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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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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戌]十年이라
대업大業 10년(갑술 614)
二月 詔百僚하야 議伐高麗하다
2월에 백관百官에게 명하여 고구려高句麗를 정벌하는 것을 의논하게 하였다.
戊子 詔復徵天下兵하야 百道俱進하니 天下已亂하야 所徵兵 多失期不至하고 高麗亦困敝하야 遣使乞降이라
무자일戊子日(20일)에 조서를 내려 다시 천하의 병력을 징발해서 모든 길로 동시에 진격하게 하니, 이때에 천하가 이미 혼란하여 징발한 병사들이 대부분 기한을 넘기고 이르지 않았으며, 고구려高句麗의 병사들도 피폐하여 사자를 보내 항복을 청하였다.
帝乃班師注+[頭註] 與般通하니 還也 謂還軍也하고 仍徵高麗王元하야 入朝러니 元竟不至하니라
황제가 마침내 회군回軍注+[頭註]과 통하니, 돌아오는 것이다. 반사班師는 군대를 돌이켜 돌아옴을 이른다. 하고 인하여 고구려왕高句麗王 고원高元을 불러 입조入朝하게 하였는데, 고원高元이 끝내 오지 않았다.
○ 初 開皇注+[頭註]文帝之末 國家殷盛注+[頭註] 盛也, 大也하니 朝野皆以高麗爲意호되注+[頭註]聰敏하고 好讀書記 左畵圓, 右畵方, 口誦, 目數, 耳聽 五事同擧 無所遺失이라 開皇中 奉勅修國史하야 直門下省이라가 坐罪除名하니 歸家하야 以敎授爲務하니라 獨以爲不可라하야 作撫夷論以刺之러니 至是하야 其言 始驗하니라
○ 처음 개황開皇注+[頭註]개황開皇문제文帝의 연호이다. 말년에 국가가 풍족하고 강성注+[頭註]은 성하고 큰 것이다. 하니, 조야朝野에서 모두 고구려高句麗를 정벌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오직 유현劉炫注+[頭註]유현劉炫은 총명하고 민첩하며 독서하기를 좋아하고 기억을 잘하였다. 그리하여 왼손으로는 원을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네모를 그리며 입으로는 외고 눈으로는 세며 귀로는 듣는 다섯 가지 일을 동시에 하였으나 빠뜨리는 바가 없었다. 개황開皇 연간에 칙명勅命을 받들어 국사國史편수編修하여 문하성門下省에 입직하였다가 죄에 걸려 제명除名되자, 집으로 돌아와 제자를 가르치는 것을 소임으로 삼았다. 만이 홀로 불가하다 하여 무이론撫夷論을 지어서 풍자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그의 말이 비로소 들어맞았다.
역주
역주1 : 현
역주2 : 지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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