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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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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寅]二十三年이라
23년(무인 B.C.403)
初命晉大夫注+[頭註] 姬姓이니 侯爵이라 周成王 封母弟叔虞於唐이러니 至于子燮하야 改國號曰晉이라하니 靜(靖)公 乃叔虞之三十九世也魏斯注+[頭註]本姓姬 周武王 封公高於畢하니 於是 以畢爲姓하다 晉獻公 封苗裔畢萬於魏하니 從其國〈號〉하야 稱魏氏 至六世魏舒하야 爲晉正卿하고 三世至斯, 趙籍注+[頭註]本嬴姓이니 周穆王 封造父以趙城하니 由此爲趙氏 至二十五世盾하야 始爲晉正卿하고 又六世 至籍하니라, 韓虔注+[頭註]姬姓이니 晉封武子於韓原이러니 至獻子하야 始從封爲姓이라 傳二世韓厥하야 爲晉正卿하고 又三世 至虔하니라하야 爲諸侯注+[原註]春秋之世 晉有范氏, 中行氏, 智氏及韓, 魏, 趙하니 是爲六卿이라 三家皆爲韓, 魏, 趙所滅하고 三分晉地而有之러니 至此 始請命於天子하야 爲諸侯하니라하다
처음으로 나라 대부大夫注+[頭註]희성姬姓이니 후작侯爵이다. 나라 성왕成王동모제同母弟숙우叔虞에 봉하였는데, 자섭子燮에 이르러 국호를 이라 고쳤다. 마지막 군주인 정공靖公은 바로 숙우叔虞의 39세손이다. 위사魏斯注+[頭註]위사魏斯본성本姓이니 나라 무왕武王공고公高에 봉하니, 이에 으로 삼았다. 나라 헌공獻公이 그의 후손인 필만畢萬에 봉하니, 국호를 따라 위씨魏氏라 칭하였다. 6세손인 위서魏舒에 이르러 나라 정경正卿이 되었고 3대에 위사魏斯에 이르렀다.조적趙籍注+[頭註]조적趙籍은 본래 영성嬴姓이니 나라 목왕穆王조보造父조성趙城에 봉하니, 이로 말미암아 조씨趙氏가 되었다. 25세손인 조돈趙盾에 이르러 비로소 나라 정경正卿이 되었고 또 6대에 조적趙籍에 이르렀다.한건韓虔注+[頭註]한건韓虔희성姬姓이니, 나라가 무자武子한원韓原에 봉하였는데, 헌자獻子에 이르러 비로소 봉지封地를 따라 으로 삼았다. 2대를 전하여 한궐韓厥에 이르러 나라 정경正卿이 되었고 또 3대에 한건韓虔에 이르렀다. 을 명하여 제후諸侯로 삼았다.注+[原註]춘추시대春秋時代나라에 범씨范氏중행씨中行氏지씨智氏한씨韓氏위씨魏氏조씨趙氏가 있었으니, 이를 육경六卿이라 하였다. 그 후 〈범씨范氏중행씨中行氏지씨智氏삼가三家가 모두 한씨韓氏위씨魏氏조씨趙氏에게 멸망당하고 한씨韓氏위씨魏氏조씨趙氏나라 땅을 셋으로 나누어 소유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처음으로 천자天子에게 명을 청하여 제후諸侯가 된 것이다.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天子之職 莫大於禮 禮莫大於分이요 分莫大於名이라
천자天子의 직책은 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명칭名稱보다 더 큰 것이 없다.
何謂禮
무엇을 라 이르는가?
紀綱 是也 何謂分
기강紀綱이 이것이요, 무엇을 이라 이르는가?
君臣 是也 何謂名
군신君臣이 이것이요, 무엇을 명칭名稱이라 이르는가?
公, 侯, 卿, 大夫 是也
대부大夫가 이것이다.
夫以四海之廣 兆民之衆으로 受制於一人하야 雖有絶倫之力 高世之智라도 莫不奔走而服役者 豈非以禮爲之紀綱哉
사해四海의 넓음과 억조億兆 백성百姓의 많음을 가지고 군주君主 한 사람에게 통제를 받아서 비록 절륜한 힘과 세상의 뛰어난 지혜가 있는 자라 하더라도 군주를 위해 분주히 달려가서 일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어찌 를 기강으로 삼은 이유가 아니겠는가.
是故 天子統三公하고 三公率諸侯하고 諸侯制卿大夫하고 卿大夫治士庶人하야 貴以臨賤하고 賤以承貴하야 上之使下 猶心腹之運手足 根本之制枝葉하고 下之事上 猶手足之衛心腹 枝葉之庇本根이니 然後 能上下相保하야 而國家治安이라
이 때문에 천자天子삼공三公을 통솔하고 삼공三公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제후諸侯경대부卿大夫를 통제하고 경대부卿大夫사서인士庶人을 다스려서, 귀한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에게 임하고 천한 사람으로서 귀한 사람을 받들어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리는 것이 심복心腹수족手足을 운용하고 근본根本지엽枝葉을 통제하듯이 하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 수족手足심복心腹을 호위하고 지엽枝葉본근本根을 비호하듯이 하니, 이렇게 한 뒤에야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보호하여 국가가 다스려지고 편안한 것이다.
故曰 天子之職 莫大於禮也
그러므로 천자天子의 직책은 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문왕文王이 《주역周易》을 서술할 때에 건괘乾卦곤괘坤卦를 첫머리로 삼았는데, 공자孔子가 말씀을 달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이 정해지고, 낮은 것과 높은 것이 진열되니 이 자리가 정해졌다.” 하셨으니, 군신君臣의 지위는 하늘과 땅이 뒤바뀔 수 없음과 같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春秋 抑諸侯하고 尊周室하야 王人雖微 序於諸侯之上하니 以是 見聖人於君臣之際 未嘗不惓惓也
춘추春秋》에 제후諸侯를 억제하고 나라 왕실을 높여서 천자국天子國의 사람은 비록 미천하나 제후諸侯의 위에 서열하였으니, 이로써 성인聖人(孔子)이 군신君臣의 사이에 있어 일찍이 권권惓惓하지 않음이 없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非有桀紂之暴 湯武之仁으로 人歸之, 天命之 君臣之分 當守節伏死而已矣
의 포악함과 으로 사람들이 귀의하고 하늘이 을 내림이 있지 않으면 군신간君臣間의 분수는 마땅히 절개를 지켜 죽을 뿐이다.
故曰 禮莫大於分也
그러므로 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夫禮 辨貴賤, 序親疎하고 裁群物, 制庶事하니 非名이면 不著 非器注+[頭註] 爵號也 車服也 不形이라
귀천貴賤을 분별하고 친소親疎를 서열하고 온갖 물건을 재단하고 여러 가지 일을 제재하니, 명칭이 아니면 드러나지 못하고 기물이 아니면注+[頭註]작호爵號이고, 는 수레와 의복이다. 나타나지 못한다.
名以命之하고 器以別之 然後 上下粲然有倫하니 此禮之大經也
그리하여 명칭으로써 명명하고 기물로써 구별하니, 이렇게 한 뒤에 상하上下가 찬란하게 차례가 있게 되니, 이것이 의 큰 법이다.
名器旣亡이면 則禮安得獨存哉
명칭과 기물이 이미 없어지면 가 어떻게 홀로 보존될 수 있겠는가.
仲叔于奚 有功於衛러니 辭邑而請繁(鞶)纓注+[釋義] 馬鬣上飾이요 馬膺前飾이라[頭註]繁 鞶同하니 今馬之大帶 削革爲之 諸侯之服이라한대 孔子以爲不如多與之邑이라
옛날에 중숙우해仲叔于奚나라에 큰 공이 있었는데 고을을 사양하고 제후가 사용하는 반영繁纓을 요청하자,注+[釋義]繁은 말 갈기 위의 장식이고, 은 말 가슴 앞의 장식이다. [頭註]繁은 과 같으니 지금 말의 큰 띠이고, 은 가죽을 깎아 만드니 제후諸侯가 사용하는 복식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고을을 많이 주는 것만 못하다.
惟器與名 不可以假人이니 君之所司也 政亡이면 라하시고
기물과 명칭은 남에게 빌려줄 수가 없으니, 군주가 맡은 것이니 〈명칭과 기물을 주는 것은 정권을 주는 것과 같다.〉 정사가 망하면 국가도 따라서 망한다.” 하였으며,
나라 군주가 공자孔子를 기다려 정사政事를 하려 하자, 공자孔子는 먼저 명분을 바로잡고자 하시어 말씀하기를 “명칭이 바르지 않으면 백성들이 수족手足을 둘 곳이 없다.” 하였다.
夫繁纓 小物也로되 而孔子惜之하시고 正名 細務也로되 而孔子先之 誠以名器旣亂이면 則上下無以相(有)[保]故也
반영繁纓은 작은 물건인데도 공자孔子가 그에게 주는 것을 애석히 여기셨고, 명분을 바로잡는 것은 하찮은 일인데도 공자孔子가 이것을 우선하신 것은 진실로 명칭과 기물이 이미 혼란하면 상하上下가 서로 보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故曰 分莫大於名也
그러므로 은 명칭보다 큰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嗚呼 幽厲失德 周道日衰
아, 유왕幽王여왕厲王을 잃음에 나라 (정치)가 날로 쇠하였다.
綱紀散壞하야 下陵上替하야 諸侯專征하고 大夫擅政하야 禮之大體 什喪七八矣로되 文武之祀 猶緜緜相屬者 蓋以周之子孫 尙能守其名分故也
기강紀綱이 흩어지고 무너져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윗사람이 침체하여 제후諸侯가 제멋대로 정벌征伐하고 대부大夫들이 정사를 천단擅斷하여 대체大體가 10에 7, 8이 없어졌으나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제사가 아직도 면면히 서로 이어진 것은 나라 자손들이 아직도 그 명칭名稱을 잘 지켰기 때문이다.
何以言之
어째서 이렇게 말하는가?
晉文公 有大功於王室하고 請隧注+[頭註] 墓道也 掘地通道하니 王之葬禮也 諸侯懸棺而下於襄王한대 襄王不許曰 王章注+[頭註] 表也 所以表名天子與諸侯異物也 周德雖衰 天下未有代周之德者어늘 晉欲擬天子하니 是有二王이라 未有代德而有二王
옛날에 나라 문공文公이 왕실에 큰 공이 있고서 양왕襄王에게 를 내려줄 것을 청하자, 注+[頭註]는 무덤으로 통하는 길이니, 땅을 파 길을 내는 것으로 천자天子의 장례이며, 제후諸侯을 매달아 하관下棺한다. 양왕襄王이 이를 허락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이것은 왕장王章(天子의 예법禮法)이니,注+[頭註]은 표시하는 것이니, 천자天子제후諸侯의 물건이 다름을 표시하여 밝히는 것이다. 나라의 이 비록 쇠하였으나 천하에 아직 나라의 을 대신할 수 있는 자가 있지 않은데 나라가 천자天子에게 견주고자 하였으니, 이는 두 이 있는 것이다. 을 대신한 자가 있지 않은데 두 (天子)이 있는 것은 또한 숙부께서도 싫어하는 바이다.
不然이면 叔父有地어늘 而隧又何請焉이리오한대 文公 於是乎懼而不敢違
그렇지 않다면 숙부는 영토를 소유한 제후인데 를 또 어찌하여 청하는가?” 하니, 문공文公이 이에 두려워하여 감히 어기지 못하였다.
是故 以周之地則不大於曹滕이요 以周之民則不衆於
이 때문에 나라의 영토를 가지고 말하면 나라와 나라보다 크지 않았고, 나라의 백성을 가지고 말하면 나라와 나라보다 많지 않았다.
然歷數百年토록 宗主天下하야 雖以晉, 楚, 齊, 秦之彊으로도 不敢加兵者 何哉
그런데도 수백 년이 지나도록 천하의 종주宗主가 되어서 비록 의 강함으로도 감히 침공을 가하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徒以名分尙存故也
다만 명칭名稱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至於季氏注+[頭註]魯大夫 世執國政하야 季平子逐昭公하고 季康子逐哀公이나 然終身北面하야 不敢簒國이라 孟孫, 仲孫, 季孫 皆桓公之子 是爲三桓이라之於魯 田常注+[頭註]卽陳恒이니 溫公避國諱하야 改恒曰常이라 陳氏 稱田氏하니 見下田和註之於齊 白公注+[頭註]見下二卷이라 楚邑也 楚僭稱王하야 邑宰皆僭稱公하니 勝其名也 楚太子建之子也之於楚 智伯注+[頭註]智伯於晉大夫 最强하야 攻晉出公하니 出公道死 智伯欲幷晉而不敢하야 乃奉哀公驕立之하니라之於晉 豈其力不足而心不忍哉
계씨季氏注+[頭註]계씨季氏나라 대부大夫이니, 대대로 국정國政을 잡아 계평자季平子(季孫意如)가 소공昭公을 축출하고 계강자季康子(季孫肥)가 애공哀公을 축출하였으나 종신토록 신하로서 북면北面하여 감히 나라를 찬탈하지 못하였다. 맹손孟孫중손仲孫계손季孫은 모두 환공桓公의 아들이니, 이를 삼환三桓이라 한다. 나라에 있어서와 전상田常注+[頭註]전상田常은 바로 진항陳恒이니, 온공溫公국휘國諱를 피하여 을 고쳐 이라 하였다. 진씨陳氏전씨田氏라 칭하였으니, 뒤의 안왕安王 11년(경인 B.C.391) 전화田和 에 보인다. 나라에 있어서와 백공白公注+[頭註]뒤의 2권에 보인다. 나라 고을이니 나라가 참람하여 이라고 칭하자 읍재邑宰들이 모두 참람하여 이라고 칭하였으니, 은 그 이름인 바, 나라 태자太子 의 아들이다. 나라에 있어서와 지백智伯注+[頭註]智伯이 나라 대부大夫 중에 가장 강하여 나라 출공出公을 공격하니, 출공出公이 도중에 죽었다. 지백智伯나라를 겸병하고자 하였으나 감히 하지 못하여 마침내 애공哀公 를 받들어 세웠다. 나라에 있어서는 그 세력이 모두 충분히 군주를 쫓아내고 스스로 군주가 될 수 있었으나 끝내 감히 이렇게 하지 못한 것은 어찌 그 힘이 부족하고 마음이 차마 하지 못해서였겠는가.
乃畏奸名犯分而天下共誅之也
이것은 바로 명칭名稱을 범하고 을 범하여 천하天下가 함께 토벌討伐할 것을 두려워해서였다.
今晉大夫 暴蔑其君하야 剖分晉國이어늘 天子旣不能討하고 又寵秩之하야 使列於諸侯하니 區區之名分 復不能守而幷棄之也 先王之禮 於斯盡矣
지금 나라 대부大夫가 그 군주를 업신여기고 무시하여 나라를 쪼개어 차지하였는데, 천자天子가 이미 토벌하지 못하고 또 은총으로 품계品階를 높여서 제후에 나열하게 하였으니, 이는 구구한 명칭名稱마저도 다시 지키지 못하여 함께 버린 것이니, 선왕先王가 이때에 다 없어졌다.
或者 以爲當是之時하야 周室微弱하고 三晉注+[頭註]魏趙韓三家 共分晉地故 曰三晉이라彊盛하니 雖欲勿許 其可得乎아하니 大不然이라
혹자는 말하기를 ‘이때를 당하여 나라 왕실은 미약微弱하고 삼진三晉()은注+[頭註] 삼가三家가 함께 나라 땅을 나누어 가졌기 때문에 삼진三晉이라 한 것이다. 강성强盛하였으니, 〈천자天子가〉 비록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니, 이는 크게 옳지 않다.
夫三晉雖彊이나 苟不顧天下之誅而犯義侵禮 則不請於天子而自立矣 不請於天子而自立이면 則爲悖逆之臣이니 天下 苟有桓文注+[頭註]齊桓公 小白이요 晉文公 重耳 皆霸諸侯也니라之君이면 必奉禮義而征之리라
삼진三晉이 비록 강성하나 만일 천하의 토벌을 개의치 않고 예의禮義를 침범하였다면 천자天子에게 청하지 않고 스스로 섰을 것이요, 천자天子에게 청하지 않고 스스로 섰다면 패역悖逆신하臣下가 되는 것이니, 천하에 만일 제환공齊桓公진문공晉文公注+[頭註]나라 환공桓公은 이름이 소백小白이고 나라 문공文公은 이름이 중이重耳이니, 모두 제후諸侯패자霸者이다. 같은 군주가 있다면 반드시 예의禮義를 받들어 정벌할 것이다.
今請於天子而天子許之하니 受天子之命而爲諸侯也 誰得而討之리오
이제 천자天子에게 청하여 천자天子가 허락하였으니, 이는 천자天子의 명령을 받고서 제후諸侯가 된 것이니, 누가 그들을 토벌할 수 있겠는가.
三晉之列於諸侯 非三晉之壞禮 乃天子自壞之也니라
그러므로 삼진三晉제후諸侯의 반열에 오른 것은 삼진三晉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바로 천자天子가 스스로 파괴한 것이다.”
趙簡子使尹鐸爲晉陽한대 請曰 以爲繭絲乎잇가 抑爲保障乎잇가注+[原註]繭絲者 指稅賦而言이요 保障者 指藩籬而言이니 尹鐸之意 不在稅賦而在藩籬하니 此其所以保晉陽也 簡子曰 保障哉인저 尹鐸 損其戶數注+[釋義]謂減損戶數 則賦稅輕하야 民力舒也하다
처음에 조간자趙簡子(趙鞅)가 윤탁尹鐸으로 하여금 진양晉陽을 다스리게 하자, 윤탁尹鐸이 청하기를 “견사繭絲를 하오리까, 아니면 보장保障을 하오리까?”注+[原註]견사繭絲부세賦稅를 가리켜 말한 것이고 보장保障은 울타리(보호 장벽)를 가리켜 말한 것이니, 윤탁尹鐸의 뜻이 부세賦稅에 있지 않고 울타리에 있었다. 이 때문에 진양晉陽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니, 간자簡子가 말하기를 “보장保障을 하라.” 하였으므로 윤탁尹鐸이 그 호구수를 줄였다.注+[釋義]손기호수損其戶數호구수戶口數감소減少함을 이르니, 이렇게 하면 세금이 가벼워져서 백성들의 힘이 펴진다.
簡子謂無恤曰 晉國 有難이어든 而無以尹鐸爲少注+[釋義] 輕之也 重之曰多 輕之曰少하고 無以晉陽爲遠하고 必以爲歸라하더니
간자簡子가 아들 무휼無恤에게 이르기를 “나라에 이 있거든 너는 윤탁尹鐸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注+[釋義]는 가볍게(하찮게) 여김이니, 중하게(훌륭하게) 여김을 라 하고 가볍게 여김을 라 한다. 진양晉陽을 멀다고 여기지 말고 반드시 그곳을 의귀처로 삼아라.” 하였다.
請地於韓康子한대 康子致萬家之邑하니
지선자智宣子(智申)가 죽고 지양자智襄子(智瑤)가 정사를 하게 되자, 지양자智襄子한강자韓康子(韓虎)에게 땅을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하니, 강자康子가 만 가호의 고을을 주었다.
智伯하야 又求地於魏桓子한대 桓子復與之萬家之邑하니
지백智伯(智襄子)이 기뻐하여 또다시 위환자魏桓子(魏駒)에게 땅을 요구하자, 환자桓子가 또다시 만 가호의 고을을 주었다.
智伯 又求蔡皐狼之地注+[釋義]皐狼 地名이니 屬趙邑이라 本春秋蔡地 故曰蔡皐狼이라於趙襄子注+[原註]無恤立하니 是爲趙襄子한대 襄子弗與하다
지백智伯이 또다시 나라 고랑皐狼의 땅을注+[釋義]고랑皐狼은 지명이니, 조씨趙氏의 고을에 속하였다. 본래 춘추시대春秋時代나라 땅이었으므로 나라 고랑皐狼이라 한 것이다. 조양자趙襄子(無恤)에게注+[原註]조간자趙簡子가 죽고〉 무휼無恤이 즉위하니, 이가 조양자趙襄子이다. 요구하였으나 양자襄子가 주지 않았다.
智伯하야 韓魏之甲하고 以攻趙氏하니 襄子將出曰 吾何走乎 從者曰 長子注+[釋義]曰 長子 周史辛甲所封이니 後爲趙邑하야 屬上黨이라 禮職方氏 其川漳이라한대 漳出長子라하니라하고 且城厚完하니이다
지백智伯이 노하여 한씨韓氏위씨魏氏의 군대를 거느리고 조씨趙氏를 공격하니, 양자襄子가 장차 도성을 나가려 하면서 말하기를 “내 어디로 달아나야 하겠는가?” 하니, 수행하는 자가 말하기를 “장자長子(지명)가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王幼學)가 말하였다. “장자長子나라 사관史官신갑辛甲봉지封地이니, 뒤에 조씨趙氏의 고을이 되어 상당上黨에 속하였다. 《주례周禮》 〈직방씨職方氏〉에 ‘이곳 냇물을 이라 한다.’ 하였는데, 에 ‘장수漳水장자長子에서 나온다.’ 하였다.” 가깝고 또 이 튼튼하고 완전합니다.” 하였다.
襄子曰 民力以完之하고 又斃死以守之 其誰與我리오 從者曰 邯鄲注+[釋義]慈湖王氏曰 邯鄲 趙地名이라 今磁州縣이니 在州北五十里하니 洛州肥鄕縣 亦邯鄲地也 有邯鄲山 在東城下之倉庫實하니이다
양자襄子가 말하기를 “백성들이 힘을 다하여 을 완전히 하고 또 죽음으로써 을 지키게 하면 그 누가 나와 함께 하겠는가?” 하니, 수행하는 자가 말하기를 “한단邯鄲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한단邯鄲나라 지명이다. 지금 자주현磁州縣이니, 의 북쪽 50리 지점에 있는 바, 낙주洛州비향현肥鄕縣한단邯鄲의 땅이다. 한단산邯鄲山동성東城의 아래에 있다.” 창고가 충실합니다.” 하였다.
襄子曰 浚民之膏澤하야 以實之하고 又因而殺之 其誰與我리오
양자襄子가 말하기를 “백성의 피와 땀을 짜내어 창고를 충실하게 하고 또 이로 인하여 백성들을 죽게 한다면 그 누가 나와 함께 하겠는가?
其晉陽乎인저
아마도 진양晉陽으로 가야 할 것이다.
先主之所 尹鐸之所寬也 民必和矣라하고 乃走晉陽하다
선주先主(簡子)께서 부탁한 바이고 윤탁尹鐸이 너그러운 정사를 베푼 곳이니, 백성들이 반드시 화목할 것이다.” 하고 마침내 진양晉陽으로 도망하였다.
三家以國人으로 圍而灌之하니 城不浸者三版注+[釋義]慈湖王氏曰 浸 當作沒이라 廣二尺曰版이라이요 沈竈産호되 民無叛意러라
삼가三家(韓, , )가 온 나라 사람을 동원하여 진양성晉陽城을 포위하고 물을 대니, 이 물에 잠기지 않은 것이 세 뿐이고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은 마땅히 이 되어야 한다. 너비(높이)가 두 자인 것을 이라 한다.” 부엌이 오랫동안 물에 잠겨 개구리가 새끼를 쳤으나 백성들은 배반할 뜻이 없었다.
趙襄子使張孟談으로 潛出見二子曰 臣聞脣亡則齒寒이라하니 今智伯 帥韓魏而攻趙하니 趙亡則韓魏爲之次矣리라
조양자趙襄子장맹담張孟談을 시켜 몰래 나가 이자二子(魏桓子와 한강자韓康子)를 만나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고 하였으니, 지금 지백智伯한씨韓氏위씨魏氏의 군대를 거느리고 우리 조씨趙氏를 공격하니, 조씨趙氏가 망하고 나면 한씨韓氏위씨魏氏가 그 다음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二子乃陰與張孟談約하고 爲之期日而遣之러니
이자二子가 마침내 은밀히 장맹담張孟談과 약속하고는 날짜를 기약하고 장맹담張孟談을 보내었다.
襄子夜使人殺守隄之吏하고 而決水灌智伯軍하니 智伯軍 救水而亂이어늘
조양자趙襄子가 밤에 사람을 시켜 제방을 지키는 관리를 죽이고 물을 터서 지백智伯군중軍中에 대니, 지백智伯의 군사들이 물에서 헤어나오느라 혼란하였다.
韓魏翼而擊之하고 襄子將卒犯其前하야 大敗智伯之衆하고 遂殺智伯하고 盡滅智氏之族하다
한씨韓氏위씨魏氏는 좌우에서 공격하고 조양자趙襄子는 병졸을 거느리고 그 앞을 막아 지백智伯의 무리(군대)를 크게 패배시키고, 마침내 지백智伯을 죽이고 지씨智氏의 종족을 모두 멸하였다.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智伯之亡也 才勝德也
지백智伯이 망한 것은 재주가 을 이겼기 때문이다.
夫才與德異어늘 而世俗 莫之能辨하고 通謂之賢이라하니 此其所以失人也
재주와 은 다른데 세속 사람들이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똑같이 어질다 하니, 이것이 사람을 잃는 까닭이다.
夫聰察彊毅之謂才 正直中和之謂德이니 才者 德之資也 德者 才之
총명聰明하고 강의彊毅함을 재주라 하고, 정직正直하고 중화中和함을 이라 하니, 재주는 의 재료요 은 재주의 우두머리이다.
是故 才德兼全 謂之聖人이요 才德兼亡(無) 謂之愚人이요 德勝才 謂之君子 才勝德 謂之小人이니 凡取人之術 苟不得聖人君子而與之인댄 與其得小人으론 不若得愚人이라
이 때문에 재주와 이 겸하여 온전한 것을 성인聖人이라 하고 재주와 이 겸하여 없는 것을 우인愚人이라 하고 이 재주를 이긴 것을 군자君子라 하고 재주가 을 이긴 것을 소인小人이라 이르니, 무릇 사람을 취하는 방법은 만일 성인聖人군자君子를 얻어 더불지 못할진댄 소인小人을 얻기보다는 우인愚人을 얻는 것이 낫다.
何則
어째서인가?
君子 挾才以爲善하고 小人 挾才以爲惡하나니 挾才以爲善者 善無不至矣 挾才以爲惡者 惡亦無不至矣
군자君子는 재주를 간직하여 을 하고 소인小人은 재주를 간직하여 을 하니, 재주를 간직하여 을 하는 자는 함이 지극하지 않음이 없고 재주를 간직하여 을 하는 자는 함이 또한 지극하지 않음이 없다.
愚者 雖欲爲不善이나 智不能周하고 力不能勝하니 譬之乳狗搏人하야 人得而制之어니와
어리석은 자는 비록 불선不善을 하고자 하나 지혜가 주밀하지 못하고 힘이 감당해 내지 못하니, 이는 비유하면 어린 강아지가 사람을 치는 것과 같아서 사람이 그것을 제지할 수 있다.
小人 智足以遂其姦하고 勇足以決其暴하니 虎而翼者也 其爲害 豈不多哉리오
그러나 소인小人은 지혜가 충분히 그 간악함을 이룰 수 있고 용맹이 충분히 그 포악함을 결행할 수 있으니, 이는 비유하면 범이 날개를 단 것과 같으니 그 해로움이 어찌 많지 않겠는가.
自古昔以來 國之亂臣 家之敗子 才有餘而德不足하야 以至於顚覆者多矣 豈特智伯哉리오
예로부터 나라의 난신亂臣과 집안의 패자敗子가 재주는 넉넉하고 은 부족하여 전복顚覆함에 이른 자가 많았으니, 어찌 다만 지백智伯뿐이겠는가.”
○ 趙襄子漆智伯之頭하야 以爲飮器注+[釋義]慈湖王氏曰 曰 大宛傳 匈奴破月하고 以其王頭爲飮器 韋昭云 飮器라하고 晉灼云 飮器 虎子屬也라하니라 今按 椑榼 用以盛酒耳 非用飮者 晉以爲溲便器者 以韓子呂氏春秋 竝云 襄子漆智伯頭하야 爲溲杯故也 〈顔〉師古引匈奴傳하야 謂爲飮酒器라하니 貴之也 且死骨凶穢 又惡人頭顱 豈俎豆所宜乎 晉灼釋爲溲便이라하니 蓋似之러니
조양자趙襄子지백智伯의 머리에 옻칠하여 음기飮器를 만들었다.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대완전大宛傳〉에 이르기를 「匈奴가 월지月氏를 쳐부수고 그 왕의 머리로 음기飮器를 만들었다.」 하였는데, 위소韋昭는 이르기를 「飮器는 비합椑榼(둥근 합)이다.」 하였고, 진작晉灼은 이르기를 「飮器는 호자虎子등속等屬이다.」 하였다. 지금 살펴보건대 비합椑榼은 술을 담는 데 사용하는 기물이고 마시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진작晉灼수편기溲便器(소변기)라고 말한 것은 《한비자韓非子》와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모두 양자襄子지백智伯의 머리에 옻을 칠하여 오줌그릇을 만들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였다. 안사고顔師古는 〈흉노전匈奴傳〉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술을 마시는 그릇이다.’ 하였으니, 이를 귀하게 여긴 것이다. 그러나 또 죽은 자의 해골은 흉하고 더러우며, 또 악한 사람의 두개골이 어찌 조두俎豆에 합당한 것이겠는가. 진작晉灼수편기溲便器라고 풀이하였으니, 아마도 이것이 옳은 듯하다.”
智伯之臣豫讓 欲爲之報仇하야 乃詐爲刑人注+[頭註]周禮大司寇 凡萬民之有罪過而未於法者 役諸司空이라한대 使治百工之役也하야 挾匕首注+[釋義] 音比 說苑云 尺八劍也 其頭類匕 故名匕首하고 入襄子宮中하야 塗厠이러니
지백智伯의 신하 예양豫讓지백智伯을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해서, 마침내 거짓으로 형인刑人처럼 위장하여注+[頭註]형인刑人은 《주례周禮》 〈대사구大司寇〉에 “모든 만민萬民으로서 죄과罪過가 있으나 법에 걸리지 않은 자를 사공司空에서 일을 시킨다.”라고 하였는데, 에 “백공百工의 일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비수匕首(단검)를注+[釋義]이 비이다. 《설원說苑》에 “1척 8촌의 이니, 그 머리 부분이 숟가락[匕]과 유사하므로 이름을 비수匕首라 했다.” 하였다. 지니고 양자襄子의 궁중에 들어가 측간에 흙을 바르고 있었다.
襄子如厠이라가 心動이어늘 索之하야 獲豫讓하니
양자襄子가 측간으로 가다가 마음이 섬뜩하므로 수색하여 예양豫讓을 잡았다.
左右欲殺之어늘 襄子曰 義士也
좌우左右들이 그를 죽이고자 하니, 양자襄子가 말하기를 “의사義士이다.
吾謹避之耳라하고 乃舍(捨)之하다
내가 삼가 그를 피할 뿐이다.” 하고 마침내 그를 놓아주었다.
豫讓 又漆身爲癩注+[釋義]慈湖王氏曰 漆有毒하야 人近之則患瘡腫하야 若癩然이라 故讓漆身以變其容이라 惡疾也하고 呑炭爲啞注+[釋義]慈湖王氏曰 國策曰 豫讓乞食이러니 其妻曰 貌不似吾夫 何其音似吾夫오한대 讓遂呑炭以變其音이라 通作瘂하야 行乞於市하니
예양豫讓이 또다시 몸에 옻을 칠하여 문둥이처럼 꾸미고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기를 “옻에는 독이 있어서 사람이 옻을 가까이하면 살이 헐고 종기가 나서 마치 문둥이와 같다. 그러므로 예양豫讓이 자기 몸에 옻칠을 하여 그 모습을 바꾼 것이다.” 하였다. 는 나쁜 병이다. 달군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어서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기를 “《전국책戰國策》에 이르기를 ‘예양豫讓걸식乞食을 하였는데, 그 아내가 〈보고〉 말하기를 「모습은 우리 남편과 같지 않으나 어쩌면 그리도 음성音聲이 우리 남편과 같은가?」 하자, 예양豫讓이 마침내 불에 달군 숯을 삼켜 그 음성을 바꾸었다.’ 했다.” 하였다. 는 벙어리이니 와 통한다. 시장을 다니며 구걸하니,
其妻 不識也로되 其友識之하고 爲之泣曰 以子之才 臣事趙孟注+[頭註]趙盾 字孟故 後世子孫 皆曰趙孟이라이면 必得近幸하리니 子乃爲所欲爲 顧不易耶
그의 아내는 몰라보았으나 그의 친구가 알아보고는 그를 위하여 울며 말하기를 “자네의 높은 재주를 가지고 신하가 되어 조맹趙孟을 섬기면注+[頭註]조돈趙盾이었기 때문에 그 후 후세의 자손들이 모두 조맹趙孟이라 하였다. 반드시 가까이하고 총애함을 얻을 것이니, 자네가 그때에 비로소 하고 싶은 바(복수)를 하는 것이 도리어 쉽지 않겠는가.
何乃自苦如此 豫讓曰 不可하다
어찌하여 마침내 스스로 고생하기를 이와 같이 하는가?” 하니, 예양豫讓이 말하기를 “그렇게 할 수 없다.
旣已委質爲臣注+[釋義]委質 委其體以事君이니 示必死節於其主也이요 而又求殺之 二心也
이미 몸을 바쳐 신하가 되고注+[釋義]위질委質은 그 몸을 바쳐 임금을 섬기는 것이니, 반드시 군주를 위하여 충절忠節을 다해 죽을 것임을 보이는 것이다. 또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이는 두 마음을 품는 것이다.
凡吾所爲者極難耳 然所以爲此者 將以愧天下後世之爲人臣하야 懷二心者也로라
무릇 내가 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나 이것을 하는 까닭은 장차 천하天下후세後世에 남의 신하가 되어서 두 마음을 품는 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였다.
襄子出할새 豫讓 伏於橋下러니 襄子至橋 馬驚이어늘 索之하야 得豫讓하야 遂殺之하다
양자襄子가 외출할 때에 예양豫讓이 다리 아래에 엎드려 있었는데, 양자襄子가 다리에 이르자 말이 놀라므로 수색하여 예양豫讓을 잡아서 마침내 죽였다.
가의賈誼치안책治安策에 말하였다.
豫讓 必報襄子하야 五起而不中이라
예양豫讓이 반드시 양자襄子에게 보복하려 하여 다섯 번 일어났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人問之曰 子嘗事范中行氏러니 智伯滅之로되 子不爲報讐하고 反臣事智伯이라가 今智伯死 子何爲報之深也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그대가 일찍이 범씨范氏중행씨中行氏를 섬겼었는데 지백智伯이 그를 멸망시켰으나 그대는 그들을 위하여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신하가 되어 지백智伯을 섬기다가 지금 지백智伯이 죽자 그대가 지백智伯을 위하여 원수를 갚기를 이처럼 심하게 함은 어째서인가?’ 하니,
對曰 中行 衆人畜我하니 我故衆人事之 智伯 國士遇我하니 我故國士報之
예양豫讓이 대답하기를 ‘중행씨中行氏는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하였으므로 나도 그를 보통 사람으로 섬긴 것이요, 지백智伯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우하였으므로 나도 국사國士로서 그에게 보답한 것이다.’ 하였다.
此一豫讓也로되 러니 已而 抗節致忠하야 行出乎烈士하니 皆人主使然也니라
그러므로 똑같은 예양豫讓인데 예전에는 군주를 배반하고 원수를 섬겨서 행실이 개 돼지와 같다가 얼마 후에는 절개를 높이고 충성을 바쳐서 열사烈士의 행실을 하였으니, 이는 모두 인주人主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然則爲人君者 可不以禮遇其臣下哉
그렇다면 인군人君된 자가 로써 신하를 대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호씨胡氏(胡寅)의 《독사관견讀史管見》에 말하였다.
君子爲名譽而爲善이면 則其善 必不誠이요 人臣爲利祿而效忠이면 則其忠 必不盡이라
군자君子가 명예를 위하여 을 행하면 그 이 반드시 성실하지 못하고, 인신人臣이 이익과 녹봉을 위하여 충성을 바치면 그 충성이 반드시 극진하지 못하다.
智伯無後矣하야 氣勢無所可倚矣 富貴無所可求矣 子孫無所可託矣어늘 而讓也 不忘國士之遇하고 以死報之하야 至再至三而愈篤하니 則無所爲而爲之者
지백智伯이 후손이 없어서 의지할 만한 기세가 없고, 구할 만한 부귀가 없고, 부탁할 만한 후손이 없었는데, 예양豫讓국사國士로 대우해 준 은혜를 잊지 않고 목숨을 바쳐 원수를 갚으려 하여 두 번에 이르고 세 번에 이르러 더욱 돈독히 하였으니, 이는 위한 바가 없이 한 자이다.
曰眞義士也라하니
그러므로 〈조양자趙襄子가〉 ‘진실로 의사義士이다.’라고 한 것이다.
此非特可爲委質事人之法이라 無所爲而爲善 雖大學之道라도 不過是也
이는 다만 몸을 바쳐 남(군주)을 섬기는 이 될 뿐만 아니라, 위한 바가 없이 을 행함은 비록 대학大學라 하더라도 이에 지나지 않는다.
〈然이나 襄子知其如此而終殺之하니 何以爲人臣之勸哉
그러나 조양자趙襄子가 이와 같음을 알면서도 끝내 예양豫讓을 죽였으니, 어떻게 인신人臣을 권면할 수 있겠는가.”
○ 魏斯者 桓子之孫也 是爲文侯
위사魏斯환자桓子의 손자이니, 이가 문후文侯이다.
文侯以卜子夏, 田子方으로 爲師하고 每過段干木注+[頭註]老子之子宗 爲魏將하야 封於段干하니 蓋因邑爲姓이라之廬 必式注+[釋義]慈湖王氏曰 記曲禮篇 尸必式이라한대 小俛以禮之 韻會註 乘而俛首致恭曰式이니 義取憑軾也 車前橫板이니 有所敬이면 則俯而憑之 孔曰 古者 車箱長四尺四寸이니 而三分之하야 前一後二 橫一木하야 下去車牀三尺三寸 謂之軾이요 軾上二尺二寸 橫一木 謂之이라 立乘 平常則憑較하나니 若應爲敬이면 則落手隱下軾而頭得俯俛이라하니 四方賢士多歸之注+[釋義]古帝王 皆有師러니 戰國以來 人君有師者 惟文侯러라
문후文侯복자하卜子夏전자방田子方을 스승으로 삼고 매번 단간목段干木注+[頭註]노자老子의 아들 나라 장수가 되어서 단간읍段干邑에 봉해지니, 고을의 이름을 따라서 단간段干으로 삼았다. 집을 지날 때에 반드시 경례하니,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篇〉에 ‘시동尸童에게 반드시 경례한다.’ 하였는데, 에 ‘조금 고개를 숙여서 한다.’ 하였다. 《운회韻會》의 에 ‘수레를 타고서 고개를 숙여 공경의 뜻을 나타냄을 이라 하니, 뜻은 에 기댐을 취한 것이다. 은 수레 앞에 가로댄 판자이니, 공경할 대상이 있으면 여기에 몸을 구부려 의지한다.’ 하였다. 공씨孔氏(孔穎達)는 말하기를 ‘옛날에 수레의 상자는 길이가 4척 4촌이니, 이것을 3등분 하여 앞이 1할이고 뒤가 2할이다. 한 나무를 가로대어 아래로 수레의 과 3척 3촌 떨어져 있는 것을 이라 이르고, 위의 2척 2촌이 되는 곳에 한 나무를 가로댄 것을 이라 이른다. 서서 수레를 탈 경우 평상시에는 에 기대는데, 만약 마땅히 공경해야 할 대상이면 손을 내려 밑에 숨겨 머리가 숙여지게 한다.’ 하였다.” 사방의 어진 선비들이 많이 그에게 귀의하였다.注+[釋義]옛날 제왕帝王들은 모두 스승이 있었는데, 전국시대戰國時代 이래로 임금 중에 스승을 둔 자는 오직 문후文侯뿐이다.
文侯與群臣으로 飮酒樂而天雨어늘
문후文侯가 여러 신하들과 술을 마셔 즐기는데 하늘에서 비가 왔다.
命駕將適野한대 左右曰 今日 飮酒樂하고 天又雨하니 君將安之잇고
문후文侯가 수레에 멍에를 매도록 명하여 장차 들로 가려 하자, 좌우左右의 신하들이 말하기를 “오늘 술을 마셔 즐겁고 또 비가 오는데, 군주께서는 장차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하였다.
文侯曰 吾與虞人注+[頭註]守苑囿之吏也 度知山林之大小及其所生也期獵하니 雖樂이나 豈可無一會期注+[頭註]昔與之期하니 今往會之 罷之 往告之以雨而罷獵이라아하고 乃往하야 身自罷之하다
문후文侯는 말하기를 “내 우인虞人注+[頭註]우인虞人원유苑囿를 지키는 관리이다. 는 헤아림이니, 산림山林의 크고 작음과 여기에서 생산되는 것을 헤아려 아는 것이다. 사냥하기로 약속하였으니, 비록 즐거우나 어찌 한 번 모이기로 한 약속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注+[頭註]회기會期는 옛날에 그(虞人)와 더불어 기약하였으니 이제 가서 만나는 것이요, 파지罷之는 비 때문에 사냥을 파함을 가서 고하는 것이다. 하고 마침내 가서 몸소 직접 약속을 파하였다.
文侯使으로 伐中山注+[釋義]狄都也 索隱曰 今中山府是也克之하야 以封其子擊하고
문후文侯악양樂羊으로 하여금 중산中山을 정벌하게 하여注+[釋義]중산中山도읍都邑이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지금 중산부中山府가 이곳이다.” 하였다. 이기고서 그 아들 을 봉하였다.
文侯問於群臣曰 我何如主 皆曰 仁君이니이다
문후文侯가 여러 신하들에게 묻기를 “나는 어떠한 군주인가?” 하니, 모두들 대답하기를 “어진 군주입니다.” 하였다.
任座曰 君得中山하사 不以封君之弟하시고 而以封君之子하시니 何謂仁君이니잇고
임좌任座가 말하기를 “임금께서 중산中山을 얻어 임금의 아우를 봉하지 않으시고 임금의 아들을 봉하셨으니, 어찌 어진 군주라 이를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文侯怒하니 任座趨出이어늘
문후文侯가 노여워하니, 임좌任座가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次問翟璜注+[釋義] 本音狄이니 後人姓 乃이라 音黃이라한대 對曰 仁君也니이다
문후文侯가 다음으로 적황翟璜에게注+[釋義]은 살펴보건대 《성원姓苑》에 “본음本音이 적이니, 후세 사람들이 으로 쓸 때에는 마침내 이 택(책)이다.” 하였다. 이 황이다.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진 군주입니다.” 하였다.
文侯曰 何以知之 對曰 君仁則臣直이라하니 嚮者 任座之言이라
문후文侯가 “무엇으로 아는가?” 하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군주가 어질면 신하가 곧은 말을 한다 하니, 조금 전에 임좌任座의 말이 곧았습니다.
是以知之하노이다
이 때문에 압니다.” 하였다.
文侯悅하야 使翟璜으로 召任座而反之하고 親下堂迎之하야 以爲上客하니라
문후文侯가 기뻐하여 적황翟璜으로 하여금 임좌任座를 불러 돌아오게 하고, 직접 을 내려가 그를 맞이해서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 子擊할새 遭田子方於道하야 下車伏謁호되 子方 不爲禮어늘 子擊하야 謂子方曰 富貴者驕人乎 貧賤者驕人乎
자격子擊이 외출하였을 때에 전자방田子方을 길에서 만나 수레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배알하였으나 전자방田子方를 하지 않자, 자격子擊이 노하여 전자방田子方에게 이르기를 “부귀한 자가 남에게 교만히 하는가, 빈천한 자가 남에게 교만히 하는가?” 하였다.
子方曰 亦貧賤者驕人耳 富貴者安敢驕人이리오
전자방田子方이 대답하기를 “역시 빈천한 자가 남에게 교만히 하는 것이니, 부귀한 자가 어찌 감히 남에게 교만히 하겠는가?
國君而驕人則失其國하고 大夫而驕人則失其家하나니 失其國者 未聞有以國待之者也 失其家者 로라
국군國君으로서 남에게 교만히 하면 그 나라를 잃고 대부大夫로서 남에게 교만히 하면 그 집을 잃으니, 그 나라를 잃은 자를 국군國君으로 대우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그 집을 잃은 자를 를 소유한 대부大夫로 대우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夫士 貧賤者
선비는 빈천한 자이다.
言不用, 行不合이면 則納履而去耳 安往而不得貧賤哉리오 子擊 乃謝之하다
말이 쓰여지지 않고 행실이 합하지 않으면 신을 신고 떠나갈 뿐이니, 어디를 간들 빈천하지 않겠는가.” 하니, 자격子擊이 마침내 사과하였다.
[新增]東萊曰
[新增]東萊(呂祖謙)가 말하였다.
夫富貴 固不可驕人이어니와 貧賤亦豈驕人得이리오
“부귀한 자는 진실로 남에게 교만할 수 없지만 빈천한 자가 또한 어찌 남에게 교만할 수 있겠는가.
蓋驕之一字 雖以周公之聖으로도 尙不敢加之於身이라
라는 한 글자는 비록 주공周公 같은 성인聖人도 오히려 자기 몸에 가하지 못하였다.
如曰使驕且吝이면 其餘 不足觀也已라하니 若子方 豈可驕人乎
예컨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기를 ‘만일 교만하고 또 인색하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전자방田子方과 같은 자가 어찌 남에게 교만할 수 있겠는가.
子擊 欲以勢驕人하고 子方 却欲以學驕人하니 二者病則一般이라
자격子擊은 권세로써 남에게 교만하고자 하였고, 전자방田子方은 학문으로써 남에게 교만하고자 하였으니, 두 사람의 병통은 똑같은 것이다.
田子方 子夏門人이로되 歷於戰國하여 不免爲風聲氣習之所移
전자방田子方자하子夏의 문인이었으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거쳐 풍성風聲기습氣習에 변화됨을 면치 못하였다.
有驕之失이라
그러므로 교만한 잘못이 있는 것이다.
其後 子方之學 流爲莊周하여 傲物輕世하니 皆從驕之一字失이니라
그 뒤에 전자방田子方의 학문이 흘러 장주莊周가 되어서 남에게 오만하고 세상을 경시하였으니, 이는 모두 한 글자로부터 잘못된 것이다.”
○ 文侯謂李克曰 先生 嘗有言曰 家貧 思賢妻하고 國亂 思良相이라하니 今所置 非成則璜이니 二子何如
문후文侯이극李克에게 이르기를 “선생이 일찍이 말하기를 ‘집이 가난할 때에는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혼란할 때에는 어진 정승을 생각한다.’ 하였으니, 지금 정승으로 세울 사람이 위성魏成이 아니면 적황翟璜이니, 두 사람이 어떠한가?” 하였다.
對曰 居視其所親하며 富視其所與하며 達視其所擧하며 窮視其所不爲하며 貧視其所不取 五者 足以定之矣니이다
이극李克이 대답하기를 “거처할 때에는 그 친한 바를 살펴보며 부유할 때에는 그 주는 바를 살펴보며, 영달했을 때에는 그 천거한 바를 살펴보며 곤궁할 때에는 그 하지 않는 바를 살펴보며, 가난할 때에는 그 취하지 않는 바를 살펴보아야 하니, 이 다섯 가지로 충분히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文侯曰 先生 就舍하라
문후文侯가 말하기를 “선생은 관사館舍로 가라.
吾之相 定矣로라
나의 정승을 결정했다.” 하였다.
李克한대 翟璜曰 君召卜相하시니 果誰爲之 克曰 魏成이니라
이극李克이 나오자, 적황翟璜이 묻기를 “임금께서 당신을 불러 정승을 점치셨으니, 과연 누가 됐습니까?” 하자, 이극李克이 “위성魏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忿然曰 西河注+[釋義]春秋晉地 今太原府汾州是守吳起 臣所進也
적황翟璜이 분해 하며 말하기를 “서하수西河守注+[釋義]서하西河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 땅이니, 지금의 태원부太原府 분주汾州가 이곳이다. 오기吳起도 신이 천거한 자이고,
內以鄴爲憂注+[附註]如河伯娶婦之類 史記 西門豹爲鄴令하니 三老廷掾 歲斂民錢하야 爲河伯娶婦할새 巫行視小家女好者하면 聘取 如嫁女하고 床席 令女居上하야 浮之河中이라 豹呼河伯婦曰 是女不好 煩大巫嫗하노니 爲入報河伯하고 更求好女하라하고 使吏卒抱巫嫗하야 投之河中하고 復以弟子投河中하야 凡三投 豹曰 是皆不能白하니 煩三老入白之하라하고 復投三老하다 良久 豹曰 欲使廷掾與豪長者 趣(促)之하노라한대 皆叩頭流血이라 吏民大驚하니 自此 不敢復言하니라어시늘 臣進西門豹하고
임금께서 내심 업현鄴縣을 걱정하시므로注+[附註]업현鄴縣을 걱정하였다는 것은 하백河伯(黃河의 )이 장가든 것과 같은 따위이다. 《사기史記》에 서문표西門豹업현鄴縣이 되었는데, 삼로三老정연廷掾(아전)이 해마다 백성들에게 돈을 거두어 하백河伯을 위해 여자를 시집보내었다. 무당이 민가를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딸을 보면 맞이하여 데려가기를 딸을 시집보낼 때와 똑같이 하였다. 그리하여 여자를 침상 위에 앉히고 이것을 황하黃河 가운데로 띄워 보내었다. 서문표西門豹하백河伯의 신부를 불러 말하기를 “이 여자는 아름답지 않으니, 수고스럽지만 무당할미가 물속에 들어가 하백河伯에게 보고하고 다시 아름다운 여자를 데려오겠다고 하라.” 하고 관리와 병졸들로 하여금 무당할미를 안아다가 황하黃河 속에 던지게 했다. 그리고 그 무당의 제자를 다시 황하黃河에 던졌는데 모두 세 번이나 이렇게 하였다. 서문표가 말하기를 “이들이 모두 하백河伯에게 제대로 아뢰지 못하니, 수고스럽지만 삼로三老가 물 속에 들어가 아뢰어라.” 하고 다시 삼로三老황하黃河 속에 던졌다. 얼마 후 서문표西門豹가 “정연廷掾토호土豪장자長者에게 시켜 재촉하고 싶다.” 하니, 이들이 모두 머리를 찧으며 사죄해서 이마에 피가 흘렀다. 관리와 백성들이 크게 놀라니, 이 뒤로는 다시 감히 말하지 못하여 이 폐해가 없어지게 되었다. 신이 서문표西門豹를 천거하였고,
欲伐中山이어시늘 臣進樂羊하고
임금께서 중산中山을 정벌하려고 하시므로 신이 악양樂羊을 천거하였고,
中山已拔 無使守之어늘 臣進先生하고
중산中山이 함락되자 지키게 할 사람이 없으므로 신이 선생先生을 천거하였고,
君之子無傅어늘 臣進屈侯鮒注+[釋義] 相也 姓也하니
임금의 아들이 사부師傅가 없으므로 신이 굴후屈侯 를 천거하였으니,注+[釋義](도와주는 사람)이다. 이고 이름은 이다.
以耳目之所睹記 臣何負於魏成이리오
귀와 눈에 보고 기억하는 바로써 볼 때에 신이 어찌 위성魏成에게 뒤지겠습니까.” 하였다.
克曰 魏成 食祿千鍾注+[頭註]量名이라 釜十爲鍾이니 六斛四斗也 十斗爲斛이요 六斗四升이라 在外하고 在內
이극李克이 말하기를 “위성魏成천종千鍾의 녹봉 중에注+[頭註]천종千鍾의 이름이다. 10이라 하니 6 4이다. 10이라 하고, 는 6 4이다. 10분의 9는 〈곡식을 풀어 남에게 주어〉 밖에 있고 10분의 1은 〈자신을 위해서 써서〉 안에 있었다.
是以 東得卜子夏, 田子方, 段干木하니 此三人者 君皆師之하시고 子所進五人 君皆臣之하시니得與魏成比也리오
이 때문에 동쪽으로 복자하卜子夏전자방田子方단간목段干木을 얻었는데 이 세 사람은 군주가 모두 스승으로 섬기시고, 그대가 천거한 다섯 사람은 군주가 모두 신하로 삼으셨으니, 그대가 어떻게 위성魏成과 견줄 수 있겠는가?” 하였다.
再拜曰 璜 鄙人也
적황翟璜재배再拜하고 말하기를 “저는 비루한 사람입니다.
失對하니 願卒爲弟子하노이다
대답할 바를 잃었으니, 마침내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 吳起者 衛人注+[頭註] 姬姓이니 侯爵이라 武王同母弟〈封〉 爲成王大司寇하야 食采於康이라 成王 封康叔於衛러니 傳四十二世하야 爲秦所廢하니라이라
오기吳起나라 사람이다.注+[頭註]나라는 희성姬姓이니 후작侯爵이다. 무왕武王동모제同母弟성왕成王대사구大司寇가 되어서 채읍采邑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성왕成王강숙康叔나라에 봉하였는데, 42대를 전하여 나라에게 폐출당하였다.
仕於魯러니 齊人 伐魯어늘 魯人 欲以爲將호되 起取(娶)齊女하여 爲妻 魯人 疑之하니
나라에서 벼슬하였는데 나라 사람이 나라를 정벌하자, 나라 사람이 오기吳起를 장수로 삼으려 하였으나 오기吳起나라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았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이를 의심하였다.
起殺妻以求將하야 大破齊師하다
이에 오기吳起는 아내를 죽이고 장수가 되기를 요구하여 나라 군대를 대파大破하였다.
譖之魯侯曰 起始事曾參이라가 母死 不奔喪이어늘 曾參 絶之러니
혹자或者오기吳起나라 군주에게 참소하기를 “오기吳起가 처음 증삼曾參을 섬겼는데,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에 달려가지 않으므로 증삼曾參이 그와의 관계를 끊었습니다.
今又殺妻以求爲君將하니 殘忍薄行人也
그런데 이제 또다시 아내를 죽여서 임금의 장수가 되기를 요구하였으니, 오기吳起는 잔인하고 행실이 각박한 사람입니다.
且以魯國區區而有勝敵之名이면 則諸侯圖魯矣리이다한대 起恐得罪하야 聞魏文侯賢하고 乃往歸之하다
또 구구한 나라로서 적을 이겼다는 명성(소문)이 있게 되면 제후諸侯들이 나라를 치려고 도모할 것입니다.” 하니, 오기吳起는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여 나라 문후文侯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가서 귀의하였다.
文侯問諸李克한대 克曰 起 貪而好色注+[釋義]慈湖王氏曰 索隱曰 李克言吳起貪이라하나 下文云 魏文侯知起廉平이라하고 又公叔之僕 稱起節廉하니 豈前貪而後廉耶 起家本千金이러니 破産求仕하니 今言貪 非實貪也 貪榮名耳 母死不歸하고 殺妻求將 是也이나이나 用兵 司馬注+[釋義]田完之裔 先爲齊大司馬 故稱司馬穰苴 所著書 名司馬法이라라도 弗能過也리이다
문후文侯이극李克에게 묻자, 이극李克이 대답하기를 “오기吳起는 명예를 탐하고 여색女色을 좋아하나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극李克이 「吳起는 탐하였다.」 말하였으나 아랫글에 이르기를 「魏나라 문후文侯오기吳起의 청렴하고 공평함을 알았다.」 하였고, 또 공숙公叔의 마부가 오기吳起의 절약하고 청렴함을 칭찬하였으니, 어찌 먼저는 탐욕스럽고 나중에는 청렴했겠는가. 오기吳起의 집이 본래 천금千金을 소유한 부잣집이었는데 파산하고 벼슬을 구하였으니, 지금 탐하였다고 말한 것은 실로 재물을 탐한 것이 아니고 영화와 명예를 탐했을 뿐이니, 어미가 죽었는데도 돌아가지 않고 아내를 죽여 장수가 되기를 요구함이 바로 이것이다.’ 하였다.” 용병술用兵術사마양저司馬穰苴注+[釋義]사마양저司馬穰苴전완田完의 후손이니, 먼저(예전에) 나라 대사마大司馬가 되었으므로 사마양저司馬穰苴라 칭한 것이다. 그가 지은 책을 《사마법司馬法》이라 이름한다. 그보다 낫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於是 文侯以爲將하야 擊秦拔五城하다
이에 문후文侯오기吳起를 장수로 삼아서 나라를 공격하여 다섯 을 함락하였다.
起之爲將 與士卒最下者 同衣食하며 臥不設席하고 行不騎乘하며 親裹贏糧하야 與士卒 分勞苦러라
오기吳起는 장수가 되었을 적에 사졸士卒 중에 가장 낮은 자와 의식衣食을 함께 하며, 누울 때에는 자리를 펴지 않고 다닐 때에는 말을 타거나 수레를 타지 않았으며, 몸소 양식을 싸서 짊어져 사졸士卒과 노고를 나누었다.
有病어늘 起爲러니 卒母聞而哭之한대
병졸 중에 등창을 앓는 자가 있자 오기吳起가 종기를 빨아주었는데, 그 병졸의 어미가 이 말을 듣고 통곡하였다.
人曰 子卒也어늘 而將軍 自吮其疽하니 何哭爲 母曰 往年 吳公 吮其父하니 其父戰不旋踵하야 遂死於敵이러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의 아들은 병졸인데 장군이 직접 등창의 종기를 빨아주었으니, 어찌하여 통곡하는가?” 하자, 어미가 대답하기를 “지난해에 오공吳公이 그 아비의 종기를 빨아주었는데, 그 아비가 〈은혜에 감격하여〉 용감히 싸우고 후퇴하지 않아서 마침내 적에게 죽었습니다.
吳公 今又吮其子하니 不知其死所矣
그런데 오공吳公이 이제 또다시 그 자식의 종기를 빨아주었으니, 첩은 제 자식이 싸우다가 어느 곳에서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是以哭之하노라
이 때문에 통곡합니다.” 하였다.
[新增]東萊曰
[新增]東萊가 말하였다.
殺妻求將 起未必是貪官爵이니 後便求爲將 只緣起學得兵法精이라 便被他使作하야 求逞其技能이라
“아내를 죽여 장수가 되기를 구한 것은 오기吳起가 반드시 관작을 탐해서가 아닐 것이니, 뒤에 장수가 되기를 구한 것은 다만 오기吳起가 병법을 정밀하게 배웠기 때문이니, 그가 병법에 부림을 당하여 그 기능을 발휘하고자 한 것이다.
以此知人有知能 固善이나 除是有技能後 能制得他住注+[頭註]言能制技能하야 不爲所動이라하야 而不爲技能所使者尤善이라
이로써 사람이 지능이 있음은 진실로 좋으나 기능을 소유한 뒤에는注+[頭註]기능을 제재하여 동요당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것을 제재하여 기능에 동요당하지 않는 자가 더욱 훌륭함을 알 수 있다.
吳起終爲魯人所譖하니라
이 때문에 오기吳起가 끝내 나라 사람들에게 참소를 당한 것이다.
人言樂羊伐中山할새 對使者하야 食其子注+[頭註]魏文侯遣樂羊으로 攻中山하니 時羊子在中山이라 中山君 烹其子而遺之羹한대 羊啜之하고 攻拔中山하니라한대 文侯賞其功而疑其心하고 易牙事齊威公할새 公盡嘗天下異味로되 獨未嘗人이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악양樂羊중산中山을 정벌할 적에 사자使者를 대하여 자기 자식을 먹자,注+[頭註]나라 문후文侯악양樂羊을 보내어 중산中山을 공격하게 하니, 이때 악양樂羊의 아들이 중산中山에 있었다. 중산中山의 군주가 악양樂羊의 아들을 삶아 죽여 국을 보내주자, 악양樂羊이 이것을 먹고 중산中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문후文侯는 그 을 상주면서도 그 마음을 의심하였고, 역아易牙나라 위공威公(桓公)을 섬길 적에 위공威公이 천하의 별미를 다 맛보았으나 오직 사람고기만은 맛보지 못하였다.
問易牙한대 易牙殺其子以進이라하니라
이에 위공威公역아易牙에게 묻자 역아易牙가 자기 자식을 죽여서 올렸다.’라고 하였다.
樂羊之食其子 易牙之殺其子 吳起之殺其妻 皆是於其所厚者薄이라
악양樂羊이 자기 자식을 먹은 것과 역아易牙가 자기 자식을 죽인 것과 오기吳起가 자기 아내를 죽인 것은 모두 후하게 대해야 할 바에게 박하게 대한 것이다.
凡人於所厚者厚之 則人亦厚之하고 於所厚者薄之 則人亦薄之하나니 是其初本欲求君之喜 終反爲君之疑
무릇 사람이 후하게 대해야 할 바에게 후하게 대하면 남들도 그에게 후하게 하고, 후하게 대해야 할 바에게 박하게 대하면 남들도 그에게 박하게 대하니, 처음에는 본래 군주가 기뻐하기를 바라고자 해서였으나, 끝내는 도리어 군주에게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吳起爲人 貪財好色이러니 及爲將하야는 則與士卒同甘苦하야 臥不設席하고 行不騎乘하니 是起前則貪, 後則廉也
오기吳起는 사람됨이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였는데, 장수가 됨에 이르러서는 사졸士卒들과 고락을 함께 하여 누울 때에 자리를 펴지 않았고 다닐 때에 말을 타거나 수레를 타지 않았으니, 이는 오기吳起가 전에는 탐욕스럽고 뒤에는 청렴한 것이다.
起非是後能廉也 前之貪 是貪財 後之與士卒同甘苦 乃是貪功名之心使之니라
그러나 오기吳起가 뒤에 능히 청렴해진 것이 아니요, 전에 탐욕스러웠던 것은 재물을 탐한 것이었고, 뒤에 사졸들과 고락을 함께 한 것은 바로 공명功名을 탐하는 마음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是移前之貪於功名上이니 其貪則一이라
이는 예전의 탐욕스러움을 공명功名 위에 옮겨 놓은 것이니, 탐욕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今漁人 以餌致魚하나니 非是肯捨餌也 意在得魚也 畢竟是貪心所使니라
지금 고기 잡는 사람이 낚싯밥으로 고기를 잡으니, 이는 낚싯밥을 주기를 좋아해서가 아니요 뜻이 고기를 잡으려는 데에 있는 것이니, 필경 이는 탐하는 마음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역주
역주1 [譯註]溫公曰 : 溫公은 宋나라의 명재상인 司馬光으로 太師 溫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溫公이라 칭한 것이다. 원래 《資治通鑑》에는 ‘臣光曰’로 되어 있는 것을 ‘溫公曰’로 바꾼 것이다.
역주2 [譯註]文王序易……貴賤位矣 : 文王이 지었다는 《周易》은 乾卦가 맨 앞에 있고 그 다음에 坤卦가 있는데, 乾은 하늘을 상징하고 坤은 땅을 상징한다. 《周易》의 〈繫辭傳〉은 孔子가 지었다고 하는데, 여기에 ‘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 貴賤位矣’라고 보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역주3 : 반
역주4 [譯註]仲叔于奚……則國家從之 : 春秋時代에 衛侯가 齊나라를 공격하여 新築에서 싸웠는데, 仲叔于奚가 孫桓子를 구원하여 살려주었다. 衛侯가 고을을 상으로 내렸으나 仲叔于奚는 이것을 사양하고 제후라야 쓸 수 있는 曲縣과 繁纓을 갖추고 조회할 것을 청하니, 이를 허락하였다. 孔子는 이 말을 듣고 “애석하구나! 고을을 많이 주는 것만 못하다. 기물과 명칭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줄 수 없는 것이니, 임금이 맡은 것이다.” 하고 탄식하였다. 曲縣은 三面에 악기를 설치한 수레이고, 繁纓은 제후의 말에만 꾸밀 수 있는 장식이다. 이 내용은 《春秋左傳》 成公 2年條에 보인다.
역주5 [譯註]衛君……民無所措手足 : 이 내용은 《論語》 〈子路〉에 보인다.
역주6 請隧 : 隧는 땅에 굴을 파서 通路을 만드는 것으로, 天子의 葬禮이다. 天子의 葬禮에는 棺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멀리에서 壙까지 비스듬히 굴을 파서 통로를 만든 뒤에 그 통로를 이용해 棺을 壙으로 밀어 넣으며, 諸侯는 모두 靈柩를 밧줄에 매달아 下棺한다.
역주7 [譯註]昔晉文公……亦叔父之所惡 : 叔父는 文公을 가리킨 것이다. 옛날 天子는 同姓의 諸侯를 叔父, 異姓의 諸侯를 伯舅라 칭하였다. 이 내용은 《春秋左傳》 僖公 25年條에 보인다.
역주8 : 오
역주9 邾莒 : 주거
역주10 田常 : 陳恒으로 시호가 成子인 바, 田氏는 본래 陳氏였다. 溫公이 宋나라 眞宗의 이름을 諱하여 恒을 常으로 고쳐 썼다.
역주11 智伯 : 智는 원래 知로 썼으며 荀氏이다.
역주12 [譯註]其勢……卒不敢者 : 季氏는 季孫氏로 桓公의 넷째 아들인 季友 이후로 대대로 魯나라의 국정을 집권하였으나 종신토록 신하로서 北面하였고 감히 나라를 찬탈하지는 못하였으며 田常은 齊나라의 정권을 얻어 闞止를 죽이고 簡公을 시해하였으나 역시 감히 스스로 즉위하지는 못하였다. 白公 勝이 楚나라 令尹 子西와 司馬子期를 죽이자, 石乞이 말하기를 “창고를 불태우고 왕을 시해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였으나, 白公은 말하기를 “왕을 시해하면 상서롭지 못하고 창고를 불태우면 백성을 모을 수 없다.” 하고 반대하였다. 智伯은 晉나라 말기에 국정을 專行하여 이웃 나라를 侵伐하였다. 智伯은 晉나라 大夫 중에 가장 강성하여 晉나라를 병탄하고 싶었으나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결국 哀公을 받들어 임금으로 세웠다. 이 네 사람은 모두 그 위세가 임금의 자리를 찬탈할 수 있었으나 끝내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 경우이다.
역주13 請隧 : 隧는 땅에 굴을 파서 通路을 만드는 것으로, 天子의 葬禮이다. 天子의 葬禮에는 棺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멀리에서 壙까지 비스듬히 굴을 파서 통로를 만든 뒤에 그 통로를 이용해 棺을 壙으로 밀어 넣으며, 諸侯는 모두 靈柩를 밧줄에 매달아 下棺한다.
역주14 田常 : 陳恒으로 시호가 成子인 바, 田氏는 본래 陳氏였다. 溫公이 宋나라 眞宗의 이름을 諱하여 恒을 常으로 고쳐 썼다.
역주15 智伯 : 智는 원래 知로 썼으며 荀氏이다.
역주16 以爲繭絲乎 抑爲保障乎 : 繭絲는 백성들이 피와 땀을 흘려 가꾼 곡식을 수탈하기를 마치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듯이 그치지 않음을 이른 것이요, 保障은 국가(군주)를 보호하는 장벽이나 보루로, 세금을 적게 거두어 백성들을 잘 살게 하면 백성들이 국가에 일이 있을 경우 몸을 바쳐 지켜주기 때문에 울타리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17 [譯註]智宣子卒 智襄子爲政 : 宣子는 智申의 시호이고 襄子는 智瑤의 시호이다. 智申은 宵와 瑤 두 아들이 있었는데, 宵는 성질이 올곧고 사나운 반면 瑤는 지혜롭고 간악하였다. 智申이 瑤를 후계자로 삼으려 하자 智果는 宵만 못하다고 만류하였다. 智申이 “宵는 성질이 사납다.”고 말하자, 智果는 “宵의 사나움은 얼굴에 있고 瑤의 사나움은 마음속에 있으니, 마음의 사나움은 나라를 망치고 얼굴의 사나움은 해롭지 않습니다. 만약 瑤를 후계자로 삼는다면 우리 智氏는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하였으나, 이 말을 듣지 않고 瑤를 세웠는데, 결국 재주와 권력을 믿고 방자하여 정벌을 일삼다가 세습한 지 3년 만에 無恤(趙襄子)에게 멸망당하였다.
역주18 : 솔
역주19 慈湖王氏 : 뒤의 2권 東周君 辛亥 6年條 註에 “慈湖王氏는 이름은 幼學이고 字가 行卿이다.”라고 보인다. 元나라 安慶 望江 사람으로 《資治通鑑綱目集覽》을 지었다.
역주20 : 피
역주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