총애하여 太子인 鄭을 폐하고 그를 세우려 하니, 僖公 5년 가을 8월에 齊나라 桓公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太子를 首止에서 회견하여 그 지위를 안정시켰다. 이가 후일 周나라 襄王으로 《春秋左傳》의 注疏에 齊나라 桓公을 칭찬하였다.
역주10 : 폭
역주11 : 수
역주12 : 당
역주13 [譯註]非乃所知 : 乃는 너이다. 이로부터 이후는 그대 또한 죽을 것이니, 모름지기 알 필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乃를 乃夫(당신의 남편)의 줄임말로 보아 高祖 자신을 이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역주14 : 뇨
역주15 [譯註]戍卒 : 수자리하는 병졸로, 여기서는 婁敬을 가리킨다.
역주16 [譯註]秦人不綱 網漏于楚 : 《漢書》 顔師古 注에 “秦나라가 기강을 잃었기 때문에 高祖가 기회를 타고 일어남을 말한 것이다. 楚나라의 그물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은 項羽가 비록 高祖를 해치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高祖가 끝내 화를 면하였음을 이른 것이다. 一說에는 楚王 陳涉이 처음 起兵하였으나 뒤에 패망함을 이른 것이라 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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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오] 12년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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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오] 12년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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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병오] 12년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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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병오] 12년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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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병오] 12년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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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병오] 12년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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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병오] 12년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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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병오] 12년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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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병오] 12년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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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병오] 12년 289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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