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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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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申]嗣聖元年이라 〈二月 睿宗文明元年이요 九月 太后光宅元年이라
사성嗣聖 원년元年(갑신 684) - 2월은 예종睿宗 문명文明 원년元年이고, 9월은 태후太后 광택光宅 원년元年이다. -
正月 立妃韋氏하야 爲皇后하고 擢后父玄貞하야 爲豫州刺史하다
정월에 태자비太子妃 위씨韋氏를 세워 황후로 삼고, 황후의 아버지인 위현정韋玄貞을 발탁하여 예주자사豫州刺史로 삼았다.
[新增]文公感興詩曰
[新增]朱文公(朱熹)의 감흥시感興詩에 말하였다.
晉陽啓唐祚注+[頭註]高祖 自晉陽宮監起 하고
진양晉陽에서 나라 왕조王朝를 열었고注+[頭註]고조高祖(李淵)는 나라의 진양궁감晉陽宮監으로 있다가 발신하였다.
王明紹巢封注+[頭註]太宗 納其弟齊王元吉之妃하야 生子明하야 紹巢王之後하고 追封元吉하야 爲巢이라 이라
왕자王子 이명李明소랄왕巢剌王봉작封爵을 이었네.注+[頭註]태종太宗은 동생인 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楊氏)를 맞이하여 아들 이명李明을 낳아 소왕巢王의 뒤를 잇게 하고, 이원길李元吉소랄왕巢剌王으로 추봉追封하였다.
垂統已如此注+[頭註]言垂統之主 其瀆亂綱常 已如此 하니
전통을 드리운 군주가 이미 이와 같으니注+[頭註]전통을 후손에게 물려준 군주가 강상綱常을 더럽히고 어지럽힘이 이미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繼體宜昏風注+[頭註]如高宗者 昏迷淫亂하야 而有武后之事也이라
뒤를 이은 자손은 혼미한 풍조가 당연하였네.注+[頭註]고종高宗과 같은 자는 혼미하고 음란하여 무후武后의 일이 있었던 것이다.
麀聚瀆天倫하고
부자父子가 한 여자를 함께 취하여 천륜天倫을 더럽히고
牝晨司禍凶注+[頭註]牝晨 牝雞之晨이니 謂武后僭立也이라
암탉이 새벽에 울어 화흉禍凶을 주관하였도다.注+[頭註]빈신牝晨은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이니, 무후武后가 참람하게 제위帝位에 선 것을 이른다.
乾綱一以墜注+[頭註]乾綱 君之綱이라하니
군주의 기강이 한번 실추되니注+[頭註]건강乾綱은 군주의 기강이다.
天樞遂崇崇注+[附註]武后改唐爲周하고 立宗廟하다 鑄銅爲天樞하야 以紀周功德하니 其制若柱 高百五尺이요 鐵山爲趾하니 周百七十尺이요 (每)[度]二丈이니 用銅 無慮二百萬斤이라 刻天后功德하야 立於端門之外할새 銅鐵不足이어늘 賦民間農器以하다 以銅爲蟠龍麒麟하야 縈繞之하고 上爲騰雲承露盤하고 四龍 人立捧火珠하고 刻百官及四夷酋長名하다 太后自書其榜曰 大周萬國頌德天樞라하다 이라
천추天樞가 마침내 높이 솟았구나.注+[附註]무후武后나라를 고쳐 라 하고 종묘宗廟를 세웠다. 구리를 주조하여 천추天樞를 만들어서 나라의 공덕을 기록하니, 그 제도가 기둥과 비슷하였다. 높이가 105척이고, 쇠를 주조하여 모양을 본떠 받침을 만들었는데 둘레가 170척이며, (넓이)가 2이니, 구리를 사용한 것이 무려 200만 근이나 되었다. 천후天后의 공덕을 새겨 단문端門 밖에 세웠는데, 구리와 쇠가 부족하자 민간의 농기구를 징발하여 보태었다. 구리로 서린 용과 기린을 만들어 둘러싸게 하고, 위에는 날아가는 구름 모양의 승로반承露盤을 만들고 네 마리 용이 사람처럼 서서 화주火珠를 받들게 하였으며, 백관 및 사방 오랑캐 추장酋長의 이름을 새겼다. 태후太后가 직접 그 에 쓰기를 대주만국송덕천추大周萬國頌德天樞라 하였다. 이 내용은 《신당서新唐書》 〈후비전后妃傳〉에 보인다.
淫(毒)[]穢宸極注+[附註]之毐 以比張易之, 張昌宗也 秦始皇卽位 年少하니 太后與文信侯呂不韋通이러니 王旣壯 文信侯恐事覺及禍하야 乃以舍人嫪毐 託爲宦者하고 進之하야 生二子하다 封毐爲長信侯러니 有告毐實非宦者어늘 毐懼하야 矯王御璽하야 發兵爲亂이라가 敗走하니 獲之하야 夷三族하고 遷太后하고 殺其二子하니라 音獠 嫪毐 姓名也[頭註] 帝居曰宸이라 하고
음란한 장씨張氏 형제가 황제의 처소를 더럽히고注+[附註]는 바로 노애嫪毐자이니, 장역지張易之장창종張昌宗을 비유한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즉위했을 때에 나이가 어리니, 태후太后문신후文信侯 여불위呂不韋와 간통하였는데, 왕이 장성한 뒤에 문신후文信侯는 일이 발각되어 가 미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사인舍人 노애嫪毐를 환관이라 칭탁하고 태후太后에게 올려 두 아들을 낳았다. 노애嫪毐를 봉하여 장신후長信侯로 삼았는데, 노애嫪毐가 환관이 아니라고 고발하는 자가 있자, 노애嫪毐가 두려워하여 왕의 옥새를 위조하여 군대를 동원해서 난을 일으켰다. 노애嫪毐가 패하여 달아나니, 그를 사로잡아 삼족三族을 멸하고 태후는 별궁으로 옮겼으며 그 두 아들을 죽였다. 는 음이 료(로)이니 노애嫪毐성명姓名이다. [頭註] 황제가 거처하는 곳을 이라 한다.
사나운 불꽃은 푸른 하늘 불태웠네.
向非狄張徒注+[頭註]狄, 張
그때 만일 적인걸狄仁傑장간지張柬之 등이 아니었으면注+[頭註]적장狄張적인걸狄仁傑장간지張柬之이다.
誰辦取日功注+[頭註] 謂挽回天日而中宗復位
누가 제위帝位를 바로잡아 되돌리는 공을 이루었을까.注+[頭註]취일공取日功은 하늘의 해를 바로잡아 되돌려서 중종中宗복위復位하였음을 이른다.
云何歐陽子注+[頭註]歐陽子 歐陽文忠公이라
어찌하여 구양자歐陽子注+[頭註]구양자歐陽子문충공文忠公 구양수歐陽脩이다.
秉筆迷至公注+[頭註]言修唐史할새 乃於帝紀內 立武后紀하니 是迷至公之道 以唐之一經이어늘 而亂周紀於其中이라
붓을 잡아 역사를 기록함에 지극히 공평함을 잃었는가.注+[頭註]구양수歐陽脩가 《신당서新唐書》를 편수할 적에 제기帝紀 안에 칙천순성무황후본기則天順聖武皇后本紀라 하여 무후기武后紀를 끼워 넣었으니, 이는 지극히 공정한 도를 잃은 것이다. 나라는 한 역통歷統인데 그 안에 주기周紀를 넣어 나라의 역통歷統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唐經亂周紀하니
나라 역통歷統주기周紀를 끼워 넣어 어지럽혔으니,
凡例孰(比)[此]容注+[頭註]孰此容 又孰可容此耶
이러한 범례를 누가 용납할 수 있겠는가.注+[頭註]숙차용孰此容은 또 누가 이것을 용납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侃侃范太史注+[頭註]侃侃 剛直也 范太史 范祖禹 受說伊川翁이라
강직한 범태사范太史注+[頭註]간간侃侃은 강직함이다. 범태사范太史범조우范祖禹이다.
春秋二三策으로
이천옹伊川翁에게 말씀을 받았다네. 《춘추春秋》의 두세 마디 말로
萬古(聞)[開]群蒙注+[頭註]每歲 必書帝在房州라하야 以合春秋書之法하야 開明萬世之群蒙이라 이라
만고萬古에 여러 몽매함을 열었도다.”注+[頭註]춘추이삼책만고개군몽春秋二三策萬古開群蒙:해마다 반드시 “황제가 방주房州에 있었다.[帝在房州]”라고 써서 《춘추春秋》에서 “나라 소공昭公건후乾侯에 있었다.[公在乾侯]”라고 쓴 법에 부합하였으니, 이로써 만대의 여러 몽매한 자들을 밝게 깨우쳐준 것이다.
○ 按尹氏曰
살펴보건대, 윤씨尹氏(尹起莘)가 말하였다.
范公祖禹修唐鑑할새 取法春秋하야 黜武氏之號하고 繫嗣聖之年이어늘 而通鑑則本之唐史하야 列武氏于本紀하고 卽以光宅紀元하니 自後 盡用武氏之號
범공范公 조우祖禹가 《당감唐鑑》을 편수編修할 적에 《춘추春秋》의 법을 취하여 무씨武氏의 연호를 버리고 중종中宗사성嗣聖이라는 연호로 표시하였는데, 《자치통감資治通鑑》은 당사唐史에 근본하여 무씨武氏본기本紀에 끼워 넣고 바로 광택光宅으로 기원紀元하니, 이후로 모두 무씨武氏의 연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今朱子綱目 止以嗣聖紀年하야 終武氏世者 蓋中宗 國之正統이어늘 武氏無故廢之하고 甚至革命易姓하야 無異莽, 操注+[頭註]王莽, 曹操 所爲일새라
그런데 지금 주자朱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는 단지 중종中宗사성嗣聖이라는 연호로 연대를 표시하여 무씨武氏의 대가 끝날 때까지 이렇게 하였으니, 이는 중종中宗이 나라의 정통인데 무씨武氏가 연고없이 폐위하고, 심지어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하여 왕조王朝를 바꾸어서 왕망王莽조조曹操注+[頭註]망조莽操왕망王莽조조曹操이다. 행위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나 天下猶唐之天下 武氏安得而絶之리오
그러나 천하는 여전히 나라의 천하이니, 무씨武氏가 어떻게 이것을 끊을 수 있단 말인가.
繫嗣聖而黜光宅 所以扶三綱, 立人極하야 示天下以正大之義하야 使後世亂賊之徒 無以自立於天下爾니라
사성嗣聖으로 표시하고 광택光宅을 버린 것은 삼강三綱을 붙들고 인극人極(人道)을 세워 천하에 공명정대한 의리를 보여줌으로써 후세의 난신적자들로 하여금 천하에 스스로 설 수 없게 한 것이다.
或曰 呂后制朝 何不繫惠帝之年
혹자가 말하기를 ‘여후呂后가 조정에서 칭제稱制한 것은 어찌하여 혜제惠帝의 연호를 표시하지 않았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惠帝 旣沒하야 固無年之可紀 況呂后 又取他人子하야 名爲惠帝子而立之注+[頭註]惠帝后張氏無子러니 呂后命張后하야 取他人子하야 殺其母而養之하니라
혜제惠帝는 이미 죽어서 진실로 기록할 만한 연도가 없었고, 더구나 여후呂后는 또 다른 사람의 자식을 데려다가 혜제惠帝의 아들이라고 이름하여 세웠다.注+[頭註]황려후況呂后……名爲惠帝子而立之:혜제惠帝후비后妃장씨張氏가 자식이 없었는데, 여후呂后장후張后에게 명하여 다른 사람의 자식을 데려다가 그 어미를 죽이고 기르게 하였다.
但兩行分註하야 紀呂氏之年이면
그러므로 다만 2으로 분주分註하여 여씨呂氏의 연호를 기록하였다.
固不得與中宗尙在者爲比하야 而得以繫嗣聖之號也니라
그렇다면 이미 정통이 아니라는 뜻을 충분히 나타낸 것이니, 진실로 아직 살아있었던 중종中宗과 나란히 놓아 사성嗣聖의 연호를 그대로 다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愚讀朱子之詩與尹氏之言하고 益以王先生之所命爲尤信이라
나는(劉剡) 주자朱子윤씨尹氏의 말을 읽고서 왕선생王先生(王逢)의 가르침을 더욱 믿게 되었다.
敢狂僭而正之云耳
그러므로 감히 광망狂妄하고 참람하게 이것을 바로잡았다.
中宗注+[頭註]武后之生이라 欲以爲侍中하니 裴炎 固爭한대
중종中宗注+[頭註]중종中宗무후武后의 소생이다. 위현정韋玄貞시중侍中으로 삼고자 하니 배염裴炎이 굳이 간쟁하니,
中宗怒曰 我以天下與韋玄貞이라도 何不可완대 而惜侍中耶
중종中宗이 노하여 이르기를 “내가 천하를 위현정韋玄貞에게 준다 한들 무엇이 불가하기에 시중侍中 자리를 아까워하겠는가.” 하니,
炎懼하야 白太后하야 密謀廢立하다
배염裴炎이 두려워하여 태후太后에게 아뢰어 은밀히 중종中宗을 폐위하고 다른 사람을 세울 것을 도모하였다.
二月戊午 太后廢中宗하야 爲廬陵王하야 幽於別所하다
2월 무오일戊午日(6일)에 태후太后중종中宗을 폐위하여 여릉왕廬陵王으로 삼아서 별궁別宮에 유폐시켰다.
立豫王旦하야 爲皇帝호되 政事 決於太后하고 居睿宗注+[原註]睿宗 卽豫王也 中宗之弟 於別殿하야 不得有所預하다
예왕豫王 이단李旦을 세워 황제로 삼았으나 정사를 태후에게서 결정하게 하고, 예종睿宗注+[原註]예종睿宗이 바로 예왕豫王이니, 중종中宗의 아우이다. 별전別殿에 거처하게 하여 정사에 관여하는 바가 있지 못하게 하였다.
○ 九月甲寅 赦天下하고 改元하다
9월 갑인일甲寅日(6일)에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광택光宅으로 개원改元하였다.
기치旗幟는 모두 금색金色을 따랐다.
○ 時 諸武用事하니 唐宗室 人人自危하고 衆心 이러라 眉州刺史英公李敬業注+[頭註]李勣之孫也 本姓徐氏 見上卷이라 武后討敬業할새 追削其祖考官爵하고 發塚斲棺하고 復姓徐氏하니라 及弟敬猷, 唐之奇, 駱賓王, 杜求仁, 魏思溫 各坐事遭貶이라
이때에 여러 무씨武氏들이 용사用事하니, 나라 종친들이 사람들마다 위태롭게 여기고 여러 사람의 마음이 분개하였는데, 마침 미주자사眉州刺史 영공英公 이경업李敬業注+[頭註]이경업李敬業이적李勣(李世勣)의 손자이다. 이적李勣은 본래 서씨徐氏이니, 상권上卷에 보인다. 무후武后이경업李敬業을 토벌할 때에 먼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작官爵추탈追奪하고 무덤을 파서 관을 쪼갰으며, 원래의 서씨徐氏로 회복시켰다. 그의 아우 이경유李敬猷당지기唐之奇낙빈왕駱賓王두구인杜求仁위사온魏思溫이 각각 일에 걸려 좌천되었다.
皆會於揚州하야 各自以失職怨望하고 乃謀作亂하야 以匡復廬陵王爲辭하니 思溫 爲之謀主러라
이들이 모두 양주揚州에 모여 각자 지위를 잃은 것을 원망하고 마침내 난을 일으킬 것을 도모하면서 여릉왕廬陵王(中宗)을 복위시킬 것을 구실로 삼으니, 위사온魏思溫모주謀主가 되었다.
於是 驅囚徒工匠數百하야 授以甲하고 遂起一州之兵하야 復稱嗣聖元年하고 開三府注+[附註]一曰 匡復府 二曰 英府 三曰 揚州大都督府 敬業 自稱匡復府將하고 領揚州大都督하야 以之奇, 求仁으로 爲左右長史하고 思溫爲軍師하고 賓王爲記室하니라 하니 旬日間 得勝兵十餘萬이라
이에 죄수들과 공인工人장인匠人 수백 명을 몰아서 갑옷을 주고, 마침내 한 의 군대를 일으켜 다시 사성嗣聖 원년元年이라고 칭하고 삼부三府를 여니,注+[附註]첫 번째는 광복부匡復府요, 두 번째는 영부英府요, 세 번째는 양주대도독부揚州大都督府이다. 서경업徐敬業이 스스로 광복부匡復府상장上將이라 자칭하고 양주대도독揚州大都督을 거느려서 당지기唐之奇두구인杜求仁좌우左右 장사長史로 삼고 위사온魏思溫군사軍師를 삼고 낙빈왕駱賓王기실記室로 삼았다. 10일 사이에 승병勝兵(정예병) 10여 만 명을 얻었다.
하니 略曰 僞臨朝武氏者 包藏禍心하고 竊窺神器하야 君之愛子 幽之於別宮注+[通鑑要解]謂居睿宗於別殿이라 하고 賊之宗盟注+[頭註] 同姓也 委之以重任이라하고
격문檄文을 돌렸는데, 그 내용에 대략 이르기를 “거짓(불법)으로 조정에 임어한 무씨武氏는 천하에 화를 끼치려는 마음을 품고 남몰래 신기神器(帝位)를 엿보아 임금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별궁에 유폐하고注+[通鑑要解]군지애자君之愛子 유지어별궁幽之於別宮:예종睿宗별전別殿에 거처하게 하였음을 이른다. 적의 종족에게注+[頭註]종맹宗盟동성同姓이니, 무승사武承嗣 무리를 이른다. 중임을 맡겼다.” 하였으며,
又曰 之土注+[通鑑要解] 音裒 手掬之土也 今人讀杯爵之杯하니 非也未乾 何在오하고
또 이르기를 “고종高宗의 무덤의 흙이注+[通鑑要解]는 음이 부이니, 일부지토一抔之土는 손으로 움켜쥘 정도의 흙이다. 지금 사람들은 배작杯爵의 ‘’자로 읽으니, 잘못이다.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6의 어린 군주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였으며,
又曰 試觀今日之域中하라
또 이르기를 “한 번 오늘날의 역내域內를 살펴보라.
竟是誰家之天下오하다
마침내 어느 집안의 천하란 말인가.” 하였다.
太后見檄하고 問曰 誰所爲 或對曰 駱賓王이니이다
태후太后가 격문을 보고 묻기를 “누가 지었는가?” 하니, 혹자가 대답하기를 “낙빈왕駱賓王입니다.” 하였다.
太后曰 宰相之過也로다
태후가 말하기를 “이는 재상의 잘못이다.
人有如此才어늘 而使之流落不偶(遇)注+[釋義]猶言不遇也
이 사람이 이와 같이 훌륭한 재주가 있는데, 그로 하여금 유락流落하여 불우하게 하였단 말인가.” 하였다.注+[釋義]불우不偶불우不遇라고 말함과 같다.
○ 甲申 遣大將軍李孝逸하야 將兵(二)[三]十萬하야 以討李敬業敗之하니 其將王那相 斬敬業, 敬猷及駱賓王首하야 來降하다
갑신일(10월 6일)에 대장군 이효일李孝逸을 보내어 병력 30만을 거느리고 이경업李敬業을 토벌하여 패주시키니, 〈11월 18일에〉그의 장수 왕나상王那相이경업李敬業이경유李敬猷낙빈왕駱賓王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역주
역주1 晉陽啓唐祚 : 唐나라 高祖가 隋나라 領晉陽宮監으로 있을 때에 裴寂은 副監이었는데, 太宗이 裴寂과 계책을 꾸며 晉陽宮人으로 하여금 高祖를 侍寢하게 하고 이로써 高祖를 협박하여 군대를 일으켰다.
역주2 : 랄
역주3 乾綱一以墜 : 황제인 中宗을 房陵縣에 유폐하여 唐나라의 기강이 이미 실추됨을 말한 것이다.
역주4 : 주
역주5 : 애
역주6 嫪毐 : 노애
역주7 虐焰燔蒼穹 : 蒼穹은 푸른 하늘을 가리키는 바, 來俊臣과 周興의 포악함이 뜨거운 불이 푸른 하늘을 태우는 것과 같음을 이른 것이다.
역주8 狄仁傑 張柬之 : 高宗이 죽은 뒤 武后가 정권을 전단하여 큰 아들인 中宗을 세웠다가 폐하고, 그 아우인 睿宗을 세웠다가 다시 예종을 폐하고 스스로 帝位에 즉위하여 국호를 周라고 하였는데, 狄仁傑과 張柬之 등이 武后의 무리인 張易之‧張昌宗 등을 목 베고 中宗을 복위시켰다.
역주9 取日功 : 取日은 지는 해를 맞이하여 되돌린다는 뜻으로, 폐위된 황제가 復位하도록 도움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10 凡例孰此容 : 歐陽脩가 《新唐書》를 편수할 적에 모든 凡例를 《春秋》에 견주었으나 누가 범례를 말하면서 이것을 용납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역주11 范太史 : 太史는 史官을 가리킨다. 范祖禹는 《唐鑑》을 편찬하였는데, 唐나라 高祖에서부터 昭帝‧宣帝까지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한 다음 아울러 평론을 가하였다.
역주12 二三策 : 두세 마디 말이다.
역주13 公在乾侯 : 公은 魯나라 昭公을 가리킨다. 昭公 때에 魯나라 公室이 미약하여 정사가 모두 季氏에게 있었다. 이에 昭公이 季氏를 토벌하려다가 季氏에게 쫓겨나 국외로 망명하여 乾侯에 있었으나 《春秋》에 昭公의 연대를 그대로 쓰고 “공이 건후에 있었다.[公在乾侯]”라고 기술하여 정통을 나타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唐나라 中宗이 房陵에 가 있더라도 마땅히 중종의 연대를 써야지 측천무후기를 넣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性理群書句解》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范撰唐鑑 黜武后之僣 每歲 必書曰帝在房陵 如春秋書公在乾侯之例 二三策 卽二三言也 使天下後世 知有君臣之大義 眞足以開萬古之蒙蔽也”
역주14 兩行分註……已足見其非正統之意 : 《通鑑節要》 제6권 漢紀 孝惠皇帝 7년(계축 B.C.188)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내(劉剡)가 《資治通鑑綱目》을 살펴보건대 모든 正統을 年歲(干支) 아래에 큰 글씨로 썼으나 正統이 아닌 경우에는 分注(두 줄로 나누어 작은 글씨로 注를 닮)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筆法의 올바른 例이다. 지금 呂氏가 臨朝함에 天下가 하나로 통합되어 거의 東漢의 馬皇后나 鄧皇后와 차이가 없어서 애당초 戰國時代와 南北朝, 五代時代에 비할 바가 아닌데, 어찌하여 또한 分注로 썼는가. 尹氏(尹起莘)가 말하기를 ‘내 일찍이 程伊川의 《易傳》을 보니, 坤卦의 六五爻에 이르기를 「신하가 尊位(제왕의 지위)에 거함은 后羿와 王莽이 이 경우이니 그래도 말할 수 있으나, 婦人이 尊位에 있는 것은 女媧氏와 武氏(則天武后)가 이 경우이니, 이는 非常한 변고여서 말할 수 없다.」 하였다. 呂氏가 臨朝했을 때에 비록 딴 사람의 아들을 취하여 황제로 세웠으나 실로 劉氏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資治通鑑綱目》에는 여기에 그 연도를 分注해서 실제는 正統이 아님을 드러내었고, 또 天下에 非常한 변고임을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變例로 써서 後世의 鑑戒를 세운 것이다.’ 하였다. 무릇 이러한 종류는 모두 《資治通鑑綱目》의 큰 사항이고 筆法의 중요한 뜻이니, 君子가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책에 있어 子朱子의 뜻을 한결같이 따라서 訂正하는 바이다.”
역주15 韋玄貞 : 皇后 韋氏의 아버지이다.
역주16 旗幟皆從金色 : 唐나라는 火德으로 일어났으므로 赤色을 숭상하였는데, 이제 이것을 金色으로 바꾼 것이다. 五行 중에 金은 白色이므로, 《新唐書》 〈則天順聖武皇后本紀〉에는 “9월 갑인일에 크게 사면령을 내리고 改元하였다. 旗幟는 백색을 숭상하였다.[九月甲寅 大赦 改元 旗幟尙白]”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17 : 완
역주18 移檄州縣 : 駱賓王이 지은 代徐敬業傳檄天下文을 가리키는데, 《全唐書》에는 代李敬業討武氏檄이라 되어 있고, 《唐文粹》에는 爲徐敬業以武后臨朝移諸郡縣檄이라 되어 있어 標題가 똑같지 않다.
역주19 武承嗣 : 武后의 조카로, 재상이었다.
역주20 : 부
역주21 六尺之孤 :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어린 군주를 이르는 바, 《論語》 〈泰伯〉에 “6척의 어린 임금을 맡길 만하고 百里의 命을 부탁할 만하며, 大節에 임해서 그 절개를 빼앗을 수 없다면 군자다운 사람인가? 군자다운 사람이다.[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 君子人與 君子人也]”라고 보인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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