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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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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辛丑]十五年이라
정관貞觀 15년(신축 641)
指殿屋하야 謂侍臣曰 治天下如建此屋하야 營構旣成이면改移 苟易一注+[通鑑要解] 音催 秦謂之椽하고 周謂之榱하고 齊謂之桷이라, 正一瓦 踐履動搖 必有所損이라
정월正月이 궁전의 지붕을 가리키면서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천하를 다스림은 이 집을 세우는 것과 같아서 경영하여 구조가 이루어진 뒤에는 자주 고치거나 옮기지 말아야 하니, 만일 한 개의 서까래를 갈고注+[通鑑要解]는 음이 최이니, 나라는 이라 하고 나라는 라 하고 나라는 이라 하였다. 한 장의 기와를 바로잡으면 밟고 동요함에 반드시 파손하는 바가 있게 된다.
若慕奇功하야 變法度하고 不恒其德이면 勞擾實多니라
만약 기이한 을 사모하여 마음대로 법도法度를 바꾸고 그 덕(마음)을 일정하게 지키지 않으면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이 실로 많아지게 된다.” 하였다.
○ 上謂侍臣曰 朕有二喜一懼하니
시신侍臣에게 말하기를 “은 두 가지 기쁜 일과 한 가지 두려운 일이 있다.
比年豐하야 長安斗粟 直(値)三四錢하니 一喜也 北虜久服하야 邊鄙無虞하니 二喜也
근년에 풍년이 들어서 장안長安의 곡식 한 말의 값이 3, 4전이니 이것이 첫 번째 기쁜 일이요, 북쪽의 오랑캐들이 오랫동안 복종하여 변방에 근심이 없으니 이것이 두 번째 기쁜 일이다.
治安則驕侈易生하고 驕侈則危亡立至하니 此一懼也니라
나라가 다스려지고 편안하면 교만함과 사치함이 쉽게 생겨나고, 교만하고 사치하면 위태로움과 멸망이 당장 이르니, 이것이 한 가지 두려운 일이다.” 하였다.
○ 幷州大都督長史 在州十六年 令行禁止하니 夷民懷服이라
병주대도독장사幷州大都督長史 이세적李世勣병주幷州에 있는 16년 동안 명령하는 것이 행해지고 금하는 것이 중지되니, 오랑캐 백성들이 마음으로 복종하였다.
上曰 隋煬帝勞百姓하야 築長城注+[頭註]見三十四卷丁卯年이라 하야 以備突厥호되 卒無所益이러니
이 이르기를 “나라 양제煬帝는 백성을 노역시켜 장성長城을 쌓아서注+[頭註]장성長城을 쌓은 일은 34권 정묘년조丁卯年條(607)에 보인다. 돌궐突厥을 방비하였으나 끝내 유익한 바가 없었다.
唯置李世勣於晉陽하야 而邊塵不驚하니 其爲長城 豈不壯哉아하고 乃以世勣으로 爲兵部尙書하다
은 오직 이세적李世勣진양晉陽에 두었을 뿐인데 변방이 안정되어 동요가 없으니 그 장성長城이 됨이 어찌 장대하지 않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이세적李世勣병부상서兵部尙書로 삼았다.
〈出李世勣傳〉
- 《신당서新唐書 이적전李勣傳》에 나옴 -
○ 上問魏徵호되 比來 朝臣 何殊注+[頭註] 絶也 不論事 對曰 陛下虛心采納하시면 必有言者하리이다
위징魏徵에게 묻기를 “근래에 조정의 신하들이 어찌하여 국가의 일을 전혀注+[頭註]는 절대로이다. 논하지 않는가?” 하니, 위징魏徵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 마음을 비우고 신하들의 말을 채납採納하시면 반드시 말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凡臣 徇國者寡하고 愛身者多하니 彼畏罪故 不言이니이다
무릇 신하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는 자는 적고 자기 몸을 아끼는 자는 많으니, 저들이 죄를 범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간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였다.
上曰 然하다
이 이르기를 “그러하다.
人臣 開說忤旨 動及刑誅하니 與夫蹈湯火, 冒白刃者 亦何異哉
신하가 정사를 의논하다가 군주의 뜻을 거스르면 번번이 형벌과 죽음에 이르니, 끓는 물과 타오르는 불을 밟고 시퍼런 칼날을 무릅쓰는 것과 또한 무엇이 다르겠는가.
是以 하시니 良爲此也로다
그러므로 임금이 창언昌言에 절하신 것이니, 진실로 이 때문이다.” 하였다.
〈出諫錄〉
- 《위정공간록魏鄭公諫錄》에 나옴 -
○ 上 嘗臨朝 謂侍臣曰 朕爲人主하야 常兼行將相之事로라 給事中張行成 退而上書하야 以爲
禹不矜伐注+[頭註] 誇其能이요 誇其功也 이나 而天下莫與之爭
하니이다
이 일찍이 조정에 임어하여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이 비록 군주이지만 항상 장상將相의 일을 겸하여 행하였다.” 하니, 급사중給事中 장행성張行成이 물러가 글을 올려서 아뢰기를 “임금은 자신의 재능과 공로를 자랑하지 않았으나 천하에 임금과 재능과 공로를注+[頭註]은 재능을 자랑하는 것이고, 은 공을 자랑하는 것이다. 다툴 자가 없었습니다.
陛下撥亂反正하시니 群臣 誠不足望淸光이나 然不必臨朝言之하야 以萬乘之尊으로 乃與群臣校功爭能이니 竊爲陛下不取하노이다
폐하께서 난을 평정하여 바른 데로 돌아오게 하시니, 여러 신하들이 진실로 청광淸光(임금의 얼굴)을 우러러볼 수 없으나 굳이 조회에 임하여 이것을 말씀하시어 만승萬乘의 존귀한 군주로서 마침내 여러 신하들과 을 비교하고 능력을 다툴 필요는 없으니, 신은 삼가 폐하를 위하여 취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甚善之러라
이 그의 말을 매우 좋게 여겼다.
〈出行成傳〉
- 《신당서新唐書 장행성전張行成傳》에 나옴 -
○ 上 以近世陰陽雜書 訛僞尤多라하야 命太常博士呂才하야 刊定注+[頭註] 削也 上之하니 才皆爲之敍하고 質以經史하다
이 근세에 음양陰陽에 관한 잡서雜書가 거짓됨이 특히 많다고 해서 태상박사太常博士 여재呂才에게 명해서 세상에 유행하는 서적을 간정刊定하여注+[頭註]은 깎아냄이다. 올리게 하니, 여재呂才가 부분별로 모두 서문을 짓고 경서經書사서史書로써 질정하였다.
其序宅經曰 近世注+[通鑑要解] 音檄이라 在男曰覡이요 在女曰巫 妄分하니
택경宅經》에 서문을 쓰기를 “근세에 무당들이注+[通鑑要解]은 음이 격이다. 남자는 이라 하고 여자는 라 한다. 함부로 오성五姓을 나누는데,
如張王爲商하고 武庾爲羽 似取諧韻이어니와 至於以柳爲宮하고 以趙爲角하야는 又復不類
예를 들면 장씨張氏왕씨王氏이라 하고 무씨武氏유씨庾氏라 한 것은 이 맞음을 취한 듯하나, 유씨柳氏이라 하고 조씨趙氏이라 함에 있어서는 또 유사하지 않으며,
或同出一姓이나 分屬宮, 商하고 或複姓數字 莫辨, 羽注+[通鑑要解]徵音 하니 此則事不稽古하고 義理乖僻注+[通鑑要解]近世相傳 以字學分五音하야 只在脣舌齒調之하니 舌居中者爲宮이요 口開張者爲商이요 舌縮却者爲角이요 舌拄齒者爲徵 脣撮聚者爲羽 陰陽家以 說正如此 者也
혹은 똑같이 한 에서 나왔는데 나누어서 에 속하게 하고, 혹은 복성複姓이라서 몇 자가 되는 것은 에 속하는지 에 속하는지 구분하지 못하니,注+[通鑑要解]징음徵音화음火音이다. 이것은 일이 옛것에 부합하지 않고 의리에도 어긋난다.” 하였다.注+[通鑑要解]근세에 서로 전해오는 설에 자학字學으로 오음五音을 나누어 단지 입술과 혀와 이로 조절하는 데에 달려 있으니, 혀가 가운데 있게 발음하는 것을 이라 하고, 입을 벌려 발음하는 것을 이라 하고, 혀를 오므려 말고 발음하는 것을 이라 하고, 혀가 이를 떠받치고 발음하는 것을 라 하고, 입술을 오므린 채 발음하는 것을 라고 한다. 음양가陰陽家오성五姓오음五音에 분속시킨 것도 그 이 이와 같다.
曰 祿命之書 多言或中하야 人乃信之長平坑卒注+[釋義]秦將白起攻趙할새 趙軍長平이러니 秦殺其將趙括하고 坑其降卒四十萬하니 事在周赧王五十五年이라 未聞共犯三刑注+[附註]十二辰有無恩之刑, 無禮之刑, (時)[恃]勢之刑하니 卽子刑卯하고 卯刑子하고 寅刑巳하고 巳刑申之類 太歲若與生月相刑이면 主非命而死 五行精記 丑未戌刑名恃勢 寅申巳位是無恩이요 (丁)[子]與卯刑曰無禮 辰午酉亥自相刑이라하니 辰刑辰하고 午刑午하고 酉刑酉하고 亥刑亥也이요 南陽貴士注+[釋義]漢光武時 彭寵, 李通, 鄧晨, 來歙, 鄧禹, 岑彭, 賈復, 吳漢, 陳俊, 任光, 朱祜, 杜茂, 馬成, 馬武, 劉隆, 韓歆, 趙熹, 張堪, 馮魴, 蔡少公, 李軼, 李守, 尹敏等 皆南陽人이니 竝貴士也何必俱當이리오
녹명祿命》에 서문을 쓰기를 “녹명祿命(사람이 타고난 운명)에 관한 책은 말을 많이 하여 간혹 맞을 때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마침내 믿고 있으나 장평長平에 매장당한 병사들이注+[釋義]나라 장수 백기白起나라를 공격했을 때에 나라 군대가 장평長平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나라가 나라 장수 조괄趙括을 죽이고 항복한 병졸 40만 명을 묻어 죽였으니, 이 일은 나라 난왕赧王 55(B.C.260)에 있었다. 모두 삼형三刑注+[附註]12에는 무은살無恩殺무례살無禮殺시세살恃勢殺이 있으니, 곧 형살刑殺하고 를 형살하고 를 형살하고 을 형살하는 따위이다. 태세太歲가 만약 생월生月과 서로 형살이 되면 비명횡사하게 된다. 《오행정기五行精記》에 “형살刑殺시세恃勢라 이름하고, 의 자리는 무은無恩이며, 의 형살을 무례無禮라 한다. 는 자기들끼리 서로 형살하니, 을 형살하고 를 형살하고 를 형살하고 를 형살한다.” 하였다. 범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며, 남양南陽의 귀한 선비들이注+[釋義]나라 광무제光武帝 때에 팽총彭寵이통李通등신鄧晨내흡來歙등우鄧禹잠팽岑彭가복賈復오한吳漢진준陳俊임광任光주호朱祜두무杜茂마성馬成마무馬武유융劉隆한흠韓歆조희趙熹장감張堪풍방馮魴채소공蔡少公이일李軼이수李守윤민尹敏 등이 모두 남양南陽 사람이었으니, 모두 귀한 선비들이었다. 어찌 반드시 모두 육합六合의 운명을 타고났겠는가.
今亦有同年同(錄)[祿]이나而貴賤懸殊하고 共命共胎 而夭壽更異하니 此皆祿命不驗之著明者也
지금 또한 같은 해에 태어나 복록福祿이 같은데도 귀천貴賤이 크게 다르고, 명운命運이 같고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났는데도 요수夭壽가 다시 다른 경우가 있으니, 이는 모두 녹명祿命이 증명되지 않음이 분명한 것이다.” 하였다.
其敍葬曰 古者 卜葬 蓋以朝市遷變하고 泉石交侵하야 不可前知 謀之龜筮러니 近代 或選年月하고 或相墓田하야 以爲窮達壽夭 皆因卜葬所致
장경葬經》에 서문을 쓰기를 “옛날 장례葬禮할 때에 묏자리를 점치는 것은 조시朝市가 변천하고 천석泉石이 서로 침식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거북껍질과 시초로 길흉을 점쳤는데, 근래에는 혹 술사術士를 불러다 매장할 연월年月을 가리고 혹은 묏자리를 보고는 곤궁하고 영달하고 장수하고 요절함이 모두 장지葬地장일葬日을 점친 소치라고 한다.
按禮 天子, 諸侯, 大夫 葬하니 古人不擇年月也
》를 살펴보면 천자와 제후와 대부의 장례가 모두 정해진 개월 수가 있었으니 이는 옛사람이 장례할 때에 연월年月을 가리지 않은 것이요,
春秋 九月丁巳 葬定公할새하야 不克葬하고 戊午 日下昃할새 乃克葬이라하니 不擇日也
춘추春秋정공定公 15년조에 ‘9월 정사일丁巳日(9일)에 정공定公을 장례할 적에 비가 내려 장례할 수가 없어서 무오일戊午日(10일) 해가 기울 때에야 비로소 장례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날짜를 가리지 않은 것이요,
鄭葬簡公할새 司墓之室注+[釋義]鄭掌公墓大夫 徒屬之家 當路 毁之則朝而窆이요 不毁則日中而窆注+[頭註] 陂驗切이니 葬下棺也 左昭十二年 毁之則道直이라 故早朝而下棺하고 不毁則道迂 故日中而下棺이라하니라 曲也이어늘 子産不毁하니 不擇時也
나라 간공簡公을 장례할 적에 사묘司墓의 집이注+[釋義]나라의 공묘公墓를 관장하는 대부大夫도속徒屬이 사는 집이다. 장례하러 가는 길을 막고 있어서 이 집을 헐면 아침에 묘를 쓸 수 있고 헐지 않으면 정오에 묘를 쓸 수 있었는데注+[頭註]훼지즉조이폄毁之則朝而窆 불훼즉일중이폄不毁則日中而窆:은 陂驗切(폄)이니, 장사 지낼 때 하관下棺하는 것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소공昭公 12년에 “〈나라 간공簡公을 장례할 적에 사묘司墓의 집이 길을 막고 있었다.〉이 집을 헐면 길이 곧기 때문에 아침에 하관下棺할 수 있고, 헐지 않으면 길이 돌아가기 때문에 정오에 하관下棺할 수 있었다.” 하였다. 는 굽은 것이다. 자산子産이 헐지 않았으니 이는 때를 가리지 않은 것이요,
古之葬者 皆於國都之北하야 兆域注+[通鑑要解]하니 域也 有常處하니 不擇地也
옛날에 장례하는 자들은 모두 도성의 북쪽에 매장하여 묘역이注+[通鑑要解]와 같으니, 묘역이다. 일정한 곳이 있었으니 이는 장소를 가리지 않은 것이다.
以妖巫妄言으로 遂於擗踊之際 擇地選時하야 以希富貴하며
지금은 요망한 무당의 말을 따라 마침내 상주들이 슬퍼서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를 때에 땅을 고르고 시일時日을 가려서 부귀하게 되기를 바란다.
或云辰日不可哭泣이라하야 遂(筦)[莞]爾注+[頭註] 音晥이니 小笑貌 而對弔客하며 或云同屬忌於臨壙注+[通鑑要解] 音曠이니 墓穴也 이라하야 遂吉服으로 不送其親하니
혹은 진일辰日에 곡하고 울어서는 안 된다 하여 마침내 빙그레 웃으면서注+[頭註]은 음이 환(완)이니, 조금 웃는 모습이다. 조문객을 대하며, 혹은 같은 띠는 광중壙中에 임하는 것을 꺼린다 하여注+[通鑑要解]은 음이 광이니, 무덤의 구덩이이다. 마침내 길복吉服을 입고서 그 어버이를 장송하지 않으니,
傷敎敗禮莫斯爲甚이라하니 識者以爲確論注+[頭註] 堅也 이러라
교화敎化를 손상시키고 예속禮俗을 무너뜨림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 하니, 식자識者들이 확고한 의론이라고 하였다.注+[頭註]은 확고함이다.
역주
역주1 正月 : 《資治通鑑》에는 7월 병자일(17일)로 되어 있다.
역주2 : 삭
역주3 : 최
역주4 : 임
역주5 李世勣 : 본래 姓은 徐인데 唐 高祖에게 李氏姓을 하사받아 李世勣이라 하고, 또 太宗(李世民)의 諱를 피하여 ‘世’자를 빼고 李勣이라 하였다.
역주6 禹拜昌言 : 昌言은 善言으로, 《書經》 〈皐陶謨〉에 “禹가 昌言에 절하며 ‘너의 말이 옳다.’ 했다.[禹拜昌言 曰兪]” 하였고, 《孟子》 〈公孫丑 上〉에는 “禹임금은 善言을 들으면 절하셨다.[禹聞善言則拜]” 하였다.
역주7 禹不矜伐 而天下莫與之爭 : 《書經》 〈大禹謨〉에 舜임금이 말씀하기를 “이리 오라, 禹야! 홍수가 나를 경계하였는데 믿음을 이루고 공을 이루니 너의 어짊이며, 나랏일에 부지런하고 집안에 검소하여 자만하고 큰 체하지 않으니 너의 어짊이다. 네가 자랑하지 않으나 천하에 너와 능함을 다툴 자가 없으며, 네가 과시하지 않으나 천하에 너와 공을 다툴 자가 없다.[來 禹 洚水儆予 成允成功 惟汝賢 克勤于邦 克儉于家 不自滿假 惟汝賢 汝惟不矜 天下莫與汝爭能 汝惟不伐 天下莫與汝爭功]” 하였다.
역주8 : 격
역주9 五姓 : 옛날에 術士들이 宮‧商‧角‧徵‧羽를 各姓에 分屬시켜 五姓으로 만들어서 當年의 길흉을 판단하였다.
역주10 : 치
역주11 火音 : 宮‧商‧角‧徵‧羽 五音을 金‧木‧水‧火‧土 五行에 배합시키면 宮音은 가장 濁하여 土에 속하고, 商音은 宮音 다음으로 濁하여 金에 속하고, 角音은 淸濁의 중간에 있어 木에 속하고, 徵音은 소리가 맑아 火에 속하고, 羽音은 가장 맑아 水에 속한다.
역주12 五姓分屬五音 : 五姓은 術士들이 姓氏를 宮‧商‧角‧徵‧羽 五音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舊唐書》 〈呂才傳〉에 “근대에 이르러서 巫師들이 다시 五姓의 說을 덧붙였으니, 五姓이란 宮‧商‧角‧徵‧羽 등을 이르니, 천하 만물을 모두 여기에 배속시키고 行事의 吉凶을 이에 따라 법으로 삼는다.……또 《春秋》를 징험해 보건대 陳‧衛‧秦은 모두 똑같이 水姓이고 齊‧鄭‧宋은 모두 火姓이라 하여, 혹은 붙어나온 조상을 이어받기도 하고 혹은 소속한 별(二十八宿)의 分野를 취하기도 하고 혹은 사는 지역을 취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또한 宮‧商‧角‧徵가 아닌데, 서로 관섭시켰으니, 이는 옛일을 상고하지 않은 것이며 의리가 어긋나는 것이다.[至於近代 師巫更加五姓之說 言五姓者 謂宮商角徵羽等 天下萬物 悉配屬之 行事吉凶 依此爲法……又檢春秋 以陳衛及秦 竝同水姓 齊鄭及宋 皆爲火姓 或承所出之祖 或繫所屬之星 或取所居之地 亦非宮商角徵 共相管攝 此則事不稽古 義理乖僻者也]”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13 祿命 : 福祿의 운명으로, 인생의 盛衰‧禍福‧壽夭‧貴賤 등을 모두 하늘이 정해준다고 생각하는 宿命論을 말한다.
역주14 三刑 : 고대에 占術家들이 12支를 가지고 10으로 逆推하거나 順推하여 吉凶을 헤아린 것이다. 子刑卯‧卯刑子를 互刑이라 하고, 寅刑巳‧巳刑申‧申刑寅‧未刑丑‧丑刑戌‧戌刑未를 遞刑이라 하고, 辰刑辰‧午刑午‧酉刑酉‧亥刑亥를 自刑이라 한다. 互刑은 서로 刑殺하는 것이고, 自刑은 같은 地支를 刑殺하는 것이다. 儲華子가 이르기를 “子‧卯가 一刑, 寅‧巳‧申이 二刑이고, 丑‧戌‧未가 三刑이다. 卯로부터 順으로 子에 이르고 子로부터 逆으로 卯에 이르면 10수를 다하여 無禮之刑이 되고, 寅으로부터 順으로 巳에 이르고 巳로부터 逆으로 申에 이르면 10수를 다하여 無恩之刑이 되고, 丑으로부터 順으로 戌에 이르고 戌로부터 逆으로 未에 이르면 10수를 다하여 恃勢之刑이 되니, 皇極 가운데에는 10을 刑殺의 數로 삼기 때문이다.” 하였다.
역주15 六合 : 陰陽家는 月建과 日辰의 地支가 서로 합하는 것을 吉日로 여긴다. 즉 子는 丑과 합하고, 寅은 亥와 합하고, 卯는 戌과 합하고, 辰은 酉와 합하고, 巳는 申과 합하고, 午는 未와 합한다 하여 총칭하여 六合이라 한다.
역주16 皆有月數 : 《禮記》 〈王制〉에 “天子는 7일에 殯하고 7개월에 장사 지내며, 諸侯는 5일에 殯하고 5개월에 장사 지내며, 大夫와 士‧庶人은 3일에 殯하고 3개월에 장사 지낸다.[天子七日而殯 七月而葬 諸侯五日而殯 五月而葬 大夫士庶人三日而殯 三月而葬]”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17 : 조
역주18 : 영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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