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月
에 帝崩
注+[通鑑要解]遺詔에 溫依周公居攝故事하라하고 又曰 하라하니 侍中王坦之 持詔入하야 於帝前에 毁之라 帝曰 天下儻來之運이어늘 卿何所嫌고하니 하다하고 太子卽皇帝位
하다
猛
이 爲相
에 堅
이 端拱
注+[頭註]端은 正也요 拱은 拱手也니 言無爲라於上
하고 百官
이 總己於下
하니 軍國內外之事 無不由之
러라
猛
이 剛明
注+[頭註]不屈於欲之謂剛이요 不惑於物之謂明이라淸肅
하야 善惡
이 著白
하고 放黜尸素注+[頭註]尸位素餐이라하고 顯拔幽滯하며 勸課農桑
하고 練習軍旅
注+[頭註]見一卷一旅注하니라하며 官必當才하고 刑必當罪하니 由是
로 國富兵彊
하야 戰無不克
이라
簡文이 爲桓溫所立하야 雖處尊位나 恭黙守道而已요 嘗懼廢黜하야 泣下沾襟하니
故로 謝安이 稱其爲惠帝之流에 淸談差勝耳라하고 謝靈運이 謂迹其行事하면 以爲赧, 獻之輩라하니 從可知矣니라
함안咸安 2년(임신 372) - 진秦나라 건원建元 8년이다. -
7월에 황제가
붕崩하고,
注+[通鑑要解]간문제簡文帝가 붕崩할 때 유조遺詔에 “환온桓溫은 주공周公이 거섭居攝한 고사故事를 따르라.” 하고, 또 말하기를 “소자少子가 보좌할 만하거든 보좌하고 만약 보좌할 수 없으면 그대가 스스로 취해도 된다.” 하니, 시중侍中 왕탄지王坦之가 조서詔書를 가지고 대궐에 들어가 황제의 앞에서 이것을 찢어 버렸다. 황제가 말하기를 “천하天下를 뜻하지 않게 갑자기 얻었는데, 경卿은 어찌하여 의혹하는가?” 하니, 왕탄지王坦之가 운운云云하였다. 태자太子가 황제에 즉위하였다.
○ 8월에 진秦나라가 왕맹王猛을 승상丞相으로 삼았다.
왕맹王猛이
승상丞相이 되자,
부견苻堅은 위에서 몸을 단정히 하고 손을 모아
무위無爲로써 다스리고
注+[頭註]단端은 바름이고 공拱은 공수拱手하는 것이니, 단공端拱은 무위無爲(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짐)를 말한다. 백관들은 아래에서 자신의 직책을 총괄하니,
군국軍國 안팎의 정사가
왕맹王猛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왕맹王猛은 굳세고 밝고
注+[頭註]욕심에 굴복당하지 않는 것을 강剛이라 하고, 외물에 미혹되지 않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 깨끗하고 엄숙하여
선악善惡이 분명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녹만 받아먹는 자들
注+[頭註]시소尸素는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녹祿만 받아먹는 것을 이른다. 을 추방하여 내쫓고 숨어서 세상에 나오지 않는 자들을 드러내어 발탁하며, 농업과 양잠을 권장하고 군대
注+[頭註]군려軍旅는 1권의 ‘일려一旅’ 주注에 보인다. 를 훈련시키며, 관직은 반드시 재주에 걸맞게 하고 형벌은 반드시 죄에 마땅하게 하니, 이로 말미암아 나라가 부유하고 군대가 강성해져서 싸우면 승리하지 않음이 없었다.
“간문제簡文帝가 환온桓溫에 의해 옹립되어 비록 지존의 자리에 있었으나 공손하고 침묵하여 도道를 지킬 뿐이었고, 항상 폐출당할까 두려워하여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셨다.
간문제簡文帝는 비록 정신이 평안하고 지식이 통창通暢하였으나 세상을 구제할 큰 지략智略이 없었다.
그러므로 사안謝安은 칭하기를 ‘진晉나라 혜제惠帝의 부류인데 청담淸談이 조금 나을 뿐이다.’ 하였고, 사영운謝靈運은 이르기를 ‘행한 일을 살펴보면 주周나라 난왕赧王과 한漢나라 헌제獻帝의 무리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그의 인품을 알 만하다.”