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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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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未]〈漢高祖劉知遠 仍稱晉天福十二年하니라
정미(947) - 나라 고조高祖 유지원劉知遠나라 천복天福 12년을 그대로 칭하였다.
○ 是歲 晉亡漢興하니 幷蜀, 南漢, 南唐하야 凡四國이요 吳越, 湖南, 荊南凡三鎭이라
○ 이해에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일어나니, 남한南漢남당南唐을 아울러 모두 네 나라이고, 오월吳越호남湖南형남荊南 모두 세 이다. -
春正月朔 契丹主至大梁하야 以晉主 爲負義侯하야 置於黃龍府注+[釋義]黃龍府 在臨潢府東南二百餘里 按契丹國志 東渡遼水하야 至(勃)[渤]海國鐵州 又行七八日하야 過南海府하야 〈遂至黃龍府也〉初 契丹主阿保機 見黃龍在其氈屋上하고 連發二矢러니 太子德光 於其地 置黃龍府하니라 하다
봄 정월 초하루에 거란주契丹主대량大梁에 이르러 진주晉主부의후負義侯로 강등시키고 황룡부黃龍府에 유치하였다.注+[釋義]황룡부黃龍府임황부臨潢府의 동남쪽 200여 리 지점에 있다. 살펴보건대 《거란국지契丹國志》에 “동쪽으로 요수遼水를 건너 발해국渤海國철주鐵州에 이르고, 또 7, 8일을 걸어 남해부南海府를 지나 〈마침내 황룡부黃龍府에 이른다.〉” 하였다. 처음에 거란주契丹主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황룡黃龍이 털방석으로 만든 지붕 위에 있는 것을 보고 연이어 두 발의 화살을 쏘아 죽였는데, 뒤에 태자太子 야율덕광耶律德光이 이곳에 황룡부黃龍府를 설치하였다.
○ 契丹主縱胡騎四出하야 以牧馬爲名하고 分番注+[釋義] 劫奪也 하니 謂之打草穀이라
거란주契丹主가 오랑캐 기병을 풀어놓아 사방으로 내보내서 말을 먹인다고 이름하고 을 나누어 노략질하니,注+[釋義]는 위협하여 빼앗는 것이다. 이를 일러 타초곡打草穀이라 하였다.
丁壯 斃於鋒刃하고 老弱 委於溝壑하야 自東西兩畿注+[頭註]東西二京也 天子千里之地 夏曰縣內 殷曰畿內 大梁屬縣 爲東畿 洛陽屬縣 西畿니라 及鄭, 滑, 曹, 濮 數百里間 財畜殆盡하니 於是 內外怨憤하고 始患苦契丹하야 皆思逐之矣러라
그리하여 중국中國장정壯丁들은 칼날에 죽고 노약자들은 시신이 도랑에 버려져서 동경東京서경西京양기兩畿로부터注+[頭註]동서양기東西兩畿동경東京서경西京경사京師이다. 천자天子가 다스리는 천리千里의 땅이니, 나라는 현내縣內라고 하였고 나라는 기내畿內라고 하였다. 대량大梁속현屬縣동기東畿가 되고, 낙양洛陽속현屬縣서기西畿가 된다. 정주鄭州활주滑州조주曹州복주濮州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 사이에 재물과 가축이 거의 다 없어지니, 이에 내외內外가 원망하고 분노하였으며, 비로소 거란契丹을 근심하고 괴로워하여 모두 쫓아낼 것을 생각하였다.
○ 晉劉知遠 在河東하야 富强 冠諸鎭하야 步騎至五萬人이라
나라 유지원劉知遠하동河東에 있으면서 부강함이 여러 중에 으뜸이 되어 보병과 기병이 5만 명에 이르렀다.
晉主與契丹結怨하니 知遠 知其必危호되 而未嘗論諫하다
진주晉主거란契丹과 원한을 맺으니, 유지원劉知遠은 반드시 위험을 초래할 줄을 알았으나 한번도 의논하고 간하지 않았다.
契丹 屢深入호되 知遠 初無邀遮注+[頭註] 亦遮也 入援之志러니 及聞契丹入汴하고 知遠 分兵守四境하야 以防侵이라
거란契丹이 여러 번 깊숙히 침입하였지만 유지원劉知遠은 애당초 적을 가로막고注+[頭註] 또한 가로막는 것이다. 들어와 구원할 뜻이 없었는데 거란契丹변주汴州로 쳐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유지원劉知遠은 군대를 나누어 사방의 경계를 수비하여 침략을 방비하였다.
於是 將佐勸知遠稱尊號하야 以號令四方한대 知遠 不許어늘
이에 장수와 막료들이 유지원劉知遠에게 존호를 칭하여 사방을 호령할 것을 권하자, 유지원劉知遠이 허락하지 않았다.
軍士皆曰 今契丹 陷京城, 執天子하야 天下無主하니 主天下者 非我王而誰
군사들이 모두 말하기를 “지금 거란契丹경성京城을 함락하고 천자를 사로잡아 천하에 군주가 없으니, 천하를 주관할 자가 우리 왕이 아니고 누구란 말입니까.
宜先正位號하고 然後出師하소서
마땅히 먼저 황제皇帝의 지위와 존호를 바로잡고 그런 뒤에 출정하소서.” 하였다.
○ 二月辛未 晉知遠 卽皇帝位하야 自言未忍改晉國이라하고 又惡開運注+[頭註]晉齊王年號 之名하야 乃更稱天福注+[頭註]晉高祖年號 十二年하다
2월 신미일辛未日(15일)에 나라 유지원劉知遠이 황제에 즉위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차마 나라의 국호를 고칠 수 없다.” 하고, 또 개운開運이라는 명칭을 싫어하여注+[頭註]개운開運나라 제왕齊王(石重貴)의 연호이다. 마침내 다시 천복天福 12년이라고 칭하였다.注+[頭註]천복天福나라 고조高祖(石敬瑭)의 연호이다.
○ 東方 群盜大起어늘 契丹主謂左右曰 我不知中國之人 難制如此로다
동방東方에 도둑떼가 크게 일어나자, 거란주契丹主가 좌우의 신하에게 이르기를 “나는 중국中國 사람들을 제어하기 어려움이 이와 같을 줄은 알지 못했다.” 하고,
復召晉百官하야 諭之曰 天時向暑하니 吾難久留라하고 以蕭翰注+[附註]契丹主邪(耶)律德光〈太〉后述律太后之兄子 其妹復爲契丹主后하니 始以蕭爲姓이라 自是 契丹后族 皆稱蕭氏하니라 으로 爲節度使하다
다시 나라 백관百官들을 불러 타이르기를 “날씨가 더워지니 내가 이곳에 오래 머물기가 어렵다.” 하고, 소한蕭翰注+[附註]소한蕭翰거란주契丹主 야율덕광耶律德光태후太后술률태후述律太后의 오라비의 아들이다. 그 누이가 다시 거란주契丹主가 되니, 처음으로 소씨蕭氏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거란契丹후족后族을 모두 소씨蕭氏라 칭하였다. 절도사節度使로 삼았다.
契丹 建國號遼하다
거란契丹이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라 하였다.
遼主發大梁하니 晉文武諸司從者數千人이라 盡載府庫之實以行하다
요주遼主대량大梁을 출발하니, 나라의 여러 문무文武 관사官司 중에 따르는 자가 수천 명이었는데, 부고府庫에 가득한 물건을 모조리 싣고 갔다.
○ 遼主至殺胡林注+[釋義] 本作狐 按契丹志 殺狐林者 村民 於林中 射殺一狐하고 因名焉이라 今名死狐嶺하니 在眞定府欒城縣北하니라 而卒이어늘 國人 剖其腹하고 實鹽數斗하야 載之北去하니 晉人 謂之注+[頭註] 音巴 腊屬이라 凡獸全乾者曰腊이니 卽太宗德光也 라하니라
요주遼主살호림殺胡林에 이르러 죽자,注+[釋義]살호림殺胡林는 본래 로 되어있다. 살펴보건대 《계단지契丹志》에 “살호림殺狐林은 마을 백성들이 숲속에서 여우 한 마리를 쏘아 죽이고 인하여 이렇게 이름했다.” 하였다. 지금은 사호령死狐嶺이라고 이름하니, 진정부眞定府 난성현欒城縣의 북쪽에 있다. 국인國人들이 그의 배를 가르고 소금 몇 말을 뱃속에 채워 수레에 싣고 북쪽으로 가니, 나라 사람들이 이를 일러 제파帝羓라 하였다.注+[頭註]는 음이 이니, 포의 종류이다. 모든 짐승 고기를 완전히 말린 것을 포라고 하니, 제파帝羓는 바로 태종太宗 야율덕광耶律德光이다.
○ 楚王希範注+[頭註]馬殷子也 見上卷하니라 하니 將佐奉其弟希廣立之하다
초왕楚王 마희범馬希範注+[頭註]마희범馬希範마은馬殷의 아들이니, 상권上卷에 보인다. 죽으니, 장수와 막료들이 그의 아우 희광希廣을 받들어 세웠다.
○ 晉主注+[頭註]劉知遠이라 發太原하야 自陰地關으로 出晉, 絳注+[頭註]地名이라 하니 史弘肇注+[頭註]侍衛都指揮使 奏克澤州注+[頭註]契丹昭義節度使耿崇美 屯澤州하야 將攻潞州어늘 弘肇取之하니라 하다
진주晉主(劉知遠)가注+[頭註]진주晉主유지원劉知遠이다. 태원太原을 출발하여 음지관陰地關으로부터 진주晉州강주絳州로 나오니,注+[頭註]진주晉州강주絳州는 지명이다. 사홍조史弘肇注+[頭註]사홍조史弘肇시위도지휘사侍衛都指揮使이다. 택주澤州를 점령하였음을 아뢰었다.注+[頭註]거란의 소의절도사昭義節度使 경숭미耿崇美택주澤州에 주둔하여 노주潞州를 공격하려 하자, 사홍조史弘肇택주澤州를 점령하였다.
弘肇爲人 沈毅寡言하고 御衆嚴整하야 所向必克하니 晉主自晉陽으로 安行하야 入洛及汴 兵不血刃 皆弘肇之力也
사홍조史弘肇는 사람됨이 침착하고 굳세고 말이 적으며 무리를 어거함에 엄격하고 정돈되어서 향하는 곳마다 반드시 승리하니, 진주晉主진양晉陽으로부터 편안히 행군하여 낙양洛陽변주汴州(大梁)에 들어갈 적에 병사들이 병기에 피를 묻히지 않은 것은 모두 사홍조史弘肇의 힘이었다.
晉主由是 倚愛之하니라
진주晉主가 이로 말미암아 그를 의지하고 사랑하였다.
○ 蕭翰 聞晉主擁兵而南하고 欲北歸호되 恐中國無主하야 必大亂이러니
소한蕭翰진주晉主가 군대를 거느리고 남하南下한다는 말을 듣고는 북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중국中國에 군주가 없어서 반드시 크게 혼란해질까 두려워하였다.
唐明宗子許王從益 與王淑妃注+[頭註]許王母 在洛陽이어늘 迎而立之하야 以爲帝하다
이때 나라 명종明宗의 아들 허왕許王 이종익李從益왕숙비王淑妃와 함께注+[頭註]왕숙비王淑妃허왕許王(李從益)의 어머니이다. 낙양洛陽에 있었는데, 소한蕭翰이 그를 맞이하여 황제로 세웠다.
○ 六月 吳越忠獻王弘佐卒할새 遺令하야 以丞相弘倧注+[頭註]弘佐之弟 으로 爲鎭海, 鎭東節度使하다
6월에 오월吳越충헌왕忠獻王 전홍좌錢弘佐가 죽을 적에 유명遺命을 내려 승상丞相 전홍종錢弘倧注+[頭註]전홍종錢弘倧전홍좌錢弘佐의 아우이다. 진해鎭海진동절도사鎭東節度使로 삼게 하였다.
〈是歲 爲內牙統軍使胡進思所廢하고 更立其弟弘淑하니라
- 이해에 전홍종錢弘倧내아통군사內牙統軍使 호진사胡進思에게 폐위당하고, 다시 그의 아우 전홍숙錢弘淑을 세웠다. -
○ 晉主至洛陽하야 命鄭州防禦使郭從義하야 先入大梁淸宮注+[頭註]灑掃殿內也 하고 密令殺李從益及王淑妃하다
진주晉主(劉知遠)가 낙양洛陽에 이르러 정주방어사鄭州防禦使 곽종의郭從義에게 명하여 대량大梁(汴州)에 먼저 들어가 궁궐을 깨끗이 청소하게 하고注+[頭註]청궁淸宮은 궁전 안에 물을 뿌려 청소하는 것이다. 은밀히 이종익李從益왕숙비王淑妃를 죽이게 하였다.
○ 晉主注+[頭註]綱目 作漢主 至大梁하야 復以汴州爲東京하고 改國號曰漢이라하고 仍稱天福年하고 曰 余未忍忘晉也라하니라
진주晉主注+[頭註]진주晉主는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는 한주漢主로 되어 있다. 대량大梁에 이르러 다시 변주汴州동경東京이라 하고 국호를 으로 고치고, 천복天福이라는 연호를 그대로 칭하며 말하기를 “내가 나라를 차마 잊지 못해서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 에
역주2 : 표
역주3 : 일
역주4 : 파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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