淮南王安
이 謀反
할새 且曰 漢廷大臣
에 獨汲黯
이 好直諫
하고 守節死義
하니 難惑以非
요 至如說丞相弘等
하야는 如發蒙振落
注+[釋義]王氏曰 發蒙振落은 韋昭云 如發去物上之蒙하고 振落樹上之葉이니 言直取之易也라하니라爾
라하더라
會
에 伍被詣吏
하야 自告與淮南王謀反
이어늘 上
이 下公卿治
러니 十一月
에 安
이 自殺
하고 衡山王
注+[頭註]名賜니 淮南厲王之子라이 亦自剄死
하다
○ 張騫
이 自月
注+[原註]氏는 音支니 匈奴號라歸
하야 言西域諸國風俗
호되
大宛
에 多善馬
하고 大夏
에 邛竹杖
注+[釋義]王氏曰 山海經에 邛崍山에 出邛竹이라 瓚曰 邛山之竹은 節高中實하야 可作杖이라 蜀記云 張騫이 奉使尋河源할새 得高節竹하야 植於邛山하니 堪爲杖이라이요 大夏, 安息之屬
이 皆大國
이라 多奇物
이라한대
天子欣然
하야 以騫言爲然
하야 乃復事西南夷
注+[頭註]復事는 謂經略通之를 專以爲事也라 武帝元朔二年에 嘗罷西夷라 故曰復事라러라
○ 秋
에 匈奴渾
王
注+[原註]渾邪는 匈奴之屬이니 爲王者之號라이 降
이어늘 漢
이 發車三萬乘
하야 以迎之
할새 縣官
이 無錢
하야 從民貰馬
注+[釋義]貰는 音世니 賖貸也라하니 民或匿馬
하야 馬不具
라
上이 怒하야 欲斬長安令한대 右內史汲黯曰 長安令은 無罪하니 獨斬臣黯이라야 民乃肯出馬하리이다
且匈奴畔其主而降漢
이어늘 何至
中國
하야 以事夷狄之人乎
잇가 上
이 黙然曰 吾久不聞汲黯之言
이러니 今又復妄發矣
로다
居頃之
에 乃命徙降者邊五郡
注+[釋義]邊은 近也니 隴西, 北地, 上郡, 朔方, 雲中此五郡也라하고 因其故俗
하야 爲五屬國
注+[釋義]養心吳氏曰 因其故俗하야 爲屬國하고 猶未與中國雜處也라 後漢志曰 武帝置屬國都尉하야 主蠻夷降者라하니 師古曰 凡言屬國者는 存其國號而屬漢이라 故曰屬國이라하다
武帝從事四夷하여 以靡費中國은 不獨其征伐而然也라
如東夷濊王等降에 而燕齊之間이 爲之騷動하고 匈奴渾邪王降에 而府庫爲之一空이라
夫王者之於夷狄에 不誘其來하고 不追其往하여 使中國自爲中國하고 夷狄自爲夷狄하니 則吾民可以無事라
苟其來則誘之하고 去則追之면 則是中國之擾 無時而已也라
然則光武閉玉門하여 以謝西域之質이 豈不爲長策乎아
○ 休
王太子日
注+[釋義]屠는 音儲라 休屠는 匈奴所封王地라 後降漢하니 武帝開置縣하고 屬武威郡하니라 沒入官
하야 輸黃門
注+[頭註]屬少府하니 職任親近天子以供給하야 百物在焉하니라하야 養馬久之
러니 日磾牽馬過殿下
할새 容貌甚嚴
이어늘
上
이 奇焉
注+[頭註]上遊宴할새 後宮滿側이라 十餘人牽馬過殿下에 莫不竊視宮人이로되 日磾獨不敢擧頭竊視하니라 磾는 長八尺二寸이요 容貌甚嚴하고 馬又肥好하니 上奇焉하야 拜爲馬監이라가 遷侍中駙馬都尉하니라하야 卽日
에 拜爲侍中
하고 甚信愛之
하야 賜姓金氏
注+[頭註]休屠國은 作金人祭天主라 故로 賜日磾姓金氏하니라하다
회남왕淮南王안安이 모반할 적에 한편으로 말하기를 “
한漢나라 조정의 대신 중에 유독
급암汲黯만은 직간하기를 좋아하고 충절을 지켜 의리에 죽을 수 있으니 나쁜 것을 가지고 유혹하기 어려우며, 승상
공손홍公孫弘 등을 설득하기는 마치 뒤집어 쓴 것을 벗기고 나뭇잎을 흔들어 떨어뜨리는
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발몽진락發蒙振落은 위소韋昭가 이르기를 ‘물건 위에 덮인 것을 벗겨 버리고 나무 위의 잎을 흔들어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곧바로 취하기가 쉬움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것처럼 쉽다.” 하였다.
마침
오피伍被가 옥리에게 나아가
회남왕淮南王과 모반하였다고 스스로 고발하자,
상上이
공경公卿에게 내려 다스리게 하였는데, 11월에
안安이 자살하고
형산왕衡山王注+[頭註]형산왕衡山王은 이름이 사賜이니, 회남淮南여왕厲王의 아들이다. 또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5월에 흉노匈奴 만 명이 상곡上谷에 들어와서 수백 명을 죽였다.
○
장건張騫이
월씨국月氏國으로부터
注+[原註]씨氏는 음이 지이니, 흉노匈奴의 이름이다. 돌아와서
서역西域 여러 나라의 풍속을 말하기를
“
대완국大宛國에는 좋은 말이 많고
대하국大夏國에는
공죽장邛竹杖이
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산해경山海經》에 ‘공래산邛崍山에서 공죽邛竹이 나온다.’ 하였다. 설찬薛瓚이 말하기를 ‘공산邛山의 대나무는 마디가 높고 속이 충실하여 지팡이로 만들 만하다.’ 하였다. 《촉기蜀記》에 이르기를 ‘장건張騫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황하黃河의 근원을 찾을 적에 마디가 높은 대나무를 얻어서 공산邛山에 심으니, 지팡이를 만들 만하다.’ 하였다.” 있으며,
대하大夏와
안식安息 등은 모두 큰 나라이므로 기이한 물건이 많습니다.” 하니,
천자天子가 기뻐하여
장건張騫의 말을 옳다고 여겨서 마침내 다시 서남 오랑캐를
경략經略하였다.
注+[頭註]복사復事는 경략經略하여 통하게 함을 오로지 일삼음을 이른다. 무제武帝원삭元朔 2년年에 일찍이 서이西夷를 경략함을 혁파하였기 때문에 복사復事라고 말한 것이다.
- 《한서漢書》 〈장건전張騫傳〉과 〈서남이전西南夷傳〉에 나옴 -
가을에
흉노匈奴의
혼사왕渾邪王이
注+[原註]혼사渾邪는 흉노匈奴의 등속이니, 왕자王者의 칭호이다. 항복하자,
한漢나라가 수레 3만 대를 징발하여 이들을 맞이하였는데,
현관縣官(수령)들이 돈이 없어서 백성들에게서 말을 빌리니,
注+[釋義]세貰는 음이 세이니, 돈을 주고 빌리는 것이다. 백성들이 혹 말을 숨겨 말이 구비되지 못하였다.
상上이 노하여 장안령長安令을 목 베려고 하자, 우내사右內史급암汲黯이 말하기를 “장안령長安令은 죄가 없으니, 다만 신 급암汲黯의 목을 베어야 백성들이 비로소 기꺼이 말을 내놓을 것입니다.
또 흉노匈奴가 자기 군주를 배반하고 한漢나라에 항복하는데, 어찌하여 중국中國을 피폐하게 하면서까지 오랑캐 사람을 섬길 것이 있겠습니까?” 하니, 상上이 묵묵히 있다가 말하기를 “내 오랫동안 급암汲黯의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 지금 또다시 망발을 하는구나.” 하였다.
이는 《사기史記》의 구句를 따랐는데, ‘이사이적지인以事夷狄之人’이 《한서漢書》에는 ‘감심이적甘心夷狄’으로 되어 있음 -
얼마 있다가 마침내 명하여 항복한 자들을 변경의 다섯 고을로
注+[釋義]변邊은 변경에 가까움이니, 농서隴西, 북지北地, 상군上郡, 삭방朔方, 운중雲中 이 다섯 군郡을 이른다. 옮기게 하고, 옛 풍속을 따라 다섯
속국屬國이라고 이름하였다.
注+[釋義]因其故俗 위오속국爲五屬國:양심오씨養心吳氏가 말하였다. “옛 풍속을 따라 속국屬國으로 만들고, 아직 중국中國과 뒤섞여 처하게 한 것은 아니다. 《후한서後漢書》 〈백관지百官志〉에 이르기를 ‘무제武帝가 속국도위屬國都尉를 두어서 만이蠻夷의 항복한 자들을 주관하게 했다.’ 하였는데,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무릇 속국屬國이라고 말한 것은 그들 나라의 칭호를 보존하고 한漢나라에 속하게 하였으므로 속국屬國이라 이름한 것이다.’ 하였다.”
- 이상은 대략 《한서漢書무제기武帝紀》에 보임 -
“무제武帝가 사방의 오랑캐들을 정벌하여 중국中國을 피폐하게 한 것은 비단 정벌征伐해서 그러한 것만이 아니다.
예컨대 동이東夷인 예맥왕穢貊王 등이 항복하자 연燕‧제齊 사이가 이 때문에 소란하였고, 흉노匈奴의 혼사왕渾邪王이 항복하자 부고府庫가 이 때문에 한 번 비었다.
왕자王者가 이적夷狄에 대하여 오도록 유인하지 않고 가는 것을 쫓지 않아서, 중국中國은 따로 중국中國이 되고 이적夷狄은 따로 이적夷狄이 되게 하니, 이렇게 하면 우리 백성들이 무사할 수 있다.
만일 오면 유인하고 가면 쫓는다면 이는 중국中國의 소요가 그칠 날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무제光武帝가 옥문관玉門關을 닫아서 서역西域의 인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어찌 장구한 계책이 아니겠는가.”
휴도왕休屠王의 태자인
일제日磾가
注+[釋義]도屠는 음이 저이다. 휴도休屠는 흉노匈奴가 봉한 왕지王地이다. 뒤에 한漢나라에 항복하니, 무제武帝가 현縣을 설치하고 무위군武威郡에 속하게 하였다. 관官에
적몰籍沒되어
황문黃門에
注+[頭註]황문黃門은 소부少府에 속하니, 직임이 천자天子 가까이에 있으면서 물건을 공급하므로 온갖 물건이 다 있었다. 보내져서 말을 기른 지 오래되었는데,
일제日磾가 말을 끌고 대궐 아래를 지날 적에 용모가 매우 엄숙하였다.
상上이 기특하게 여겨
注+[頭註]상上이 놀이하여 잔치할 때에 후궁後宮이 곁에 가득하였다. 10여 명이 말을 끌고 궁전 아래를 지나갈 때에 궁녀들을 훔쳐보지 않는 자가 없었으나 김일제金日磾만은 홀로 감히 머리를 들어 훔쳐보지 않았다. 김일제金日磾는 신장이 8척 2촌이고 용모가 매우 근엄하였으며 말이 또 살지고 아름다우니, 상이 기특하게 여겨서 마감馬監을 제수하였다가 시중부마도위侍中駙馬都尉로 승진시켰다. 그날로 임명하여
시중侍中으로 삼고, 매우 신임하고 총애하여
김씨성金氏姓을 하사하였다.
注+[頭註]휴도국休屠國에서 금인金人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였다. 그러므로 일제日磾에게 김씨성金氏姓을 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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