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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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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巳]〈唐長興四年이라
계사(933) - 나라 장흥長興 4년이다.
○ 閩主王延鈞龍啓元年이라
민주閩主 왕연균王延鈞 용계龍啓 원년元年이다.
○ 是歲 凡四國, 三鎭이라
○ 이해에 모두 네 나라이고 세 이다. -
春正月 閩王延鈞注+[頭註]延翰之弟 審知次子 改名璘이라 卽皇帝位하야 國號 大閩이라하다
봄 정월에 민왕閩王 왕연균王延鈞注+[頭註]왕연균王延鈞왕연한王延翰의 아우이고 왕심지王審知의 차자이니, 으로 개명하였다. 황제에 즉위하여 국호國號대민大閩이라 하였다.
○ 三月 唐以孟知祥으로 爲東西川節度使蜀王하다
3월에 나라가 맹지상孟知祥동서천절도사東西川節度使 촉왕蜀王으로 임명하였다.
○ 十一月 唐主殂하다
11월에 당주唐主가 죽었다.
唐主性不猜忌하야 與物無競하고 登極之年 已踰六十이라
당주唐主는 성품이 시기하지 아니하여 남과 다툼이 없었고, 등극할 때의 나이가 이미 60세를 넘었다.
每夕 於宮中焚香祝天하야 曰 某 胡人이라
매일 밤마다 궁중에서 향을 사르고 하늘에 축원하기를 “저는 오랑캐 사람입니다.
因亂하야 爲衆所推하니 願天早生聖人注+[通鑑要解]范仲淹曰 我太祖應期而生하니라 하야 爲生民主하소서
난리로 인하여 대중들에게 임금으로 추대되었으니, 바라건대 하늘은 빨리 성인을 탄생시켜注+[通鑑要解]범중엄范仲淹이 말하기를 “우리 태조太祖께서 천명天命에 응하여 태어나셨다.” 하였다. 생민生民의 주인이 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在位八年 年穀屢豐하고 兵革罕用하니 校於五代 粗爲小(唐)[康]하니라
재위한 8년 동안 연사年事가 여러 번 풍년 들고 병혁兵革을 드물게 사용하니, 오대시대五代時代에 비교함에 그런대로 소강小康이었다.
○ 契丹 〈天顯八年이라
거란契丹 - 천현天顯 8년이다. -
[新增]胡氏曰
[新增]胡氏(胡寅)가 말하였다.
明宗 美善頗多하고 過擧亦不至甚하니 求於漢唐之間하면 蓋亦賢主也
명종明宗은 아름다운 선행善行이 자못 많고 지나친 행동 또한 심함에 이르지 않았으니,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찾아보면 또한 어진 군주이다.
其尤足稱者 內無聲色하고 外無遊畋하며 不任宦官하고 廢內藏庫하며 賞廉吏하고 治贓蠹하니 若輔相得賢이면 則其過擧 當又損矣리라
그 중에 더욱 칭찬할 만한 것은 안으로 음악과 여색에 빠짐이 없고 밖으로 놀이와 사냥에 빠짐이 없었으며, 환관에게 맡기지 않고 내장고內藏庫를 폐지하였으며, 청렴한 관리에게 상 주고 부정하게 뇌물을 받아 백성을 좀먹는 자들을 다스렸으니, 만약 보상輔相이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지나친 행동이 마땅히 또 적었을 것이다.
其焚香祝天之言 發於誠心하니 天旣厭亂하야 遂生聖人이라
그리고 향을 사르며 하늘에 축원한 말은 성심에서 나왔으니, 하늘이 이미 혼란함을 싫어해서 마침내 성인聖人을 탄생시켰다.
用是觀之하면 天人交感之理 不可誣矣니라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면 하늘과 인간이 서로 감동하는 이치를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明宗 初無黃屋之心이러니 遭時之亂하야 邂逅得國이라
명종明宗은 애당초 황제가 되려는 마음이 없었는데 혼란한 때를 만나서 우연히 나라를 얻었다.
蒞政之初 斬孔謙而去苛法하고 誅宦寺而委宰相하며 命諸道以均民田하고 廢內藏庫以崇儉約하며 誅贓吏以示蠹民之戒하고 褒孫岳以化淸廉之風하며 遠女色而減後宮之員하고 優民力而免逋負之租하며 絶音樂之好而黜伶官하고 薄口體之奉而省庖廚하며 戒田獵之爲民害하야 而縱鷹犬하고 惡冗官之費하야 而罷有名無益之吏하며 戒橫斂, 斥私獻하야 而抑牧守進奉하며 有年之書 兩見于策이요 且目不知書로되 而所行 暗合古訓이라
정사를 다스리는 초기에 공겸孔謙의 목을 베어 가혹한 법을 제거하고 환관을 주벌하여 재상에게 맡겼으며, 여러 에 명하여 백성들의 토지를 균등하게 하고 내장고內藏庫를 폐지하여 검약을 숭상하였으며, 부패한 관리들을 주벌하여 백성을 좀먹는 것에 경계함을 보이고 손악孫岳에게 포상하여 청렴한 기풍을 강화하였으며, 여색女色을 멀리하여 후궁後宮의 인원수를 줄이고 백성들의 재력을 넉넉하게 하여 체납된 조세를 감면하였으며, 음악의 기호嗜好를 끊어 영관伶官(樂工)을 내치고 자신의 입과 몸을 봉양하는 것을 박하게 하여 포주庖廚를 줄였으며, 전렵田獵이 백성들에게 폐해가 됨을 경계하여 매와 사냥개를 풀어주고 쓸데없는 관원(冗官)이 국록國祿을 허비하는 것을 미워하여 명칭만 있고 유익함이 없는 관리를 혁파하였으며, 멋대로 세금을 거두는 것을 경계하고 사사로이 진상하는 것을 물리쳐 목수牧守(지방관)들이 진봉進奉하는 것을 억제하였으며, 풍년이 들었다는 기록이 두 번이나 사책史策에 보이고, 또 눈으로 글을 읽을 줄 몰랐으나 행동하는 바는 은연중에 옛 교훈과 부합하였다.
有如是者로되 惜其以戲殺從璨而無父子之恩하고 以誣殺安重誨而無君臣之義하며 年幾七十 諱言儲嗣라가 卒致從榮稱兵하야 驚亂宮闈하야 父子祖孫 一日而絶하야 身肉未寒 家國俱破하니 雖曰輔相非人이나 亦不學之所致也니라
이와 같은 미덕이 있었는데도 애석하게 장난으로 종찬從璨을 죽여 부자간의 은혜가 없었고, 무고誣告 때문에 안중회安重誨를 죽여 군신간의 의리가 없었으며, 나이가 거의 70세가 되어서도 저사儲嗣(後嗣)에 대해 말하기를 싫어하다가 끝내 종영從榮이 군대를 일으켜 궁위宮闈(궁중의 내전)를 어지럽혀 부자간父子間조손간祖孫間이 하루아침에 끊겨 육신이 차가워지기도 전에 집안과 나라가 모두 망하였으니, 비록 보상輔相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하나 또한 배우지 못한 소치이다.”
○ 十二月 宋王從厚注+[通鑑要解]明帝第五子 卽皇帝位하니 是爲閔帝
12월에 송왕宋王 이종후李從厚注+[通鑑要解]이종후李從厚명제明帝(李嗣源)의 다섯째 아들이다. 황제에 즉위하니, 이가 민제閔帝이다.
改元應順하다〈甲午四月 潞王卽位하야 改元淸泰하다
응순應順으로 개원改元하였다. - 갑오년甲午年(934) 4노왕潞王이 즉위하여 청태淸泰개원改元하였다. -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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